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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개 님의 서재입니다.

나혼자 네크로맨서로 리메이크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글방개
그림/삽화
아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4
최근연재일 :
2023.06.13 22:05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42,346
추천수 :
2,231
글자수 :
220,752

작성
23.05.21 08:05
조회
2,860
추천
50
글자
11쪽

천적(4)

DUMMY

공포에 질린 탓인지 예민아는 나의 침묵을 오래 기다리지 못했다.

더듬거리며 재빨리 되물었다.


“살아남으려면 대체 뭘 기억하란 거예요, 아저씨.”

“······피조물.”


예민아는 두 눈만 끔뻑였다.

하긴 그녀 입장에선 뜬금없는 말이긴 하겠지.

살아남는 방법이 뭐냐고 물은 건데, 엉뚱하게 피조물이라니.


나도 안다.

선문답 같은 대답이란 걸.

허나.


“절대로 잊지 마. 이 멸망한 세계에서 적은, 그리고 네가 맞닥뜨리게 될 현실은 모두 피조된 거다.”


작가가 만든 상상의 산물이라는 말만은 차마 꺼내질 못했다.

말해본들 이해하지 못할 테니.


나를 제외하고 이 사실을 눈치챌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감사하게도 내 소설을 읽어주신 몇몇의 독자와 <멸‧개‧법>의 주인공 김오류 정도 아닐까?


아무튼 기억하라.

이 모든 건, 주인공이 승리하는 세계를 그려내려는 작가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주인공이 이겨야 하므로 작가는 반드시 적대자에게 약점을 부여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도 극복의 실마리를 꼭 숨겨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함축한, 가장 비밀스런 진실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저 골고딘처럼.”


겁에 질린 그녈 다독이며 나는 전방을 가리켰다.

마지못해 내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면서도 예민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쟤, 쟤는 지고 있다고요!”

“지고 있다고? 틀렸어. 저건 이기고 있는 거다.”


······자기 자신을.


“너도 저럴 수 있어야 해.”


그리고 나도.


― 크핫!


괴성을 내지르며 골고딘이 일어섰다.

최강의 천적이며 그래서 고블린 종족에게 신으로 추앙받는 미늘뱀을 눈앞에 두고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예감했다.

반전의 기회가 곧 찾아올 것을.

미늘뱀의 약점을 파고들, 나만의 독니를 꺼낼 때가······.


― 사악한 뱀이여, 나를 우습게 보지 마라!


골고딘은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적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의 움직임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투박했고, 이에 비해 미늘뱀이 휘두르는 꼬리의 궤적은 변화무쌍했다.

숙련된 검술가의 칼끝처럼 골고딘의 사각을 찌르다가 순간 무식한 자의 손에 들린 해머처럼 그를 난타했다.


― 커억!


골고딘이 박살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뱀 꼬리가 그를 타격할 때마다 뼛조각이 날아와 내 왼뺨과 어깨, 옆구리 등등을 긋고 사라졌다.


<제1의 해골기사 골고딘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손상률 43%>


“아, 아저씨. 우리 토껴요, 네? 튀자고요. 이러다 진짜 죽는다고요! 보세요, 해골이 벌써 다 망가졌다고요. 근데 어떻게 살아.”


미늘뱀의 위세에 압도된 그녀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골고딘을 응시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골고딘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신체 손상률이 50%를 넘어섰습니다. 더 방치하면 해골기사의 기동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생명력을 소모하여 소환수를 치료하겠습니까?>(Y/N)


골고딘을 당장 치유하지 않으면 거동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메시지가 점멸했다.

무시해버렸다.

그를 치유해서는 안 된다.

혼신을 다한 골고딘의 싸움이 패배로 끝날 때, 그 참혹한 죽음으로부터 내 싸움이 시작될 테니.


“······골고딘.”


미늘뱀과 결투를 시작한지 단 5분 만에 그의 생명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고양이 앞의 쥐새끼마냥 골고딘을 희롱하던 미늘뱀의 꼬리가 그의 허리뼈를 부수며 튀어나왔다.

그때였다.


― 주인이시여!


복부를 관통한 뱀 꼬리를 꽉 붙들며 골고딘이 간절히 소리쳤다.


― 이놈을 붙잡아 시간을 벌 테니 후일을, 컥!


저 짧은 단말마의 외침마저 골고딘은 다 내뱉지 못했다.

미늘뱀의 아가리가 그의 머리를 덥석 물었다.

두 개의 송곳니 중 하나가 쇄골을 바스러뜨리는 게 보였다.


― 크큭, 내가 네놈들에게 후일 따위를 남겨줄 성 싶으냐?


쉭, 쉿쉿쉿, 뱀의 언어가 가진 특유의 바람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아그작, 아그작, 미늘뱀의 아가리에 씹혀 부서지면서도 골고딘은 온몸으로 외쳤다.


― 패배의 대가는 저의 죽음으로 치를 테니, 나의 왕이시여! 지금이 아니면 때가 없을 것이오. 그러니 어서!


<제1의 해골기사 골고딘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손상률 59%>


― 으아아악!


어느새 상체를 반이나 먹힌 골고딘의 괴성이 먹먹하게 들려왔다.

뱀 아가리가 거의 닫힌 상태라 그의 외침은 이내 뭉개졌고 허무하게 잠잠해졌다.


그런데도 골고딘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내게는 똑똑히 보였다.

어떻게든 퇴로를 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 나는 고블린의 왕이다! 내 너를 갈가리 찢어······.


허리뼈가 아작 나기 직전, 손상률이 60%에 육박하는 그 순간, 골고딘은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굳게 닫힌 뱀 아가리가 차츰 벌어지며 그의 상체가 다시금 모습을 보였다.

어깨에 비스듬히 박혔던 독니가 슬슬 뽑혀 나왔다.

운이 좋으면 저 사악한 뱀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 크큭, 한낱 고블린 주제에 힘은 좋구나. 그래그래, 잡아먹기 쉬운 먹잇감만큼 맛없는 건 없지.


가소롭다는 듯 음산한 웃음을 흘리던 미늘뱀이, 골고딘을 물고 있는 아가리 밑면을 느닷없이 땅바닥에 처박았다.

턱을 다무는 힘만으로는 그를 부숴버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쾅, 쾅, 쾅, 쾅!


바닥에 아래턱을 연달아 내려찍자 뽑혀 나오던 송곳니가 골고딘의 어깨에 다시금 깊이 박혔다.


― 쿠하하핫, 어리석은 고블린 같으니. 내가 누군 줄 모르느냐?


시퍼런 독액이 칙칙, 미늘뱀의 입천장에서 뿜어져 나왔다.

녀석의 상악골을 떠받치고 있던 골고딘의 팔이 독에 부식되었으며, 결국은 부러졌다.


― 나는 고블린의 무덤이다. 내게 먹힌 고블린이 수만 마리는 넘을 터. 너는 꽤 버틴다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내 뱃속에서 영면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라.


이윽고 뱀 아가리가 다시 닫혔다.

다음 먹잇감이 될 나와 예민아를 번갈아 노려보며 미늘뱀은 똬리 튼 몸을 느슨하게 풀어헤쳤다.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녀석의 목구멍 속으로, 축 처진 골고딘이 스멀스멀 삼켜지는 찰나였다.


세로로 서있던 뱀 눈깔이 별안간 희번덕거렸다.

동공이 좌우로 흔들리는 걸 보아하니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편안히 바닥에 누여두었던 뱀 모가지가 화들짝 일어섰으며 이내 꼬리가 비정상적으로 비틀렸다.


― 크어억!


미늘뱀의 몸통 전체가 요동쳤다.

양끝을 잡아 길게 늘린 용수철을 툭, 놓아버린 것처럼 녀석은 본능적으로 똬리를 틀고 뒹굴었다.


― 이, 이, 이 고블린 새끼가!


목에 가시라도 걸린 건지, 아가리를 쩍 벌리며 전력을 다해 켁켁거렸다.

그래도 안 되자 이번에는 아가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뱃속의 이물질을 뱉어내려고 애썼다.


― 크악!


허벅지까지 삼켜졌던 골고딘이 순간, 미늘뱀의 아가리 밖으로 튕겨 나왔다.

독액과 함께 뱉어진 그는 꽤 멀리까지 내팽겨졌으나 벽에 한 번 부딪혔을 뿐 곧바로 일어섰다.

그의 발밑으로, 뱀 혓바닥이 뜯겨져 나뒹굴었다.


놀라웠다.

이미 상체를 반이나 잃어버린 그였다.

왼쪽 어깨와 팔이 뱀에게 뜯겨버린 이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 남아있는 오른팔로 낫을 쥐다니.


허나 그것도 잠시.

녹슨 낫이 끝내 골고딘의 손아귀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의 왼쪽 무릎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흙에 처박혔으며 손바닥은 바닥을 짚고 말았다.

그러자 미늘뱀이 모가지 주변의 강철비늘을 활짝 펼쳤다가 접으며 몸통을 수직으로 곤두세웠다.


― 케케케케, 고블린 따위가 내게 대적하려들다니. 가소롭구나. 내 너를 먹어치운 다음, 저 뒤에서 오금이 저려 꼼짝도 못하는 인간년놈들을 갈가리 찢어버리겠다.


포식자의 여유로움을 자랑하며 미늘뱀이 나를 노려보았다.

반만 남은 뱀 혓바닥이 피를 흘리며 들락날락 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성체 크기에 따라 급이 달라지긴 하지만 <멸‧개‧법>의 구분에 따르면, 미늘뱀은 최소 B급 마물.

단순 물리 공격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만큼 단단한 비늘을 둘렀으며 특히 회피율이 60%에 육박하는 날렵함을 자랑한다.

최대치까지 성장한 것들이 우글거리는 미늘뱀 던전은 그래서 전사의 무덤이라 불리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마법 공격도 중급 이상의 위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미늘뱀이 따로 마법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나 마법 데미지를 받으면 그 즉시, 비늘을 열어 에너지를 방출해버린다.

마치 첨탑 위의 피뢰침처럼.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단단한 껍질이니 뭐니 하는 저 강점이야말로 뒤집어 생각하면, 미늘뱀의 약점이 된다.


“흠.”


골고딘의 뼈를 삼키느라 미늘뱀의 목구멍이 불룩해지는 걸 보니, 이제 때가 됐다.

나만의 일격을 가할 때가.


“상점.”


챙, 하는 금속성의 소리를 발하며 시스템 창이 열렸다.


“네크로맨서 전용 스킬 북.”


내 명령에 따라 강령술 관련 스킬 목록이 좌르륵 떴다.


“뼈 화살 구입.”


<스킬:뼈 화살 Lv.1을 구입하였습니다.>


그 사이, 미늘뱀은 바닥에 쓰러진 골고딘을 아그작, 깨물었다.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거꾸로, 골고딘의 다리부터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기어이 위태롭게 덜렁거리던 골고딘의 허리가 끊어졌다.

뱀 아가리에 물려 있다가 싹둑, 잘려서 떨어진 그가 힘겹게 고갤 쳐들었다.

어서 달아나라고.

자신이 먹히는 지금이 유일한 퇴로라며, 손짓이라도 하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나를 걱정하는 거냐?”

― 크, 크으.

“허나 골고. 다시는 내게 달아나라 하지 마라. 오늘 이후로는 그 어떤 패배도 허락하지 않겠다.”


천천히 왼손의 검지를 들어 나는 미늘뱀을 가리켰다.

그런 다음 활시위에 오른손의 중지를 거는 상상을 하며 읊조렸다.


“뼈 화살.”


지금까지의 전세를 뒤집는 건, 저 한마디면 족했다.

미늘뱀의 뱃속에서 빠드드득, 마치 이를 가는 소리 같은 것이 울려나왔다.

놈이 삼킨 골고딘의 뼈가 부셔지며 화살촉으로 변하는 걸, 손끝의 감각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로써 골고딘, 네가 이겼다.”


오른팔을 가슴 쪽으로 거두어들였다가 팽팽해진 활시위를 놓아버리듯 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 사이를 활짝 폈다.


탕!

해골 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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