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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를 꿈꾸는 희망녀의 방

생령을 품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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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녀
작품등록일 :
2020.05.17 08:02
최근연재일 :
2024.05.03 08:0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67
추천수 :
55
글자수 :
285,293

작성
22.11.13 09:05
조회
71
추천
1
글자
8쪽

18화

DUMMY

찬이는 놓았던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가장자리에 기름때를 만들며 식어가는 찌개를 한술 떠먹었다. 그것으로 나누던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 같았다.


아마도 고백 비슷하게 뱉어버린 자신의 말이 낮간지러웠고, 계속하다가는 그녀 과거에 대한 질문도 쏟아질 것 같았다.

그것은 미영이 두려움에 완전히 이곳을 나가게 만들거라는 생각에 서둘러 숟가락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말없이 밥을 다 먹고는 잘 먹었노라, 그리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미영의 밥그릇 속 밥은 전혀 줄지 않은 상태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찬이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고 식사를 끝낼때까지 미영은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지 여기 있어 달라는 찬의 말만 귀를 타고 들어와 머릿속 뇌를 계속 부딪히면서 메아리를 만들었다.

무한 반복의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녀에게 항상 정중해서 그런 감정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미영은 느닷없이 듣게 된 고백에 당황스러웠다. 물론 자신도 찬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정이 들어 버려서 나가겠다는 말을 하기까지 정말이지 많이 망설였던 그녀다.


같이 생활하면서 편하고 아늑함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딱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찬이때문에 그녀도 자신의 감정들이 단지 고마움의 한 형태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니라고 그가 말을 했다.


그래서 미영이 역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진짜 의미를 되짚어 보아야 했다.

있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이제는 그의 마음을 받아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감정상의 문제로 바뀐 것이다.


찬이 그의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미영이 드디어 일어나서 상을 치우고 빈그릇들을 개수대에 포개 놓으면서 뭔가를 결심이라도 한 듯이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여기 있기를 바래! 나 역시 갈 곳도 없고, 잘된 일이잖아? 여기 있으면 그 사람들이 나를 찾을 일도 없거니와 그 아이를 찾을 일은 절대로 없잖아!’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숨어서 살아야 한다고 했어. 그러니, 찬이씨처럼 이런 작은 동네에서 이웃도 잘 없는 사람 옆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도 그가 싫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반찬 그릇의 음식물 찌꺼기를 통에 담고, 비누거품으로 연신 깨끗하게 씻어 내면서도 머리에서는 손과는 다르게 찬의 생각으로 복잡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미영의 얼굴에 작은 미소 하나가 지어졌고, 그것은 미영이 찬을 남자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마음의 문이 하나 열린 것을 의미했다.


생각에 빠져 설거지를 하는 미영은 찬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방 밖으로 나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뒤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미안합니다. 미영씨!’


그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녀의 등에다 대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찬이 역시 방에서 자신이 미영에게 했던 말들을 다시 새겨 보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예 작정하고 계획된 말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때 왜 그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정말이지 미영이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았지만, 답답하기만 할 뿐 확신같은 감정이 일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지? 저 여자가 있으면 왠지 모르게 따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마음에 여자를 두고 있다는 것은 아니잖아? 그것은 이 일에 생기면 안되는 감정이야.’


찬이 미영을 데리고 있는 것은 감정적인 동정의 연민이 아니다. 그것을 자신이 선택한 일이다라는 것을 그는 계속 되내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들을 간직한 채 둘은 새로운 동거에 들어갔다.



****




민기는 그녀들이 시야에서 점차로 사라지는 광경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서둘러서 건물로 돌아 와야 했었다. 그녀들이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건물을 비워둔 시간을 줄이면 줄일수록 유리하다는 생각에 그녀들의 안전이 걱정이 되었지만, 서둘러서 되돌아와야 했었다.


돌아와 민기는 간호사에게 준 커피처럼 수면제를 탄 커피를 마시고는 병실의 감시 카메라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그대로 책상앞에 엎드려 잠이 들어 버렸다.


민기가 잠이 든 책상 한 켠에는 반쯤 마시다만 종이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그것이 민기의 마지막 알리바이였다.


그리고는 잠이 깬 뒤에 벌어질 상황에는 아량곳하지 않은채 꿈속에서 자신이 이 연구 단지로 오기전 시간들을 돌아다녔다.



“원장님!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그래. 먼저 가. 김 선생 수고했어!”


민기는 원장실 문을 닫고는 크게 한번 숨을 내뱉으면서 자신의 하루 일과의 스트레스를 퇴근 인사로 털어 냈다.


오늘은 산모들이 유난히 많아서 잠시 쉴 튿도 없다.


선배가 운영하는 산부인과에 근무한 지는 벌써 연수로 4년이 되어간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은 5층 건물을 통째로 산부인과 병원으로 사용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모든 진료를 산모와 신생아들에게 제공하는 병원이다.


산모를 돌보는 민기와 같은 의사들이 대여섯은 있고,그런 많은 의사들이 바쁘게 시간을 보낼만큼 인기가 좋은 병원이다.


아마도 그것은 병원 의사들이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아이를 지우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민기는 생각한다.


이 산부인과만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많고, 병원 문턱이 낮아 누구나 이용하기 때문이다.


축복 받으면서 태어나야 하는 아이들보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지는 아이들이 더 많은 세상탓이라고 민기는 자신의 일을 합리화한다.


더 다채로운 성생활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경향과 범죄에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은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쾌락에서 생기는 아이는 선물이 아니라 피임의 실패라고 아이를 지우기 위해서 오는 산모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번거롭게 시간을 내서 병원을 들러야 하고, 의사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면서 중절수술을 받아야하는 돈도 들고 창피스럽고 번거로운 일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런 중절수술이 유난히 많은 날에 민기는 자신이 하는 이 일이라는 것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생명의 무사 출산을 정성껏 돌보아야하고, 산모의 건강 역시 잘 지켜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정의와 상관없이 연애 상담을 들어주거나, 개인의 치부인 비밀을 지켜 줄 것을 강요받는 것이 짜증스러운 하루하루였다.


남편이 아닌 애인과의 사이에서 생겨 버린 불씨를 지우려는 온갖 명품들과 장신구들로 도배를 하고 부를 뽐내는 중년 아줌마의 넉살 좋은 부탁.


아내 몰래 바람을 피워 젊은 여자를 임신 시키고는 이혼이 두렵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치부가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오십대가 젊은 여자와 같이 와서 비밀스럽게 부탁하는 중절 수술.


철없는 십대들의 사랑이라고 정당화시키는 불장난으로 생긴 아이를 지우려는 미성년들의 뻔뻔한 변명들.


한마디로 이 산부인과라는 곳은 아이들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래의 아이들이 사랑이라는 것을 눈꼽만큼도 받지도 못한채로,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생명을 빼앗기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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