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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춤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소드마스터의 시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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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별춤
작품등록일 :
2022.10.28 14:10
최근연재일 :
2022.11.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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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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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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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글자수 :
168,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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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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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아델하이드 (2)

DUMMY

“브랜디는 올라갔나?”


존스는 의문에 찬 눈빛이었다. ‘이 인간이 왜 그걸 묻지?’ 하지만 이미 판챠에게 기세가 눌린 몸이다.


“예, 만찬이 방금 끝났으니 방금 두어 병 정도 올라갔습니다.”

“그래?”


대개 귀족가는 만찬 중에서는 보통 와인을 마시지만, 식후에 본격적으로 즐길 때는 브랜디를 마시곤 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

”왜긴. 우리 주인님이 과음하지 않을까해서 물어본거지. 알았어.“


판챠는 대충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돌아섰다. 평소 같았으면 로키노가 술을 많이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아예 백작이랑 같이 인사불성이 되면 좋겠군.’


술 진열장의 브랜디가 몇 병이나 꺼내져 있었다. 위층의 분위기가 좋은 모양이다. 술이 떨어지는대로 재깍재깍 올라갈 것이다.


‘잘됐군. 일을 벌이기 좋겠어.’


집무실에 들어가려면 사용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판챠는 시계를 바라봤다. 8시나 9시가 좋을 것이다. 그때 쯤이면 로키노는 몰라도 백작은 확실히 취했겠군.


판챠는 사용인 대기실에서 나가려다 뒤돌았다. 부집사는 위에서 열심히 술을 따르고 있겠지. 일을 벌이기 편한 타이밍이다.


”그럼 이따 부탁 좀 하자.“

”예? 아, 알겠습니다.“


제복 하인들은 감히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머! 볼 때마다 다치는군요. 약이라도 발라드려요?“


사라는 판챠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나갈 때마다 다쳐서 돌아오는 누나 같은 모습이었다.


”아녜요. 이 정도는 스스로 나아요. 그런데 셔츠가, 좀.“

”아아. 이리 주세요. 솜씨 좋게 꿰매드리지요. 일단 이거라도 입구요.“


사라는 하인의 갈색 상의를 판챠에게 건네고는 찢어진 셔츠를 건네 받았다.


‘반쯤 누더기인데.’


판챠라면 이걸 어떻게 고쳐!라고 집어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라는 여분의 천을 덧대더니 솜씨 좋게 수선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정도였다.


“고마워서 어쩌죠?‘

”별 말씀을. 동생들이 많아서 늘 하던 일이랍니다.“

”흐음··· 손이 많이 가셨겠군요.“

”그럼요. 식비에 봉급이 남을 새가 없죠.“


’두지트 카사프란이 어지간히 봉급을 짜게 주는가 보군.‘


판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미드랜드에서 가장 유서 깊은 백작 가문인데, 하녀장이 식구의 밥 걱정을 해야 한다.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거고, 판챠가 사라를 찾아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백작의 집무실에 어떻게 들어가지?‘


아델하이드가 백작가에 몰래 들어갔다 온 것은 확실하다. 가문의 문장에 고약한 장난을 친 범인이 그녀가 분명하니까.


하지만 평소에 집무실은 잠겨 있을 것이다.


’아델하이드 씨는 집무실까지 들어가진 못했겠지.‘


그렇더라도 최상층의 집무실을 백작이 직접 치울 리가 없다. 중요한 자리니 아무 하녀나 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청소 시간에는 하녀장이 열쇠를 인계 받아 휘하 하녀들에게 청소를 지시한다. 판챠는 사라의 허리춤에 걸린 열쇠 꾸러미를 바라봤다.


’사라 씨에게 열쇠를 빌리는 건 너무 무리한 부탁이고··· 그렇지.‘


판챠는 열심히 바느질을 하는 사라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바쁘지 않으세요? 하녀장이시니 백작님 집무실도 청소해야 하고 그러지 않나요?“


”어쩜, 사려 깊군요. 하지만 집무실 청소는 수석 하녀가 한답니다. 8시에 청소하라고 해두었으니, 이 정도 셔츠를 꿰맬 여유는 충분해요.”

“다행이군요.”


판챠는 내심 환호를 올렸다. 백작은 오늘 로키노와 거나하게 술판을 벌일 것이다. 청소하는 하녀의 눈만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된다.


사라는 이로 실을 끊어내고는 판챠에게 셔츠를 내밀었다.


“자! 완전 감쪽 같진 않지만, 이 정도면 괜찮죠?”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사라씨가 친절해서 다행이군.‘


귀족가의 밑바닥 하녀에서부터 올라온 게 틀림없는 솜씨다. 빠른 속도로 수선을 마쳤다.


“주인님들 만찬도 끝났는데, 대기실에서 뭣 좀 먹을래요?”

“나중에 먹을게요. 일이 좀 있어서요.”


사라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딱히 질문하지 않고 일어섰다. 어차피 사용인들이 일에 치여서 끼니를 거르는 건 흔한 일이다.


’30분쯤 남았군··· 좋아.“


일시적이지만 8시엔 집무실 문이 열린다. 그 전에 움직여 두어야 했다.



판챠는 최상층의 그늘진 구석 아래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방금 하녀가 백작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이제 조용히 들어가서 몸을 숨기면 그만이다.


물론 당당히 걸어들어갈 순 없었다.


’때가 됐는데.‘


-푸히히히힝!


“우와앗!”

“이 자식이 왜, 왜이래?!”


’됐군.‘


존스와 앨링에게 지시한 대로였다. 판챠가 ’부탁‘한 내용은 하나. 추후 시간을 알려줄테니 거기 맞춰 로키노의 애마, 데실바에게 건초를 급여해라.


그리고 예상대로 되었다.


말은 생각보다 겁이 많은 생물이다. 그리고 데실바는 로키노가 사람을 쳐죽여도 눈 깜짝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만이면 다행이다. 침착함은 군마의 좋은 덕목이니까.


그런데 데실바는 주인을 닮아 포악했다. 건초에 귀리와 당근을 5:5로 섞어주지 않으면 역정을 내곤 했다. 판챠도 예전엔 몇 번이나 호된 꼴을 당했다.


데실바가 투레질을 하며 건초 더미를 엎어버리자 마굿간이 난리가 났다.


“뛰쳐나왔어! 젠장!”

“잡아! 어, 어쩌지?”


’조금만 더 날뛰어라.‘


바깥이 소란스러울수록 좋았다. 포악하지만 영리한 놈이다. 한껏 뛰어다니다가 성질이 풀리면 제 발로 마굿간에 다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일도 귀족 입장에선 무능한 하인들의 일시적인 소요로 여겨지겠지.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용인은 없었다. 판챠는 훤히 열려있는 문을 통해 집무실로 들어갔다.


”난리네···. 어쩜 좋아···, 즐겁다···.“


’이크.‘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대로 집무실을 청소하던 하녀는 창가로 쪼르르 달려가 구경하고 있었다. 존스와 앨링이 허둥대는 꼴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니까.


판챠는 재빨리 탁자 아래로 숨었다. 하녀는 창가 아래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집무실에 청소하러 가서 오래 있으면 의심을 사기 십상이다. 하녀는 아쉽다는 듯 창가에서 멀어졌다. 존스와 앨링이 열심히 데실바를 쫓고 있는 모양이었다.


판챠는 탁자보 아래에 숨어서 숨을 삼켰다.


’눈에 띄지 않겠지?‘


하녀가 청소를 재개했다. 탁자 아래 너머 그녀의 발목이 바쁘게 움직이며 흐트러진 물건을 치우고 담뱃재를 정리했다.


그녀는 다행히 판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탁자는 화려한 레이스가 수놓아져 있어 아래에 숨으면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푸흡. 아, 즐거워라. 속이 시원하네.”


재빨리 집무실 정리를 마무리한 하녀는 방문을 닫았다.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문 너머로 들리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걔네도 어지간히 인망이 없구나···‘


하긴, 약했을 때의 판챠를 괴롭히던 인성이 어디가진 않았을 것이다.


“휴우. 성공이군.”


판챠는 탁자 밑에서 빠져나오며 주면을 둘러봤다.


판챠는 허리를 폈다. 잠입 성공이다.


“이제 룬마타석 궤짝만 찾으면 되는데···.”


서약의 궤짝. 다섯 백작 가문이 대공에게 수여 받은 기물이다. 통째로 룬마타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문의 혈족이 아니면 열 수 없었다.


두지트가 배신의 증거를 보관하다면 그곳 외에는 없었다. 백작가 내부에 카사프란의 피가 흐르는 사람은 두지트 백작 뿐이었으니까.


’아델하이드 씨가 가문의 기물을 잘 몰라서 망정이지.‘


물론 판챠는 원래의 역사를 알았기에 서약의 궤짝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 그게 백작가의 집무실에 있다는 것까지. 문제는 정확히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다.


“흐음··· 어디에 있으려나.”


딱히 궤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 크지 않은 흑회색의 궤짝. 너비는 커다란 책정도, 전체적인 크기는 사람의 머리가 들어갈 정도의 부피.


어느새 창밖의 소란도 멈췄다. 데실바가 마굿간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내일 당근과 귀리를 잔뜩 줘야겠군···.“


판챠는 시종다운 생각을 하며 백작의 책상과 장식장을 살폈다.


“안 보이네. 설마 그걸 다른 데 옮기진 않았을테고.”


그때 누군가 문고리를 잡아채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 철컥. 열쇠를 들이미는 소리가 이어졌다.


‘젠장!’


판챠는 주변을 둘러봤다. 책상 옆 창가에 두툼한 삼중커튼이 보였다. 판챠는 재빨리 커튼 뒤편으로 들어갔다.


쿠당! 누군가 문을 육중한 몸으로 밀어붙이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전형적인 취객의 모습이었다.


“끅, 딸꾹. 제길. 소드마스터인뒈 카드를, 왜일케 잘하는고야?


백작의 목소리였다. 판챠는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곱게 술마시고 카드 놀이나 할 것이지 왜 온거야?’


”이번엔 이겨··· 군자금 쬠만 더···“


들어보니 백작은 로키노에게 카드로 실컷 털린 모양이었다. 걸음 소리와 함께 진열장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나저나 로키노 님한테 털릴 정도면 백작도 어지간히 센스가 없구나···‘


카드 게임에선 광명검의 은빛 오러로 협박해야 승률이 5:5가 겨우 나오는 파멸적인 솜씨다.


하지만 백작의 솜씨가 괴멸적인 것이 활로가 되었다. 판챠는 커튼 너머로


백작이 진열장을 열고 그 안에 숨겨진 금고를 열고 있었다. 판챠는 커튼을 살포시 젓히고는 백작의 너머를 주시했다.


’저거다!‘


금고 안에는 흑회색의 질감이 선연히 보이는 네모난 상자 같은 것이 있었다.


판챠가 허리춤에 찬 그레이 엣지와 같은 재질이다. 룬마타석, 서약의 궤짝이 틀림 없었다.


백작은 금고에서 금화를 한무더기 꺼내어 주머니에 담고는 열쇠로 금고를 잠궜다.


”히꾹, 아. 넘 마셨군. 으응?“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판챠가 있는 책상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길··· 뭔가 눈치 챈 건가?‘


생각해보면 백작은 집무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판챠가 집무실을 뒤지고 있었으니 뭔가 묘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백작은 책상 주위를 살피더니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끅···.“


판챠는 등줄기가 뻣뻣히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잠겨진 집무실에 숨어있다가 걸리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백작의 사용인이 그러다 걸리면 목숨마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어쩐다···.‘


둔중한 걸음소리. 백작이 커튼 근처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판챠는 로키노의 수하라 좀 낫겠지만, 다시는 집무실에 숨어들 수 없을 것이다. 일이 잘 풀려도 백작가에서 쫓겨날테니까.


”에잇!“


홱하는 소리와 함께 백작이 커튼을 걷었다.


커튼 너머엔 아무것도 없었다. 백작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끅. 마셔도 너무 마셨나보구먼.“


’동감입니다.‘


판챠는 슈바르츠류의 보법, 질풍으로 순식간에 백작의 뒤로 돌아갔다. 마치 무술의 달인이 된 것마냥 백작의 걸음에 맞춰 뒤를 점했다.


’윽. 술냄새.‘


화려한 의복은 백작의 두툼한 살집을 가리기엔 타이트했다. 독한 향수 냄새와 술냄새가 판챠의 코를 직격했다.


백작은 거나하게 취한 걸음으로 그대로 문을 나섰다. 콧노래를 부르는 걸 보니 이번에야 말로 로키노에게 카드로 이긴다는 생각을 하는 게 분명했다.


판챠는 재빨리 문 뒤편으로 들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달칵. 다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판챠는 발걸음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을 때까지 숨을 참았다.


’후. 들키는 줄 알았네···.‘


이제 목표는 명확했다. 진열장 안에 숨겨진 대형금고 안. 그 안에 아델하이드가 찾는 게 있을 것이다.


”이제 들고 튀는 것만 남았군.“


판챠는 진열장을 열었다. 커다란 금고가 판챠를 반겼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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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수련 (1) 22.11.11 128 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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