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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춤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소드마스터의 시종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별춤
작품등록일 :
2022.10.28 14:10
최근연재일 :
2022.11.28 22:0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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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0
추천수 :
162
글자수 :
168,373

작성
22.11.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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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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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개화 (4)

DUMMY

“기, 기만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판챠의 대답에 로키노는 차가운 눈으로 쏘아볼 뿐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판챠는 단안경에 대해 논평하던 로키노의 말을 떠올렸다.


- ‘그거, 숨길 줄 아는 놈들에겐 무용지물이다.’


‘설마 소드마스터에겐··· 보이는 건가?’


판챠는 아직 오러를 숨기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로키노가 화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마법 대신 오러를 각성한 게 잘못은 아니잖아?’


판챠는 내가 오러를 개화했다고 뭐 쫄릴 거 있나. 하는 심정으로 로키노를 바라봤다.


하지만 로키노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었다. 판챠를 보는 그의 시선에 복잡한 감정과 생각이 어렸다.


‘판챠가 오러를 하루아침에 각성할 리가 없지. 내가 알던 그 녀석이라면.’


재능의 후천개화조차 선조의 재능이 있어야 꽃핀다. 그런데 판챠 같은 허약한 아이가 그런 탁월한 재능을 물려받았다?


확률이 없지야 않겠지만, 그런 희박하기 짝이 없는 가능성에 걸기엔 로키노에겐 의심해야 할 자들이 많았다.


로키노는 혼란한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설마 판챠가 검로원에서 보낸 밀정? 아니면 특무기사단에서 보낸 감시자인가?’


로키노는 본국의 높은 사람들에게 의심받는 처지였다. 그가 미드랜드로 온 이유는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도 있었다.


하지만 판챠는 충성스럽게 로키노의 옆에 붙어있었다.


그래서 의심을 떨치기가 더 힘들었다. 오히려 과거를 복기하며 기억을 죄다 검증해야 할 판이다.


그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진 소년 요원을 베르두고 가에 잠입시켰다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시종을 능청스레 연기하며 말이다.


로키노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아무리 행동이 둔해 빠졌어도 로키노에게 판챠는 충성스러운 시종이었고 반쯤은 동생 같은 존재로 여겼으니까.


그것조차 기만이었다면?


빠드득. 로키노가 이를 악물었다.


소드마스터가 순간 살기를 내비치자 심약한 하인과 하녀들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집사가 그들을 챙기는 사이 존스와 앨런은 몸을 떨며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판챠는 흔들리는 눈을 애써 다잡으며 자기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키노는 미혹에 빠진 채 중얼거렸다.


“···정말 모르겠군. 아니면 그 정도로 뻔뻔한 건가?”


판챠의 눈은 예전과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묘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저 눈동자조차 연기에 불과하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으리라.


로키노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만으로는 흑백을 가릴 수 없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판챠에게 명령했다.


“밖으로 나와라.”



* * *



카사프란 백작가의 안뜰. 평소 같으면 고요했을 이곳에 야밤에 소란이 일었다.


하인들이 호들갑을 떨며 안뜰의 횃불을 늘리자 불이 환해졌다.


어느새 백작의 가신들과 군소 귀족들, 심지어 저택의 하인들마저 웅성대며 구경에 나섰다.


로키노는 안뜰 중심에 서서 천천히 오러를 순환했다.


“하아아···.”


경쾌한 은빛 기운이 전신을 순환한다. 그리고 가속. 오러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근육과 혈류를 넘나들며 체내에 잔류한 알코올을 몸 밖으로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취기에 다소 흐리멍덩하던 로키노의 눈이 금세 말끔해졌다.


술기운은 날아갔다. 연회의 들뜬 흥취는 가시고 차가운 분노만 남았다.


“껄껄껄! 이거 대련인가? 검무인가? 어느 쪽이든 야밤에 최고의 여흥이 되겠군!”


눈치 없는 백작의 목소리가 안뜰에 울려 퍼졌다. 위층에서 소식을 듣고 바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휘하 군소 귀족들도 웃으며 뒤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10분 전만 해도 로키노와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던 이들이다.


“이런 구경거리를 놓칠 순 없지! 안 그런가?”

“맞네! 어디 가서 이런 구경을 하겠나?”


주정뱅이나 다름없는 백작의 봉신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로키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이로 치면 삼촌뻘 되는 백작과 봉신들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그가 백작의 저택에서 다른 귀족에게 명령할 권리는 없었다.


하지만 소드마스터는 권리로 명하지 않는다. 무위를 보여줄 뿐.


하늘로 치켜든 은빛 검날이 순식간에 대리석 기둥처럼 길어졌다. 양손검의 몇 배 길이나 되는 확장검이었다.


“오, 오오······ 저게 오러 블레이드?”


사람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은빛 오러 블레이드가 치솟은 광경은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로키노는 백작과 그를 둘러싼 봉신들에게 예의를 한도까지 실어 말했다.


“거, 적당히 비키십쇼. 눈먼 오러 블레이드에 썰리면 옛 마법사왕이 살아 돌아와도 못 살리니까.”

“어, 어?! 역시 로키노 경은 배려심이 깊군! 어허허!”


거드름을 피우던 백작과 봉신들은 황급히 안뜰의 가장자리까지 물러섰다. 하인들은 물론 호위 기사들마저 모조리 울타리에 붙어 숨을 죽였다.


순식간에 안뜰 한 가운데는 공터와 다름없는 공간이 되었다.


로키노는 확장된 오러 블레이드를 몇 번 시험 삼아 휘둘렀다.


부우웅! 십수 미터짜리 빛의 기둥이 안뜰을 살육 공간으로 만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들어가는 순간 사람이 푸딩처럼 썰릴 게 뻔했다.


검광이 번뜩이자 베이지도 않은 사람들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히익!”


저택의 위층과 아래층이 한 몸이 되는 순간이었다. 귀족과 하인들 모두 한 발짝 앞에 지옥이라도 있는 듯한 표정이었으니까.


이제 로키노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후우.”


모두가 꺼리는 그 공간에 한 금발 소년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판챠는 무거운 걸음걸이로 안뜰 한 가운데에 들어와 우뚝 섰다.


로키노는 어디서 구했는지 검 하나를 판챠의 발밑에 던졌다.


“검을 들어라.”

“로키노님?”

“넌 날 속였다. 대체 언제부터 오러를 쓸 수 있게 된 거지? 아니, 누구의 명을 받았나? 무슨 목적으로?”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어쩌다···”


안뜰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오러? 저 시종이? 농담하는 건가?’

-‘에이, 말이 돼? 저 친구 예전에 왔을 때 영 비리비리하더구먼.’

-‘목적은 뭐야? 자넨 아냐?’

-‘난들 알겠나?’


‘나도 몰라서 문제지.’


판챠 본인도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마법 대신 오러를 개화한 이유는 자신도 모르니까.


‘젠장, 미치겠네. 오러를 개화한 게 무슨 잘못이야? 도대체 어떤 오해를 산 거지?’


로키노의 성격이 막 나가고 변덕스럽긴 하지만, 이런 전개는 원작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 애초에 판챠는 오러 같은 건 평생 각성하지도 못하고 죽는 존재였으니까.


‘그게 문제야.’


뭐라 말해야 하나? 원작에 비해 역사가 왜곡되고 있는 것은 감지했지만, 대체 그걸 로키노에게 무슨 수로 설명할 것인가?


하지만 판챠의 침묵은 로키노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감히 내게 말할 수 없는 이유더냐?”


로키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날카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검을 똑바로 세워 판챠를 겨냥했다.


“검끼리 맞부딪쳐야만 알 수 있는 진심도 있는 법이지.”


판챠에게는 그것이 마치 맹수의 웃음처럼 보였다.


“어서 자세를 잡아라.”


로키노는 어느새 자세를 잡으며 명령했다. 판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검을 쥐었다.


로키노는 당혹과 분노가 섞인 상태였지만, 판챠 역시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소드마스터와 검을 맞댄다고?’


애초에 싸움이 성립되지도 않는다. 시험 혹은 장난이라면 모를까. 둘은 호랑이와 강아지보다 체급 차가 크니까.


남들이 보면 16세에 오러를 개화한 판챠도 천재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검사로서의 완성도는 천지 차이다.


로키노도 10대에 오러를 개화하고 베르두고 가문이 지켜온 남파 광명검의 전승자. 말하면 입만 아픈 천재 검사니까.


“받아라!”


로키노가 검을 휘두르자 단 일격에 판챠의 손에서 검이 날아갔다.


“크윽···.”


안뜰 외곽에 검이 날아가며 근처에 있던 하인들이 놀라 대피했다.


“우와악!”


“젠장!”


판챠는 황급히 달려가 검을 주워 다시 들었다.


로키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판챠를 바라보며 선언했다.


“다음은 없어. 또 날아간다면 진짜로 날 속이는 거로 생각하겠다.”


로키노의 검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주인을 기만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이었다.


“아니, 세상에 그런 법이···.”

“무력함을 가장하는 기만이 가장 악질이니까.”


로키노는 검을 똑바로 세우고 외쳤다.


“그러니··· 최대한 발버둥 쳐라!”


다시 오러를 실은 검이 날아왔다. 판챠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설령 시험이든 장난이든 체급 차가 너무 크다.


호랑이가 무심코 휘두른 앞발에 하룻강아지는 순식간에 살해당할 수 있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사고사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판챠의 눈은 아직 살아있었다. 소년은 로키노의 검을 똑바로 바라보며 검에 오러를 실었다.



“낄낄낄, 애쓴다.”


판챠를 고깝게 보던 검은 제복의 하인들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저 멍청한 시종 놈이 무슨 일인지 몰라도 무서운 주인을 화나게 했다.


그들은 숨죽여 웃으며 저택의 저장고에서 몰래 꿍쳐온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얼굴만 곱상한 저 금발 시종이 팔이라도 하나 잘린다면 최고의 술안주가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백작이 로키노에게 살살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인 중 선임에 해당하는 앨런이 웃으며 말했다.


“원, 백작님도. 초를 치시는군. 그러면 재미가 없는데.”


행동대장 격인 존스가 비열하게 웃으며 되받았다.


“로키노 경 표정이 심상찮던데요. 어지간히 분노한 기색인데 용서하겠습니까?”

“그런데··· 의외로 오래 버티는데?”


그러자 리더 격인 부집사 루퍼트가 잘난 척하며 대답했다.


“아직 모르겠나? 귀족가의 기강은 자네들 상상 이상으로 엄격하지. 봐주며 적절히 벌을 주다가 슥! 하고 베어버리는걸세.”


루퍼트가 손날로 허공을 가르자 앨링과 존스가 껄껄 웃었다.


“오오. 역시 부집사님. 귀족분들의 심리에 대해 정통하십니다!”


존스가 아첨하며 잔에 술을 따르자 루퍼트는 거드름을 피우며 받았다.


하지만 검은 제복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이건 벌이라기보다는 시험이었다.


그리고 판챠는 로키노가 걸어오는 시험의 의미를 파악했다.


“흡!”


검날에 오러가 실린다. 판챠의 오러 총량으로는 검날의 한 부분에만 오러를 위치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막아봐라!”


그리고 공세를 이어가는 로키노도 검날의 한 부분에만 오러를 싣고 있었다. 오러의 총량만 따지면 판챠가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


캉! 경쾌한 소리가 나며 주인과 시종의 검이 맞부딪혔다.


그리고 단번에 검과 함께 두 동강이 나야 할 판챠는 멀쩡했다.


로키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호오. 성공했나?”


‘되, 된다!’


판챠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뭔지 감이 왔다. 이건 ‘합 맞추기’라 불리는 대련법의 하나였다.


오러를 활용한 묘수풀이랄까. 공격자는 검날의 어느 한 지점에 오러를 실어서 후려친다.


방어자 또한 검과 검이 부딪히는 부분에 오러를 집중해야 한다.


평범한 검사들처럼 별생각 없이 검을 들어 방어하는 순간, 여지없이 검은 쪼개지거나 날아간다.


문제라면··· 기량 차가 압도적으로 나는 상황, 실패하는 즉시 검과 함께 반으로 갈라버릴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막으면 죽는다.’


검이 튕겨 나간 건 처음 한 번. 판챠는 그 뒤로 로키노가 휘두르는 검을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다.


눈에서 별똥별이 튀는 느낌이다. 이를 악물고 상대의 오러에 내 오러를 대응시킨다.


로키노의 검에 실린 오러는 실시간으로 위치가 현란하게 바뀌었다.


눈 깜빡할 새에 날아오는 검을 막는 건 어떻게든 가능했다. 로키노가 정확히 판챠의 한계를 가늠한 속도로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검날의 상단, 중단, 하단 중 어느 부분에 오러가 실렸는지 예측하고 그걸 정확히 막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을 판챠는 오로지 감각만으로 행하고 있었다.


“제, 젠장! 죽겠네!”

“이제 좀 남자답구나. 하지만 아직 멀었어!”


한순간이라도 삐끗하면 그대로 베인다. 죽음이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판챠의 오러가 차츰 고갈되어 갔다. 아무리 손속을 두더라도 기량 차는 명백. 검이 삐걱대며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도 자신의 시험을 계속 버텨내는 시종을 보고 기사는 소리쳤다.


“더 수상하군!”


로키노는 검의 속도를 차츰차츰 올리기 시작했다. 판챠는 이미 한계를 초월했다.


“으아아!”


판챠는 어느새 기합성을 내며 로키노와 합을 나누고 있었다.


카캉! 로키노가 손목을 비틀자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졌다.


“헉, 후우우.”


판챠는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주 잠시간의 휴식이었다.


로키노는 의심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판챠에게 질문했다.


“판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 정도 재능이 있었다면 진작 널 종자로 삼아 가문 기사로 키웠을 텐데.”

“헉, 후우. 영광입니다만, 헉.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문 전체를 속인 거냐? 누구의 명을 받았지? 어서 불어!”

“이이익! 아니라니까! 헉, 요!”


다시 검이 날아왔다. 판챠는 양쪽으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귀족과 하인들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눈에 보이는 사실은 명백했다. 애당초 저 비리비리해 보이는 시종이 로키노와 수십합이나 맞설 수 없다.


그러자 좌중의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렇다면 소드마스터의 힘 조절이 대단한 것이다.

-아니다. 저 작은 시종이 저렇게 주고받는 게 오히려 대단한 것이다.


백작은 귀족다운 방식으로 의견을 하나로 통일했다.


“역시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어! 둘 다 대단하군!”


로키노에게 위압 당했던 것도 잠시, 백작이 흥에 겨워 소리쳤다.


영지의 주인이 환호하자 가신과 하인들도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못 말리겠군.”


로키노는 흥에 겨운 관객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로키노가 아무리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더라도 판챠는 대단히 오래 버텼다.


‘예전의 판챠라면 절대로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이 수십 번. 이것만 보면 확신범이지······ 하지만.’


판챠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로키노는 판챠의 검에서 어떠한 훈련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정말 근본 따윈 없는 검법이군.’


사실 검법조차 아니었다. 판챠는 몸에 익힌 검법이 단 하나도 없었다.


판챠는 로키노의 검을, 거기에 실린 오러를 본능만으로 감지하며 막아내고 있었다.


‘내가 착각한 건가?’


판챠의 검법은 로키노가 아는 기사단 제국의 13검가에도, 대륙 중부 명가들의 검도, 어느 쪽의 검도 아니었다.


아니, 그 어떤 검법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진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 상황이 판챠가 훈련받은 요원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검로원이나 특무기사단에서 비밀리에 훈련받은 요원이라면··· 막아내더라도 이렇게 막을 수는 없지.’


아무리 그래도 10대 소년이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때에 자신이 수련해온 검로를 완벽히 감출 수는 없었다.


그건 하인이나 시종이 몰래 행동거지를 위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로키노는 자신의 의심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정말 어쩌다, 멀고 먼 선조의 재능이 발현된 건가?’


“헉···, 허억!”


판챠의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로키노가 힘을 가늠해서 사정을 두었다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오러를 개화한 햇병아리가 여기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다.


로키노는 검을 멈췄다.


“흠. 최소한 밀정은 아닌 것 같군.”


판챠가 그의 검을 벌써 수십 번 넘게 막아내는 동안 어떤 훈련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판챠는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헉, 헉. 이제 제 말을 믿으시는 건가요?”


몸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오러를 개화한 것이 무색하게 전신의 기운을 다 끌어다 쓴 것 같았다.


그런데 로키노는 착각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는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에잇! 듣기 싫다!”


‘미친놈아!’


판챠는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외치며 검을 받아냈다.


캉! 검과 검, 오러와 오러가 정확히 맞닿으며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로키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남들이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옅은 미소였지만.


‘이 정도면 누구라도 키워보고 싶어질 재목이군.’


오러를 개화한 건 오히려 이차적인 문제였다.


판챠는 검에 오러를 배치하는 감각이 특히 탁월했다. 그리고 소드마스터들의 싸움에선 그 감각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도 했다.


로키노가 판챠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슬슬 끝을 내볼까?”


로키노의 검이 백열했다. 오러가 검에 가득 차 엄청난 기세를 품어댔다.


분명 한 자루의 검일 뿐인데, 치켜든 검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자 마치 저택의 지붕이 통째로 떨어지는 듯한 압력이 전해져 왔다.


‘미친, 저건 압축검이잖아.’


판챠는 기겁했다. 지금까진 극도로 힘을 조율한 시험에 불과했다. 저 압축검은 판챠가 절대로 막아내지 못한다.


애초에 격이 다르다.


‘아니, 아니! 정말 죽이려고?!’


광명검의 전승자가 진심으로 만들어 낸 오러 블레이드가 판챠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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