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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개 님의 서재입니다.

나혼자 네크로맨서로 리메이크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글방개
그림/삽화
아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4
최근연재일 :
2023.06.13 22:05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42,156
추천수 :
2,231
글자수 :
220,752

작성
23.06.01 22:05
조회
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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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
12쪽

재회(4)

DUMMY

“어어이, 이강한! 비켜, 다친다!”


불곰에 올라탄 녀석이 장난스럽게 나를 불렀다.

십자가 모양의 거대 해머가 그의 어깨에 육중한 자태로 걸쳐 있었다.

자신이 짊어진 것들의 무게에 비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늘 저렇게 메고 다녔던.


“······김.”


목구멍을 긁으며 그의 이름이 부지불식간에 불거져 나왔다.


“오류.”


나의 소설 <멸·개·법>의 주인공.

사실은 <멸·개·법> 이전에, 연재조차 되지 못하고 파기된 내 습작들에서도 매번 주인공을 도맡아온 인물.


아직도 기억난다.

달피아에 <멸·개·법>을 연재할 때, 내가 제일 먼저 들었던 욕은 주인공 이름이 왜 저따위냐. 였다.

오류가 뭐냐고.

이름 때문에 몰입이 안 된다, 하차감 마렵다며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나는 저 이름을 사랑했다.

오류, 영어로는 Error. 라틴어로는 Errata.

저 이름엔 당시의 내가 투영되어 있었다.


항상 실패했고, 뭘 해도 되는 게 없는 불량품 인생의 내가.

당장 삭제되거나 수정되어야 할 오류 취급이나 당하며 살았던.


그래서였을까?


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삼류 대학을 나와 삼류 인생을 살아온 오류가, 이 엿 같은 시스템에 에러를 일으키며 모조리 박살 내는 모습을.


하여 나는 <멸·개·법>에서 이렇게 썼다.


+++


그들이 만든 시스템에서 나는 오류였다.

오류는 오류다워야 한다.

이 시스템에서 자유의지가 단 1%라도 허락되는 한 숙명에 끌려가지는 않겠다.


너희들이 설정한 엔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나만의 엔딩이 있다.

내 이름이 뭔지 아나?


“나는 김오류다.”


+++


하지만 웹소설 <멸·개·법>은 막장으로 끝났다.

나는 김오류의 이야기를 다 쓰지 못했다.


미완의 결말.

그래.

나는 다시 써야 한다.


“어어이, 쪼렙 성기사! 비키라고! 그러다 진산이한테 밟힌다!”


김오류가 비키라, 다시 한번 소리쳤다

개진산의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말고삐를 쥔 기수처럼 불곰의 뒷덜미 털을 잡아당기며.


“으랴!”


숨이 턱까지 차오른 탓에 개진산은 헉헉, 힘들어 죽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김오류는 불곰의 엉덩이를 때리며 더 빨리 달려보라고 재촉하는 중이었다.


“개진산! 야, 곰! 이래서 내가 선두에 서겠어? 더 빨리 달려봐!”

“씨불, 네가 얼마나 무거운 줄 알아? 그 해머 좀 어떻게 해보라고! 써먹지도 못하는 걸 왜 들고 다녀!”

“폼나잖아.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지!”

“미친놈, 네가 왜 주인공이야! 그럼 나는 뭐냐!”

“······너? 그야······, 꼬붕?”


언제나 저런 식이었다, 김오류는.

장난치는 걸 즐겨하는 성격답게 누구한테나 짓궂게 까불곤 했었다.

그래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와는 반대로 주인공이니까.

타고난 친화력에, 매력이 철철 넘치는 캐릭터니까.


어디 그뿐인가?

내 소설의 주인공답게 김오류는 처음부터 선동 계열 스킬 3종이 만렙이었다.

한 번 인연이 닿으면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선두는 내가 선다! 살고 싶으면 나만 따르라고!”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거대 해머를 붕붕, 소리 나게 휘두르며 김오류가 내 곁을 지나쳤다.

개진산한테 올라탄 그가 시원하게 웃어젖히는 게 보였다.


아, 이제 알겠다.

이 환영의 시점이 언제인가를.

김오류 일행과 처음으로 연합하여 제8의 메인 퀘스트를 깨러 가던 길일 거다.

이날의 연합이 훗날 은빛 성기사 길드의 모태가 되었다.


저 장면의 끝도 기억난다.

백 명의 오크가 진을 친, 바로 그 앞에서 개진산이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고꾸라졌던가.


크악!


역시나 그랬다.

불곰으로 변신해서 적진을 향해 질주하던 발이 꼬여, 개진산은 두 바퀴 넘게 진창을 뒹굴었다.

하지만 그의 등에 올라탔던 김오류는, 그 직전에 허공으로 날아올라 오크의 방패벽을 찍어버렸다.


쾅! 콰콰콰!


십자가 형상의 거대 해머가 지면을 강타하자 충격파가 일었고, 방패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자존심 상한 오크가 오로지 김오류만을 노렸으나 그의 전진은 거침이 없었다.


“······.”


저 시절의 김오류는 적의 칼날을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성기사답게 자힐 하나만 딱 걸고, 닥치는 대로 적을 휩쓸 뿐.

다치면 알아서 치유할 테니까 사제는 다른 사람이나 힐하라고 했던가?

내가 주인공 하나는 멋지게 잘 만들었구나, 하며 감탄했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크아앙!


진창에 처박혀 있던 개진산이 뒤늦게 포효했다.

사람 말로 바꾸면 “아 씨바 졸라 빡치네.”쯤 되는 뜻으로 울부짖은 그가 적진으로 돌진했다.


“이 개자식들아! 웃어? 나, 개진산이야! 내 앞발 맛을 봐라!”


개진산이 닥돌하자 유인나가 다급히 힐을 넣었다.


“아, 정말! 진산 씨. 보호막은 받고 싸워야죠!”

“인나 씨만 믿을게! 힐 팍팍 넣어!”

“그러다 다치면 내 마나 다 닳는다고요!”

“에헤이, 사람 차별해? 강한이한테는 잘도 주더니만! 왜 나한테만 그래!”


오크의 대가리를 연달아 짓이기며, 개진산도 적진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후방에서 유인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싸우는 법이 어디 있냐며 툴툴내던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한 씨, 어디 있어요? 강한 씨!”


나를 찾는 모양이었다.

내 이름을 몇 번 부른 끝에, 멀찌감치 물러서 있는 나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하. 강한 씨! 뭐해요! 계속 보고만 있을 거예요?”

“어?”

“나, 호위해줘요. 얼른요.”


저 말만을 남긴 채, 유인나도 김오류와 개진산의 뒤를 따라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디서 바람이 큰비를 몰고 왔다.

안개는 흩어졌으나 쏴아, 굵어진 빗방울이 대신 시야를 가렸다.


깜빡, 어지러웠다.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창검 부딪히는 소리, 목이 잘린 적에게서 피가 솟구치는 소리, 힐! 힐! 치유를 요청하는 외침.


사제가 저리 혼자 움직이면 안 되는데······.

오크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죽이려 들 텐데.


“자······잠시만 기다려, 인나 씨. 내가 해골 병사 소환하면 그때······.”


해골 병사?

이질감이 찾아왔다.

······성기사인 내가 왜 강령술을.


“제길.”


현실과 환영이 뒤섞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아니, 내가 누구였던지.

이런저런 의문이 날 혼란스럽게 만들자, 유인나를 저리 놔두면 안 된다는 걱정이 훅, 올라왔다.


삐!

삐!

삐!


유인나의 뒤를 지켜주려고 하마터면 달려 나갈 뻔했는데, 다행히 경고음이 울렸다.


<작가의 권한 Lv.1: 환영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안 됩니다.>

<작가의 권한 Lv.1: 더 지체하면 결계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됩니다.>

<작가의 권한 Lv.1: 이 환영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작가의 권한이 보내는 경고 메시지가 뒤통수를 후리며 날 깨웠다.

머릿속을 괴롭히던 브레인 포그가 일시에 사라졌다.


“······그래.”


더 감정이입 했다가는 선지자의 환영에 속아서 이곳에 영원히 잠들게 될 터.

왼손의 엄지를 꽉 깨물었다.

악, 소리 낼 정도의 통증이 시원하게 퍼져나가며 정신이 맑아졌다.


“녹슨 못.”


그러자 까끌까끌하며 차가운 쇳조각의 촉감이 손바닥에 쥐어졌다.

그 당시 내가 획득한 아이템 중에서는 가장 좋은 무기가 녹슨 못이었다.

평소에는 30센티 남짓한 단검 크기지만 내가 원하면, 언제든 2미터짜리 해머로 변하는 아이템.


“날 가지고 노는 건 여기까지다, 선지자. 이젠 대가를 치러야지.”


환영 결계는 마음의 감옥 같은 것.

행복했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건드려 적의 발목을 잡는다.


환영에서 벗어나는 법은 간단하다.

이것이 가짜임을 증명해내면 된다.

이 환영이 자아내는 행복은 허구이며 그 고통 또한 거짓임을.


“······큭.”


선지자, 이 자식.

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는 확실히 알겠어.

너는 나를 아는 자다, 그렇지?


“······인정할게. 맞아, 나한테는 이때가 제일 기뻤던 순간이기는 해.”


<멸·개·법>의 작중 인물 중 가장 아끼던 김오류와 처음으로 연합하여 희망에 부풀었던 시절이니.

그와 함께라면, 이 지긋지긋한 묵시록의 엔딩을 볼지도 모르겠다며 헛된 꿈을 꿨었다.


“그런데 어쩌냐?”


너는 나를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내가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 이때이기도 하거든.”


30센티 크기의 녹슨 못이 별안간 2미터에 육박하는 해머로 커졌다.

1톤 가까이 늘어난 강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발밑이 푹 꺼졌다.

녹슨 못을 어깨에 메고 나는 서서히 달렸다.


유인나를 지나쳤다.

개진산을 지나쳤다.


저 앞에 김오류의 등이 보였다.

화살비가 쏟아지는데도 그는 철로를 질주하는 증기기관처럼 나아가고 있었다.

거대 해머를 휘두르는 그의 등에서 땀이 연신 기화했다.


어깨에 멘 녹슨 못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지면을 박찼다.

전력 질주하여 득달같이 그를 엄습하려는 그때, 내 살기 때문인지 근처의 오크들이 날 쳐다봤다.


― 크어크크어.

― 카카칵!

― 크어어!


이때부터 환영은 내 기억과 달라졌다.

적의 공격이 모두 나를 향했다.


슉!


무쇠 손도끼가 날아왔다.

피하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하잘것없는 성기사였으므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다음엔 화살이 쏟아졌고 화살받이가 돼버린 내 몸에선, 타는 듯한 고통이 솟구쳤다.

온몸이 불덩이였다.

뭐, 상관없었다.

내 목적은 오직 하나.


“김오류!”


그의 등이 내 일격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순간, 기합을 발했다.

김오류가 돌격 명령을 내리려고 뒤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지금이다! 다 쓸어버······!”


내 녹슨 못대가리가 녀석의 정수리에 그대로 박혔다.


콱!


두개골이 빠개지고 뇌수가 터져서 김오류의 무릎이 절로 꿇어졌다.

이럴 수는 없다는 눈빛으로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

“어이, 김오류. 잘 있었냐?”


나는 웃었다.


“이렇게 보니까 반갑기는 하네.”

“이······강한······씨······.”






<작가의 권한 Lv.1: 결계가 깨졌습니다.>

<작가의 권한 Lv.1: 환영이 사라집니다.>

<작가의 권한 Lv.1: 정신적 공격에 따른 피해로 약 1분간 감각 이상이 지속될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랍니다.>


일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던 것들이 스냅 사진 속 피사체처럼 정지했고 색 바래어 검게 변했다.

동시에 먹물 번지듯 허물어졌다.

세계가 통째로 새까만 구정물처럼 흘러내렸고 눈앞을 휘돌다가 휘이잉, 소리 내며 사라졌다.


“······으.”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시야는 아직 어두웠다.

발밑이 꺼지는 것 같아서 균형을 잡으려고 사방을 더듬는 그때였다.


“아아.”


상처 입은 사람의 숨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여자가 내뱉을만한, 가냘픈 신음이었다.

털썩, 쓰러지는 소리마저 들렸다.


“제길.”


내 손아귀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손끝으로 쓱, 훑어봤더니 병든 검 특유의 검날이 축축하며 끈적한 액체와 함께 만져졌다.


“피?”


환영에 걸린 상태에서 누군가를 찌른 건가?

······대체 누구를!

주인공.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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