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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개 님의 서재입니다.

나혼자 네크로맨서로 리메이크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글방개
그림/삽화
아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4
최근연재일 :
2023.06.13 22:05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42,155
추천수 :
2,231
글자수 :
220,752

작성
23.05.20 08:01
조회
2,943
추천
52
글자
11쪽

천적(3)

DUMMY

싸아아악.


독 웅덩이에 낀 빙판이 점점 두꺼워졌다.

이제 곧 위액 여왕이 빙결 마법을 버티지 못하고 튀어나올 터.


“속전속결로 끝낸다.”


골고딘의 낫질로 적을 세 동강 낸 후 뼈창을 쏟아부으면 끝날 것이다.

적이 세 마리로 분화하면 보상이 커지는 대신 그만큼 위험해질 여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여왕이라 한들 슬라임은 슬라임일 뿐.

물 속성 마물의 태생적인 한계는 그대로이니 한기 어린 뼈창 다발이면 충분히 제압한다.


“나오라고!”


때마침 독 웅덩이에 낀 빙판이 쩍, 갈라졌다.

빙판에서 시퍼런 독 연기가 한 차례 분출되었으며 나는 폐 속 깊이 그걸 들이마셨다.


<독이 스며듭니다.>

<생명력 회복 속도가 상승합니다.>


미늘뱀이 남기고 떠난 부산물답게 웅덩이에서 피어난 독은 꽤 강력했다.

심장이 전력질주했다.

중추신경계에서는 아드레날린을 분수처럼 분출했고.


“······큭.”


적개심이 정신을 비틀며 별안간 튀어나왔다.

이유는 나조차 알 수 없었다.

몸속의 피가 온통 분노로 물들어가는 걸 느꼈을 뿐.


“더 버텨보겠다는 거냐? 그렇게는 절대로 안 되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독을 들이마신 터라 한계를 넘어선 에너지가 증오와 뒤섞여 검게 용솟음쳤다.

수십 발의 뼈창을 단번에 내리꽂아 적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


살기가 짐승스런 숨소리로 변하여 흘러나왔다.

치켜든 양손의 손끝을 우그리자 놀랍게도 독 웅덩이를 둘러싼 허공에서 뼈창이 돋아나려고 했다.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뼈창의 발사지점이 바뀌었다.


<작가의 권한 Lv.1: 웅덩이에서 솟구친 독이 ‘창의 달인’ 효과를 일시적으로 부여합니다.>

<작가의 권한 Lv.1: 약 10%의 확률로 창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창의 달인? 뼈창의 시발점을 자유자재로, 내가 원하는 대로 특정할 수 있다는 건가?

야생 사자가 앞발로 풀숲을 헤치며 나타나는 것처럼 창끝이, 적 주변을 둘러싸고 번뜩이는 찰나.


퍽!


독 웅덩이를 뒤덮은 얼음을 깨고 위액 여왕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 끼아아!


눈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그것이 우리한테 달려들었다.


“지금이다, 골고딘! 세 조각으로 베어버려!”

― 존명!


골고딘한테서 허연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온 힘을 짜내어 그가 두 팔을 휘둘렀다.

4미터에 육박하는 거대 낫이 순식간에 허공을 갈랐다.


사아악, 캉!


낫이 적을 강타하자 그 반동으로 골고딘의 몸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낫의 궤도를 비틀었고, 다시 유려하게 움직이며 낫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카가가가각!


낫과 적의 몸통 사이에서 파찰음이 격렬하게 솟구쳐 올랐다.

고블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사의 일격에 당했으니 적은 여지없이 세 동강 났을 터.


이젠 내 차례다.

계획대로 열 발의 뼈창을 내리꽂아 마무리 지으려는 그때였다.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다.


“!”


목이 꺾여 허망하게 덜렁거리는 낫이 보였다.

그 무엇도 베지 못한 건가?


꺄아!


음파 공격이 우릴 덮쳤다.

주변의 공기가 갈가리 찢겨나가는 게 보일 정도로 흉험한 소리의 파장이었다.


위기를 직감한 골고딘이, 재빨리 뒤돌아서며 양팔을 활짝 펼쳤다.

자신의 등을 방패 삼아 독기 어린 기운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 엎드리시오, 주군!


음파가 밀어닥치기 전에 나는 멀뚱히 서 있는 예민아의 뒤통수를 다급히 찍어 눌렀다.


파바박!


위력이 상당했다.

갑주를 대신하는 골고딘의 쇠사슬이 음파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끊어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수십 톤에 달하는 그의 몸체가 2미터 가까이 떠밀렸으며 으깨진 뼈의 잔재가 날 덮쳤다.


“윽.”


흙먼지가 자욱했다.

어깨에 박힌 뼛조각을 뽑으며 전방을 노려봤다.

골고딘이 적을 가리고 있는 터라 형체를 정확히 분간하기 어려웠으나 이 날카로운 살기.

목뒤의 털까지 곤두서게 만드는 이 적의······.


“미늘뱀?”


그럴 리가.


“벌써 나타날 리가 없잖아.”


미늘뱀은, <멸‧개‧법>의 전개 속도로 따지면 약 50화 분량의 1부 끝에서나 나타날 마물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 가열된 기름처럼 들끓는 감정은 이 상식적인 판단을 강렬히 거부했다.

이전 생에서 내게 가장 큰 패배를 안겨준 것이 뱀.

수십만 병력을 자랑하던 은빛 성기사 길드를 몰살시키고 나마저 자진하게 만든 것도 결국 뱀, 아니던가?


“······그래.”


이 엿같은 기분.

가장 혐오하고 증오하며 역겨워하는 마물이 저 앞에 있다.

온몸의 털이 가시 바늘처럼 파르르, 섰다.


“미늘뱀이 살기를 숨기고 있었구나.”


예상치 못한 적이 등장했으니 지금까지의 계획은 폐기한다.

우선 골고딘부터 뒤로 물려야 했다.

그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러서라! 뒤로 와서 예민아를 지켜! 지금부터는 내가 나선다!”


하지만 뜻밖의 응답을 골고딘이 보내왔다.

싸우지 말라는 내 명을 어기고 오히려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원뿔형의 충격파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자 영악하기 짝이 없는 적은 독 웅덩이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제길, 물러서라고!”


이 불길한 직감이 옳다면, 독 웅덩이에서 그것이 다시 나타날 때 골고딘은 박살 난다.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다.


왜냐고?

<멸‧개‧법>의 세계에서 고블린의 씨를 말려버린 양대 천적 중 하나가 미늘뱀이니까.

미늘뱀은, 오크의 횡포를 못 이겨 지상에서 지하로 숨은 고블린 종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그 바람에 고블린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기회를 송두리째 잃고 소수 마물 종족으로 전락했다.


천적에 대한 공포는 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렬하게 이어지는 법.

아무리 최강의 전사였다 하더라도 그 두려움이, 골고딘의 뼛속 깊이 각인되어있는 건 당연했다.


“어서!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순간 내 것이 아닌 감정이, 내 안으로 급격히 치달았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사항전의 의지가.


― 내게 치욕을 명하지 말아 주시오, 주인이시여!


골고딘이 고함질렀다.


― 케가로!


고블린 종족의 전통에서 제일 고집스러우며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 그에게서 튀어나왔다.

······하, 케가로라니.

저 말의 뜻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적과 싸우겠다는 결언한 선언.

살기보다 명예롭게 죽을 것을 천명한 이상 더는 되돌릴 수 없게 돼버렸다.


“이번에 패배하면······, 골고딘.”

―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은 더없이 묵직했다.

한낱 소환수이므로 패배하여 파괴된다 하더라도 다시 되살리면 그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틀렸다.

해골 병사와 달리 해골 기사는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다.


해골 병사는 도처에 널린 죽음의 흔적 속에서 무작위로 일으켜 세우는 일회용 소환수.

적을 향한 적개심 외에 아무 기억도, 생각도, 감정도 없는 전투 기계.

소환의 명령을 거두어들이거나 적에게 파괴되면 그들은 본래 죽었던 자리로 되돌아가 사라진다.


이와 달리 과거의 기억을 가진 채 되살아나는 해골 기사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한다.

세 번의 목숨을 가지고 소환 명령에 거듭 응할 수 있으며 승리의 경험을 쌓아서 기사, 전사, 대장, 장군 순으로 승급한다.


대신 패배가 연속된다면 60% 확률로 강등당할 수 있으며, 이 확률은 패배할수록 높아진다.

포탈지기한테 이미 진 적이 있는 그였으므로, 이번에도 패배한다면 60%의 확률로 강등될 위험이 있었다.

개성과 정체성, 기억까지 모두 잃은 채 한낱 무명의 해골 병사로 전락할지도.

이를 모를 리 없었으니 골고딘의 케가로 선언은 죽음을 각오한 것과 다름없었다.


“결투를······, 허락한다.”


그러자 골고딘이 포효했다.

미늘뱀의 음파 공격에 터져나간 쇠사슬 파편이 후드득, 달라붙어 그의 육체를 다시 감쌌다.

목이 꺾여서 덜렁거리는 낫을 비틀어 날과 대를 끊어낸 후 낫날만을 짧게 움켜쥐는 찰나였다.


퍽!


독 웅덩이에서 미늘뱀의 꼬리가 튀어나와 골고딘의 발밑을 후려쳤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때야말로 미늘뱀을 웅덩이 밖으로 끄집어낼 기회였다.

꼬리치기를 피하는 동시에 반원을 그리며 휘는 꼬릴 잡아채서는 거의 던지듯이 확, 끌어당겼다.


슈악, 파파팟!


미늘뱀이 포탈지기의 위벽에 부딪혀 나동그는 순간, 골고딘은 무려 10미터의 높이로 뛰어올랐다.

쇠망치 같은 그의 발이 미늘뱀의 몸통에 내리꽂혔다.


쾅! 콰지직.


미늘뱀이 재빨리 또아리를 틀면서 자신을 보호하자 이번에는 낫으로 찍었다.

사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4미터짜리 낫이 부러지는 바람에, 그 길이가 짧아진 것이 전화위복이라 여겨질 만큼 낫질의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쾅쾅쾅쾅!

쾅쾅쾅쾅!


찰갑주 모양의 뱀 비늘에서 불꽃이 쉴 새 없이 튀었다.

골고딘의 참격은 소낙비처럼 쏟아졌고 미늘뱀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나는 알고 있다.

저 무방비한 미늘뱀의 대응은 수세에 몰려서가 아니라는 걸.

마음만 먹으면 미늘뱀은 저 골고딘의 참격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그런데도 피하지 않는 건, 그의 공격이 별것 아니기 때문.


― 이놈, 날 우습게 보는 건가! 덤벼라, 덤비란 말이다!


역시나 골고딘도 자각하고 있었다.

수백 회에 달하는 참격을 쏟아 부었는데도 뱀 비늘 하나 파괴하지 못했다는 걸.

뼈아픈 패배가 이 싸움의 당연한 귀결임을.


카캬캭카.


이윽고 미늘뱀이 천적의 위엄을 드러냈다.

가벼이 세운 꼬리로 낫을 받아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낫질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골고딘의 사각을 찔렀다.


― 컥!


미늘뱀의 일격에 골고딘의 갈비뼈가 박살났다.

잠시 휘청거렸을 뿐인데 퍽퍽, 그의 등에서 날카로운 꼬리가 튀어나왔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 크어억.


<제1의 해골기사 골고딘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손상률 35%>


휘청거리는 그의 눈앞에 뱀 대가리가 우뚝 섰다.

모가지 주변의 뱀 비늘이 파르르 떨었고 그 바람에 주변의 공기가 우릴 비웃듯이 진동했다.


― 크크크, 하찮은 것 같으니.


싸늘한 웃음소리가 뼈를 에는 추위처럼 밀어닥쳤다.

품에 숨어있던 예민아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작달만한 손아귀가 내 옷자락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아저씨.”

“왜?”

“우리 주, 죽나요?”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매번 철없이만 굴던 예민아도 본능적으로 직감한 모양새였다.

지금이 진짜 위기라는 걸.


“죽냐고? 아니.”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며 미늘뱀을 노려봤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예민아.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할 게 있다.”

“······뭐, 뭐를요?”

슬라임.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31 조세비
    작성일
    23.05.20 08:04
    No. 1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재에 무협이 접목된 느낌이라 신선하네요.
    선호작 등록하고 추천으로 응원합니다.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14 글방개
    작성일
    23.05.20 08:06
    No. 2

    아, 감사합니다. 올리자마자 댓글을 달아주시다니요. 부족하나마 열심히 쓰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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