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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를 꿈꾸는 희망녀의 방

생령을 품은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희망녀
작품등록일 :
2020.05.17 08:02
최근연재일 :
2024.05.03 08:0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75
추천수 :
55
글자수 :
285,293

작성
20.07.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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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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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화

DUMMY

이 아이 저 아이에게 시간을 맞춰 분유를 주느라 밤을 거의 새다시피하는 선생님의 잠깐숙면을 진우의 움직임이 깨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잠을 깨기 위해서 눈을 살짝 비비고는 아기들 잠을 깨지 않도록 문을 조용히 닫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새로 들어온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 나온 것이 분명한 듯 얼굴이 많이 푸석해 보였다.


“ 아, 선생님. 저 때문에 깨셨군요.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눈을 더 붙이세요. 제가 돌봐도 됩니다.”


낮동안 아이들과 함께 시름하느라 많이 피곤하였을 텐데도 목사를 도우려고 나와 준 것이 고마워 그는 선생님을 쉬게 하고 싶었다.


“정말이세요?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많이 피곤했는지 사양하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하품을 하면서 다시 그녀가 돌보던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 갔다.


그녀가 저녁내내 아이들의 기저귀와 분유와 잠을 재우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인터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정도의 피곤에 쌓여 있었다는 것을 진우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태우는 일쯤은 그도 할 수가 있다.

드문 드문 선생님들의 일을 같이 해 왔던 경험을 살려서 이미 잠이 달아나 버린 자신이 하고자 했다.

선생님에게 맡기면 더 살갑게 돌보겠지만,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잠은 오지 않을 것이 뻔하기에 스스로 하겠노라 했던 것이다.


진우는 다시 한번 난로를 점검하면서 온기를 잘 내보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석유 난로의 심지에 빨갛게 열선이 온기를 열심히 보내고 있었고, 서서히 1층을 따뜻하게 데우고 다음 온기에 밀려난 약간은 식어버린 온기들이 2층을 향했다.


그 속에서 아이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은채 진우가 움직이는 모든 고요한 동작을 침묵으로 바라보았다.

난로를 확인하고나서 진우는 조금전 올려 놓은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물의 잔량을 확인했다.


주전자가 김을 내 뿜고 있었기에 주전자 속을 들여다 보는 그의 얼굴 전체로 뜨거운 수증기가 확 덤벼들어 그의 시야를 막았다.


하지만, 그 수증기로 인해서 방의 습기는 저절로 조절이 되었고, 아이의 숨쉬기는 메마르지 않았다.

그것은 순자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습도를 조절하는 방법이었고, 난로를 켜면서 진우도 잊지 않고 주전자를 올려 놓았던 것이다.


아이의 잠을 방해 할 것 같아서 진우는 1층의 조명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병아리 색같은 몇개의 낮으조도의 불빛과 하얀색 김을 모락 모락 피우는 주전자와 그 아래 빨간 열선을 한껏 뿜어내는 난로.

그리고 창밖에서 소리없이 내리는 함박눈들이 뿜어내는 색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눈은 그칠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목사는 그런 주위의 풍경속에서 아이가 깨어 분유를 찾을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했다.


이런 분위기에 젖어서 인지 진우는 갑자기 커피가 한잔 마시고 싶어졌고, 손님접대와 선생님들의 피곤을 풀기 위해서 준비해둔 믹스 커피를 하나 뜯어서는 자신의 머그컵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 공간의 습도를 위해서 하염없이 김을 내 놓고 있는 주전자의 물을 컵에다 부었다.


자신의 컵에서 커피가 뜨거운 물에 조용히 녹아 만들어내는 커피색과 향기를 맡으며, 눈을 감은채 코 속으로 들어오는 향기를 음미했다.

아직은 뜨거워 마실수 없는 잔을 들고 조용히 창가에 서서 내리는 눈으로 밤이 많이 환해진 밖을 내다보았다.


아마도 미동도 없이 자고 있는 갓난쟁이의 사연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곳에는 나같이 버려진 아이들이 많구나,’


아이의 눈은 여전히 조용히 감겨져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자신이 깨기를 기다리는 커다란 남자와 그가 마시지도 않으면서 들고 있는 김이 나는 컵과 창 밖으로 내리는 눈들의 밤거리와 이 건물의 방방마다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모두 다 보였다.


아이는 배가 고프지 않았고, 엄마에게 버려져서는 이런 낯선 곳에 있는 것이 그리 슬프지도 않았다.

아이가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자신이 왜 이런 상황들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바쁘게 체크해야 하는 것이었다.


엄마를 생각하더라도 더 이상은 엄마의 영상이 자신에게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금전까지만해도 눈을 맞으면서 쓸쓸히 걸어가던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었다.


지금은 아무리 보려고 해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있는 이 공간만이 눈을 뜨지 않은 상태지만, 볼수 있는 전부가 되었다.

이 낯선 공간에 깨어 있는 것은 컵을 든채로 창밖을 보기만 하는 남자와 아이.

둘뿐이었지만, 남자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깨기를 기다리는 남자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따뜻한 것 같아서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그가 채워 줄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느낌으로 지금 자신 옆에 있는 그 남자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조금전 엄마의 싸늘한 품에서 느끼지 못한 푸근함이 남자에게는 있었고,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아이는 자신의 모든 궁금증이 다 풀릴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남자와 그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창너머의 하얀 세상을 말없이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어둠 속 어딘가에 자신을 버린 엄마의 무거운 발걸음이 있을 거라는 것이 아이의 온 피부를 타고 전해 졌다.


지금 커피잔을 들고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는 진우에게 저 눈 송이들이 마치 이 세상으로 오는 아이들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살이보다 더 짧은 생명을 가지고 하염없이 땅을 향해서 내리는 눈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부딪히는 땅, 바다, 나무등과 같은 자연물체나 건물, 자동차, 가로등 등과 같은 인공물체에 의해 녹아 사라진다.


하지만, 자신들의 마지막 생의 순간을 알지 못한채 끊이없이 눈이 내렸다.

무언가에 부딪혀서는 금방 사라지는 눈도 있었고,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붙어서 한동안 일정한 모양을 이루다가 그들이 곧 눈들을 털어버리게 되면 사라지는 눈들도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하염없이 내리는 경우에는 살아남아서 무거운 형체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버리는 눈들이 더 많았다.


혼자 쓸쓸히 내려와서는 덩어리를 이루면서 집단을 만든다.

그리고, 강해진다.

그런 모습으로 일정기간을 이 세상의 일부로 살다가 사라진다.


그것은 혼자서 엄마라는 자궁을 거쳐 힘들게 이 세상을 통과한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집단속으로 들어가 무리가 되어 서서히 강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눈처럼 이 세상으로 오는 수 많은 아이들의 미래 역시 그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는 기회가 다 다르다.


축복을 받으면서 태어나 따뜻한 엄마의 품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있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법한 이런 곳으로 버려지는 아이들과 엄마의 자궁에서 나오자 마자 생명을 잃어버리는 불쌍한 아이들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장애라는 이름의 병을 가진채로 버려지거나 헌신적인 엄마의 사랑만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다.


귀한 생명들이 생을 받아서 허무하게 소리도 없이 이렇게 버려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무정한 세상으로 또 하나의 생명이 눈을 타고 와서는 지금 남자 옆에서 낮은 숨소리를 내면서 자고 있다.


진우가 이 베이비 박스를 운영한지는 채 5년이 되지 않았지만, 이 곳을 거쳐가는 아이들은 시간에 비해서 많았다.

이런 궂은 날씨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맑은 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은것도 사실이었다.


세상이 각박해서인지 준비되지 않은 부모들의 책임없는 유희가 증가한 탓인지 그 부모의 댓가를 이런 식으로 대신 치르는 아이들은 점 점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과 몸으로 부대끼다 보면 반년의 돌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사랑을 준 아이들을 다시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는 작업은 시간이 거듭될수록 힘이 들었다.


그럴때면 이곳의 선생들이나 목사는 마치 자신들이 그 아이들을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이가 이곳으로 들어올때마다 목사나 선생님들은 아이가 불쌍한 마음이 먼저 들었고, 나중에 아이와 이별을 해야 하는 자신들의 안타까움도 같이 느꼈다.


조금 식혀서 마실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목사의 손을 데우던 커피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잔에 담긴 커피위로 하얗게 막이 생겼다.


그런 커피는 마실수가 없다.


남자가 바라보던 창밖이 서서히 흐린 회색으로 변해가며 아침이 오고 있었지만, 하늘을 온통 덮고 있는 잿빛구름은 또 다른 하루와 온기를 사람들과 세상에게 전해줄 태양에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회색빛의 도시에서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서서히 거리가 깨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많이 쌓여서 지나는 사람의 걸음이 푹푹빠지는 눈들을 헤치면서 하나 둘씩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런 눈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이 점점 더 눈을 녹였다.


진우는 이제는 완전히 식어버린 커피를 개수대로 가져가서는 배수구를 향해서쏟았고, 커피가 남긴 흔적인 기름띠를 수세미를 문질러서 깨끗하게 씻었다.


그런 손 놀림으로 그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아이들의 안타까움이 섞인 우울함을 지웠다. 깨끗이 씻어져서는 물기를 떨어뜨리고 있는 컵처럼 오로지 사랑하는 감정으로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 그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서.


그리고, 미동도 없이 잠만자는 아이 곁으로 다가가서 배고픔에 깨지도 않는 아이의 상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아이의 몸으로 새어져 나와서인지 크게 걱정스럽지는 않은 진우였다.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주전자의 물을 다시 한번 살펴 보고는 밤사이 이 공간으로 날라가 버린 수증기를 보충하기 위해서 조금의 물을 더 부었다.


이제는 제법 아침의 모습을 띠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일 먼저 이 거리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환경 미화원이었다.


쓸어도 표도 나지 않는 거리의 눈들을 한편으로 밀어내면서 곧 이 거리를 다닐 사람들을 위해서 길을 만들었다.

그의 노력으로 흰눈으로 덮였던 거리에 얼키 설키 흰색이 섞여 있는 회색 길이 만들어졌고, 눈들을 쌓아놓은 주변에는 전날의 눈의 무게를 실감하게 하는 눈 덩이가 길 가장자리를 따라서 쌓여 있었다.


이제부터는 인간의 반격이 시작된 듯이

눈들이 전날밤의 기세가 다 꺾인 듯이 힘없이 이리저리 쓸리고 치워졌다.


처음은 한명의 환경 미화원의 빗질이었지만, 지금은 자기 집앞의 눈들을 쓸어내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눈이 오기 이전의 시간대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깨어나서 배고픔으로 울 아이의 분유를 준비한 채로 기다린던 목사의 밤이 그렇게 거리에서 치워지고 있는 눈처럼 사라져 갔다.


여전히 탁자위에는 소량의 분유가 채워진 젖병이 스탠바이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쓰임을 할지 안할지는 잠만 자고 있는 아이에게 달렸다.


이 목사는 걱정이 되었는지 다시 아이곁으로 다가 가서 포대기를 살펴 보았다.

혹시나 자신이 놓친 것은 없는지 아이의 몸을 뒤적여 보았다. 그런 손놀림이 뭔가의 단서를 주지 않겠지만, 초조함에서 오는 막연한 행동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으로 볼 때 이렇게 오랫동안 먹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새근 거리면서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진우는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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