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쟁이를 꿈꾸는 희망녀의 방

생령을 품은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희망녀
작품등록일 :
2020.05.17 08:02
최근연재일 :
2024.05.03 08:0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57
추천수 :
55
글자수 :
285,293

작성
22.11.20 07:44
조회
66
추천
1
글자
11쪽

19화

DUMMY

의사이기에 그들의 진찰을 맡아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하는 자신이 싫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민기는 병원장처럼 장사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되도록 출산쪽을 산모들에게 권하다가 원장에게 질책을 받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지 않고 도덕적 양심에 소금을 뿌리는 젊은 의사의 충고는 이곳을 찾는 산모들에게 거슬기고 짜증스러웠다.


원장에게 이런 산모들은 다 돈이다.

그래서 그들의 항의는 곧 병원의 수입과 연결이 되었고, 소문으로 이어져 돈을 벌수 없게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원장은 그를 향해서 화를 많이 냈었다.


자신은 월급쟁이 의사이기에 별로 발언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병원의 방침에 따를 수 밖에는 없다. 그것이 매달 월급을 받는 그의 역할이었다.

그날도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진 환자들을 돌보느라고 하루가 무지하게 길고 피곤하였다.


이곳이 붐비는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의사들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산모들이 원하는 것은 두말없이 친절하게 잘 해준다는 것 하나뿐이다.

출산하면서 의료적인 과실을 전혀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나, 산모들에게 생길수 있는 감염에 잘 대처한다거나하는 능력과는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

민기 역시 그런 병원의 특수한 환경에 따라서 의사라기 보다는 능력있는 기술자가 되어갔다.


아직 차가 없기에 대중 교통으로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물론 면허는 있었지만, 종합병원이 아니기에 출퇴근이 정해져 있었고, 바쁜 워시아워시간에 답답해 하면서 도로위에 갇혀 있는 것도 싫었기에 지금까지 사지 않았던 것 뿐이다.


뚜벅이족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 복잡한 사람들 틈에서 출퇴근을 하는 그에게 한가지 위안같은 것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집근처에 있는 포장마차를 들르기 시작했다.


소주한병과 우동 한그릇에 하루의 피곤을 푸는 것이 그만의 힐링이 되었다.

대파. 양파. 고추. 해산물등을 손질하느라 분주한 아주머니 앞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는 어묵의 냄새는 왠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그 냄새에 지나는 사람들 역시 한번쯤은 어묵을 한 개 정도 먹을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반대편 유리덮개 아래에는 곰장어나 오징어같은 해산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오뎅이 삶아지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온 남자들의 시선을 잡아 채었다.

요즘은 이런 포장마차가 흔하지가 않아서인지 그처럼 앉아서 하루의 피곤을 푸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플라스틱 탁자에 플라스틱 의자들. 비닐로 가림막을 쳐 놓은 이런 길거리 공간은 양복정장을 입었거나 오피스룩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성들과는 잘 어울리는 곳은 아니었지만. 곧잘 한두 테이블에는 그런 손님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 곳이다.

이렇게 동네 속에 있는 포장마차는 손님들이 더 없을 수 있다.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아서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만이 들르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의 우동 솜씨는 어묵 국물탓인지. 아니면 다른 비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단골을 만들기에 충분했고, 푸근하고 넉넉한 미소 역시 포장마차의 어묵 국물을 닮았다.


그가 이 포장마차를 처음으로 들어가던 날에는 부슬거리면서 비가 뿌리고 있었고, 집으로 향하는 그에게는 우산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뛰어가지 않았고, 내리는 빗속을 마치 비련의 주인공인양 처량하게 맞으면서 걸었다.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어묵이 익어가는 냄새는 그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가랑비로 채워지는 회색의 거리와 지나는 무심한 우산들속으로 파고드는 포장마차의 따뜻한 불빛이 왠지 모르게 운치있어 보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분위기에 한번 취했고, 이제는 중독이 되어버렸다.

포장마차 밖 날씨는 변화가 많았지만, 안에서 그가 느끼는 이상한 푸근함에는 변화가 없었다.


민기에게 손님을 모으는 재주라도 있는 걸까?

그가 포장마차를 들르기 시작하면서 손님들이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처럼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힘들게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용기도 났었다.


그렇게 이 공간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피로를 한잔 술로 씻고자 찾아 들었고, 그런 사람들이 마음놓고 이런 저런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망가지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날도 포장마차 안에는 앉을 자리가 별로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로 하루를 풀고 있었다.


소박한 연인들이 서로 술잔을 기울이면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고, 하루의 노동이 언무지하게 힘들었을 것같은 먼지로 얼룩덜룩한 작업복 차림에 얼굴은 햇볕에 완전히 그을린 한 무리의 남자들이 피곤한 노동을 안주삼아 다투어 술잔을 돌렸다.

혼자서 술을 마시며 괴로움을 잊으려는듯이 나갈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는 남자도. 여자도 보였다.


민기는 이곳에서 여러 가지 모습의 삶을 보는 것이 또한 좋았다. 딱히 즐기는 기분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고민과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자신의 하루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것을 위안받는지도 몰랐다.


그런 분위기속에 소주 한병과 우동 한 그릇에 하루를 씻어내는 중이었다.

항상 그렇게 시키기는 했었어도 소주 말고 우동은 거의 남았고, 나오면서 항상 먹지도 않을 우동을 시킨 것을 후회했지만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민기였다.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자리가 없어서.... 잠깐 합석을 해도 될까요?”


소주를 마시고, 숟가락으로 우동 국물을 뜨서 입으로 넣고 있던 민기 앞에 차림새로 보아서는 절대로 이곳에서 술을 마실 것 같지 않은 남자가 양해를 구했다.

주위를 한번 쓰윽 둘러 보고는 남은 자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민기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무심한 듯 말하고는 다시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라서 채웠다. 민기 앞에 남아 있던 의자 두 개 중 하나를 조금 전에 옆 테이블 손님이 양해를 구하고 가지고 간 것을 기억하면서 그때 둘다 주지 못한 것을 조금 후회하면서 잔을 들이켰다.

지금까지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방해 받아 본적이 없었기에 그와 합석이 그만 일어나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민기는 노 혜성이라는 남자를 처음 만났다.

같이 합석은 하였지만, 두 사람은 통성명도 하지 않았고, 각자의 술잔만 기울였다.

민기는 모르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자신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불편했다. 우연히 시선이 부딪히는 것도 사실은 거북스러웠다.


그리고, 그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가 자신의 힐링 냄새를 지우고 있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너무 강한 냄새에 우동의 냄새도 그 곳의 편안한 냄새도 모두 희석되어 민기의 코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바빴던 병원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 그런 기분이 들었다.

민기는 보지 않는 시선으로 남자의 외관을 차근히 스캔하기 시작했다.

광택으로나 디자인으로나 일반적 옷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 드는 차림새다. 한번쯤은 그 역시 듣거나 본적이 있는 유명상표의 허리띠. 넥타이 핀과 커프스. 그리고, 그의 손목을 빛나게 하는 명품시계와 명품 구두를 보고 민기는 자신도 모르게 지금 입고 있는 자신의 옷을 생각했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소주를 마시고 있지만, 그의 차림새는 민기와 다른 세상 이라는 이질감을 주었다.


민기는 재력있는 부모밑에서 자란 것은 아니었다. 의사인 자신은 평범한 회사원인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같은 자식이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의대를 졸업하는 동안에 가족들의 고생이 참 많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 남기에는 자신의 성적과 집안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원을 개원하는 것은 더더욱 엄감생심이었다.


의대를 들어갔을 때 그는 이 세상이 자기 세상인 줄 알았다.

주위 어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신은 정말이지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프라이드에 솔직히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하찮게 내려다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그나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종합병원에 남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부자의 권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자신 있었던 두뇌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었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면서, 이 세상에는 자신보다 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과 권력의 서열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서서히 작아지고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는 자신이 넘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뛰어 넘기에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받아들인 뒤로 그는 의사라는 허울좋은 프라이드를 벗어 버렸다.


다른 직장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회인이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흔히들 생각하는 부와 직결된다는 고정관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충분히 초라하고 빈곤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의사의 사명감 같은 것은 월급쟁이에게는 의미없다는 생각이 짙어졌고 돈이 점점 그의 의식에 자리잡았다.

병원장을 보면서 의사의 사명감이 없어도 환자를 돌보는데는 지장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환자들은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데려오는 것을 보면서 매일 확인했다.


혜성으로 인해 민기는 본의 아니게 부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는 민기에게 가벼운 목례를 남기고 나갔다. 그가 나간뒤 한동안 민기의 자리에는 그의 향기가 남았다.


소주 두잔정도, 시켜놓은 꼼장어는 장식처럼 손도 대지 않았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가 가진 부의 냄새가 민기에게는 더 많이 남았다.


민기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일이 생긴 것은 혜성을 만난 지 거의 두달이 되어가는 날이었다.


아이를 지우는 수술 말고는 달리 수술방에 들어갈 일이 없었던 그에게 재왕절개를 해야하는 수술이 떨어진 것이다.

근무하는 병원이 아이들을 지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아이들도 있다. 산모들에게 제왕절개를 많이 권한다. 그런 수술은 민기보다는 연차가 오래된 선배들이 맡았다.


그리 탐탁치는 않았지만, 월급을 받는 처지에 그런 감정이 가당치도 않아 수술실을 들어갔고, 제왕절개를 하였다.


모처럼 새 생명을 받으러 들어가는 수술실이어서 다소 긴장이 되었는지 민기는 떨리기까지 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생령을 품은 아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28화 23.01.29 40 0 7쪽
26 27화 23.01.22 45 0 6쪽
25 26화 23.01.15 46 1 7쪽
24 25화 23.01.07 47 0 8쪽
23 24 화 22.12.31 59 1 4쪽
22 23화 22.12.18 65 1 5쪽
21 22화 22.12.11 63 1 6쪽
20 20화 22.11.27 64 1 6쪽
» 19화 22.11.20 67 1 11쪽
18 18화 22.11.13 71 1 8쪽
17 17화 22.11.06 66 1 8쪽
16 16화 22.10.30 71 2 8쪽
15 15화 +1 22.10.23 75 2 5쪽
14 14화 +2 21.03.21 104 1 10쪽
13 13화 +1 21.03.07 93 1 9쪽
12 12화 +2 21.02.28 94 1 8쪽
11 11화 +1 21.02.21 100 2 7쪽
10 10화 +1 21.02.15 95 1 9쪽
9 9화 +1 20.07.26 113 1 12쪽
8 8화 +1 20.07.12 111 2 10쪽
7 7화 +1 20.07.08 121 2 9쪽
6 6화 +1 20.06.28 133 3 7쪽
5 5화 +1 20.06.21 134 2 9쪽
4 4화 +2 20.06.15 152 3 8쪽
3 3화 +3 20.06.07 152 3 8쪽
2 2화 +2 20.05.31 185 4 8쪽
1 1화 +5 20.05.17 386 9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