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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를 꿈꾸는 희망녀의 방

생령을 품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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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녀
작품등록일 :
2020.05.17 08:02
최근연재일 :
2024.05.03 08:0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59
추천수 :
55
글자수 :
285,293

작성
21.03.07 09:03
조회
93
추천
1
글자
9쪽

13화

DUMMY

미영이 눈을 떴을 때,

천장에는 밝은 전등불빛들이 눈이 부시게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주위에는 여러 색깔의 사람들로 붐볐다.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도 가득차 있는 느낌이었고, 그녀의 귀로 제대로 들어오는 익숙한 언어들은 없었다.

여전히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그녀의 코 속으로 소독약 냄새같은 것이 확 들어왔다.

아마도 그녀를 이렇게 깨운 것은 그 톡소는 듯한 암모니아 냄새인지도 몰랐다.


미간을 찌뿌리면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그녀는 주위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훑어 보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상태였다.

그것도 여느 집의 침대가 아니라 철제로 된 팔걸이가 올려져 있는 침대에 하얀 색 이불이 덮힌채로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팔에는 알 수 없는 노오란 링거액이 들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면서 그녀처럼 침대위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으로 봐서는 자신이 죽어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링거액이 들어가는 팔에도 작은 찌릿함이 있었고, 그녀의 몸도 여기저기서 욱씬거리고 있었다.


눈 속에서 자는 동안에는 이런 고통이 하나도 없었는데...


죽음의 길과 삶의 길에는 고통으로 경계가 지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또다시 자신의 몸과 타협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삶이 주어진 것이다.


그녀가 둘러본 주위에는 그 치열한 삶이 있었고, 죽음과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피를 흘리면서 들것에 실려 오는 사람들.


우는 아이를 들쳐 업고는 의사의 뒤를 따라다니는 엄마의 당황한 모습.


어딘가에서 사고를 당하여 구급대원들에 의해서 실려오는 핏빛으로 물든 사람들.


그런 죽음의 경계를 향하는 사람들을 구조원. 사랑하는 사람. 의료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붙잡고 있었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모습이 그녀 시선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지금 미영이 있는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고, 어떻게 자신이 여기에 왔는지도 모른채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미영은 정신을 차리고 병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순간 겁이 먼저 났다.

혹시 자신이 잡혀서 온줄로 착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녀가 둘러본 주위에는 피를 흘리면서 급하게 옮겨지는 사람들로 붐볐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 역시 그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불리다니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기에 그녀가 혹시나 했던 생각들은 금방 지워졌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을 하였지만, 여전히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이리저리 둘러 보고 있는 사이 간호사 한명이 다가 왔다.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


미영은 무심한 듯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간호사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에 차트 같은 것을 들고 그것을 훑어 보면서 말했다.

미영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보다 차트에 뭔가를 적어내려 가느라, 그리고는 다시 끊임없이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불려갈 준비를 하느라 그녀의 하얀 색 유니폼에서 미영은 따뜻함이나 여유는 느낄 수가 없었다.


“네, 그런데 제가 왜 이곳에 누워 있나요?”


미영은 그 간호사만은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말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기대를 품은 눈빛을 담아서 말했다.


“길에 쓰러진 당신을 어떤 남자 분이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어요. 기억 안나세요? 그리고, 그 분이 아가씨와 상관이 없으면서도 친절하게 수납도 해 주셨고요. 요즘엔 참 보기드문 휴머니즘이죠. 그런데 이런 몸 상태로 어디를 가려고 하신거예요. 위험하게....”


책망하는 눈빛이 역력한 시선을 이제는 아예 미영에게 내리 꽃으면서 말했다.

하얀 색 유니폼에서 느낄 수 있는 위압감같은 것이 생겨 간호사인 그녀에게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하다가 들킨 듯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게.....”


미영은 간호사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얼버무리고 있었다.

그것을 더 이상 기다리면서 들을 시간이 없다는 듯이 간호사는 자신이 해야 하는 말을 했다.


“오늘은 여기 계시고 내일 다시 산부인과 진료를 받도록 하세요.”


“산부인과요?”


놀라는 미영의 눈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주위를 둘러 보면서 다음으로 이어져야 하는 그녀의 동선을 확인하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간호사는 미영에게 아주 형식적이고 사무적인 언어들은 쏟아 냈다.


“설마, 당신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지요? 산모가 왜 밤에 눈오는 거리에 쓰려져 계셨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선생님의 진찰을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에는 환자에 대한 걱정은 없었고, 더 이상 묻지 말고 쉬기나 하라는 조금의 피곤한 목소리였다.


“네, 알겠습니다.”


미영은 간호사의 말을 따를 생각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지만, 실랑이를 하기 싫어서 그렇게 하겠노라 했다.

미영의 생각에 더 말을 걸었다가는 핀잔을 들을 것 같았다.


“그 남자분은 어디에 계세요?”


간호사는 미영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는 링거액이 잘 떨어지고 있는지를 한번 확인하고는 주위를 둘러 보면서 말했다.


“글쎄요? 조금전까지 이 곳을 지키고 계셨는데....”


말도 완전히 끝내지 않고서 간호사는 미영의 곁을 떠나 다른 환자들을 향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안돼. 그들에게 들키면 나도 아이도 위험해’


‘아참, 아이는 지금 없지!’


갑자기 머리를 스친 아이 생각에 미영은 자신이 한 일이 생각이 났다.

잠시 아이 때문에 우울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어디선가 쫓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니 차라리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아이와 지금 같이 있었다면 그녀는 정말이지 막막하였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온 몸으로 소름이 돋았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모든 것들을 자신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더 마음은 편한 미영이었다.

그것이 설령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기꺼이 엄마로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영은 이곳을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여전히 머리가 찌끈거리기는 했지만, 힘들게 몸을 반쯤 일으키고, 자신의 팔에 꼽혀 있는 주사 바늘을 빼버렸다.


따끔거리는 통증과 함께 한 방울의 피가 흘렀다. 미영의 팔에서 빠진 주사 바늘로 여전히 액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팔의 피를 한손으로 쓰윽 닦아 버리고는 침대 곁에 있던 외투를 집어들고 아주 조심스럽게 옷을 입었다.


몸 동작이 여전히 자유스럽지 못했고, 아랫배가 묵직하고 찌릿하게 그녀의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이 곳 응급실은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은 어떤 행동을 하던 신경쓸 여력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미영의 움직임을 누구하나 신경쓰면서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설사 간호사들에게 들켜서 저지를 당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뿌리치고 나올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기에 도둑처럼 살금거리면서 나오지는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가 자신을 작은 병원이 아니라 이런 정신없는 응급실로 데려온 것이 고마웠다.


그렇게 붐비는 틈을 타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안에는 얇은 원피스 차림에 레깅스가 전부였고, 그 위에 외투만 달랑 입고 있는 상태라서 병원 밖으로 나오자 마자 추운 한기가 바로 그녀의 온 몸으로 들어와 움츠리게 만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가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미영은 따뜻함을 느끼면서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의 보살핌으로 이 세상에 다시 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고, 그녀의 몸으로 들어오는 견디기 힘든 차가운 한기는 죽음을 택했던 그녀를 벌이라도 하는 듯이 세차게 후려치고 있었다.


따뜻한 죽음과 차가운 삶!


그녀는 지금 두가지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그녀는 외투를 두손으로 꽁꽁 여며 봤지만, 여지없이 빈틈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는 피할수 없었다.


무작정 나오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시베리아의 황량한 추운 벌판에 내동댕이쳐진 그런 기분이었다.


그녀는 따뜻한 죽음의 세계에서 버림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 곳으로 가기에는 그녀가 치르야 하는 댓가들이 더 있기라도 한 듯이.


미영의 머릿속으로 세희의 모습이 스쳤다.

지금 이순간 이 세상에서 미영을 반길 사람은 그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눈물나났다.

그곳은 갈 수 없는 곳이 되었기에 더 외롭고, 허전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잊어야 했다.


‘세희씨가 보고싶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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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5 희망녀
    작성일
    21.03.07 09:04
    No. 1

    날씨가 흐리네요. 이런 날은 짱짱한 햇살이 그립기만 합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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