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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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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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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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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3화. 중력도검 Fin.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93화


67호의 발끝이 땅에 닿을 때마다 충격파가 일었다. 깨진 돌조각들이 튀어오르고, 그 조각이 바짓단을 스치기도 전해 67호는 더 앞으로 나아갔다.


‘시발. 이렇게 뛰어다니는 건 내 팔자가 아닌데.’

온 몸에서 전류가 튀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사이서 불꽃이 튀고, 앞뒤로 흔드는 윗팔뚝에서 날개처럼 유도류가 뿜어져 나왔다.


발끝이 돌바닥에 닿자 벼락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땅에서 하늘로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44호!! 43호!!”


안 들리는구나. 어금니를 악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등 뒤에서 갑각지네가 쫓아오고 있다. 여기서는 갑각 지네가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보였지만, 44호와 43호는 손가락 반 마디 크기로 보였다.

미래를 모른 채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삼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안 돼. 이 시발 새끼들아. 제발 뒤 좀 보라고.


저도 모르게 순간 눈을 감아버렸다.


‘할 수 있을까? 지금 뭐라도 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할 수 있을까?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몇 백 미터나 될지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린 신체강화계 헌터도 아니잖아. 달려 봐야 닿지 못해.’


폐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폐포 하나하나에 밤송이가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럼 가만히 눈 뜨고 보고 있자고? 그럴 수야 없지.’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앞으로 살아갈 백여 년의 세월을 후회에 젖어 보낼 게 뻔했다. 만일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하고 후회하면서 살겠지. 우리를 닮은 후배들에게 잘해 주며 대리만족하겠지.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이런 소리나 하며 그 후배를 위해 싸우가 죽겠지.

이딴 건 목숨을 걸어 가면서까지 누리고 싶었던 미래가 아니야. 멋진 퇴장을 약속받은 조연만으로는 만족 못 하겠다고.


후, 하.


“신체강화, 근력 강화, 혈류 조작, 신속의 허리띠.”


손목 아대에서 기분 좋은 긴장감이 흘러들어 왔다. 신축성 좋은 벨트로 온 몸의 근육을 테이핑 한 것 같았다. 신속의 허리띠가 바람을 타고 몸을 띄웠다. 시야 옆으로 바위들과 작은 언덕들이 쭉쭉 스쳐 지나갔다. 갑각 지네까지의 일직선, 최단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어떻게 뛰어서 저 바위를 박차고 어디까지 점프해서 몇 개를 뛰어넘고...밀려드는 정보량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 빨리.’


타악! 한 번 땅을 박찰 때마다 십수 미터를 날았다. 자잘한 바위와 흙더미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손가락 사이에서 전류가 튀었다.


‘더 빨리.’


손가락 한 마디 크기였던 갑각지네가 어느새 손가락만하게 보였다. 손가락만하던 갑각지네가 팔뚝보다 커지고, 붉은빛 형형한 세 쌍의 눈이 보였다. 순간, 눈을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잡아먹을 생각이 아니야.’


저 괴물은 지금 화가 나 있었다. 독과 산으로 고통을 주다 천천히 짓이기겠지.


“44호!!”


빌어먹을. 통신계 마도구를 어떻게든 구했어야 했어. 저 둘만 따로 떨어질 줄이야.


‘경질화.’


충격에 대비해 뼈를 수정질로 변모시켰다. 머리뼈에 새겨진 작은 금들이 블럭처럼 맞춰지며 다닥다닥 소리가 났다. 쇄골과 늑골이 얇은 살가죽 아래 푸르스름하게 비쳤다.


한 줄기 벼락처럼 67호는 쏘아져 나갔다. 순백색 전류가 혜성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졌다.


“좀!! 뒤에 뭐가 쫓아오는지는 보고 살아아아아아아아아!!!!”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던 44호와 43호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돌조각과 유도류를 얻어맞은 둘이 비틀거리는 모습이 잠시 안구에 흐린 상으로 맺혔다.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보니, 반신은 저 뒤에 두고 온 갑각지네가 여섯 눈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갑자기 뛰쳐나온 불청객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 했다.


‘그래. 너도 거의 준비가 끝났구나.’


세상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발에 채였던 돌조각이 풍선보다 느릿하게 떨어졌다. 의식이 한없이 가속해서, 주변의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장에서부터 전류가 내달렸다. 황금빛 찬란한 구가 손바닥에 가득히 그러잡혔다. 갑각지네가 사마귀 같은 앞발을 창처럼 내질렀지만, 67호는 그 앞발 위로 뛰어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좁고 매끄러운 갑각 위를 박찰 때마다 신발 밑창에서 불똥이 튀었다.


67호는 갑각지네의 눈에 벼락 다발을 집어던졌다. 먼저 날아간 황금빛 구가 터지며 갑각지네의 전신을 휩쓸었다. 산 체로 끓는 기름에 빠진 랍스터마냥 갑각지네가 다리들을 바르작거렸다.


부체꼴 두개골이 끄트머리부터 탄화되어 갔다. 다리 몇 개는 돌바닥을 긁다 떨어져 나갔다. 67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핏속에서 맴도는 권능을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쏟아부었다.


‘이번에 못 잡으면 죽는다.’


달아오른 손끝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거센 벼락의 탁류에 손톱을 달떴다. 잔뜩 날선 힘줄 위로 핏줄이 자글자글하게 올라왔다. 푸르디 푸른 색이었다.


“이 씨발 새끼야아아아!!! 좀! 뒤지라고!”


시야 오른쪽에서 잔여 마력 게이지가 뚝뚝 떨어졌다. 그런 걸 보지 않아도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밧!


적잖은 반동과 함께 67호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일어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달뜬 얼굴로 거친 숨만 토했다.


“시발. 시발.”


마력이 바닥이었다. 손을 바르작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보니 갑각지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단단한 몸에서 까만 연기와 탄내를 피워 올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44. 43호..시발 빨리 저 괴물새끼 죽여!”


하지만 우리는 우리였고, 저놈은 혼자였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44호가 견인광선과 열선으로 갑각지네의 눈을 쏴갈기고, 새까만 대검을 들고 뛰어오른 43호가 자작자작 지져진 부체꼴 두개골과 상대적으로 얇은 목 사이를 내리쳤다.


“하아...하아...”


67호는 달뜬 숨을 내쉬며 드러누웠다. 바닥에 깔린 이끼에 독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윽고 44호와 43호가 손을 내밀었다.


***


“시발 도대체 너희들은 귀도 눈도 없냐? 아니 뒤에서 7미터짜리 괴물이 기어오는데 손잡고 히히덕거릴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어디 무선 공유로 연결시켜놓은 외장 간이라도 있냐? 아 시발...아파 뒤지겠네. 앉지도 서지도 못하겠어.”


67호는 약물패치를 덕지덕지 붙이고 작은 담요 위에 드러누워 꿈틀거렸다. 과도한 신체강화의 부작용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허벅지 뒤쪽, 앞쪽, 복근, 삼각근, 그리고 목과 등판 전체까지 극심한 근육통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미안...미안...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44호와 43호는 커다란 초코칩 쿠키를 한 가득 배어 물고 사과했다.


“여기 있습니다.”


C급 현장보조 헌터 하나가 데운 물에 가루우유를 탄 것을 건네주었다.


“나도 한 입 줘봐. 당 떨어져서 어지러워.”


44호가 뚝 부러트려 건네 준 쿠키를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달고 맛있었다. 빌어먹을. 왜 자꾸 웃음이 나오냐.


“어떻게 살아남았어?”


“어찌어찌? 너야말로 어떻게 우릴 찾았어?”


“그 벌들 기억하지? 너희 떨어진 뒤에서 몇 번이고 우릴 습격했어. 밤에도 내려와서 C급 헌터들이랑 연구자들 잡아가려고 했고. 결국 고은유 님이 빡쳐가지고 벌집 찾아서 싹 불살랐지. 하여간 멍청한 새끼들. 콜록! 콜록!”


43호는 67호에게 따듯한 우유가 담긴 컵을 건네고, 달달 떨리는 어깨와 팔을 부축해 몸을 일으켜 앉는 걸 도왔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 너희 안 죽었을 거라니까 다들 나한테 지랄 말고 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그래서 나도 지랄 말고 엿이나 먹으라고 했어. 이미 한번 A급 던전에서 살아 나왔던 애라니까 고은유 님이 하루 시간 주더라. 자기가 벌집 부술 동안 B급 한 명이랑 C급 한 명 대용해서 가라고. 섬에서 떨어진 C급 헌터 시신 찾고, 너희가 살아만 있으면 데려오라고 하셨지. 시신은 아침에 찾았어. 너희 만나기 전에 찾았어. 끝까지 눈을 안 감으셨더라. B급 헌터분이랑 C급 헌터분이 수습해서 먼저 귀환했지. 나는 내 형제자매들을 찾으려 혼자서 던전을 몇 시간 더 해맸어. 그런데 정작 구한 건 A급 던전에서 후방 경계도 안 하고 놀아난 멍청이들이었고. 시발, 설명 끝.”


67호의 눈에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입술 끝이 마른 대추처럼 휘었다.

44호는 공동 수행 평가 조장을 뽑을 때처럼 눈을 내려깔고 주머니에서 마석 다섯 개를 꺼냈다. 67호의 눈빛에 솔직한 광체가 일었다.

“그거 뭐야?”

“별 건 아니야. 골렘을 몇 마리 잡았는데 중력계 스킬 쓰던 애들이었어. 나랑 43호는 이미 흡수했어. 혹시나 너도 필요할까 해서 가져왔는데, 어때?”

43호는 44호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주머니를 뒤졌다.


떨어지는 햇살이 손바닥 위에서 검보랏빛으로 부서졌다. 마석은 이름 그대로 마를 품고 새 주인을 유혹했다.


“이거...거절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67호가 부패한 경찰처럼 느물느물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44호의 입술이 찢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양 옆으로 씨익 벌어졌다. 예상이 블록처럼 착착 맞아 떨어졌을 때 나오는 여유로윤 미소였다.


“그 표정 뭐냐?”

“아니야. 그냥 쿠키가 맞있어서. 한 조각씩 더 달라고 할까?”

“누굴 바보로 아는...그래. 좋아.”


***


그 뒤로 약 열흘간 헌터들은 검게 물든 땅을 돌며 어딘가 남아있을지 모를 유적을 탐사했다.


결과는 빈말로라도 좋다고 하기 힘들었다. 던전 입성 초기에 연구원이 말한 대로다. 하늘섬에 이 문명의 지배자들이 살았다면, 하늘섬 아래 땅에는 피지배자들이 살았다. 피지배자 따위가 썩 좋은 마도구를 다뤘을 리가 없었다.

그럴듯한 유적의 입구를 찾아 땅을 몇 미터쯤 파들어간 끝에 나온 건, 땅에 저주가 걸렸다는 내용이 적힌 석판이이었다. 유적의 입구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어느 집의 특이한 지붕이었다. 반충헌이 그 석판을 돌가루로 만드는 동안, 아리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래도 완전 허탕에 100% 손해는 아니었다.


“이런 것도 남아 있네. 너희, 제법인데?”


고은유는 검보랏빛 마석을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맛있는 식사를 마친 것처럼 바라보았다. 이제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될 비밀을 품은 클론, 아니 블루문 길드의 신입 헌터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른여 기의 골렘이 남아있던 지역을 중심적으로 탐색한 결과, 그 근처의 바위산에 골렘 생산지로 보이는 유적이 남아 있었다. 연구계 헌터들이 방방 뛰며 벽에 남은 문양을 해석하고 함정을 파악하는 동안, 나머지 헌터들은 주변을 돌며 갑각 두른 거충들을 사냥했다.


“콘체른 길드 들어올래? 장비 대여 1천 5백억 원치까지 해줄 수 있어. 사원기숙사에서 뷔폐식 식사 제공하고 있고, B급 헌터니까 월급은 10억 원대로 나올 거야. 수습기간 3달 동안에는 80%만 받지만, 성과급은 그대로 나와.”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왜? 으음...확실히 블루문이 업계 제일이기는 하지. 하지만 블루문 길드는 미르한이나 이서윤, 그 외 몇몇 A급 헌터들한테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 우리는 순이익율이 떨어지지만, 매출 자체는 훨씬 높고, 수익 구조도 안정적이야. 정치권이랑 동맹도 잘 되어 있어서 나중에 권력 잡기도 쉬워.”


67호는 솜털처럼 가볍게, 하지만 칼날처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중력도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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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2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8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6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2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1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9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7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5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8 2 12쪽
99 99화 +1 21.05.10 27 2 12쪽
98 98화 +1 21.05.07 42 3 12쪽
97 97화 +1 21.05.06 38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8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6 3 12쪽
»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7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6 2 12쪽
90 90화 +1 21.04.27 46 3 12쪽
89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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