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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군필여고생이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19.03.01 01:04
최근연재일 :
2019.09.18 19:11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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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49

작성
19.03.1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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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값비싼 교훈(3)

DUMMY

나는 내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인생.

정말 빌어먹을 인생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했다.

잘 나가는 청년 사업가.

이십대 천재 사장.

사업이 번창하여 아주 젊은 나이에 떼돈을 벌었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성취를 이루었으며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단 한순간에 고꾸라졌다.

남자는 세 가지를 잘못 놀리면 쪽박 차는 건 한 순간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중 세 번째를 잘못 놀리고 말았다.

돈을 잘 벌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엔 꼬리 치는 여자들이 많았다. 나로 말하자면 한창 혈기왕성한 성욕을 자랑하던 때라 오는 여자 가리지 않았으며 심심하면 갈아치웠다. 물론 여자들 역시 내 돈을 쭉쭉 빨아먹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빌어먹을 년 하나가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서로 잘 즐겨놓고 느닷없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나를 성폭행으로 고소한 것이다.

때마침 시작된 ‘미투’ 열풍으로 사회적 분위기도 나에게는 굉장히 불리했다. 하지만 너무나 억울한 상황이었다. 내가 무슨 성폭행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주장은 먹힐 리가 없었다. 아니, 법정다툼으로 끌고 가면서 나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왔으나 이미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순식간에 나를 빛내주던 수식어는 사라지고 ‘발정난 개’, ‘가면을 쓴 악마’ 같은 별명이 생겨났으며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언론은 앞 다투어 나를 물어뜯었다. 대중도 나를 손가락질하며 욕하기 바빴다. 그들에겐 전후사정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대중 앞에 그저 하나의 강간범이 되어 발가벗겨지고 말았다.

끝내 사업은 하락세를 탔고 무고로 밝혀졌을 땐 망할 대로 망한 상태였다. 무고죄도 가볍기 짝이 없어 나를 무고한 여자는 벌금만 조금 내고 풀려났다.

사업이 망하고 나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술이나 들이붓는 인생이 됐다. 벌어놨던 돈도 다 털리고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좃대가리 한 번 잘못 놀렸다가 쫄딱 망했네.

한숨만 나왔다.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좀처럼 취하지도 않았다.

빌어먹을 세상.

나는 기다리고 있던 취기가 돌기 시작하자 눈을 감고 자리에 누웠다.

지금이 너무 고통스럽다.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다.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줬으면 한다.




“?!”

문득 정신이 들고 눈을 떴다.

“으음···”

신음을 내뱉으며 상체를 일으키니 낯선 병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슬아?”

차륵, 커튼이 걷히며 고개를 내민 송하나가 깨어있는 나를 별견하고 깜짝 놀랐다.

“지슬아! 일어났구나!”

한 걸음에 달려와 와락 껴안는 송하나.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꿈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으응??”

“아무거도 아니야.”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파악이 끝났다.

예정대로 진행되던 스토리 속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휘말렸으나 시스템의 도움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잠시 누워있었던 거겠지.

“얼마나 누워있었어?”

“하루 종일.”

“그 정도면 다행이네.”

무슨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누워있었던 게 아니라서 말이다.

“여긴 어디야?”

“방어시설의 의무실이야. 아직 귀환하지 않았어.”

“그렇구나.”

“사람들 불러올게. 모두가 네가 깨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어.”

나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십중팔구 엄청난 질문 세례가 쏟아지겠지.

“지슬이가 깨어났다고?”

“지슬아!”

“괜찮냐?”

과연, 동기들은 우르르 몰려와서 나를 에워쌌다.

“너 죽는 줄 알았다. 아이고, 지슬아!”

특히 송하나는 나를 껴안고 흐느끼기까지 했는데 살짝 감동해버렸다.

“자자, 다들 진정해라!”

강성민 교관까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어쩔 줄 몰라하는 동기들을 진정시켰다.

“몸 상태는 어떠냐?”

“···괜찮습니다. 그다지 이상 있는 곳은 없어요.”

“흐음, 좀 더 쉬고 싶다면 말해라.”

“괜찮습니다.”

“좋아. 너희들은 나중에 면회해라. 지금은 아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리자 다른 아이들은 얌전히 의무실을 나갔다.

“자, 이제 너와 나 둘뿐이다.”

강성민 교관이 맞은편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설정에 따르면 강성민은 매우 강직하고 규칙적인 남자였다.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한 인물로 어딘가에 휘둘리거나 휘말리지 않는다. 따로 주연들과 관련하여 활약하거나 하진 않지만 적은 아니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나?”

“네.”

“그래. 피하지 않아서 놀랐다. 보통 여자들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라는 힘 빠진 소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나는 여자가 아니니까요, 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네가 그런 엄청난 실력을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 확인해 보니 입학 성적은 하위권이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설명은 포기하기로 했다. 시작하면 내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것부터 ‘시스템’이라는 미지의 존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말해야 하는데 이들이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좋다. 우연히 한계를 돌파하고 각성하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니까. 너의 실력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재단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말이다.”

강성민이 자세를 낮추며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한지나에 관해서 물어볼 게 있다.”

“물어보세요.”

“꽤나 침착하구나.”

언제나 무표정한 강성민이 살짝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도 싶었지만 나는 현재 이상하리만치 침착하였다. 오히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내 실수를 만회하고 잘 해나갈 수 있는지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계산하는 중이었다.

“흐음, 한지나와 그 일당은··· 현재 각방에 나눠놓은 상태다. 이번 일에 대해서 추궁하니 전부 기억이 안 난다, 잘 모르겠다 같은 소리만 하더구나. 네가 보기엔 어떠냐.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거짓말이 아닐 거예요.”

“그래?”

“안 그러면 하나같이 기억이 안 난다는 소린 하지 않겠죠. 한지나 일당이 7명이에요. 저는 그 7명이 전부 같은 변명으로 모르쇠를 하자고 합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이었다. 환각물질 때문에 한지나 일당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배후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한지나가 나에게 하려던 짓을 되새겨보았다.

그녀는 환각물질을 먹여 나를 동료로 만들려 했다. 거기에 과연 제이스의 의지가 관여되어 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한지나가 멋대로 폭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스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몇 번 주시하기야 했지만 근거로 삼기엔 부족했다.

이것은 중요했다. 만약 제이스가 나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면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힘들어질 수 있었다. 되도록 빠르게 판단을 마치는 게 좋았다.

“제이스 선생님은요?”

“미스터 제이스? 갑자기 왜?”

“제이스 선생님과도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어째서지?”

강성민이 수상하다는 듯 물었다. 뭐, 이해는 됐다. 강성민도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했고 제이스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아서겠지.

“일이 이렇게 된 데에 생각을 듣고 싶어서요. 다름이 아니라 현장 책임자였는데 막상 중요한 때에 안 계셨으니까요.”

강성민은 재차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알겠다. 불러오도록 하지.”

잠시 후, 제이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강성민은 밖에서 대기하는 모양이었다. 겉보기엔 엄청 무뚝뚝해 보이는데 생각 이상으로 눈치가 있었다.

“나를 불렀다고 들었다.”

엄숙한 분위기의 강성민과 달리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기는 제이스가 의자에 앉았다.

“제이스 선생님.”

“뭐지?”

“저는 제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응?”

“강성민 교관님과 동기들은 제가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해서 크러셔를 해치웠다고 하는데 도무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를 않아요.”

“···어디부터 기억이 나지 않지?”

“크러셔들이 갑자기 방어선을 돌파해서 대기소로 오고 있을 때부터였을 거예요.”

“그런가. 잘 알겠다. 설명하자면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인간, 워든은 어떠한 계기를 통해 갑작스럽게 한계를 돌파할 때가 있다. 그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지. 실제로 완전히 인격이 뒤바뀐 경우도 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휴, 다행이에요. 저는 어딘가 이상해진 줄 알고··· 제 자신이 무서워져서 그만··· 겁을 내고 말았네요.”

“걱정하지 마라. 그건 이상한 게 아니고 당연한 거니까.”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강성민 교관님은 이런 쪽으론 잘 모르시니까요.”

“흠, 그건 착각이다. 그는 유능한 사람이야. 네 생각 이상으로 아는 게 많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제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정을 취하는 게 좋아 보이는구나. 나는 이번 일과 관련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게 많아서 가봐야겠다. 이것도 급하게 빠져 나온 거다.”

“아, 죄송해요. 제가 멋대로 시간을 빼앗았군요.”

“···아니다.”

제이스가 나가고 강성민이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나한테 얘기해줄 수 있나?”

“별 거 아니었어요. 그냥 간단하게 제가 갑자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에 관해 상담을 했을 뿐이에요.”

“그래.”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받았을 테지만 깊게 묻지 않은 강성민은 내보냈던 동기들을 안으로 들였다.

“지슬아~~”

정이 많은 성격인 송하나는 이번에도 내게 달려들어 와락 껴안았다.

“윽···”

송하나의 가슴에 얼굴이 파묻히고 말았다.

“하나야! 지슬이 죽겠다!”

“푸하!”

강연재가 급히 떼어주고 나서야 겨우 해방이 되었다.

“아, 미안.”

이후로 이어진 이야기는 강성민과 나눈 대화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내 몸 상태에 대한 걱정에서 어떻게 그런 엄청난 힘을 숨겨뒀냐는 질문으로 넘어갔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한지나에 대한 화제는 의외로 나오지 않았다. 하긴, 한지나가 아무리 일진 노릇을 했다고 해도 같은 반 학생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위기에서 그리 행동한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으리라.

나중에 이야기가 되더라도 지금은 무리라는 소리였다.

한동안 북적대던 의무실도 시간이 지나고 다들 돌아가자 조용해졌다. 혼자 남게 된 나는 드디어 조용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휴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차후에 대해 생각했다.

“시스템. 나와 봐. 있는 거 다 알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르륵, 책이 나타났다.


[나 불렀음?]


“포인트를 빼간 건 빼간 거고··· 주는 건 없어?”

내가 생각하기로, 위기에 쳐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강매를 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스토리에 간섭하게 되었다. 이는 이전까지와는 달리 크게 작용한 거니 그만한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포인트를 획득한 경우를 생각하면 뭔가가 있어야 했다.


[없음.]


“뭐라고?”


[당연한 거 아님? 사실 포인트를 더 뜯어가고 싶었는데 그거까지 감안해서 빼간 거임.]


“그게 5포인트나 된다고?”


[싸게 먹힌 거라는 생각 안 듦? 거기서 발휘한 힘은 세계 워든 랭킹 100권 내임.]


“누, 누가 그 정도로 달라고 그랬어?”


[목마른 놈이, 아니 년이 우물을 파는 법.]


“이런 씨···”


[후후후, 잘 알았으면 다시 벌어들이도록.]


책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젠장.”

손해를 본 포인트를 만회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작가의말

주인공은 전업작가가 아니라 부업으로 글을 쓰던 사업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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