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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개 님의 서재입니다.

나혼자 네크로맨서로 리메이크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글방개
그림/삽화
아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4
최근연재일 :
2023.06.1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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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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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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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퀘스트의 망령(1)

DUMMY

“말장난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노기가 묻어나는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13번 편의점 구역에서 코인을 모으겠다는 그 발상, 출처가 어디야?”

“그, 그게 말입니다.”

“똑바로 말해, 괜히 질질 끌지 말고.”

“제 말을 믿지 못하실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맹세컨대 사실입니다.”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그에게서 예상 밖의 정보가 흘러나왔다.


“이 세계의 미래를 그려낸 책이 있습니다.”

“책?”

“현대판 서사시, 그러니까 웹소설 같은 겁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모든 것을,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예언한······.”


나는 잠시 침묵했다.

이 세계의 미래를 그려낸 웹소설이라면······, 이 자식. <멸‧개‧법>을 읽은 건가?

지난 생에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독자······님?


나한테는 멸종위기종보다 더 희귀한 생물이 독자님인데, 이런 데서 이렇게 만날 줄은.

진짜야? 하고 물으려 했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멸망한 세계에서 개꿀 빠는 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계시록치고는 참 유치한 제목입니다만.”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남아있었는지, 그의 말에 뜨끔했다.

제기럴.


“아무튼 사람들은 그 계시록을 멸개법이라 부릅니다. 진짜 놀라운 건, 멸개법에 적힌 이야기와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이 거의 일치한다는 겁니다. 저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진짜 유사했어요.”


그가 종이 쪼가리를 몇 장 내밀었다.


“멸개법이라 불리는 웹소설, 아니 계시록의 일부입니다.”


나는 다급히 종이를 넘겨보았다.

<멸·개·법> 4화 도입부.

13번 편의점 구역에서 각성자를 죽이고 코인을 추수하는 주인공 김오류의 이야기가, 거기 인쇄되어 있었다.


“어떻습니까? 여기 적힌 내용과 지금 수행 중인 퀘스트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까? 이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4화를 주웠지만 5화나 6화의 일부분을 주운 동료들도 있습니다.”

“줍다니?”


하지만 그는 제 말에 심취한 나머지 내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 실제로 웹소설 플랫폼에서 이 소설을 읽은 친구도 있습니다. 제목이 하도 유치해서 기억한다고 하더군요. 20화까지인가 읽었다면서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제게 말해줬습니다.”

“······.”

“그 친구 말로는 아무래도 이 소설의 작가가 신이 아닌가, 하더군요.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건 다 뜻이 있을 거라고. 이럴 테면 말입니다.”


말이 끝날 기미가 없어서 나는 그의 멱살을 힘껏 움켜쥐었다.


“이걸 어디서 어떻게 주웠냐고 묻잖아.”

“아, 죄송합니다. 히든 퀘스트가 있습니다. 계시록의 일부를 모으는······.”

“히든 퀘?”


특이점이 또 나타났다.

그것도 제일 곤란한 형태로.


“퀘스트 이름이 뭐였어?”

“주인공의 길입니다. 히든 퀘스트 지역에서 진흙 괴물을 잡으면 랜덤하게 이야기 조각을 드랍합니다. 그걸 모아서 특정 화를 완성하면 되는 퀘스트였습니다.”

“진흙 괴물? 그래서?”

“예?”

“몇 화부터 몇 화까지였어? 소설 전체 이야기가 조각으로 드랍되는 건 아닐 거 아냐.”

“아, 그렇습니다. 1화에서 70화까지의 소설 내용 중에 일부가 이야기 조각으로 떨어집니다.”


70화라면 정확히 <멸·개‧법>의 1부에 해당하는 분량.

김오류가 자신만의 도시를 세우고 오천의 길드원 앞에서 패왕의 길을 선언하는 에피소드까지다.


“······.”


이번 특이점이 일으킬 파장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특정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출현하는 히든 퀘스트라고는 하나 결국은 소문이 날 것이다.

이 세계의 구원자가 누구인지 다들 알게 될 테니 김오류는 원작보다 더 빠르게 명성을 쌓을 테고, 더 많은 각성자를 거느리게 된다.

최악이었다.


“주인공의 길, 그 히든 퀘스트는 어떻게 얻었어?”

“어, 그게. 현 퀘스트 지역에서 산죽음을 죽이면 됩니다. 100마리 정도 잡으면 업적이 뜨면서······.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주인공의 길 히든 퀘스트는 수행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니, 하지 마시죠.”


어째 단호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이강한 님 정도의 실력이면, 굳이 계시록 따위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제 동료의 절반이 거기서 죽었습니다. 괴물이 있단 말입니다.”

“괴물?”

“사람인데,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물도 아닙니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하지만 말입니다. 강합니다. 아니, 강한 정도가 아닙니다. 그 괴물은 정말······.”


그가 진저리 쳤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히든 퀘스트 지역에서 괴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인간은 딱 한 명밖에 없다.


“그 괴물, 혹시 가슴에 별 문신이 있나?”

“그걸 어떻게?”


깜짝 놀란 그가 내 손을 부여잡았다.


“혹시 멸개법의 작중인물이십니까? 계시록의 구원자 김오류와 함께 악마와 대항하여 싸운다는 오인 중 한 분이시냔 말입니다. 이강한, 이 이름은 가짜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진짜 성함을 알려주십시오. 아니, 저를 김오류 그분께 인도해주십시오!”


별안간 무릎까지 꿇으려는 그의 멱살을 있는 힘껏 틀어잡았다.


“······너.”


김오류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살기가 솟구쳤고 내 살기에 반응한 해골병사들도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떠날 채비 하던 빨간색 그룹 전원이 겁에 질려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디서 무슨 얘길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더 김오류, 그 자식 이름을 꺼낸다면······죽인다.”

“컥!”


목이 졸려 숨조차 쉬지 못하는 그의 귓가에 나는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김오류는 메시아가 아냐, 인류를 배신하고 세계의 구원을 저버릴 유다지.”

“죄, 죄송합니다!”

“꺼져.”






홀로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담뱃불은 붙이지도 못하고 한참이나, 가슴에 별 문신이 있는 그 괴물을 떠올렸다.


“유금오.”


<멸·개‧법>에서 김오류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라이벌로 약 70화 분량의 1부가 끝날 때 등장하는 인물.

유금오라는 작중인물을 처음부터 구상했던 건 아니다.

더 쓸 이야기도 없고 긴장감을 주기도 어려워 대충 설정하고 급하게 집어넣은 캐릭터였다.


이렇게 얘기하면 독자들은 글쎄.

아무 생각도 없는 작가라 비판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희성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내일 뭘 써야 할지 모르는 게 웹소설 작가의 삶이라고.

그러니 그냥 쓰는 걸 즐기라고.


뭐, 그의 조언대로 쓰는 걸 즐기지도 못했고 하루하루 이야기를 억지로 짜내느라 소설도 엉망진창이 돼버렸지만······.


아무튼 유금오는, <멸·개‧법>의 설정상 가장 강한 자이며 또 유일한 회귀자이기도 했다.

이른바 영원회귀자로서 죽을 때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특징을 가진 인물.

그 지독한 반복에 질려 동기와 목적을 잃어버렸으며 결국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퀘스트의 망령이 된 자.

어떤 면에서는 김오류보다 먼저 세계의 구원을 떠맡았던 남자였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지난 생에서 나는, <멸·개‧법>의 주요 인물이었던 유금오를 아예 등장조차 하지 못하게 막았다.


퀘스트의 망령답게 유금오는 불특정한 히든 퀘스트 속을 떠돈다.

마물도 인간도 아닌 채로 말이다.

원작대로라면 김오류가 그를 일깨워야 했으나 내가 그들의 만남을 가로막았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유금오가 차지하게 될 기연을 모두 김오류에게 몰아주기 위해서였다.


“착오였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칙!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난 생에서 내가 범한 그 수많은 실수 중 하나를 바로잡을 기회가 왔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히든 퀘스트의 감옥에서 유금오를 당장 해방해야 해.”


유금오야말로 사사건건 김오류를 막아서는 최악의 장애물, 아닌가?

마치 나처럼 김오류를 향한 증오심을 태생적으로 지닌 자, 아니던가?


“그래.”


<멸·개‧법>으로 따지면 4화도 다 전개되지 않은 지금, 그를 히든 퀘스트 밖으로 꺼낼 수만 있다면······.

어쩌면 나보다 먼저 김오류를 죽여 버릴지도.


“후우.”


하도 물고 있어서 필터가 물러버린 담배에서 쓴맛이 올라왔다.


“유금오를 만나려면, 히든 퀘스트부터 열어야겠지? ‘하(下)’ 지역에서 산죽음을 100마리 잡으면 뜬다고 했으니.”


유인나와 예민아, 개진산을 여기로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이런 메시지가 떴다.


<이름 모를 안개 지역의 하(下) 구역에서 산죽음을 100마리 이상 죽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이 정도는 껌이지.’ 업적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획득 보상으로 ‘주인공의 길’ 히든 퀘스트 구역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합니다.>


“응?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제14의 해골병사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제27의 해골병사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저 멀리서 크아앙, 울부짖는 짐승이 나타났다.

적색 털을 가시처럼 세운 불곰이.


“개자식들아!”


뒷발로 땅을 차던 개진산이 별안간 13번 편의점 구역 안으로 돌진했다.


“이강한 털끝 하나 건드리면 다 죽인다!”


쓸데없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해골병사 무리로 뛰어든 개진산이 앞발을 무지막지하게 휘둘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진 뼈가 사방으로 날렸다.


“어떠냐! 내 앞발 맛이! 해골 따위가 감히 씨바, 다 죽거쓰.”


해골병사들도 즉각 대응에 나서려고 했다.

여기저기서 검을 뽑는 소리가 났고 방패로 땅을 찍으며 부대의 사기를 돋우고 함성을 내질렀다.


“······하, 그만둬. 물러서라고.”


그러자 해골병사들은 일제히 무기를 거두어들였다.

이쯤 했으면 눈치챌 법도 한데 개진산은 기세가 올라 더더욱 날뛰었다.


“인나 씨, 힐! 예민아는 내 뒤만 따라! 길은 이 몸이 뚫는다. 씨바, 이런 것들은 한 줌 거리도 안 되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개진산한테 유인나가 다급히 힐을 넣으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인지한 건 예민아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며 헛웃음 짓는 그녀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아저씨!”


해골병사를 노려보며 연신 콧김을 뿜던 개진산도 뒤늦게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강한, 아직 살아있었구나!”


공격 자세마저 거둔 해골병사를 앞발로 찍어버리며 그가 내게로 달려왔다.


“너, 씨발. 이 꼴이 뭐냐, 어! 피나 질질 흘리고 말이야, 하지만 걱정 마라, 지금부터는 내가!”


거대한 몸으로 날 가리고 서서는 해골병사를 향해 포효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거참.

예민아가 실소하며 개진산한테 핀잔을 줬다.


“하, 그만 해요, 다 끝났잖아.”

“무슨 소리야! 이 새끼들 안 보여? 마물이 이만큼이나!”

“저거 이강한 아저씨가 소환한 거잖아요. 저 해골들 다 우리 편이라고요.”

“어?”


공격을 멈춘 개진산이 주변을 둘러봤다.

바짝 세운 스무 개의 발톱이 쏙 들어가 버릴 정도로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필 꼴이 곰이라서 표정을 읽을 수가 없는데도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질투심 어린 그의 포효가 다시 한번 13번 편의점 구역을 쩡쩡 울렸다.


작가의말

오늘 새벽.

챔스 결승전 하프타임 때, 맨시티의 수장 펩이 선수들에게 이런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승리한다. 우리의 운명이 저 별에 씌어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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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포식(5) 23.06.07 2,708 30 12쪽
36 포식(4) 23.06.06 2,703 30 12쪽
35 포식(3) 23.06.05 2,680 33 12쪽
34 포식(2) 23.06.04 2,678 33 12쪽
33 포식(1) 23.06.03 2,717 37 12쪽
32 재회(5) +3 23.06.02 2,755 39 12쪽
31 재회(4) +2 23.06.01 2,744 37 12쪽
30 재회(3) 23.05.31 2,744 39 13쪽
29 재회(2) +3 23.05.30 2,742 40 10쪽
28 재회(1) 23.05.29 2,755 38 14쪽
27 설정 오류(7) +1 23.05.28 2,752 45 12쪽
26 설정 오류(6) +2 23.05.27 2,799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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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설정 오류(4) +3 23.05.26 2,786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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