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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나비

Lost part

웹소설 > 자유연재 > SF, 로맨스

연꽃나비
작품등록일 :
2015.05.31 18:10
최근연재일 :
2015.07.03 15:47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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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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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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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Part 2-10 운명의 여유

DUMMY

무대로 향하는 관객석의 정문이 열렸다. 두 여인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다. 한 남자의 시선이 무대에 쏠린다.

그의 호흡은 굉장히 거칠었다.


“여기에요!”


안혜원이 부른 목소리는 그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그의 혼은 오직 하나만을 갈망했다. 그의 눈이 한곳을 향했다.

혜원의 옆에서 미소를 짓고있는 한 선녀에게...

덮개가 깔린 내려가는 계단은 그가 서 있는 입구에서 무대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여러가지의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천국으로의 계단. 유토피아의 향가, 이상의 손짓, 꿈의 합일점, 모든 것은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다.

조급한 발걸음에 불행이 뒤쫒아올까 두려워서인지 그는 아주 조심히 앞으로 발을 내딛였다.

그는 한발자국 한발자국 신중하게 내려갔다. 어둠을 걷던 자가 서광을 향해 갈 때의 기분이란, 가시밭을 걷던 자가 꽃 잎사귀를 사뿐히 걸을 때의 감촉이란, 세상에 버려진 자가 구원의 세례로 들어서는 영광이란! 과연 이러한 순간을 내가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무의식의 표면 아래에 침잠되어 있는 웅장함의 감동을, 혹은 우리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거룩을 지금 당장 가슴으로 만끽할 수만 있다면! 고난의 수렁텅이에서 이상의 낙원으로 귀향하는 저 사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직 그에게 완전한 행복이 찾아온 것도 아니고, 최종 목표가 달성된 것도 아니였다. 이것은 먼 항로에서 지상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춘 것이다. 허나 암흑에 수감된 자에겐 생명의 입맞춤이였다. 그래도 아직 방심하진 말자. 저 앞에 파도는 몰아치고 있으니. 그가 반 이상을 내려왔을 땐 빛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안개 속에서 반짝이는 듯하던 빛은 사라지고 두 사람이 눈에 보였다. 아니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잃어버렸던 여자, 그가 찾던 여자, 그가 놓쳤던 바로 그 여자, 실비아였다.

그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녀였다. 정말 그가 찾던 그녀 실비아였다. 의심과 냉정도 그 발하는 광채 앞에서 녹아내렸다. 그는 불행한 길로의 세상에서 터득하게 된 교착된 의심으로도 그녀에 대해 단 한채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오로지 그녀의 눈동자의 고귀함을 통해 사랑과 애정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다. 티끌처럼 맑디맑은 그 아름다움을 보노라면, 그가 신성한 장소들의 존립 이유에 대해 잠시나마 무관심했던 자신을 탓하리라. 진귀한 생명의 조망, 장대한 야경, 이

모든 건 필수불가결하다. 그것은 단지 이 여인과 함께 있을 곳을 위해서였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아, 사랑이란 사람을 유치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유치함이 진정 우리를 만들어준다.

그가 꿈속에서마저 잠기고 싶어하던 바닷 물결보다 더 그의 마음을 흔드는 저 머릿결을 어찌 잊었을까. 저 작은 체구에 포옹하면 우주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걸 어찌 모를까, 저 다이아마저도 질투하게 만드는 이 세상 모든 신성함이 깃든 저 눈망울을 어찌잊는단 말인가. 그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있는 힘껏 세상이 끝나도록 껴안고 싶었다. 더 이상 천사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싶었다.

그의 상상의 범주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포옹을 하든, 눈물을 흘리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든, 그녀에게 다가가 키스를 하든, 모든 빛으로 향하는 세례의 의식을 마다하고, 그는 참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의 이성과 힘을 짜내어 인내했다. 그는 알고 있다, 그녀

가 그를 모른다는 것을. 그가 섣불리 행동하면 이러한 순간도 꿈의 숨결보다 멀어져 버린다. 슬프지만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해야한다.

그는 저번 그녀를 눈앞에 놓친 그때의 아픔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이도 실비아는 그때의 난동꾼이 바로 여기 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이그네일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하는대신 마음 속으로 속삭이는 걸로 만족했다.


“셀레나, 인사해. 여기 이 남자는 이그네일이라고 해.”

“안녕하세요, 셀레나라고 해요.”


‘침착하자. 나는 그녀를 모른다. 몰라야만 한다. 꿈에서 조차 본적없는 사람이다.’


그는 굳어진 얼굴로 미소짓느라 애를 먹었다.


“반갑습니다, 셀레나씨. 이그네일이라고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다행이도 떨리지 않았다. 그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표정도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위안 삼았다. 언젠가 기술력이 인간의 마음도 훔쳐볼 수 있게 만든다면 사랑으로 가는 길은 장막일까 비단일까? 적어도 그에겐

전자였을 것이다.


“이그네일씨에 대해서 혜원이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외모도 출중하신 걸 보니 혜원의 기분을 알 것도 같습니다.”

“아하하, 얘는… 내 기분이야 늘상 좋지 뭘 그러니.”


그가 가볍게 미소지었다. 만약 그가 실비아의 눈매를 계속 보았더라면, 이성을 잃었으리라. 그는 그녀가 풍기는 눈동자와 붉은 장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그 입술의 매혹에 홀려 순간적으로 그녀의 대화 주제를 놓치기 일쑤였다. 사랑에 감염된 자는 정상일 수 없

고 그는 지금 그 열병에 시달리고 있다.


“저한테 부탁할께 있다고 하셨죠?”


그는 막힌 입을 있는 힘껏 움직였다. 허나 자연스럽고 정중하게.


“네, 좀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죠. 그 여자를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됬습니다.”

“어머, 직접 들으니 더 가슴이 미어지네요. 당신은 여자의 이상을 들어주시는 분이군요.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그는 아직 태연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게…”

“셀레나,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면 난감하지 않겠어?”


셀레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부터 너무 실례가 됬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이 말은 꺼내지 않았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듯 고요함이 찾아왔다. 이그네일은 행여나 자신이 마음 속의 말을 입밖으로 누설하지는 않았나 자책했다. 그러나 다행이도 침묵은 금세 깨졌다.


“아하하, 너무 어색한거 같네. 그러면 이그네일씨. 저랑 셀레나랑 다음 무대에서 선보일 연기를 좀 봐주시겠어요? 더 자극적인 걸 보면 지금의 거리감도 가깝게 느껴질거에요.”

“네, 셀레나씨가 괜찮으시다면… 전 좋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셀레나에게 쏠리자 셀레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혜원이 무대 탁자에 놓여있던 대본을 가져와 셀레나에게 하나를 건네주었다.

대본을 펼치고 혜원이 설명했다.


“원래 셀레나는 노래가 전공이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는거에요. 두 남녀의 사랑에 관해서 대사를 읊다가 노래하는거죠.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될거에요.”


갑자기 혜원의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손짓을 보이고는 뒤로 돌아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전화인듯 수화기 너머의 대상에게 인사까지하며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손바닥으로 수화기를 막고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나 중요한 전화라서 밖에서 받고 올께. 둘이 잠시만 기다려줘.”


그리고는 곧 바로 전화기를 귀에 부착하다시피 한채 무대 뒷편 출입문으로 나갔다.

이 넓은 무대 공간에 오로지 두 사람만이 남았다. 아하! 신은 아직 그에게 기회를 주시는구나. 그토록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단 둘만의 대화. 제 3자가 끼어들지 않은, 관객은 오로지 무생물뿐인 이 재회를 얼마나 꿈꿔왔는가. 똑같은 기회는 오지 않는다. 기회가왔을 때, 벼락이 내리칠 때, 파도가 밀려올 때, 풍랑이 다가올 때, 서광이 내려 비출 때, 감행한다.

그는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기… 셀레나씨.”

“네? 말씀하세요.” 그녀는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상대역이 되어드려도 될까요?”


뻔뻔스럽긴! 내가 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했을까! 그는 이렇게 스스로를 나무랐다. 다른 주제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음에도 가장 난감한 언행을 일삼다니. 이것은 마치 아슬아슬하게 놓여진 다리를 달려가면 무너지듯이 신중하지 못하고 경솔한 그 발언이

행여나 이 만남 조차도 결렬시킬 듯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때로는 지나친 신중함은 기회를 놓치게 할진데.


“좋아요. 혜원이가 올 때까지 간단하게 연습하죠.”


우리가 실패를 예고한 때에 들려온 희소식은 어찌 그리 달콤한가. 그는 안도한 동시에 뒤통수를 후려맞은 것 만큼 몽롱한 상태에 휩싸였다. 그렇담 그녀는 이러한 낮설음을 개의치 않을 만큼 예술적 감각에 치열한 여자였는가? 그것은 아니였다. 그렇담 왜? 처음

만나는 이 남자의 난감한 부탁을 승낙한 것일까.

사실 그녀는 그를 이 자리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뭔가 알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거부감이 들지만 편안하고 낮설지만 친밀감 있는, 그 무의식에 숨겨진 비밀스런 해답을 이성의 짧은 문답으로 해명할 수 없는 한 이 오묘한 느낌을 표현할 수도 말할 수

도 없었으리라. 혜원에게 들었던 사랑에 대한 이 남자의 투철한 희생정신에 대한 경외심이였을까? 그렇지 않으면 이 남자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녀 내면에 잠들어있는 어떤 것을 자극했기 때문이였을까? 무엇이였든 그녀로써도 이러한 경우는 처음이였다.


“5페이지 부분이에요. 아까 혜원이하고 연습했던 부분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5페이지라면… 아, 여기군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네.”



이그네일이 대본을 읊었다.


-그대, 나의 아름다운 오페리아. 내 사랑을 받아주시요.-


그녀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읊었다.


-안됩니다. 우리는 태양과 달과 같은 존재. 가까이 할 수 없는, 맺어져서는 안될 운명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건 상관없소. 당신은 이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이요? 내 영혼이 당신에게 가기위해 내 숨을 조여오고 있소이다.-


-당신의 그 능숙한 말재주는 이미 여러번 다른 여인의 목선을 타고 다녔겠지요. 저에게는 필요없습니다.

(오페리아는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녀가 마음속으로)-아, 가혹한 운명이여, 잔혹한 세상이여. 왜 우리는 이렇게 떨어져야 하나. 심장이 조요오고 숨을 쉴 수가 없어. 하지만 나는 그와 멀어져야 돼. 저 사람을 지키기 위해선 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돼. 저 가엾은 모습을 봐. 어린 아이를 안아주듯 이 두팔로 힘껏 껴안아서 슬픔을 멎게 해주고 싶어. 허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불행이 우리를 뒤덮을거야. 그의 파멸을 지켜보고 임종하느니 이 아픔을 참아내고 그를 놓아주는거야.

그러니 잊어버리는거야. 처음부터 없던 일처럼.-


이그네일은 연할극에 극도로 몰입되었다.


-왜 그대는 나를 외면하는가? 왜 그대는 멀리 떠나가는가? 이리도 가까이 있는데도, 당신의 숨결이 나를 어루만져주는데도 왜 나는 그대를 잡을 수 조차 없는가?-


(오페리아가 등을 홱 돌리며 거세게 외쳤다)

-아직도 모르겠나요? 어리석은 분이시여. 나와 당신은 하늘에 의해 갈라졌습니다. 우리가 이어지면 지금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조차 꿈의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그저 저에 대한 좋은 추억만을 가지고 떠나주세요.-


이그네일은 더 이상 대본을 보지 않았다.


“그럼 하늘은 우리를 갈라놓은 시점에서 그대의 모든 아름다움도 가져가야만 했소. 내 영혼에 심어진 사랑의 꽃도 말라죽여야 했고 그대가 남기고 간 꽃잎도 바람으로 쓸어가야만 했소이다. 헌데 지금의 나를 보시요. 아직도 미련하게 그대의 미소에서 광채를 보고있소. 아직도 새벽이 눈을 뜨면 당신부터 찾는단 말이요. 꽃머리에서 맺히는 새벽의 이슬도 그대의 눈망울의 순결함을 따라갈 순 없소이다.

꽃이 없는 태양은 말라버리고, 물이 말라버린 산은 병들고 당신이 없는 나는 죽게되오.”


“그만 하세요. 더 이상 듣기 싫습니다. 우리는 그저 시대의 흐름에 빗나간 잔혹한 운명의 피해자일 뿐입니다. 우리가 손을 잡으면 태풍이 불어오고 멀어지면 햇살이 비추니, 바라보는 것조차 불안하군요. 세상은 우리가 사랑을 속삭이면 그리도 지독하더니 떨어질 땐 고요하더군요.

나의 꿈은 달빛이 영롱한 밤하늘 밑에서 사랑을 꿈꾸는 것이였습니다. 그것은 한 때 당신이 였으나 이제는 아닙니다. 나를 그만 잊어주세요.”


“사는 것은 무엇이요?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소이까? 자비로운 신의 권고 아래 모든 축복을 이 손에 쥐고 살더라도 그대가 없는 하루에는 보잘 것 없소이다. 삶은 고통이요, 또한 인내요, 그러나 당신이 없는 고통과 인내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나 그대를 잃고 파도에도 무너지지 않는 철인이 되어 사느니 그대를 얻고 나비의 날갯짓에도 흩날리는 나약한 꽃이 되리라. 나 그대 없이 사느니 먼지가 되리라. 그대여, 당신은 내 생애의 전부이니라.”


“저기…”

“아, 네?”

“거기에는 대사가 하나 더 있었나 보네요. 제 대사는 여기까지에요.”


이그네일은 이성을 되찾았다.


“그렇군요. 제가… 너무 몰입했네요. 혹시 좀 불편하셨나요?”


그녀는 두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혀요. 오히려 연기에 감탄했답니다. 마치 그 상황에 놓인 사람처럼 간절함이 느껴졌어요. 하마터면 저도 그 세계에 놓여진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착각할 정도였죠. 아…”


그녀는 뒤늦게 자신이 실례되는 말을 했다는 것에 말문이 막혔다. 조심스럽게 그를 보았다. 그는 다른 곳에 눈을 둔채로 매끄러운 이마 사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그런 모습이 그녀에 대한 동경으로 실성하는 것을 막기위한 행복의 등한시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신 그가 가련한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을 자각했을 뿐.


“죄송해요.”


그는 그녀의 말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냥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듯이 이그네일은 대답을 하면서 그녀가 무엇에 대해 사과했는지 이해했다. 그녀의 두눈과 마주쳤다.


“이젠 익숙합니다. 다가갈 수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잡을 수 있지만 잡을 수 없는, 그런 비극의 실타래에 묶인거 뿐이니까요.”

“운명이란 너무나 잔인하군요. 왜 그토록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에게 신의 은총대신 악마의 심술스런 선처를 보내는건지.

혹시라도 괜찮으시다면, 찾고 있는 그녀에 대해 짧게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그럼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도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이그네일은 살며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겠지만, 제가 이 낮선 곳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녀는 저의 태양이였고 제 삶의 신앙이였습니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수 많은 유혹에 의해 가려져 있던 자신의 본모습을 찾게 된 그 환희, 성숙한 큐피드의 자비가 그 화살

로 타락에 대한 은근한 예찬을 꿰뚫어준 그때부터, 인생의 참 의미가 어느 여인의 미소 속에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그때부터, 저는 사랑에 도취되었습니다. 그 여인과 같이 함께하고 웃고 사소한 일상을 공유할 때면 아아, 인간으로 태어난 축복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축복과 거룩을 만끽할 수 있는 그녀와의 결혼식 날,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저는 가장 행복한 사나이에서 가장 비련한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삶의 희망을 찾기위해 그녀를 찾아나서기 시작한겁니다.”


그는 설명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표정변화를 확인했지만 놀라움말고는 아무것도 찾질 못했다. 그녀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수 없이도 많은 추억의 관문이 하나의 관문으로 인해 모두 지워진 것이 믿기질 않았다. 특히나 결혼식날 그녀가 사라졌다고 했

을 때는 그녀가 기억을 되찾으리라 확신했지만 기력만 소모시키는 일이였다. 그녀 실비아는 이 남자에 대해서 잃어버린 것이다. 아아, 잔인무도한 운명같으니라고! 드디어 죽음을 초월하여 그녀를 만났건만! 하필 그 수 많은 기억중에 자신에 대한 기억을 가져가

다니!


“혹시라도 그녀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전해드리면 될까요?”


그는 한동안 고심하다가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여자들이여, 남자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예찬이 들어있습니다.

파도에도 무너지지 않는 그 눈망울이 그대를 보며 미세한 떨림을 느낀다면...아, 신중하셔야 합니다.

그는 침착하면서도 조금씩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실비아. 내가 너무 늦게왔어.”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이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기도 전에 극심한 두통이 엄습해왔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채로 무릎에 힘이 빠져나갔다.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은채 그 자리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녀를 본 그는 또 다른 충격에 휩싸였는데, 이미 심장은 바닥까지 떨어졌을 것이다.


“셀레나씨! 셀레나씨! 괜찮아요?! 정신차려요!”


이그네일의 외침 소리를 들었는지 혜원이 출입문을 벌떡열며 들어왔다.


“이런 안돼. 셀레나! 또 두통이 시작된거야?”

“또 두통이라뇨?”


혜원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셀레나를 부축하며 대답했다.


“1년 전에 어느 사고로 인해서 일부 기억을 잃었어요. 그래서 어떤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이렇게 괴로워해요.”


셀레나가 혜원의 몸에 기대어 작게 속삭였다.


“혜원아, 난 괜찮아. 그냥 평범한 두통이야.”

“괜찮기는! 오늘은 안돼겠어. 이만 쉬자. 네 건강을 생각해야 돼.”


그녀는 가녀린 손으로 혜원의 어깨를 잡았다.


“정말 괜찮다니까. 너도 알잖아 의무를 져버린 휴식이야말로 나를 병들게 한다는 걸.”


혜원이 자기 어깨에 얹어진 셀레나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양보안해. 스타일리스트이자 너의 관리자로써 그리고 친구로써 이 이상 허락하지 않아.”

“그래, 내가 졌어. 대신 여기 서서 쉬며어언!”


갑작스럽게 천지가 뒤바뀌는 듯한 착각과 함께 공중에 뜨는 느낌이 그녀를 놀라게 했다. 무언가가 그녀를 들어올렸다. 듬직한 팔이였다. 따스한 눈빛과 마주쳤다. 그 남자였다, 이그네일.

그는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안됬지만 셀레나씨, 오늘은 혜원씨의 말에 따라줘야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들 수 없었던건 부끄러움 때문이였으나 다른 이의 눈에는 두통 때문인듯 보였다.


“혜원씨, 여기 대기실이 어디죠?”


넋 놓고 지켜보던 혜원이 정신을 되찾고 말했다. “아, 따라오세요. 여기에 출입문이 있어요.”


그는 그녀를 따라 출입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두 여인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상하면서도 위험한 감정을 애써 외면하기 바빴고 두개의 심장이 뛰었으나 그 의미가 같진 않았다.

한 여인은 이를 갈았고 한 여인은 고개를 숙였다.

셀레나는 딱 한번 흘끗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무대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비추는 그 윤곽은 섬광이 되어, 그녀의 잃어버린 추억 속에 침잠되어 있던 어떤 별을 비췄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였을까? 기억을 잃은 한 소녀의 내면에 봄을 내려주는 그

눈빛은 무엇이였을까? 무엇이됬든 아직 이 여인은 봄을 맞이하기엔 얼음이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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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2-10 운명의 여유 15.07.03 95 0 19쪽
24 Part 2-9 우연인가 필연인가 15.07.01 80 0 13쪽
23 Part 2-8 남자의 기억 15.06.29 106 0 14쪽
22 Part 2-7 남자의 정체 15.06.27 67 0 9쪽
21 Part 2-6 추격자와 도망자 15.06.25 105 0 13쪽
20 Part 2-5 선의가 부른 기회 15.06.23 96 0 14쪽
19 Part 2-4 아버지와 아들 15.06.23 67 0 19쪽
18 Part 2-3 차가운 가면 속의 예리함 15.06.21 90 0 15쪽
17 Part 2-2 두 피해자 15.06.19 35 0 20쪽
16 Part 2-1 저항하는 청년 15.06.18 105 0 16쪽
15 Part 1-14 싸움 15.06.16 121 0 12쪽
14 Part 1-13 막을 수 없는 것 15.06.15 113 0 7쪽
13 Part 1-12 성대한 플레시가 터지는 곳 15.06.14 64 0 7쪽
12 Part 1-11 호신술로 막을 수 없는 것 15.06.12 94 0 19쪽
11 Part 1-10 한 집의 두 사람 15.06.11 96 0 14쪽
10 Part 1-9 음모자 15.06.10 116 0 9쪽
9 Part 1-8 여자의 선택 15.06.09 65 0 8쪽
8 Part 1-7 여자가 어둠 속을 걸을 때 15.06.08 98 0 14쪽
7 Part 1-6 노래하는 자가 방황하는 자에게 선사한 진로 15.06.07 86 0 7쪽
6 Part 1-5 가수의 역할 15.06.05 130 0 8쪽
5 Part 1-4 Lost hole 15.06.04 89 0 15쪽
4 Part 1-3 변심과 추진 사이 15.06.03 85 0 6쪽
3 Part 1-2 늙은이와 젊은이 15.06.02 92 0 18쪽
2 Part 1-1 버려진 남자 15.06.01 128 0 17쪽
1 Prologue 15.05.31 97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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