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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개 님의 서재입니다.

나혼자 네크로맨서로 리메이크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글방개
그림/삽화
아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4
최근연재일 :
2023.06.13 22:05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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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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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0,752

작성
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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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운석 엔딩(추신: 프롤로그 아님)

DUMMY

세계가 멸망하고, 나는 놀랍게도 30년을 더 살았다.

이제 곧 모든 게 끝나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해서 뭣 하겠느냐만, 그래.

······사실, 사실은 말이다.


<XXX의 메인 퀘스트 ‘인류의 존망을 걸고’가 이름 부를 수 없는 자에 의해 강제 개봉되었습니다.>

<고대의 뱀, 이그의 알이 부화합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이야기를 쓰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예상 시각보다 훨씬 빨리, 인류 최후의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배신자 때문에.


<경고!!!>

<‘성(聖) 이강한의 은빛 방패 도시’가 마군에 침략당하고 있습니다.>

<경고!!!>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해가 저무는지, 은빛 성기사 길드를 이끄는 나의 천막 안으로 핏빛의 노을이 비쳤다.

마군의 동태를 살피러 나갔던 척후병이 다급히 들어왔다.


“마왕군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포탈만 수만 개가 넘습니다. 우릴 완벽히 포위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가자.”


이렇게 시작된 전투는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처참했다.


적의 목을 자르면 독기 어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심장을 도려내면 알아들을 수 없는 저주가 정신을 약화시켰다.

비와 하늘, 흙먼지와 꽃, 하다못해 바람마저 독과 저주에 물들어, 숨만 쉬어도 아군이 쓰러졌다.


<현재 생존한 길드원은 1890/121239명입니다.>

<현재 생존한 길드원은 1152/121239명입니다.>

<현재 생존한 길드원은 830/121239명입니다.>


아군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는 이 비참함이라니.

허나 뒤를 돌아볼 순 없다.

오직 나아갈 뿐이니, 아군의 죽음을 뒤집어쓰며 나는 퀘스트의 종결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디뎠다.


<현재 생존한 길드원은 3/121239명입니다.>

<현재 생존한 길드원은 2/121239명입니다.>


마신과 전쟁을 벌인 지 112일 만에 메인 퀘스트의 마지막에 이르렀으나······.


― 아는가?


머리 아홉 달린 고대의 뱀, 이그가 골탑의 왕좌에 앉아 속삭였다.


― 하찮은 성기사여, 이 우주에 살아남은 인간은 너뿐이다. 차라리 목숨을 끊고 스스로 멸종하라. 그것이 명예롭지 아니한가?


두 발로 걷는 뱀의 저주가 음산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비틀거리는 내 귓가에 독사의 언어가 들려왔다.

쉭, 쉬이쉭. 쉭쉭, 쉭쉭쉬이.


“개자식! 아가리를 으깨주마.”


무게만 백 톤에 달하는 거대 해머, 움라트 타월의 열쇠로 혼신의 일격을 가하려 했다.

허나 오른팔이 휑하니, 잘린 지 오래였다.

해머를 움켜쥔 손아귀가 새까맣게 썩어서 패배의 징표처럼 나뒹구는 걸, 뒤늦게 보았다.


큭, 실성한 놈처럼 웃는 내게 고대의 악마가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뭣이 그리 우습냐고.


“글쎄.”


이제 와 고백하건대 사실은 말이다.

이 세계는 내가 쓰다만 소설대로 멸망했다.

미완결한 상태로 연재했던 그 하찮은 소설이, 묵시록이 될 줄은 몰랐으나 이것만은 확신했었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은 성기사.

이 세계의 엔딩까지 가려면 나도 성스러운 기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틀렸다.

이 무지막지한 저주 속에서, 수없이 쌓이는 독과 원한 속에서 성기사 따위가 뭘 할 수 있겠나?


“다시 시작해야 해.”


크로노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우우웅!


수만 번 전투를 치렀으나 끝끝내 지켜온 검의 순결함이 빛났다.

이 칼로 내 심장을 찌르면, 시간의 처음이 끝과 맞물릴지니.


“되돌아갈 것이다!”


거꾸로 쥔 검을 높이 쳐들며 두 무릎을 꿇었다.

이번은 실패하였으나 기필코 다음은 다를 거다.

왜냐고?

이 엿 같은 성기사는 때려치울 거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게 내 결론이었다.

악을 이기려면 악이 되어야 한다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빠득, 부서진 이빨이 잇몸까지 파고들었다.


“윽, 으윽.”


칼끝이 가슴에 박히자 제 입으로 꼬리를 문 뱀, 우로보로스의 오라가 검은빛을 발하며 튀었다.

밤하늘을 바라봤다.

어둠에 가린 수만의 별무리가 일시에 나타나 밤을 뒤덮은 다음, 하나둘 운석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 나 같은 패배자한테는 완벽한 엔딩이야, 그렇지?”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현현했다.


<태초의 성스러운 명령으로 운석 엔딩이 발현되었습니다.>

<세계가 리메이크 됩니다. 모든 것이 멸망 하루 전으로 돌아갑니다.>

<묵시록 작가의 권한으로, 당신의 기억은 유료화 계약이 성사되는 순간 돌아옵니다.>


3, 2, 1.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






<작가의 말>


― 운석 엔딩으로 급히 마무리하게 된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필명 갈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고심 끝에 연재 중지 같은 완결을 치고 새벽 3시, 노트북을 덮었다.

하, 제길.

이게 벌써 몇 번째 운석 엔딩이던가?


“미치겠다, 정말.”


PC 바탕화면 휴지통에 미완성으로 처박힌 소설만 99편.

소설 분량으로 따지면 2000화.

소설 쓴 시간으로는 족히 4년.

나름 인생을 갈아 넣었는데 욕만 오지게 먹었다.


― 문파 99렙 소울만땅좌: 이거, 완결 아니죠? 전 이만 하차합니다. 자까님은 상하차나 하시죠.

― 문파 92렙 다다디트좌: 하, 하차하려고 했더니 완결이네. ㅅㅂ. 나 선빵 먹은 거? 존심 상함.

― 문파 89렙 크룰룰루좌: 선작 넣다 뺐다 해서 구래? 미안. 네 소설 읽는 거보다 그게 더 잼나.


저런 댓글은 그나마 양반들이다.

소설을 연재하는 내내 하도 욕을 먹어서 그런가.

어느 순간부터 작가 전용 욕 면역 스킬을 얻어서, 이제는 무덤덤했다.


“······후.”


옥탑방을 나와 하릴없이 담배를 꼬나물었다.

바람이 찼다.

내일모레면 여기도 비워줘야 한다.

어디로 가지?

비정규직 경호원 월급으로는 하루살이도 힘들어서 보증금을 야금야금 까먹었더니 정말 갈 데가 없었다.


“고시철이라 고시원에도 빈방이 없는데, 큰일이네.”


이러다 여관방을 전전하겠다며, 깡소주로 병나발을 불었다.

왜 현실에는 운석 엔딩이 없는가?

저 많은 별 중에 하나만 떨어져 주면 안 되나?

이 엿 같은 인생! 리셋이라도 좀······, 불콰하니 술에 취한 김에 안주 삼아 구시렁대는데.


팍! 쏴아.


시원하게 사이다 따는 소리가 액정 깨진 휴대폰에서 울렸다.

메시지?

새벽 3시에 제기랄, 스팸 문자를 날려? 죽을라고. 신경질적으로 폰을 집어 들었다.


“어?”


예상치 못한 메시지였다.


― 이강한 작가님, 혹시 이 작품 유료화 계약 하셨나요?


떨떠름했다.

자까님도 아니고 작가님이라니.

어찌 혹하지 않겠는가?


― 누구세요?

― 이세계 출판사 대표 이세계입니다. 새벽에 많이 놀라셨죠? 오늘 마지막 화 올리셨더라고요. 고생하셨습니다. 이전에 쓰신 작품들도 좋았지만 이번 작품이 특히 좋았습니다. 역시 엔딩은 운석 엔딩이죠. 요즘 같은 세상에 딱 맞는 결말 아니겠습니까?


이세계 출판사 대표라는 사람은 내가 답할 새도 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은 쓰레기 파일이 돼버린 내 이전 작품까지 줄줄 꿰며 칭찬을 늘어놨다.

나만의 김독자가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작가 지망생.

이른바 망생이 시절만 4년을 보냈으나 얻은 것이라고는 뱀심뿐인 줄 알았더니 이런 날도 있구나.


― 그래서 말입니다, 작가님. <멸망한 세계에서 개꿀 빠는 법>, 이 작품 저와 계약하시죠. 작가님 습작까지 전부 다 말입니다. 1분 후에 계약서 보내드릴 테니 확인하시고 전자서명 하시면 됩니다.

― 지금요?

― 예, 시간이 촉박해서요. 내일 오전 8시까지 유료화 등록을 해야 하거든요. 아, 중요한 걸 빠트렸군요. 지금 당장 서명하면 선인세로 3천만 원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내일 바로 입금합니다. 별것 아니지만, 튜토리얼 끝나면 간단한 선물도 드릴게요.


메일로 전자계약서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떴을 땐, 내 검지가 귀신에 혹한 듯 서명해버린 후였다.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은 금세 잊혔다.

어차피 손해는 출판사의 몫.

24시간 조회수 100도 안 되는 소설에 선인세 3천을 박겠다는데, 자까 입장에선 개꿀이다.


“3천이라니.”


일용직 취급받는 경호원 월급으로는 턱도 없고 틈틈이 스턴트맨 알바를 뛰어야 연 3천을 번다.

가뭄에 단비라더니, 배시시 웃음이 나는 차였다.

왼편 가슴뼈를 박살내고 심장을 두 쪽으로 쪼개버릴 듯 격통이 밀어닥쳤다.


“억, 어헉.”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온몸을 부여잡고 시멘트 바닥을 뒹굴었다.

내 것이 아닌 기억의 편린이 제멋대로 하나둘 맞춰졌다.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마물들이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환상이라니.

악에 맞서 장렬하게 산화하는 이들의 비명과 절규라니.

이 격렬한 패배감.

내 소설인가? 매일 골방에 처박혀 에피소드를 구상하다 보니 생긴 직업병?


“으아악.”


눅진한 바람이 괴물의 혓바닥처럼 나를 쓸고 갔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고통을 이겨내려고 열 손톱으로 바닥을 긁다가 별안간 눈을 떴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격통에 시달린 나머지 식은땀이 기화하며 활짝 펼친 날개의 형상을 띠었다가 서서히 흩어졌다.






“······돌아온 건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내 심장이었다.

티셔츠 목깃을 죽 늘어뜨려서 크로노스의 검에 찔린 상처가 있는지 살펴봤다.

······있다.

시스템 메시지는 뜨지 않았으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임은 분명했다.


“큭.”


쇳소리 섞인 미소가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돌아왔구나.”


처음으로.

아무것도 아니던 나로.


“······.”


양손을 펼쳐 보았다.

매일 같이 거대 해머를 휘두른 탓에 단단히 박혀 있던 굳은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린애처럼 여리고 부드러운 살가죽이라니.

이 얇은 팔뚝이며 쓸 만한 근육 하나 없이 마른 허벅지.


새삼스러웠다.

27년 전의 나는 이토록 약했던가?

일반 성인 남성에 비하면 운동 경력이 몇 배는 될 텐데도 실전으로 쌓은 근육과는 질이 달랐다.


“다 잃은 건가?”


삼십여 년에 걸쳐 이룬 모든 걸?

성스러운 빛의 가호도, 고유 스킬도, 신화급 무구와 레벨까지 전부 다?


“아니.”


적어도 셋은 남았다.

수만 번의 전투 경험.

아직도 두 손을 떨게 만드는 이 엿 같은 패배감. 그리고······, 기회.


“그래, 이번은 다를 것이다.”


지난날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네크로맨서로 각성하지 않았다는 거다.

세계가 멸망한 후 넘쳐나는 것이 시체이며 독이고 저주라는 걸 간과했다.

작가인 주제에.

이 세계의 창조자인 주제에······.


“기다려라.”


오늘부로 나는, 나 혼자 네크로맨서가 된다.

세계 곳곳에 도사린 독과 저주를 먹어 치우며 시체를 일으켜 세우리라.

오직 충성하는, 결코 배신할 줄 모르는 수만의 군사로 마왕을 짓밟고 배반자, 그놈을 처단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악마라도 되겠다.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싸그리 씹어 먹어주마.”


휴대폰 화면을 전환하여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지금부터 약 3시간 후면 세계는 내가 쓴 소설대로 멸망한다.


지난날의 패배를 복기하며 다가올 멸망의 첫날을 대비했다.

식칼을 헝겊으로 싸매고 품에 넣었다.

이다음에 준비한 것은 소금물.

소금 반, 물 반의 비율로 섞은 것을 1회용 비닐봉지에 담아 세 개의 가방에 차곡차곡 쌓았다.


“이만하면 튜토리얼 정도는 충분해.”


아침이 밝아오려는지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현재 시각 오전 7시.

출근할 시간.

나는 수십 킬로그램이 넘는 가방 세 개를 둘러메고 옥탑방을 나섰다.


곧 닥칠 인류 최후의 순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이 둘 있었다.

제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배신자를 가로막고 마지막까지 나를 살리고자 애썼던 유인나와 개진산.

규빈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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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포식(8) +2 23.06.10 2,579 28 12쪽
39 포식(7) 23.06.09 2,626 26 12쪽
38 포식(6) +2 23.06.08 2,643 33 12쪽
37 포식(5) 23.06.07 2,708 30 12쪽
36 포식(4) 23.06.06 2,703 30 12쪽
35 포식(3) 23.06.05 2,680 33 12쪽
34 포식(2) 23.06.04 2,679 33 12쪽
33 포식(1) 23.06.03 2,717 37 12쪽
32 재회(5) +3 23.06.02 2,755 39 12쪽
31 재회(4) +2 23.06.01 2,744 37 12쪽
30 재회(3) 23.05.31 2,744 39 13쪽
29 재회(2) +3 23.05.30 2,742 40 10쪽
28 재회(1) 23.05.29 2,755 38 14쪽
27 설정 오류(7) +1 23.05.28 2,753 45 12쪽
26 설정 오류(6) +2 23.05.27 2,799 43 12쪽
25 설정 오류(5) 23.05.27 2,774 42 10쪽
24 설정 오류(4) +3 23.05.26 2,786 47 10쪽
23 설정 오류(3) +3 23.05.25 2,806 47 11쪽
22 설정 오류(2) +8 23.05.24 2,827 49 11쪽
21 설정 오류(1) +4 23.05.23 2,855 4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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