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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춤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소드마스터의 시종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별춤
작품등록일 :
2022.10.28 14:10
최근연재일 :
2022.11.28 22:0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3,534
추천수 :
162
글자수 :
168,373

작성
22.11.01 23:20
조회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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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6쪽

개화 (2)

DUMMY

역사대로면 판챠의 남은 수명은 한달.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 원작에 쓰여 있는 사실이니까. 분노할 수도 없다. 망나니 앞에서 시종 따위가 함부로 열 냈다간 수명이 더 줄어들 수도 있으니까.


로키노는 뚱한 얼굴로 판챠를 바라봤다.


“너 왜 면상이 작살이 나 있냐? 가기 싫어?”

“아, 아뇨. 싫을 리가 있겠어요?”


판챠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로키노를 따랐다. 애초에 시종이 싫다고 안 갈 위인도 아니다.


‘지금 목적지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긴 하지···.’


생일로부터 한 달 뒤, 원정대 출발식에서 판챠는 배신자의 칼날에 죽는다.


그렇다면 주어진 과제도 명확하다.


‘그럼 그동안 배신자보다 강해지면 되는 것 아니겠어?’


칼이 날아오면 피하면 된다. 그게 쉬우면 칼 맞고 죽는 놈은 아무도 없겠지만. 아무튼 목적이 명료해지니 무겁던 가슴도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기사와 시종은 서로 다른 마음을 품은 채 에이더스 시로 향했다.



* * *



“이 표식은? 행맨을 열 놈이나 해치운 겁니까?”


판챠는 에이더스 시의 경비대에 도착해선 손수 모은 도적단의 표식을 전달했다. 경비대원은 놀란 기색으로 표식을 받아들였다.


행맨이라는 단어는 판챠에게도 생소했다. 도적단 이름 하나하나까지 원작에서 설명하진 않겠지만.


로키노를 쳐다보니 도적단원 명칭엔 관심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목매단 남자의 표식을 한 도적단을 행맨이라고 하나요?”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경비대원의 근엄한 얼굴에 순간 걱정스러운 기색이 비치며 말을 잠시 흐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판챠는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찬탄이나 칭찬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살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원작에서 묘사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잡스러운 도적단을 때려잡은 것치고는 이렇게 걱정하는 게 이상하다.


“뭐 문제라도 있나요?”

“그야 악독하기로 소문난 아···키탄의 부하들이니 말입니다. 놈들은 집요합니다. 게다가 요즘 숫자도 많이 늘었죠.”

“흐음.”


판챠는 맨들맨들한 턱을 쓰다듬었다. 카사프란 백작령의 경비대원이 이름마저 말하기 두려워하는 도적단 두목이라.

판챠가 그게 대체 누군지 물어보려고 할 때, 로키노가 호방하게 자기 가슴을 쳤다. 흉갑에 달린 베르두고 가문의 표식이 반짝거렸다.


“안 괜찮아 보이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현상금이나 줘.”

“아, 그 유명한···.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군요.”


경비대원의 태도가 달라졌다. 작중에선 이미 에이더스에서 로키노의 이름이 꽤 알려진 시점이었다.


로키노는 경비대원이 황망해 하며 건네는 동전 주머니를 웃으며 받아들였다.


‘누가 보면 가문 이름 대표해서 도적 토벌이라도 나온 줄 알겠네.’


판챠는 입 밖에 낼 수 없는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망나니가 자기 가문을 내세우다니.


하지만 로키노의 가문인 베르두고가는 한낱 도적단과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무문의 명가다.


로키노도 현 가주와 갈등이 있을지언정 가문 자체를 미워하진 않았다. 오히려 자부심이 있었다.


“고맙소. 그럼 이만.”


경비대원이 절도 있는 자세로 로키노에게 경례를 붙였다. 밖에 나오자 판챠는 경비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적이 요즘 늘었다니, 치안이 안 좋아졌나 보군요.”

“미드랜드가 원래 그렇지 뭐.”


로키노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판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소설 속의 미드랜드는 치안이 좋지 않았나?


하지만 이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 입장에선 생각이 다를지도 모른다.


‘하긴 판타지 세계의 치안이 좋아 봐야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요?“

”까먹었냐? 카사프란 백작가로 가야지. 에이더스시에 도착하자마자 들리기로 했거든.“


판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사프란 백작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바로 미드랜드 전역을 통치하는 아르케임 대공국의 다섯 백작 중 하나다. 대륙 최고의 기사단인 룬열쇠 기사단을 여럿 배출한 명가.


원작에서도 카사프란 백작가는 로키노와 인연이 있다.


카사프란 백작가는 시 외곽에 있었다. 귀족들의 저택은 시끄러운 번화가를 피해 상류층 전용 지구에 띄엄띄엄 저택을 두곤 했다.


판챠는 백작가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무의식중에 탄성을 질렀다.


”오오.“


확실히 글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다르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고풍스러운 양식의 저택이었다.


에이더스 시내의 건물들도 그리 촌스럽진 않았지만, 대리석 외벽의 사 층 저택 같은 건 없었다.


입구의 쐐기돌에는 고왕국 시절의 룬 문자가 새겨진 사자머리가 방문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판챠는 다시금 감탄했다.


”역시 오래된 명가는 장엄하네요. 아, 어느새 인사 나왔군요.“


로키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치형 입구 아래에 카사프란 백작과 그의 호위 기사, 그리고 사용인들이 진열하여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 좋은 얼굴의 카사프란 백작이 화려한 의복에 감싸인 살찐 체구를 이끌고 웃으며 다가왔다. 로키노 역시 마주 웃으며 말에서 내렸다.


“로키노 경! 어서 오시구려.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지경이었소이다! 하하!”

“백작님을 그만 기다리게 했군요. 오는 길에 치안 정화 활동에 매진하느라 그만 시간이 지체됐지 뭡니까?”

“오오, 역시 로키노 경입니다. 그 정의감! 역시 기사의 귀감이시오. 이야기는 오늘 연회에서 마음껏 풀어봅시다!”


‘그게 건전한 치안 정화 활동?’


판챠는 낮의 광경을 떠올렸다. 도적이 한순간에 육편이 돼서 휘날리는 풍경.


‘정화 활동 두 번만 했다간 피가 강처럼 흐르겠네.’


“자자, 들어갑시다.”


로키노는 백작을 따라 웃으며 저택에 들어섰다. 저기압이던 낮의 표정과는 딴판이었다.


‘어쩐지 백작가에 다가갈수록 기분이 좋아지더라니···.’


원체 변덕스러운 로키노긴 하지만, 오매불망 술판을 기다렸는지 기분 좋은 음색이다.


‘왜 자꾸 묘한 위화감이 들지?’


검술 명가의 구성원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술판부터 찾는 건, 뭐 어른들의 사교활동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껄껄대며 저택의 로비를 지나가는 백작의 푸짐한 뒷모습이 보였다.


‘카사프란 백작이 저런 아저씨였나?’


카사프란 백작은 후덕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백작이 움직일 때마다 살집이 출렁거렸다.


판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사프란 백작은 분명히 날렵하고 단단한 체구의 무인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음, 뭐. 체형이 무슨 문제람. 통통해도 잘 싸우면 그만이지.’


시종이 백작의 몸매를 가지고 토를 달 수는 없다. 시종도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까.


판챠는 애써 납득하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백작은 그냥 통통한 수준이 아니긴 했지만.


한편 백작의 좌우로 손님맞이를 하는 사용인들의 얼굴이 보였다. 서열에 따라 집사와 시종, 하인과 하녀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백작과 로키노보단 귀족을 모시는 저 사용인들이 판챠와 같은 입장이리라.


분명 더 친숙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왠지 거북하고 메스꺼운 느낌이······.’


로키노의 뻔뻔한 농담 때문인가 했지만, 그런 레벨이 아니었다. 판챠의 몸이 뭔가를 거부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메이드복, 그리고 갈색 머리. 대략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하녀. 하녀들의 맨 앞에서 꼿꼿이 서 있으니 아마 하녀장이리라.


그녀는 판챠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꾀죄죄한가? 야영을 좀 하긴 했지만···. 그렇게 불쌍하게 보일 정도는 아닐 텐데.’


판챠는 딱하다는 시선에 무심코 자기 몸을 둘러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시선은 행색이 추레해서 나오는 시선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집사 근처에 늘어선 사용인 중 젊은 남자들이 한 무리 보였다.


키가 크고 검은 제복을 입은 걸 보니 하인 중에서도 접객을 맡는 고급 하인일 것이다.


그들, 검은 제복 세 명이 판챠를 보고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판챠는 한숨을 쉬었다.


‘하···. 뭔가 있었구만.’


이런 상황에서 불쾌한 예감은 대개 맞는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보는듯한 얼굴. 원작의 유약하던 판챠가 사슴이라면 저 검은 제복들은 하이에나다.


귀족은 위층에, 평민은 아래층에. 귀족 가문이 지배하는 저택의 지엄한 규칙이다.


평민 시종인 판챠는 주인을 모시는 시간 외에는 얄짤 없이 아래층에서 대기해야 한다.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나약한 시종. 건장한 하인들. 나 잡아먹어 줍쇼, 하는 판챠의 원래 성격.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판챠는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움츠러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를걸.’


판챠는 비웃는 제복 하인들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약식치고는 거창했던 귀족가의 환영 인사가 끝났다.


로키노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즉시 연회에 합류하기로 했다.


상층의 손님방에서 판챠는 로키노의 뒤에서 빠른 손길로 판금 갑주를 잇는 경첩을 열어젖혔다.


‘이런 건 신기하단 말이야.’


시종의 일은 마치 판챠의 몸이 기억하는 듯, 갑옷을 연결하는 경첩과 가죽 벨트의 위치에 저절로 손이 갔다.


갑옷 구석구석에는 야영과 여행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후아. 이거 떨어트렸다간 하녀들이 개고생하겠는데요.”


로키노는 피식 웃으며 갑주를 마저 벗었다. 군데군데 먼지가 뿌옇게 올라앉아 잘못 떨어트렸다간 흙먼지가 뭉게뭉게 올라올 기세였다.


“판챠 너, 저녁은 하층에서 먹어야 하니 얼른 마무리하고 내려가라.”

“별로 생각 없어요. 로키노님이 연회를 즐기실 동안 갑주 손질이나 해두죠.”

“일하는 건 좋지만, 툭하면 저녁 거르더라. 키 안 큰다. 그러면.”


하긴 판챠는 로키노보다 거의 머리 하나가 작았다. 로키노는 판챠의 이마를 톡 치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연회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판챠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자, 다 끝났습니다. 이제 연회장으로 가시죠. 술자리 기대하셨잖아요.”


의복 시중을 끝낸 판챠는 로키노의 뒤에 시립했다. 로키노는 적당히 옷매무새를 만지며 확인하더니 무심하게 뒤편으로 주머니를 던졌다.


“자. 이건 선물.”

“엥? 뭐에요?”


손에 잡힌 주머니는 꽤 묵직했다. 받고 보니 아키탄인가 뭔가 하는 도적의 부하들을 퇴치하고 받은 포상금이었다. 그걸 통째로 판챠에게 던져준 것이다.


“오늘 너 생일이잖냐. 이걸로 나중에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고.”

“고, 고맙습니다. 주인님.”

“뭘. 됐다. 주인이 챙기는 건 당연한 거지.”


로키노는 판챠 쪽으로 대충 손을 흔들며 손님방을 나섰다.


판챠가 태어난 날은 원작에도 적혀 있지 않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베르두고 가문에 구해진 날을 생일로 정했었다.


어디든 그렇지만, 시종의 생일 하나하나 챙기는 주인은 드물다.


판챠는 손에 잡힌 동전 주머니를 바라봤다.


‘낮엔 온종일 틱틱대더니 그래도 정은 있네.’


판챠는 미소를 지었다. 왠지 가슴이 조금 뭉클해졌다.


하지만 지금 판챠에게 생일은 곧 죽음으로의 이정표였다.


어느새 미소는 사라졌다. 느긋하게 기뻐할 시간 따윈 없다. 한시바삐 능력을 개화시키고 강해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판챠는 품속에 넣어두었던 색판별 단안경을 꺼내어 장착했다.


‘이거 거울을 봐도 보인댔지?’


마법의 재능을 오늘 개화한다면, 마나 코어가 열리면서 푸른 색채의 마력이 몸 안에서 넘실거리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 세계에서 재능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발현된다.


태어나서부터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 키우는 생득소질.


선조가 가지고 있던 재능이 돌연히 발현되는 격세개화.


판챠는 후자에 속했다.

매미가 허물을 벗듯, 꽃이 망울에서 피어나듯, 한순간에 능력을 틔우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그렇게 얻은 마법의 재능을 제대로 써먹을 기회도 없이 죽긴 했지만.


판챠는 배낭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기초 마법학 개론>, 판챠가 몇 년간 봉급을 알뜰살뜰하게 모아서 산 마법 책.


대단한 마법서는 아니지만, 이마저도 재능이 없는 자는 첫 페이지의 첫 글자조차 읽지 못한다.


‘애초에 룬 문자가 그렇지.’


자격이 우선, 주문의 독해와 숙달은 그다음이다.


룬 문자가 눈에 스며들 듯 읽히기 전에는 마치 그림을 쳐다보듯 글자를 끊임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다.


재능에 따라 글자가 주인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법적 재능이 꽃피는 게 오늘이라면, 판챠는 이제 마법사의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흡!”


판챠는 눈을 부릅뜨고는 마법책을 펼쳤다.


‘···음. 전혀 읽히지 않는군.’


첫 페이지의 룬 문자부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인가? 벌써 저녁인데, 뭔가 이상해.’


슬슬 재능이 개화되고도 남았어야 한다. 판챠는 단안경을 착용한 채 손님방의 거울을 바라봤다.


‘개뿔··· 미동도 없네.’


마법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단안경에 보이는 육체도 변함없이 무능력하다.


‘강제로라도 마력 코어를 활성화 시켜야 하나?’


판챠는 <망나니 소드마스터>를 읽으며 얻었던 각종 설정과 정보들을 되새겨 봤다.


‘이 시점에서 가장 적합한 건 아마··· 아폴레테 재귀법.’


고왕국에서 전해져오는 유서 깊은 명상술의 정보가 판챠의 머릿속에 있었다.


눈을 감는다. 무한의 공간을 상상한다. 다시 돌아와 심층 너머의 소우주, 영체를 직시한다. 마력의 근원에 마중물을 부어 솟아나게끔.


“······.”


판챠는 눈을 번쩍 떴다. 가슴 속에서 뭔가 치솟아 오르는 기분.


“안 되잖아!”

쿵. 판챠는 홧김에 애꿎은 방바닥을 후려갈겼다.


그야 머리로 아는 정보와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정보는 당연히 다르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손님방 문 건너편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키노 님의 시종분이신가요? 도와드릴까요?”

“아, 아니에요. 잠시 짐 정리하다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용인들은 모두 아래층에 모여있어야 하니, 일 마치시면 내려와 주세요.”

“예, 예.”


하녀는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 분위기 자체가 경고기도 했다. 위층에서는 사용인 따위가 함부로 소란을 일으켜선 안 된다는 경고.


문에서 하녀의 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판챠는 한숨을 쉬었다.


주먹이 얼얼하다. 찌릿한 손을 주무르면서 머리를 굴렸다.


‘강제 마력 쇼크··· 아니, 여기선 안돼.’


마력 코어가 잠들어 있다면 마탑에서 강제로 여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마탑이 있는 흑탄의 계곡에 가기엔 시간이 없었다.


애초에 나약한 시종이 혼자 갈 방법도 없다.


무력감에 다리가 풀렸다. 무릎이 땅을 때려 눈앞이 번쩍하면 데굴데굴 구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판챠는 그럴 기운도 없었다.


“하··· 욕도 안 나오네.”


판챠는 마치 통증에 굴복하듯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평소 같으면 구르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통증을 호소할 기분도 아니었다.


진짜 통증은 다른데서 왔다.


“크헉, 왜 이러지? 가슴을 찍은 것도 아닌데.”


판챠는 가슴팍을 움켜잡았다.


가슴에 타는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팔다리가 뻐근했다. 마치 육체가 재구성되는 듯한 느낌.


“응?”


판챠는 떨궜던 고개를 들었다. 거울을 보니 가슴 부위에 단 하나의 붉은 점이 보였다.


‘······!’


그리고 붉은 점은 파동을 그렸다.


새하얀 백지에 선홍빛 물감이 떨어져 번지듯. 판챠의 가슴팍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며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개화였다. 기운은 미약했으나 광채만은 선명했다.


‘오러···?’


단안경을 몇 번이고 고쳤다. 하지만 붉은 색채 속에서 성운처럼 빛나는 것은 명백했다.


낮에 봤던 로키노의 눈에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광채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색채 이상의 빛. 오러.


“이게 이렇게 된다고?”


소드마스터로 향하는 길의 첫걸음. 생명 에너지의 발현이 판챠의 몸속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개화 (3) -> 개화(2) / 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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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4 지존
    작성일
    22.11.13 12:36
    No. 1

    무인은 무골도 무골이지만 마법사처럼 기에 대한 친화력이 좋아야 무인이 될 수 있음 무인으로써 재능이 삼류무사보다 못한 인간이 마법사라고 다를 수가 없는데 마법에 재능이 있디니

    전투 스타일이 다른거지 깨달음을 얻어 경지를 올리거나
    입문하는 것은 별 다를바 없음 기를 느끼는 것 기를 다루는 기량을
    상승시키는 것 위에 있는 것들을 심화시키고 보완 및 개량, 발전 시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며 위에 것을 리플레이

    스포츠 선수같이 감각적으로 해내냐
    교사처럼 계산된 일정 범위 내 정립된 이론으로 해내느냐의 차이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4 지존
    작성일
    22.11.13 12:44
    No. 2

    무인도 오성이 좋아야 높은 경지에 오르는거고
    마법사도 오성이 좋아야 경지에 오름 오히려

    마법사는 전투할때도 시종일간 계산기 때려가며 적절한 상황에 딱 맞는 마법을 효율적으로 마법술식의 계산기까지 때려가며 부려야 하는데

    주인공이 그게 되겠음? 재능+노력에 비해 가성비 답없는 게 마법사 장점이 있긴함 유틸기가 많음 그런데 그건 강해질 수록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것 말 안해도 알아서 인연이 들어옴
    무엇보다 타인에게서 배울수도 있음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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