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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나비

Lost part

웹소설 > 자유연재 > SF, 로맨스

연꽃나비
작품등록일 :
2015.05.31 18:10
최근연재일 :
2015.07.03 15:47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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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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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Part 1-11 호신술로 막을 수 없는 것

DUMMY

남자는 밥 3그릇을 먹고나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배가 채워짐으로써 안에서 밀려오던 배고픔도, 감정의 파도도 잠잠해졌다.


“다 먹었나요?”

“네,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는 허기와 함께 그를 억누르던 음습한 기운마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고 온몸에 활기가 솟았다. 육체가 안정을 얻음으로써 정신적 활동이 이 상황을 직시한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는 그녀를 구했지만 그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오히려 이 안혜원이라는 여자가 그를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식사대접까지 받고 가만히 있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였고 중첩된 은혜는 마음을 무겁게만 했다.


“밥을 얻어먹었는데,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그녀는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이래야 제 마음이 편하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식사 대접을 받았는데 가만히 있기엔 마음이 무

겁네요. 제가 한가지 보답을 해야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만족할 듯 싶습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볼살을 두들기며 생각하다가, 한 가지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호신술 좀 알려주시겠어요?”


그는 당황했다. 보답은 하고 싶었지만 기술을 전수하는 것, 특히나 무지한 기술에 대해 전수하는 것에 대해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했다.


“어제 그런 일을 겪고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됬어요. 마지막 순간에 자기 스스로는 자신이 지켜야 되며, 안일했던 생각들은 위기에 녹아내린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쪽이 호신술을 알려줬으면 해요.”


“호신술이요..? 하지만 전…”

“그러지말고 조금만 알려줘요. 저한테는 중요한 시작이니까.”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확실히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특히나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일은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는 기억을 되살리기 보다 이 여자를 설득시키는 편이 낫다 생각했다.

허나 그녀의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하여금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때로 분에 넘치는 보답보단 그 사람이 갈망하는 작은 일을 들어주는 게 보화보다 나을 때가 있기에 그는 애써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우리가 쉽게 잊는 기본에 대해서만 숙지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좋아요. 하지만 기본만이에요.”


그녀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는 겁니다. 또한 가능하면 어두운 골목이나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은 눈길도 주지 않는 거에요. 행여나 혼자서 위험한 곳을 지나간다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저기 죄송한데…”


그녀가 맥을 끊자 그는 허무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

“이런 말씀드리기는 죄송하지만...이런 지루한 이론 말고 실전 기술은 없나요?”

“지루하다니요? 제가...제가...”


우리에게는

그녀의 물음이 그를 일깨웠다. 이 여자는 단순히 외부의 시선을 충족시킬 표면이 필요하여 물어본 질문이였겠지만 그것은 전수자에게 비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혜원의 질문이 아닌 다른 것에 몰입되어 있었다. 그녀의 물음이 바늘이 되어 그의 기억을 인지할 수 있는 외부로 끌어올렸다. 그의 의식이, 몽롱하면서도 분명한 느낌이 어떤 감각을 일으켰다. 어디선가 본듯한 이 장면, 이 모습, 전수자와 배우는 자의 관계, 이론에 대한 지루함을 꿰뚫는 촌철살인과 같은 한 마디, 더 나아가 어느 공간, 어느 장소, 어느 베일에 가려진 인물, 그 인물이 말하고 있었다. 그의 모든 감각이 집중되어 있는 이때에, 그의 눈동자에 한사람이 비췄다. 그의 아버지였다.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론을 무시하시면 안됩니다. 호신술, 싸움 모든 것은 머리싸움이자 현명함의 구현이니까요. 누군가를 이기고자 한다면,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면 알아야 합니다. 상황에 따른 대응책과 자신의 위치를 기반으로한 단련법을 알고 반복숙달을 통해 숙련시켜야 됩니다.

단련할 수 없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취약 부위는 눈, 인중, 목, 턱뼈, 명치, 무릎 관절, 남자의 경우는 사타구니까지 해당합니다(그는 손가락으로 이 부위들을 가리키며 지나간다).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강한 부위는 이마뼈, 손바닥 장, 팔꿈치, 무릎, 발꿈치, 여자의 경우는 긴 손톱과 날카로운 도구가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기 때문에 남자에게 불리한 조건이지만, 방법만 숙지하고 있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가령 무릎이나 발차기로 사타구니를 치는 식의 강한 부분으로 취약부위를 공격하거나,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 하거나, 상대의 힘을 이용해 넘기거나 관절을 꺾을 수 있습니다.”


혜원은 쏟아져나오는 전문 용어와 그의 돌변하는 태도에 놀라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강아지에게서 사자의 포효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놀란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였다. 그녀가 멍하게 그를 바라볼 때 그는 스스로를 자각했다. 기억의 조각을 되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잃어버린 건 방어 기술에 대한 것이였을까? 아직은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일단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숨기기 위해서는 뭔가 감추는 티를 내지 않고 이 여자를 가르치는 게 먼저였다.


그는 그가 기억하는 범위내에서 이 여자에게 알맞은 호신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마른 체형에 168Cm 정도의 키, 무술에는 전혀 경험조차 없어 보였다.


“혹시 무술을 배우신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가벼운 운동 말고는 무술에는 가까이조차 안갔어요. 무술보단 일반술을 더 좋아하니까요.”


그는 그녀의 농담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이런 그의 반응에 내심 속상함을 느꼈다.

이 여자는 말그대로 아주 평범한 일반인. 힘도 다부지고 상대를 이겨본 경험도 없는, 싸움과는 거리가 너무도 먼 가녀린 여인, 이러한 여인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독선적인, 사회의 상식을 벗어나 자기 욕망대로 날뛰는 무서운 자들,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를 쾌락과 순간적인 만족의 양분으로 망설임 없이 던지는 범죄자들에게 이 여인들은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

왜 이토록 가녀린 여인들, 누군가의 거룩한 천사가 될 여인들이 그러한 범죄자들의 욕망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힘없는 자와 힘 있는 자의 구도에서 정녕 여인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단 말인가?

최소한 최악의 상황에서의 대처법, 제압, 모면, 등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여인의 반항이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에 놓인 여인은 가만히 기도하는 것이 전부인가? 어느 누구든 겪게되는 암흑가에서의 고독한 걸음의 순간에서 단순히 재앙의 눈동자에 띄지 않는 요행만을 기다리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인가?

또한 이러한 걱정들이 다부지게 느껴질만큼, 기술의 변화에 따른 무기의 보편화가 약자들의 신변을 보호해주고 있다. 그것은 나의 고민이 수포로 돌아가더라도 반가운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악인을 저지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기술이 주는 편리함에서 오는 빈 여백을 주시해야 한다. 과연 첨단 기술의 혜택은 선한자에게만 주어지는가?

나는 다만 준비하는 자가 이길 것이라 확신을 보인다.

그가 말했다.


“저번 위험한 일이 있었을 때, 괴한들에게 어디를 붙잡혔었죠?”


그녀는 과거를 되집었으나 괴로운 기억을 꺼내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변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않고 눈을 질끈 감고 지져분한 물체를 짚는 심정으로 기억을 끄집어냈다.


“제가 처음에는 입과 허리를 잡혔어요. 그리고 다음에는 손목을 붙잡혀 끌려갔죠.”


그에 따른 대처법이 남자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좋습니다. 그러면 먼저 그것부터 알려드리죠.”


그는 자세를 취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중요한 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고 또한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 겁니다.”


그녀의 눈빛이 약해졌다.


“네? 하지만 그건 좀...”


그녀에 비해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비인간적이라구요? 그런 동정심은 그런 추악한 놈들에게 주는 게 아닙니다. 차라리 그 마음 아꼈다가 길거리에 외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동물들에게 주는 게 이롭죠.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합니다. 과감함과 결단력, 그리고 정신력이 생존의 절대적인 수칙입니다. 그런 녀석들에게는 여인의 눈물이 아니라 자기 눈물을 먹게 해야되요. 다시 강조하지만 호신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존입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잡고 하세요.”


그녀는 그의 말대로 굳게 마음 먹었다.


“본인이 이렇게 서 있을 경우에 누군가 허리를 감싸안고 손으로 입을 막을 경우, 만약 팔이 빠져있으면, 뒤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오른쪽 팔꿈치로!”


그는 폭풍같은 기세로 회전하며 뒤쪽으로 팔꿈치를 휘둘렀다.


“이런 식으로, 잽싸게 친 뒤에...”


곧바로 가상의 상대에게 발차기를 날린다.


“다리를 남자의 급소 즉 사타구니 쪽으로 힘있게 올려 찍습니다.”


그는 이어서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건 한순간에 이루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한치도 망설임없이 행동해야되요. 자, 따라해보세요.”


그녀는 그를 따라 자세를 취했다.


“만약 상대가 잡는다면...”

“몸을 돌리면서!”


그녀가 팔꿈치를 뒤로 휘둘렀으나 허리가 돌아가지 않아 자세도 엉성했고 파괴력도 뒤떨어졌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전혀 위력이 없어요. 오히려 자극만 할 뿐이에요. 자, 마치 뒤쪽에 벌레가 붙었다 생각하고 온 몸에 힘을 실어 한번에 쳐내야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집중했다.


“온몸에 힘을 실어서...”


그녀는 중얼거리다가 한순간에 온몸을 돌려 팔꿈치로 쳐낸다. 그 관성에 의해 그녀의 몸이 한바퀴 돌고는 휘청인다.


“그렇죠! 그런 식으로 있는 힘껏 쳐내야합니다. 자, 그 뒤에는 있는 힘껏 상대의 급소를 차내세요.”


그의 말대로 그녀는 가상의 상대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잘하셨습니다. 발차기도 조금 더 세게 올려차세요. 타격점보다 더 위로 찬다고 생각하시고. 이제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10번만 반복하세요.”


그녀는 착실하게 10번의 반복을 했고 벌써부터 뭔가 자신감이 들기 시작해 초보자가 쉽게 저지르는 자만한 마음을 갖는다.


“자, 이제 실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뒤로 돌아보세요.”


여자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네, 네? 갑자기 왜요?”


“실제로 그 상황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연습하는 겁니다. 얼른 뒤돌아보세요.”

“그러면 잡으실 건가요?”

“어쩔 수 없죠. 실전처럼 연습해야 효과가 있으니까요.”


그녀는 당황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밀려왔다. 남녀간의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도 가까워지기 마련. 그 거리 차이만큼 감정이 싹튼다. 물론 그 씨앗은 일방적인 경우가 많지만.


‘내가 당황할 필요가 없지. 어차피 이 남자를 이성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


그녀는 마음을 추스리고 뒤로 돌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을 막고 허리를 감쌌다.


“자, 아까 한데로 힘을 실어서 때려보세요. 물론 제가 맞기 직전에 멈추시면 됩니다.”


그녀는 그가 알려준데로 몸을 재빠르게 회전시켰다. 그래도 동정하는 마음이 담겨있어 힘이 실려있지 않았고 남자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전혀 효과가 없어요. 다시 해보세요. 온몸에 힘을 실어야 합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가 다시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입을 막자 반사적으로 몸에 힘을 실어 뒤로 팔꿈치를 세게 휘두른다. 미숙한 상태에서 힘의 조절이 안되어 그녀도 모르게 멈추질 않고 끝까지 뻗어낸다. 다행이도 그는 예상하고 있었는지 그녀를 감고 있던 손을 풀면서 뒤로 물러나 피해낸다.


“바로 그거에요.”


그녀는 놀란 가슴에 세어 들어가는 기겁을 막기 위해 여인들이 그러하듯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는 굉장히 난처해했다.


“미...미안해요. 다치진 않았어요?”

“괜찮아요. 알고 있었으니까 피할 수 있었어요. 오히려 잘하셨어요. 항상 지금처럼만 하면 됩니다. 자, 그리고 마무리도 지으셔야죠.”


그녀는 멀뚱히 서 있다가 그 의미를 눈치채고 발차기로 아래쪽을 공격했다. 물론 가상의 상대로.


“잘하셨습니다. 평소에도 연습해두시면 위급할 때는 반사적으로 나올 겁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뿌듯함을 감추느라 그의 박수소리를 흘려들었다.


“뒤에서 잡혔을 때는 이와 같이 팔이 열려있다면 팔꿈치로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고, 만일 팔이 묶여 있다면 머리를 뒤로 세게 젖혀서 코에 타격을 줄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의 가장 약한 부위를 강한 부위로 치명타를 주는 거죠.”


그녀는 그의 말을 새겨 들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이 뛰고있는 맥박은 그녀의 내부에서 요동치는 감정의 잔류였다. 그 흐름에 따라 그녀에게 어떠한 용기가 불어난 것일까? 그녀는 한가지를 더 추진했다.


“그럼… 앞에서 잡으면 어떻게 할까요?”

“…네? 아니 그건…”

“아니, 오해는 하지 말아요. 저는 정말 제 몸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거니까.”


이미 독자분들은 입꼬리가 올라가며 이렇게 말하리라 생각된다.


‘거짓말’


남자도 처음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녀의 말에 따라 다시 냉정한 교관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실전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가 그녀를 잡으려고 할 때에, 그녀가 잠시 불러세운다.


“저기 잠시만요.”

“네, 왜 그러시죠?”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호신술로 막을 수 없는 것도 있나요?”

“실력에 따라 다르답니다. 반복 수련으로 실력이 좋다면 왠만한건 방어할 수가 있습니다.

일단 다른 생각보단 현재 하고있는 것부터 집중하세요. 현재 일은 게을리하면서 너무 멀리있는 목표만 보는 건 좋질 않으니까요.”

“칫, 알았어요.”

“좋아요, 그럼 시작합니다.”


그는 두손을 무언가 쥐고 있는듯한 모양을 한채 그녀에게 다가왔다.


“만약 이상한 사람이 다가오면 어떻게 한다?”


그녀는 그에게 들었던 말들을 상기해 대답했다.


“당황하지 않고 냉정을 유지한다. 상대방의 행동에 따른 대응책을 머릿속에 그려 생존할 방법을 찾는다.”

“좋아요. 이때, 갑자기 상대가 이렇게 끌어안는다면.”


그렇게 말하며 그는 안혜원의 팔과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상태에서 몸을 뒤로 젖히세요. 그러면 앞에 공간이 생깁니다. 그리고 나서 두팔을 빼내서 한손으로 제 눈을 긁으세요. 눈을 긁을 때 손가락은 두 손가락으로 하지 말고

다섯 손가락을 전부 펼친 상태에서 손을 앞으로 힘껏 뻗으면서 긁으세요.”


그녀는 그가 말한대로 몸을 뒤로 젖히고, 두팔 중 한팔을 빼내어 그의 얼굴쪽 눈을 스쳐지나간다.


“네, 그렇게 하시면 상대는 눈을 다쳐서 꼼짝을 못하니 그 사이에 도망가시거나 아까처럼 급소 부분을 가격하면 됩니다.”


그녀는 약간 불만족스러운지 입을 삐쭉 내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가 물었다.


“왜그러시죠? 뭔가 할말이 더 있으신가요?”

“아뇨, 그냥 조금 아쉬워서요. 제가 원한 건 뭔가 멋진 기술로 넘긴다던가, 발차기로 얍얍! 날리는 그런거였는데…”

“좋은 마음 가짐입니다. 하지만 그쪽은 초보에요. 초보는 초보가 할 수 있는 단계가 있습니다. 아직 근력, 민첩성, 순발력, 기술에 대한 숙련도도 부족한 상태에서 고급기술을 시전한다면, 역효과만 큽니다. 폼과 생존을 가치의 측량기에 올리면 당연히 생존으로 기울겠죠.

자, 호신술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뭐라고 했죠?”

“네네, ‘생존’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리고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왼쪽 다리를 들어올려 남자의 발을 차며 말했다.


“그래도 초보의 힘을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다시 그녀는 왼발을 내려놓고 오른발을 남자의 얼굴 앞까지 올리며 말하길,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라고 했으나


“앗!” 곧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진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다음은 머리 뒤통수와 허리의 통증을 예상했다. 하지만 통증은 전혀 없었고 무언가 자신을 받쳐준 느낌만 있었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떳다.


“아…”


남자의 얼굴이 가까웠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얻는 별대신 다른 별을 보았다. 그것은 심장에 충격을 줬을 때의 별빛, 감정에 혼동이 왔을 때의 쓰라림이였다.


별이 말했다.


“괜찮아요?”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통해서 보였고 그의 숨결이 코끝을 간지렸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고 그에 따라 그의 늠름한 모습이 그녀의 심장까지 도달한다.

당황한 혜원은 그에게서 급히 떨어졌다. 그녀의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 지나치게 빨리 뛰기 시작한다.


“아, 아뇨. 괘, 괜찮아요.”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타오르는 느낌이 들어 중요한 걸 감추듯 재빨리 고개를 돌린채 몸을 일으켰다.


“오, 오늘은 이만 자도록 하죠. 저 내일 출근해야 돼요.”

“저기…”

“저, 저 내일 바쁘다니까요! 그러니 알아서 하시고 주무세요. 그럼 이만!”


그녀는 말을 퉁명하게 내뱉고는 시선 한번 안주고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남자는 어색하게 뻗은 손을 다시 집어 넣었다. 그녀는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양손으로 자기 뺨을 반복적으로 만져본다.


“내가 왜이러지? 넘어질 때 머리라도 박은건가?”


그녀는 가까웠던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니 다시 심장에 펌프질이 시작됬다. 머리를 세차게 젓고는 심호흡을 하고, 혼잣말로 자신을 달래는 안혜원.


“아니야. 말도 안돼는 생각하지도 말자고. 그래, 오늘은 그냥 피곤한거야. 분명 넘어질 때 머리라도 한대 박아서 그런 걸꺼야. 아무렴, 내가 저런 남자를? 그럴리가 없지.

물론 외모는 괜찮은 편이지만 그래도 나하고는 택도없지. 남녀 사이란 가끔 혼동을 일으키는 때가 있는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말자. 나는 휴식이 필요해.”


그녀는 몸을 침대로 던졌다. 눈을 부쳤지만 그 뒤로도 뒤척이기를 몇 번을 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심스런 생각들과 망상들을 떨치려는 싸움을 반복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신과의 싸움에 끝이 보일 때쯤, 그녀의 감기는 눈꺼플이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줬을 때, 물론 해가 뜨면 잊혀지겠지만,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야릇 하면서도 짜릿한 느낌을 통해 아까 전 그에게 물어보았던 질문, ‘호신술로 막을 수 없는 것’에 대해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호신술로 막을 수 없는 것, 쏘아진 화살, 그 중에서도 큐피드가 쏜 화살.

종소리, 그 중에서도 천상에서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이 모두를 단 하나에 응축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호신술로 막을 수 없는 것, 사랑.

현자도, 악마도, 반신반인도, 철인도, 우리 모두는 벗어날 수 없는 것, 지상의 만물은 피할 수 없는 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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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Part 2-10 운명의 여유 15.07.03 94 0 19쪽
24 Part 2-9 우연인가 필연인가 15.07.01 79 0 13쪽
23 Part 2-8 남자의 기억 15.06.29 106 0 14쪽
22 Part 2-7 남자의 정체 15.06.27 66 0 9쪽
21 Part 2-6 추격자와 도망자 15.06.25 104 0 13쪽
20 Part 2-5 선의가 부른 기회 15.06.23 95 0 14쪽
19 Part 2-4 아버지와 아들 15.06.23 66 0 19쪽
18 Part 2-3 차가운 가면 속의 예리함 15.06.21 89 0 15쪽
17 Part 2-2 두 피해자 15.06.19 34 0 20쪽
16 Part 2-1 저항하는 청년 15.06.18 104 0 16쪽
15 Part 1-14 싸움 15.06.16 121 0 12쪽
14 Part 1-13 막을 수 없는 것 15.06.15 112 0 7쪽
13 Part 1-12 성대한 플레시가 터지는 곳 15.06.14 63 0 7쪽
» Part 1-11 호신술로 막을 수 없는 것 15.06.12 94 0 19쪽
11 Part 1-10 한 집의 두 사람 15.06.11 95 0 14쪽
10 Part 1-9 음모자 15.06.10 116 0 9쪽
9 Part 1-8 여자의 선택 15.06.09 65 0 8쪽
8 Part 1-7 여자가 어둠 속을 걸을 때 15.06.08 97 0 14쪽
7 Part 1-6 노래하는 자가 방황하는 자에게 선사한 진로 15.06.07 86 0 7쪽
6 Part 1-5 가수의 역할 15.06.05 129 0 8쪽
5 Part 1-4 Lost hole 15.06.04 88 0 15쪽
4 Part 1-3 변심과 추진 사이 15.06.03 85 0 6쪽
3 Part 1-2 늙은이와 젊은이 15.06.02 92 0 18쪽
2 Part 1-1 버려진 남자 15.06.01 127 0 17쪽
1 Prologue 15.05.31 9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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