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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춤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소드마스터의 시종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별춤
작품등록일 :
2022.10.28 14:10
최근연재일 :
2022.11.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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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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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계약 (5)

DUMMY

마침 백작가의 사병과 기사들이 상황을 파악하러 내려오고 있었다. 판챠는 쓰러진 남매를 그들에게 맡기고는 아델하이드를 따라갔다.


“야, 어디가!”


로키노는 판챠를 부르더니 혀를 차며 따라갔다. 반란이라면 구경해서 손해를 볼 건 없었다.


‘인과율이 이 정도까지 꼬였을 줄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굳건하던 대공국이 무너지고, 대공의 신하인 다섯 백작이 향락과 유흥으로 정치를 내버리고, 휘하 기사와 관리들도 착복을 일삼으니 혼란과 과도한 수탈에 질려버린 민중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반란뿐이었다.


”헉헉, 젠장. 아직 상처가 덜 나았군.“


옆구리의 상처가 쓰라렸다. 이것도 오러를 익히지 못했다면 치명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원래의 역사가 뒤틀리고 있다. 어디까지 바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판챠 자신이 살아남고자 하는 것도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두 눈으로 직접 봐둬야 했다.


“아, 이런! 샤야, 미안해.”


샤야는 숨을 쌕쌕거리며 아델하이드를 따라 뛰고 있었다. 그녀가 오러를 사용할 줄 아는 기사의 질주를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아니에요. 저, 좀 들어 주시겠어요?”


샤야는 현명하게도 짐짝을 자처했다. 아델하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샤야를 옆구리에 끼고 달렸다. 샤야는 치마폭을 누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느덧 기사와 시종, 여기사와 시녀는 시 외곽에 도착했다.


성난 군중들이 곤봉을 들고 밀집해 있었다. 도시의 가장 외곽에 모여서 백작령 근처까지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판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종일 분위기가 이상했던 거군요. 어쩐지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이 보이지 않더라니.”

”그랬냐? 그나저나 경비대원들도 저쪽에 모여있군. 어느 놈이 지시했는지 몰라도 싹 다 긁어모았구만.“


”···멍청한 짓을 했군요.“


판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보나 마나 백작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경비대장의 짓이리라.


”분명 경비대원들이 빠져나간 직후에 도적들이 습격해왔었지···.“


아델하이드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결국 치안이 비어버리니 행맨들이 습격해와서 도시 외곽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부터 희생된 것이다.


”귀족들은 언덕 위의 저택에서 마을이 다 내려다보인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반대야. 진짜 중요한 건 보지 못하지.“


아델하이드는 내뱉듯 말했다. 판챠는 귀족가에 머물러 있을 때 얼마나 눈이 어두워지는지 새삼 느꼈다.


평범한 사람들과 떨어져 거드름 피우며 귀족가에 처박혀 있으니 시민들의 분위기도 읽지 못한다.


판챠는 고개를 돌렸다. 성난 군중에 끼지 않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말이 들려왔다.


-”농민과 상공업자까지 모조리 모였군. 당최 무슨 일이래?“

”농민은 도적 때문에 못살고, 농민이 줄어드니 상공업자한테 세금을 늘리고. 분개할 만도 하지.“

-”말도 마시게. 방금도 북문 쪽 외곽에 도적들이 습격했다던데? 수십 명 이상 죽었다는군.“

-”그럼 다음은 우리 차롄가?“


”어느 쪽이든 한계군요.“


판챠는 한숨을 쉬었다. 이 땅은 언제봐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쨌든 당장 군중과 경비대가 충돌할 기색은 없어 보였다. 무사히 시민들이 해산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아델하이드는 당장 나설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아델하이드는 착잡한 표정으로 시민군을 쳐다보다가 로키노에게 목례했다.


”그나저나 인사가 늦었군요. 아델하이드라고 합니다. 사정이 있어 당장은 소속을 밝힐 수 없겠군요.“


그녀는 예의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로키노를 탐색하려는 듯 주의 깊은 시선이었다.


”베르두고 가의 로키노요. 미드랜드에는 오랜만에 방문하셨나 본데?“


로키노는 아무렇지 않은 듯 호방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판챠는 뭔가 심상찮은 것을 느꼈다.


’뭔가 뼈가 담겨 있는 거 같은데···?‘


아델하이드는 냉막한 태도로 논평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곳은 생각보다 훨씬 엉망이더군요. 세루인 백작이 흑검들과 함께 실종된 이후로 기개 있는 자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로키노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기개가 있다면 자살행위지. 세루인 백작처럼 펠트 기사단 제국과 충돌한다면 죽을 테니까. 안 그렇습니까?“


로키노는 동의를 구했지만, 아델하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이미 제국은 미드랜드에 의도적으로 혼란을 조장하고 있지요. 지금의 다섯 백작은 호의호식과 쾌락에 눈이 멀었고.“

”호의호식이라, 하긴 미드랜드가 땅이 비옥해서 음식도 풍미가 있긴 하더이다.“


로키노는 푸근한 표정이었다. 하긴 며칠째 백작과 함께 연회를 즐기던 차였다.


아델하이드는 로키노를 바라보는 시선에 경멸을 담았다.


”안 그래도 폭음에 한량질을 일삼는 망나니 소드마스터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어요.“

”그렇소? 누군지 몰라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친구구만.“


로키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실실 웃으며 되받았다. 사실 망나니한테 망나니라고 해도 타격이 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델하이드의 다음 말은 그렇지 않았다.


”인생을 낭비하는 건 본인 자유지만, 그는 아둔한 다섯 백작의 초청에도 흔쾌히 응하고 연회에 어울린다더군요.“


그녀는 말미에 한 두 마디를 더 붙였다.


”들리는 말로는 그 기사의 가문이 바로 기사단 제국의 수뇌부와 끈이 닿는 가문이라 그렇다더군요.“


로키노는 웃음을 멈췄다. 표정이 점차 험악해지니 좌중의 분위기도 일변했다.


”가문의 입장과 기사의 입장이 꼭 같아야 하는 법은 없지. 누구든 추측은 자유지만 그 이상 나아가면 대가를 치러야 할 거요.“


로키노는 아델하이드를 따라 하듯 말끝에 한마디를 붙였다.


”게다가 자신의 가문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기사라면야. 안 그렇습니까?“


판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둘 다 보통이 아닌 기사인데 신경전이 과해지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싸한데.’


사실 칼집에 손을 댈 필요도 없었다. 아델하이드도 오러에 꽤 능숙했다.


공기의 질감이 달라진다. 심약한 자라면 벌써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그때 판챠는 손을 들었다.


”저기, 아랫것들도 여기 있는데요.“

”응?“, ”어?“


로키노와 아델하이드는 서로를 쏘아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샤야는 약간 핼쑥해진 낯빛으로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델하이드는 놀라며 샤야에게 다가갔다.


”아! 이런. 미안해 샤야. 오늘 너무 고생만 시키는구나.“


아델하이드는 샤야의 등을 가볍게 쓸었다. 사야는 괜찮다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참···.“


손뼉도 서로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판챠가 상황을 환기시키자 짧은 신경전은 끝났다.


그리고 군중들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그들의 외침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중화시켰다.


”도적한테 지켜주지 못할 거면! 세금이라도 내리던가!“

”옳소!“


하긴 봉건제는 보호와 세금을 교환하는 원리다. 보호가 없는데 세금을 낼 이유도 없었다.


”분위기가 격화되는데···.“


판챠는 자신이 나서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다. 쥐 떼를 흩어버리듯 할 수는 없었다.


판챠는 로키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닥거렸다.


“로키노님··· 어쩌실 거에요?”


“뭐? 백작의 손님이니 반란군을 처참히 쓸어버려야 하지 않냐고? 그러고 싶냐?”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요.”


판챠가 고개를 젓자 로키노가 무얼 걱정하는지 알겠다는 투로 말했다.


“나도 얻어먹은 건 있지만 딱히 백작편 들고 싶진 않아. 솔직히 백작령 상황 봐서 알겠지만 개판이잖냐. 내가 백성이었다면 다 뒤집어 엎었을걸.”

“그건 그렇죠. 해산시킬 방법이 있을까요?”

“흠. 죽이는 건 쉬운데 안 죽이는 건 어렵군.”

“좀 진지하게 고민해봐요.”


판챠와 로키노가 고심할 무렵 하나의 구호가 튀어나왔다.


“기사여, 바나블라를 기억하라!”


군중들은 일제히 발을 구르더니 다시금 구호를 외쳤다.


“기사여, 바나블라를 기억하라!”


로키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공국 수복 운동의 구호군. 저건 위험한데···”


바나블라. 아르케임 대공국이 무너지고 누구도 찾지 않던 성채 도시의 이름. 혼란기는 옛 수도의 이름마저 종종 잊게 했다.


군중들은 무너진 아르케임 대공국의 수도 이름을 외치며 나아갔다.


그건 미드랜드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행위였다.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온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들리는군.”


그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기이하게도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게 울려 퍼졌다.


“······.”


소란을 피우던 군중이 돌연 침묵했다.


한 남자가 경비대원들을 헤치고 걸어 나왔다.


회색 머리, 강퍅한 얼굴. 깔끔한 하얀 셔츠와 가죽을 덧댄 평상복 바지를 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흉흉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한 채 차분한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 옷차림은 제국의 복식이었다. 판챠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게슈트···”


판챠를 죽일 기사였다.


소년은 가슴에 정체 모를 통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역사가 뒤틀리는 와중에 어쩌면, 어쩌면 자신도 죽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내심 품었다.


하지만 게슈트를 보자 그것은 안일한 희망이었음을 깨달았다. 가슴의 통증은 차라리 예언이었다. 죽음은 예정된 것이라는.



게슈트는 구호를 외치던 군중을 보고는 선언했다.


“불경한 것들. 기사단 제국이라면 모조리 즉결 처형이다.”


게슈트는 기사단 제국에서 미드랜드로 파견된 기사였다. 미드랜드는 제국법과는 별개의 지역. 하지만 게슈트의 다음 발언은 군중들을 아연케 했다.


“그리고 선의에 의해 이 땅에 파견된 기사로서 계약을 이행한다.”


“저건?”


샤야는 게슈트의 발밑에서 이상한 일렁임을 포착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돼···.”


아델하이드의 목소리에 절망이 묻어나왔다. 그녀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게슈트는 기사단 제국의 기사교훈시를 읊기 시작했다.


“천만 명의 의지가 하나의 검이 된다면 하늘조차 베어 넘기리. 기사단은 제국의 칼날이 되리라.”


게슈트의 발밑에서 오러가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빛으로 그려진 제국식 외날검을 든 손, 기사단 제국의 문양이었다.


로키노도 저 문양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저 문양이 자신에게 각인되는 것을 거부한 이니까.


“저게 기사단 제국의 기사교훈시··· 국가의 문장은 기사의 영혼에 그대로 각인되지.”


영혼에 새겨진 문장의 길을 따라 오러가 흐른다. 문장이 완성되자 평상복 차림이던 게슈트의 몸이 환히 빛나더니 어느덧 전신을 오러 메탈로 감싸는 갑옷 차림이 되었다.


“마흐트슈툭···.”


누군가 허탈하게 뇌까렸다. 이미 상황이 끝났다는 말투였다.


제국의 전신 강화 갑주였다. 오러 메탈로 만든 풀 플레이트 아머는 사용자의 오러에 반응해 막강한 방호력과 신체 강화를 보장한다.


기사단 제국의 일급비밀로 제조된 갑옷은 바로 제국 기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아, 아아···”


수백 명의 군중들이 단 한 명의 기사 앞에 기가 눌린 채 주춤거렸다.


일렁이는 빛의 갑주를 전신에 감싸고 빛이 응집된 검을 든 기사. 마치 전설에 나오는 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


하지만 모여든 군중이 보기엔 제국 기사는 악마나 사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게슈트는 갑옷을 입은 채로 준엄히 선언했다.


“판결은··· 전원 처형!”


제국 파견 기사는 검을 휘둘렀다.



“아악!”


비명마저 짧았다. 제국 기사의 오러는 파도처럼 군중을 덮쳤다. 마치 모래성이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는 양상이었다.


저녁이 되면 에이더스 시 외곽의 들짐승들은 인간의 고기로 축제를 벌이리라.


샤야는 아델하이드의 표정을 살폈다. 아델하이드의 입술은 파들거리고 있었다.

“아델하이드님···.”

“난··· 손댈 수 없어.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로키노 또한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딱하지만 끼어들 수 없는 자리야. 그리고 이미 늦었다.”


로키노의 말대로였다. 수백의 군중이 몰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도 걸리지 않으리라.


“멈춰!”


판챠는 앞으로 뛰었다.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야, 판챠! 미쳤어? 가면 죽어!”


로키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하지만 판챠는 멈추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조금 전만 해도 분노를 성토하던 군중들의 표정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그러진 얼굴조차도 보존하지 못했다. 커다란 초승달 모양의 오러가 그들을 조각냈기에.


“젠장!”


미친 듯 달려가던 판챠의 눈에 공포를 애써 참는 갈색 머리 소년의 눈동자가 보였다.


소년의 눈은 공허했다. 죽음을 직감한 눈빛. 이미 한쪽 눈은 짓이겨져 있었다.


요하난. 판챠는 그 소년을 알고 있었다. 아르케임이 멀쩡했더라면 룬열쇠 기사단의 견습으로 입단했을 재능 있는 소년.


하지만 그 소년도 곧 죽는다.


안이했다. 아니, 충분히 분노를 성토하게 하고 잘 타이르면 성난 군중들도 물러날 줄 알았다.


하지만 게슈트가 나타나자 모든 게 달라졌다.


대부분의 군중이 죽었다. 그리고 초승달 모양의 오러가 요하난을 향해 쇄도했다.


“죽게 둘까 보냐!”


판챠는 그레이 엣지에 모든 오러를 실었다. 소년은 어깨에 모든 힘을 담아 검을 던졌다.


붕붕붕! 대공의 강철로 만들어진 검은 게슈트가 발출한 살인 검기와 그대로 맞부딪쳤다.


콰앙! 보통의 검으로는 날 수 없는 소리가 나며 게슈트가 발출한 검기의 궤도가 흐트러졌다.


“기사단 제국의 기사를··· 막는다고?”

“대체 누구야?”


울타리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동안 미드랜드에 게슈트를 막아선 자는 없었다.


그렇기에 학살은 생존자 없이 끝날 것이 자명했다. 한 명의 소년이 제국의 파견 기사를 막아서기 전엔.


판챠는 요하난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제국 기사를 향해 외쳤다.


“그만하면 됐잖아!”

“호오···.”


늘 무표정하던 게슈트의 표정에 잠시 이채가 어렸다. 투구에 가려 그 누구도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잘됐군.'


경탄도 잠시, 게슈트는 다시 검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그래봐야 미드랜드의 잡종들이다. 재능 있는 자는 불온 분자와 함께 처치하면 오히려 이득이다.


로키노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나도 저놈이랑 마주치고 싶진 않았는데.”


승패를 떠나 껄끄러운 놈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시종을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게슈트는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살기를 느꼈다. 어느새 자신에게 은빛 검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광명검··· 어째서?”


게슈트는 의아한 어조로 뇌까렸다. 자잘한 은빛 십자검이 무수히 발출되는 특유의 검기는 신원 보증 수표나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13검가의 필두격인 명가의 검술. 이 촌구석 미드랜드에서 볼 일은 없다.


게슈트는 그 검기의 주인을 알아보았다.


“로키노 베르두고.”


로키노는 은빛 오러가 담긴 검을 들고 휘적휘적 걸어가며 손 인사를 날렸다.


“여어. 오랜만이군. 본국에서 본 뒤론 3년만인가?”


게슈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발출검을 막아낸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 소년은?”

“내 시종. 어때. 싹이 괜찮지?”

“흠. 아무리 베르두고 가의 식솔이라고 해도 공무집행 방해는···.”


로키노는 답답하다는 듯 게슈트의 말을 끊었다.


”적당히 해. 파견 기사의 의무가 기사단 제국의 율령과 같진 않을 텐데? 여긴 제국이 아니라고.“


게슈트는 잠시 망설이다 검을 내렸다. 설령 마흐트슈툭을 입더라도 로키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당신은··· 한결같군요. 명가의 후예라지만 그렇게 굴다간 큰코다칠 거요.“

”내 코 건강은 내가 걱정할 테니 접어두셔.“


게슈트는 흥이 깨졌다는 듯 기세를 완전히 멈췄다. 멀리서 영지의 주인이 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기에.


”아, 아이고! 게슈트 경! 누추한 영지에 귀한 몸이 오셨구려!“


두지트 카사프란 백작이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황급히 말을 달려왔다.


백작은 본인의 영지를 내팽개치고 어디서 노닥거렸는지 흐트러진 모양새였다.


게슈트는 백작에게 목례했다.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 불온한 소요가 있기에.“

”영지의 우둔한 것들이 폐를 끼쳤구려. 이왕 근처에 들리신 겸에 백작가에 묵으시지요?“


게슈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베르두고 가의 망나니와 함께 있을 바엔 차라리 제 충견과 함께 있는 게 백배 낫지요.“

”그, 그런가? 알겠소.“


멍청한 표정의 백작을 뒤로하고 게슈트는 말에 올랐다.


“반란도 진압된 거 같으니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게슈트는 마지막으로 판챠를 쳐다봤다. 왠지 기분 나쁜 소년이었다. 또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판챠는 요하난을 부축하며 게슈트를 마저 쏘아보았다.


‘26일 뒤에 반드시···!’


자신을 죽일 기사는 원래의 역사보다 훨씬 괴물 같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판챠는 패배할 생각 따윈 없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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