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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를 꿈꾸는 희망녀의 방

생령을 품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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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녀
작품등록일 :
2020.05.17 08:02
최근연재일 :
2024.05.03 08:0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71
추천수 :
55
글자수 :
285,293

작성
23.01.07 05:11
조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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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25화

DUMMY

오늘도 선배들의 잡일에 하루를 다 보내고 퇴근을 준비하던 세희는 들어오는 3년차 선배 기영을 보았다. 가방과 외투를 의자에 다시 두고는 인사를 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선배님.”


피곤하지만 최대한 맑은 목소리로 정중하고 깎듯하게 했다.


“아직 퇴근 안했어?”


하루종일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피곤에 쩔어 보이는 선배는 의자에 외투를 걸치고는 책상 서랍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말했다.


세희는 눈치 못차렸지만, 기영은 사무실을 들어옴과 동시에 세희를 보았었다.

하지만, 시선은 금세 거두었고 세희가 인사를 하고 그의 대답을 듣고 서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행동에만 열중하는 척했다.


“예, 이제 가려고요.”


기영의 행동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대답했다.


“도로가 많이 막혀. 너 먼저 퇴근해. 난 아직 좀 남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사실 그가 더 해야 하는 일은 없었고, 세희와 같이 퇴근하는게 어색해 일부러 없던 일을 찾으면서 시간의 간격을 만들려는 것이다.


“제가 뭐 도와 드릴 일은 없습니까? 말씀 하시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세희는 자신을 잘 챙겨 주는 선배를 위해서 기꺼이 퇴근 시간을 할애할 의향을 전했다.


그녀가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에 고작해야 선배가 찾는 것을 같이 찾아 주거나, 원고 작성을 도와주거나, 잔심부름을 하는 것뿐이다.


“아니야. 그럴 필요없어. 정리는 내가 하면 되니까. 신경쓰지 말고 퇴근해.”


도와 준다는 말에 조금 당황스러운 그가 그녀를 보낼 이유를 찾느라고 바보같이 땀이 났다.


마치 이성에게 첫 감정을 느끼는 소년같은 어색함으로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세희는 모르는 눈치다.


“녜,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퇴근 하겠습니다.”


다행인지, 세희는 집요하지 않았다. 그는 외투와 가방을 다시 드는 세희를 보았다. 그녀가 자신쪽으로 얼굴을 돌리기 직전에 고개를 책상쪽으로 돌렸다.


순간의 차이로 항상 자신의 시선을 들키지 않았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더 편하다 여긴다.


“내일 뵙겠습니다. 선배님.”


쳐다보지 않았다. 세희는 조용히 나갔다.

그는 여전히 책상 서랍만 못살게 굴었고,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머물면서 세희의 걸음에 묻혀 사라져 갔다.


발소리가 사라지자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길게 숨을 들이키니 공기 속에 세희의 향기가 섞여 코로 들어온다.


그녀를 정면으로 보고 말하리라 매번 다짐하지만 오늘도 하지 못했다.

그런 자신을 자책하면서 세희의 향기속에서 피곤을 풀고 있다.

사무실을 나온 세희는 거리를 걷고 있다.


이 작은 잡지사를 들어오고 세 번째 계절인 가을이 나무들에서 이파리들은 떨어뜨리고 있다. 은행잎들이 목적없는 비행을 한다.

거리엔 떨어져 밝힌 은행들로 냄새가 고약하다. 눌려진 열매의 즙이 도로를 적시고 있다.


사람들은 밟지 않으려고 징검다리를 건너듯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세희도 다르지 않다. 자연히 걸음이 이상하고 속도가 나지 않는다.


도로가 은행열매와 노란 은행잎으로 디딜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

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가로수 아래와 인도에 소복히 쌓인 잎들이 갑작스런 비상을 해댄다.


그것들은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서, 화려하게 수 놓은 듯한 다양한 색의 간판들을 향해서 오로지 바람이 미는대로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날리고 있었다.


이른 새벽 열심히 청소했을 미화원의 빗자루질이 한 순간에 무색하게 사라지고, 거리는 날리는 나뭇잎들로 깨끗함을 잃어갔다.


앞길을 막다대는 잎들을 피하면서 그녀도 바삐 걸었다.


퇴근시간이라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시루속 자리다툼을 벌여야 콩나물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속에서 맡아야 하는 텁텁한 사람들의 냄새와 모르는 사람들과의 밀착에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녀는 피곤을 조금이라고 풀기 위해 낙엽이 휘날리는 거리를 얼마간 걸어가고 싶었다.

여유로운 퇴근을 위해 걸음속도를 늦추었다.


탈것을 포기하고 걷는 걸음에 속도는 의미가 없었기에 자신의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소리를 즐기며 걸었다.


걷다 지치면 그때 타면 된다. 하늘은 어둠 속에 묻히고 있고, 거리는 불빛들로 화려하게 드러나고 있는 인간의 거리를 나뭇잎과 같이 흔들리며 걷고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부모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세희는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그것 때문인지 웬만한 몸의 피곤은 익숙하다. 이정도의 걷기는 일도 아니다.


집안이 넉넉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등록금을 대주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을 잘알기에 일찍부터 자신의 생활비를 벌면서 타지 생활을 하였던 터라 외로움도 그녀를 우울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빠듯하고 고단한 대학시절이었지만, 무사히 졸업했다.


지금은 남동생과 같이 지내고 있다. 동생은 대학을 다니고 있고,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취직을 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녀가 잡지사 일이 적성에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먹고 사는 생활이 먼저라 그일을 놓칠수 없었다.


작은 잡지사지만, 소중한 직장이다.

딱히 기자의 일을 꿈꾸지도 않았던 그녀에게 우연하게 찾아온 직장이었기에 익숙해지는 동안 힘이 들었다.


그녀가 미용실에서나 병원에서 잠깐씩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접하던 그런 잡지들을 만드는 이 회사는 광고도 따 와야하고,인기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실어서 판매 부수도 올려야 하는 정말이지 신경쓰지 않는 것이 없는 잡다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직장에서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오타를 수정하고, 선배들의 심부름으로 커피를 사오거나, 야근을 위해서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음료수를 사오거나, 복사를 하거나, 사무실 선배들의 책상을 정리하는 작은 일들 뿐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선배들의 시키는 범위안이었고, 항상 보조의 역할이 그녀의 일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매일을 바쁜 선배들 속에서 일하는 것도 좋았고, 직장인이라는 자신의 사회적인 신분도 좋았다.


거리는 차들의 불빛과 네온싸인이 더 짙어졌고, 그로인해 하늘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까맣게 존재가 지워졌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그러하듯이 굳이 고개를 들어 하늘 어딘가에서 약한 빛을 발하는 별들을 찾지 않는다.


이런 도시의 밤거리는 사람들에게서 별의 존재를 지운지 오래다.

하지만 세희는 고개를 들어본다. 그리고 까만 하늘 어딘가 있을 별을 찾아 본다.


천천히 걷기에 해볼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조명으로 시력이 약해진건지 별이 보이지 않는다. 까맣기만 하다.

그래도 열심히 찾으니 북극성이 보인다.


하늘에 별은 그것 하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사진에서 본 수 없는 별들은 없다. 그저 북극성 하나를 찾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을 내려다 보는 별이 있다는 것에 이상한 위안이 든다.


얼마를 걸었는지 알수 없다. 또 얼마동안 하늘을 쳐다보았는지 알수 없다. 다리 뻐근하고 고개가 저리기 시작했다.


가방의 무게가 파고 들어 쳐지고 있는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걸었다.

세희는 자신의 외투의 목주위를 손으로 살짝 당겨서는 미쳐 그날 챙겨 나오지 못한 스카프의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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