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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를 꿈꾸는 희망녀의 방

생령을 품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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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녀
작품등록일 :
2020.05.17 08:02
최근연재일 :
2024.05.03 08:0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68
추천수 :
55
글자수 :
285,293

작성
22.12.11 05:19
조회
63
추천
1
글자
6쪽

22화

DUMMY

의사 프라이드가 완전히 박살이 난 기분이다.

사회적으로 엘리트인 자신을 동정하듯이 던지고 간 명함에 백수라는 현 위치가 되새겨졌다.

자존심이 더 상하는 것은 명함을 버리지 않았고, 새벽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힘든 시간을 견디며 분홍빛 미래를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에 웅크리고 앉아 모르는 남자가 준 명함으로 갈등하고 있다.


그뒤로는 포장마차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그를 만나면 확답을 줘야 할 것 같아 피했다.


외출을 그만두었고, 음식을 먹는 것 역시 즐겁지 않았다.

인생에서 지금처럼 한가한 적은 없었다. 항상 압박감과 피곤함으로 살았다.


하얀 가운의 무게감이 그를 쉬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료 사고로 의사의 길을 의심하게 된것도 사실이다.


사명감 없는 의사노릇은 이제 싫어졌고, 돈버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매일을 보냈다.

시작이 명함 한 장이다.


바라보는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 속에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부모님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나 표정들도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자랑스러운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모습에 뭔가 결단을 내려야한다는 마음이다. 다시 초조해졌다.


‘한번 부딪혀 보자.’


결심이 섰는지 민기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처음의 빳빳함은 없다. 민기의 손때로 거뭇거뭇하다.


‘무슨 일이든 지금보다는 낫겠지. 이제 의사 김민기는 잊어버리고 직장인 김 민기로 사는거야.’


여러달 방구석 생활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로 민기는 핸드폰의 전원을 다시 켰다.

병원을 떠난 뒤로는 한 번도 켜지 않았던 핸드폰에서 세상과 연결되는 시작음이 들렸다.


화면이 뜨자 가슴이 세게 뛰었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 같은 느낌이다.


자신을 위로하는 동기들이나 친척들의 전화도 다 받고 싶지 않았다. 누구와도 연결되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꺼둔 핸드폰이다.


핸드폰이 켜지자 그를 찾았던 사람들의 문자가 일제히 그의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지만, 하나도 확인하지 않았다.


애써 확인하면서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 번의 클릭으로 순식간에 모두 지워 버렸다.


몇초안에 자신에게 연결된 모든 마음들을 잘라 버렸다.

빈공간을 확인하고는 다른 한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보았다.


하지만, 선뜻 손을 움직이 못했고 양손을 번갈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뭘 고민하는거야. 김 민기. 번호를 눌러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봐. 넌 돈을 택했잖아. 이제 고민같은 것은 하지마, 바보같이.’


민기의 마음속 울림이 남아 있는 의사의 자존심을 비웃었다, 그의 손이 핸드폰의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노혜성입니다.”


신호음이 들리는 동안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혜성의 음성이 들렸을 때 긴장해서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저 김민기입니다. 포장마차에서....”


자신을 기억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포장마차를 언급했다.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셨네요.”


“예?”


혜성이 명함을 주고 간 것은 형식적인 인사라고 생각했었다.

기다렸다는 그의 말에 조금 당황스럽다.


“하하.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저는 당신이 전화를 주셔서 너무 반가운데요.”


“아,예!”


“그럼, 이제 결심이 섰다고 생각해도 됩니까?”


이렇게 바로 일에 대한 말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


‘이거 내가 완전히 속물이 된 기분인데...’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제가 시간을 더 드려야 하나요?”


“아, 아닙니다. 마음 굳혔습니다. 더 이상 시간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화속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만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신지...”


“회사가 어딘지를 제게 알려 주신다면 바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당장이라도 저는 상관은 없습니다.”


“당신이 마음을 정했으니 그렇게 서둘 필요는 없습니다. 문자로 당신이 찾아올 곳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아,예”


너무나 사무적으로 혜성은 전화를 끊었고, 민기는 뚜우우우 소리만 나는 수화기를 여전히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 볼걸 그랬나?’


민기는 지금까지 혜성이 어떤 일을 하는지 한번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혜성이 제안하는 돈벌이가 의사의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다.


어차피 다시 다른 병원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생명을 지우면서 돈버는 일은 더이상 하고 싶지가 않았다.


목적이 돈이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혜성이 가르쳐 줄것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래, 돈이다! ’


‘숭고한 인류애는 애당초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어. 전문의 시험을 통과하는 그때부터.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벽 너머의 실체를 느꼈던 순간부터. 나는 돈이 목적이었는지 몰라.’


그런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민기는 다시 포장마차를 들렀다.


‘이 포장마차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아직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앞으로 바빠질 것 같은 예감이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소주를 시켰고,집돌이 생활의 청산신호로 소주를 들이켰다.


쓰지만 달다.


포장마차를 나온 시간은 회사원들이 막 퇴근을 서두르는 이른 저녁이었고, 거리에는 불빛으로 불나방을 유혹하듯이 지나는 사람들을 꾀기 위한 가게의 네온등들이 켜지고 있었다.


밤은 거리를 낮과 다른 모습으로 바꾸었다. 장사를 준비하는 가게들의 분주함과 손에 군것질을 들고 재잘거리면서 걷는 피곤한 아이들의 소리로 채워졌다.


길을 유유히 걸어가면서 민기는 이제 방에서 생각없이 세상을 바라보던 방관자의 시간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스멀거리면 미소가 일었다.


어제의 거리와 오늘의 거리는 다르다.

세상의 톱니하나를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는 존재감에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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