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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를 꿈꾸는 희망녀의 방

생령을 품은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희망녀
작품등록일 :
2020.05.17 08:02
최근연재일 :
2024.05.03 08:0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56
추천수 :
55
글자수 :
285,293

작성
21.02.28 08:39
조회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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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12화

DUMMY

‘설이라고 내이름이?’


‘그럼 나는 죽을 때까지 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거네.’


‘그런데 그 이름이 자꾸만 낯설은 것은 왜지?’


‘나에게는 다른 이름과 다른 기억들이 분명히 있는 느낌이 드는데...

분명하게 생각 나지 않지만...’


아이는 이렇게 자신의 이름이 지어지고 나서 괜히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엄마가 새삼 생각이 났다.


버려졌다는 느낌이 정말이지 온 몸으로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엄마가 알지 못하는 설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완전히 엄마와 분리가 되었다는 신호같았다.


엄마가 지어 주었더라면 설이라는 이름이 더욱 끈끈한 고리가 되어 엄마와의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이름이 지어지고 불리어지는 것을 설이는 알고 있다.


왠지는 모르게 갓난쟁이의 몸속에 있기는 하지만, 생각은 모든 삶의 경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모든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단지 갓난쟁이의 몸이기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감정의 표현이라고는 우는 것뿐.

기쁘도 울고, 슬프도 울고. 배가 고파도 울고, 아파도 울고, 엄마가 보고 싶어도 운다.


지금의 설이에게 우는 것이 모든 감정들의 수단이었다. 이곳에서 같이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갓난쟁이들처럼 말이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기억들에 대한 답답함이 갑자기 설이의 눈물 주머니를 터트렸다. 그래서, 모든 이유를 담아서 아이는 슬프게 울어댔다.


그런 설이의 귀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설이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봐요”라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주위의 어른들이 걱정스러운 시선반 미소 반으로 보고 있었지만, 아이는 상관하지 않았고,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이 울었다.


‘엄마. 엄마. 엄마.’


‘응애. 응애. 응애’


아이의 울음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른들에게 다른 소리로 들렸다.

설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그 곳의 어른들에게 설이는 이제 정상적인 갓난쟁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





미영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 알 수도 없었다.


두 발을 디디고 발목까지 쌓여만 가는 길을 걷고는 있지만, 땅이 느껴지지 않았고, 눈 속에 파묻히는 발이 시렵지도 않았다.


이미 두 발은 눈 속을 들락거리느라 온기는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전혀 보온이 되지 않는 신발속 발 색깔은 붉어지고 간간이 차가운 냉기에 혈액이 잘 돌지 않아서인지 흰빛이 돌았다.


이상하게 그녀가 지나가는 곳에는 그녀의 삐둘거리는 발자욱과 함께 다른 흔적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붉은색 핏방울이 그녀가 만들어 놓은 발자욱 옆으로 점을 찍는듯한 선명한 포인트를 만들었다.


그 붉은 점들은 아마도 그녀의 발자욱이 사라진다하더라도 끝까지 남아서 누군가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릴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몸을 제대로 추수르지 않은 상태였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자신의 아이를 바로 포대기에 감싸고 뛰쳐 나왔기에 그녀의 자궁은 아직도 열려 있었고, 미처 추스러지 못한 상태로 여전히 피를 내 보내고 있었다.


배를 움켜 잡고 걸었지만, 고통은 한 발씩 움직일때마다 미영을 멈추게 만들었고, 꼬꾸라지게 했다.


어깨와 머리에 쌓이는 눈의 무게에 눌리고, 요동을 치는 자궁의 고통에 그녀의 걷는 속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어지러웠다. 배가 찌르는 듯이 아팠다. 그래서, 그녀는 자꾸만 흐려지려 하는 의식 때문에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조금전까지 잘 움직여 주던 그녀의 몸은 이제 더 이상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았고,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의 생존 본능에 따라서 움직였다.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은 그 세포들의 반란이었다.


이제 미영은 세희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갈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가 딱히 가야하는 방향은 없었다.


그녀의 생각을 말리던 세희였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가서 자신이 지금 하고 온 일을 알릴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길 조차 분간을 할 수 없는 시력이었고, 몸에게 지배를 당하는 그녀의 정신은 의지를 잃어 버렸다.


한걸음 한 걸음이 천근처럼 느껴지는 그녀는 어느 가로등 아래에 잠시 몸을 기댔고, 알아차리지 못한 순간 정신을 잃어 버렸다.


혼자서 출산을 하였던 긴장감과 두려움.

아이를 무사히 자신에게서 떼어 놓았다는 이상한 안도감들이 한꺼번에 그녀를 무너뜨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저 앉아 있는 자신을 향해서 무차별적으로 쌓이고 있는 눈속에서 그녀는 차라리 이대로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들도 이 눈에 덮여 사라질 것 같았다.


자신이 더한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그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그녀의 삶에서 가장 최악인 아이를 버리는 일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의 모습이.

자신이 저지른 죄가.


“아가씨, 정신차리세요. 이런 곳에서 잠들면 안됩니다. ”


너무나 편안하였고, 따뜻함마져 느껴져 미영은 깨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계속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녀의 잠을 방해했다.

미영이 생각하기에 한참을 그렇게 있었던 것같았다. 정신이 가물거리는 사이 사이에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이 들렸었다.


마치 접착제라도 발라 놓은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몸에는 눈을 뜰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인지.


두눈을 억지로 떼어넨 그녀의 흐린 시야로 남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자신을 내려다 보면서 뭐라고 말을 계속하는 것을 어렴풋이 보였다.


그것이 다였다.


또렷한 형체로 완전히 사물을 구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시력은 사물에 초점을 맞출수가 없었고, 소리 역시 아련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 지금 자신의 곁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형체는 영혼이라 생각을 했다.


이렇게 길거리에서 죽는 것이 별로 슬프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아서 고맙기까지 했다.


요동치던 고통도 심하지 않았고, 언제부턴가 온 몸으로 전해오던 한기도 이제는 없어져서 견딜만한 포근함이 자꾸만 그녀를 잠으로 빨아들였다.

그런 그녀를 말리는 것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너무 신경이 씌여서 쉽사리 잠으로 빠져 들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만 좀 불러요. 나는 잠이 너무 온다구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관말고 가시라구요. 이제 겨우 편안해졌는데...’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 세상을 향한 마음을 닫아 가고 있었다.


쓰러져 있는 미영을 불러도 보고, 손으로 흔들어도 보면서 그녀의 잠을 깨우기 위해서 한참을 부르던 남자는 미영이 다시 의식을 잃어버리자, 그녀를 들쳐 업고는 눈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허공으로 들려져 남겨진 자리에는 작은 웅덩이 같은 붉은 혈액이 눈과 함께 섞여서 마치 빙수위에 빨간 색소를 뿌려 놓은 듯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남자에 업힌채로 두발고 두손을 덜렁거리면서 그의 등에서 전해지는 또다른 온기를 느꼈다.


길위에 그녀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발자욱과는 다른 힘차고 무게있는 발자욱들이 눈이 덮어 버릴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면서 빠르게 만들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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