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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나비

Lost part

웹소설 > 자유연재 > SF, 로맨스

연꽃나비
작품등록일 :
2015.05.31 18:10
최근연재일 :
2015.07.03 15:47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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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3,332

작성
15.06.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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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Part 1-2 늙은이와 젊은이

DUMMY

조용하면서도 음습한 건물안.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한 사람이 쓰기에는 과분할 정도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그에 반해 주위는 요상한 장비들과 부품 재료들이 이곳저곳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좋은 시각으로 본다면, 개인의 노고가 만든 작품이겠지만,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게으름뱅이로 오해받기에 알맞았다. 벽 주변을 둘러친 파이프를 따라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기계들이 뭉쳐져 있었고 줄지어 벽을 둘러싼 파이프가 앞뒤로 갈라져 공간을 만들어 냈는데, 그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푯말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과학이 있는 곳에 신이 계신다.'


이곳은 한 과학자의 실험실이였다. 탁자에 앉아있는 하이드박사는 여유롭게 커핏잔을 들어 코로 그윽한 향기를 맡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원래 커피가 없지만 이 박사가 홀을 통해 다른 세계에서 가져온 물품중에 하나였다. 카페인이 그의 전신을 감싸안고 안도감과 평안함이 정신에 둘러붙은 피로를 가시게 해준다.

그때, 2층에 있는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평화의 순간에 찾아온 노크는 우중충한 실험실 안을 울렸다. 박사는 무시했다. 이 아늑한 시간을 침해할 수 있는 건 번뜩이는 영감과 비율이 맞지 않는 커피 뿐이였다. 하지만 불청객의 끈질긴 노크 소리 때문에 이제 막, 자신의 휴식을 방해할 수 있는 항목이 더 늘었다.

박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낡은 철제 계단은 한칸씩 밟을 때마다 위태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박사가 문틈 사이로 밖을 바라보자,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박사가 그를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조용히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하이드 박사님이시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맞네만, 자네는 손님인가 아니면 기자인가?"

"손님에 더 가깝습니다.”


박사는 철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오게.”

“감사합니다.”


지금 껏 본적없는 기묘한 형태의 부품과 기계들의 조화가 그의 눈을 혼란스럽게 했다. 일시적인 남자의 감탄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밟고 지나가는 철제 계단 소리에 눈짓을 보낸 것으로 보아, 그가 낼 감탄을 무생물이 변호해 준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박사는 남자를 자기가 머물던 탁자에 데려오고는 말했다.


“커피 한잔 할텐가?”

“죄송하지만…”

“손님을 빈손으로 앉히고 나 혼자 커피향을 맡고 있는다면, 내가 무심한 늙은이가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건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 한번 마셔보게나.”


그는 마지못해 수긍했다.


“네, 한잔 부탁드릴게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끓인 물을 꽃무늬가 그려진 커핏잔에 붓고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일로 이 늙은 박사의 집을 찾아왔나?”


그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결정을 내렸는지 총명한 눈으로 대답했다.


“박사님께서 실험대상을 찾으신다고 하는 걸 들었습니다. 제가 그 실험에 참가하겠습니다.”


박사는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만들었다. 작은 티스푼으로 설탕이 녹아들게 젓고는 청년 앞 탁자에 올려놓았다. 박사의 침묵은 그 앞에 놓여진 소용돌이치는 커피처럼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박사는 커피를 한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 박사는 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그토록 젊고 생기가 넘치는데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지?”

“지금 이대로는 삶에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미가 없다라... 노인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말인데. 그래, 하늘이 당신에게 무슨 심술을 부렸나?”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약혼녀가 러스트 홀로 사라졌습니다.”


박사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정말로 놀라서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그의 세월을 넘긴 주름 속에도 이러한 경험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은 듯 하다. 주름 속에 새로운 주름이 늘어간다.

“...유감이네. 그래서 자네가...”

“네, 만약 들어가면, 찾을 수만 있다면...”

“...들어가겠다는 건가?”

“네.” 여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박사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했는데 그것은 마치 두뇌에 숨어있는 현명함에게 노크를 하는 의식 같았다.

잠시 고개를 들어 청년의 눈빛을 흘끗 보았는데, 뭔가 대담하면서도 결연한 그 눈빛에서 거짓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평생을 연구해온 내 실험을 완성하고 싶네. 러스트 홀은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지만 과학자인 나에겐 아주 훌륭한 연구대상이거든.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에 그런 게 왜 필요하냐고 떠들어대지.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경멸과 조소로 가득찬 시선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내 연구를 완성해냈어. 이제는 증명할 차례라네. 그러나 여기 이 세계 사람들은 위험과 고난을 겪고 싶어 하지 않아. 자신들은 여유가 있으니 과학은 쓸모없다고 말하고 있어. 안락과 풍족, 방탕한 생활이 그들을 너무 나태하게 만들었지. 헌데 자네는 용기와 패기가 있구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네는 받아줄 수가 없네.”


그는 눈을 부릅떳다.


“어째서죠?”

“나는 자네와 같은 젊은 사람들, 수 많은 기회가 금은보화보다 쌓여있고 고난에도 다시 일어설 혈기왕성함, 건강하고 생기넘치게 인생을 나아가는 미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연구할 생각은 없네. 과학에는 정도가 있거든. 어떠한 것도 윤리를 져버린 것은 미래도 져버리니까.”


그는 반박했다.


“전 괜찮습니다, 그녀만 만날 수 있다면요. 오히려 이 목숨 희생하여 얻을 수 있다면 반가운 일입니다.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그 홀은 도대체 어디로 연결되어 있고, 들어가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건가요?”


박사는 커핏잔에서 손을 떼고 진지하게 말했다.


“잘 듣게나 젊은이. 이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야. 자네는 알지 모르겠지만 여기와는 또 다른 우주가 끝없이 존재한다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하나의 물방울이라고 가정한다면, 다른 형태의 수백 수십가지의 물방울이 존재해. 그곳들은 같은 공간이면서도 다른 이질적인 공간이야. 하나의 다른 차원이라고 볼 수 있지. 그렇기 때문에 어느 존재가 있는지 우리와 같은지, 아니면 다른지 확실하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을 뿐더러 자네가 잃은 신부가 빨려들어간 차원이 어딘지 모르는 상태네.

나는 러스트 홀로 지원자를 보내 다시 돌아오게 하는 실험을 하고 싶었다네. 나의 이론을 증명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사람들을 되찾고 우주 탐험의 시작이 되니까. 하지만 적정한 사람이 나타나질 않아. 사람들은 평화의 시대에는 아무도 준비를 하지 않거든. 게으름이 살을 찌우고 나태가 정신을 갉아먹는 사이에도 그들은 놀고 먹는 걸 좋아한다네. 그래서 이런 목숨을 걸어야되는 지원자는 찾기가 힘들어. 너무 젊어서도 안되고 너무 늙어서도 안돼. 젊으면 남은 꿈이 있고 늙으면 뒤에서 슬퍼하는 자가 많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고 있다네. 또한 그곳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잃게 돼. 자네같은 젊은이들은 더더욱 위험해. 속단하지 말게나.”


젊은이의 혈기와 고단함은 비관성과 지나친 용기를 발산하기 마련이다. 노년의 지나친 신중함과 청춘의 지나친 용기는 언제나 극과극이여서 충돌하기 쉽상이고 지금 이 둘의 의견은 맞물렸다. 그리고 청년에게 찾아온 지나친 고단함이 용기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그냥 지원자를 안 받는거 아닙니까?”

“뭐라고?” 박사의 되묻는 질문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완벽한 상황이란 없다는 걸 뛰어난 과학자가 모르실리 없겠죠. 행여나 그러한 상황이 있더라도 외면하실겁니다. 왜냐하면 실패할까 두려워 지원자를 찾지 않으시니까요.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박사의 주름이 뒤엉켰다. 그러나 그 주름이 미간까지 오진 않았다. 박사는 훈계하기 보다는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설득을 했다.


“자네에게 희망을 버리라고는 하지 않겠으나 희망의 방향을 바꾸라고 하고 싶네. 과학은 문명은 달라지게 할 수 있지만 운명에는 영향을 끼칠 수가 없어. 운명이 그렇게 짜맞춘데는 다 이유가 있는게야. 만약 자네가 그곳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운명의 신이 당신을 거부할지도 모르네. 되려 모든 걸 잃을 수 있어.”

“이미 전 모든 걸 잃었습니다.”


실험실 안에 그의 목소리가 퍼져간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는 괴로운 기억을 꺼내는 자의 표정이 그렇듯 암담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결혼식날, 러스트홀로 사라졌습니다. 모든 행복이 눈앞에 있던 순간, 갑자기 제 앞에 땅이 갈라졌고 모든 것은 남겨둔채 저 홀로 그 어두컴컴한 연옥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 눈으로 칠흑을 보기 전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절망을 보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저 위를 보아도 어둠 뿐이고 갈라진 틈 사이로 태양이 뜨더라도 올라가지 못하는 저에겐 조롱일 뿐입니다. 아, 가련한 인생이여, 불온전한 사람이여, 가혹한 신이시여, 희망은 없는 겁니까, 그렇게 되뇌며 모든 어둠과 마찬가지로 제 마음도 흑암이 되어갈 때, 박사님의 기사를 보고 여기로 찾아온겁니다. 그런데 갈 수 없다니요? 사랑을 잃은 자에게 자연은 그리도 무심하던데, 박사님도 결국은 그저 여러 사람들의 비애중 하나로 보고 공감하지는 못하시는겁니까.”


그는 가슴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미 미끄러져 버린 자는 멈출 수 없듯 그는 다시 슬픔의 곡조에 미끄러졌다. 그의 ‘꿈’에는 그녀가 항상 있었던 것이다.


“제가 그리던 천상의 꿈은 제 앞에, 바로 제 눈앞에서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혼인, 그 미소, 그 순백의 목소리, 천국의 종소리, 제 모든 영혼의 구원이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채가, 그 미소가, 그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도리어 제 모든 미래이자 인생의 광명이 저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천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에서 저는 추락했고 이제 모든 건 지옥입니다. 육신은 살아있지만 영혼의 임종이 다가옵니다. 어떻게 운명이 이리도 잔인하단 말입니까.”


남자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때 나오는 이슬 한방울이 그의 턱에 고였다.

박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자신이 가진 손수건을 청년에게 넘겨주었다. 청년은 두 손으로 손수건을 받아 눈물을 닦았다. 분위기는 침체되었고 과학자는 그 흐름에 못이겨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내 얘기를 한번 해주겠네. 자네 혹시 여기로 오게 된게 내 기사를 보고 온건가?”


그는 조용히 수긍했다.


“그건 약 3년 전에 낸 기사라네. 3년 전에, 이 실험이 완성 단계에 이르르자 나는 조급함에 지원자를 물색했지. 아직 증명되지 않았고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지원자는 저조했어. 나는 빛을 보지도 못하고 끝날 나의 작품에 불안을 떨었다네. 그러던 중, 한 젋은이가 나에게 찾아왔지. 아주 패기넘치고 야망이 있고 도전정신이 투철한 사내였다네. 아마 자네와 나이도 비슷했겠구만. 그 사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야망에 목말라했고 나는 명예로운 인생길에 눈이 멀었지. 그 애는 아직 젊었어. 그래, 젊음이란 그런 굉장한 의지와 힘을 부여해주지만 지나친 자만에 부풀어오르기 쉬워지지. 나는 경험많은 늙은이답게 그 사내를 조절해야만 했어. 그런 의지가 불러올 어떤 재앙을 내 출세에 대한 욕구가 애써 외면하지만 않았더라면... 인간이 만든 것에는 결점이 있다는 걸 인정할 조금의 성찰만 있었다면… 그러진 않았을텐데.

이 조바심이 만든 완벽의 표면을 믿었던 나는…그래서… 나는… 완벽히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애를 다른 세계로 보내버렸지. 그리고는...”


매우 낮게 드리운 박사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두 입술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끔찍한 과거의 흔적을 무의식에서 꺼내기란 그토록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였다.

박사는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되찾고는 이어 말했다.


“1년간을 기다렸지만, 그 사내는 돌아오지 못했지. 지금은 벌써 3년이 되었고 말이야. 나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네. 그가 러스트 홀을 열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어.”


지켜보던 청년이 측은한 마음으로 물었다. 아픔이 있는 자들은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혹시라도 다른 세계에서 살고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렇지 않다네. 나는 분명 그 사내에게 돌아오는 방법을 알려줬어. 그 사내도 출세를 위해 꼭 돌아오겠다고 했다네.”

“그럼 박사님은 그 이후로 지원자를 뽑지 않으신건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는 건 막지 않으나 다시 돌려보내는 편이지.”

“그럼, 방금 전에 말씀하신 적당한 지원자를 찾는단 말씀도...”

“그래, 자네 말대로 지원자를 돌려보내고자 하는 핑계라고 할 수 있지. 물론 진심으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지. ‘그 첫번 째 지원자는 정말 안됬지만 대신 박사님의 실험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라고 말일세.

어이가 없기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는 과학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과학에는 희생이 따르지만, 누군가의 아픔과 인생을 짓밟고 윤리를 조롱하고 올라서는 과학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파렴치한 같으니라고!”


박사는 식탁을 세게 내려쳤다. 그의 분노가 실험실 안을 매꿨다. 그러나 금세 그 힘이 다하여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지었다.


“그럼 저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 박사가 말했다.


“그래, 돌려보낼 생각이네.”

“안됩니다, 박사님. 저는 반드시 가야합니다. 이것이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방법은 많다네.”

“방법은 많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저에겐 박사님의 연구가 희망입니다.”


박사가 성질을 내듯 외쳤다.


“희망은 무슨! 난 그저 머저리 같은 낡은 잔류에 불과해.”


남자는 지지 않고 대답했다.


“기성세대의 노고는 낡은 고철 덩어리가 아닌 젊은이들의 등대입니다. 박사님 말대로, 그리고 제가 아는 범위에서 과학이란, 한 개인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비윤리를 허용하는 무심한 수단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류를 번영케하는 개인의 노고와 고독의 결과물이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비참한 삶의 종착점으로 전락되야만 합니까? 고통에 절여진 자에게 태양이 될 작품이 이러한 음침한 과거의 소산으로 빛을 발하지 못해야만 합니까?”


우리는 때로 한 발 앞을 내다보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르고 감춰졌던 본질을 들춰내는 것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데, 지금 박사도 그런 상태에 놓였다.

그가 다시 이어말했다.


“완성이 가깝습니다 박사님. 이제는 용기를 내셔야합니다.”


그의 말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박사는 아무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박사는 침묵을 깨고 그의 총명한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정말 가야하겠는가?”


청년이 망설이는 박사의 눈동자를 보고 단호히 대답했다.


“반드시 가야합니다.”


박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역시 젊은이는 못당하겠군. 자네처럼 저돌적으로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이구만. 이런 고지식한 내가 설득을 당할 정도로 황당한 일이 벌어졌으니. 허나 내가 아무리 과학자지만 젊은 사람에 대해 지나친 걱정이 많은 늙은이란 걸 잊지 말게. 특히나 청춘은 더더욱 그러하지. 젊음의 청춘은 너무 불같아 일을 망치고 늙은이는 너무 걱정이 많아 일을 그르치지. 이 양 극단의 해결점은 신이 주신 시간이라는 약 뿐이네. 자네는 불을 가라앉히고 나는 연기를 피워보겠네. 그래, 내일이 좋겠어. 자네가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온다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중립이 성립될 걸세.”

“하지만 박사님...”


박사가 손을 들어올리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럴 땐, 시간과 가장 오래 지낸 내 말을 믿어주게. 달라지는 건 없네. 다만 우리가 이 순간에 대한 절실함을 잊지 않고 타성에만 젖지 않는다면 말일세.”


그는 박사의 힘없는 말에서 느껴지는 어떤 깊은 생각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는지, 결심을 굳혔다.


박사가 다시 이어 말했다.


“그리고 혹시 자네 약혼녀와 관련된 물건을 가지고 있나? 그 여자가 빨려 들어간 곳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흔적과 이곳을 결합시켜줄 연관 물품이 있어야 된다네. 우주의 공간은 너무도 방대하거든.”


남자는 박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머니에서 어떤 팬던트 목걸이를 꺼냈다.


“실비아와 이 목거리를 같은 것으로 항상 차고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할까요?”


박사가 수긍했다.


“자네의 약혼녀가 아직 이 팬던트를 차고 있다면 가능성이 희박하지는 않다네.”


남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팬턴트를 박사에게 건내며 말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겠습니다. 내일까지 불을 제대로 피워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래, 내 잘해봄세. 허나 자네야말로 그 오늘에 대한 갈망을 잊지말게나. 불꽃이 클수록 쉽게 휘청거리니 잘 간수해야 돼.”


남자는 박사에게 인사로 예의를 갖추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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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Part 2-10 운명의 여유 15.07.03 94 0 19쪽
24 Part 2-9 우연인가 필연인가 15.07.01 79 0 13쪽
23 Part 2-8 남자의 기억 15.06.29 106 0 14쪽
22 Part 2-7 남자의 정체 15.06.27 66 0 9쪽
21 Part 2-6 추격자와 도망자 15.06.25 104 0 13쪽
20 Part 2-5 선의가 부른 기회 15.06.23 95 0 14쪽
19 Part 2-4 아버지와 아들 15.06.23 66 0 19쪽
18 Part 2-3 차가운 가면 속의 예리함 15.06.21 89 0 15쪽
17 Part 2-2 두 피해자 15.06.19 34 0 20쪽
16 Part 2-1 저항하는 청년 15.06.18 104 0 16쪽
15 Part 1-14 싸움 15.06.16 121 0 12쪽
14 Part 1-13 막을 수 없는 것 15.06.15 112 0 7쪽
13 Part 1-12 성대한 플레시가 터지는 곳 15.06.14 63 0 7쪽
12 Part 1-11 호신술로 막을 수 없는 것 15.06.12 93 0 19쪽
11 Part 1-10 한 집의 두 사람 15.06.11 95 0 14쪽
10 Part 1-9 음모자 15.06.10 115 0 9쪽
9 Part 1-8 여자의 선택 15.06.09 65 0 8쪽
8 Part 1-7 여자가 어둠 속을 걸을 때 15.06.08 97 0 14쪽
7 Part 1-6 노래하는 자가 방황하는 자에게 선사한 진로 15.06.07 86 0 7쪽
6 Part 1-5 가수의 역할 15.06.05 129 0 8쪽
5 Part 1-4 Lost hole 15.06.04 88 0 15쪽
4 Part 1-3 변심과 추진 사이 15.06.03 84 0 6쪽
» Part 1-2 늙은이와 젊은이 15.06.02 92 0 18쪽
2 Part 1-1 버려진 남자 15.06.01 127 0 17쪽
1 Prologue 15.05.31 9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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