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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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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최근연재일 :
2024.09.0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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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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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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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북부에서 말은 필요 없다 (5)

DUMMY

하임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현재 공작은 군대를 이끌고 북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북부를 향해 가자면 무벤을 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공작은 대륙의 가장 서쪽에서 올라오고 있고, 동시에 남부의 모든 곳에서 모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모병이 단순히 전쟁을 앞당기기 위한 것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설명하기엔 애매하지만... 어쩌면 공작은 거대한 그물을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물 말입니까?"


"예. 그물이나 혹은 띠 같은 것 말입니다. 제 생각을 말로 표현하자니 온전히 전달하기가 어렵군요. 대륙의 전체적인 모습을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본다고 생각하면 상상하기 쉬우실 겁니다.

그러니까 현재 공작은 대륙의 가장 서쪽에서 가장 동쪽의 군대를 모병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본다면 그 기나긴 행렬은 남부의 가장 밑바닥에 생긴 띠나 그물처럼 보일 겁니다. 남부 대륙을 횡단하는 거대한 띠 말입니다. 여기서 저희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그 길고 촘촘한 그물이 무벤을 향해 점점 조여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임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길버트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길버트는 리버와 루나를 한번 번갈아보았다가 일견 시무룩한 얼굴로 다시 하임을 바라보았다.


"자드가 그 거대한 그물로 포획하려 하는 것은 여기 있는 두 명의 성물 전이자와 성물을 추적할 수 있는 무녀라는 말이군요."


"제 생각이지만 아마 정확할 것 같습니다. 종합하자면 공작은 동시에 세 가지의 큰 일을 해결했습니다. 자신과 맞서던 두 세력을 한 순간에 없애버렸고, 여러분을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포위망 속에 가둬버렸습니다.

만약 여기서 여러분이 롭스 산맥 깊숙한 곳으로 도망친다면 공작은 그 사실 자체로 만족할 겁니다. 이 넓은 대륙에서 여러분들의 위치가 특정되었으니까요. 물론 산맥은 험한 곳이긴 하지만 군대를 이끌고 수색한다면 뒤지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수완이 대단한 남자입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 각각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모든 수고를 들여도 모자랄 판에 공작은 그것을 한번에 해낸 겁니다. 심지어 그는 이 모든 일을 누구의 원망도 사지 않고... 아니요, 원망은 커녕 남부 모든 이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남자는 언제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걸까요? 솔직히 말해 저는 그 계획성에 감탄이 나올 지경입니다."


길버트는 평소 많은 달변가들이 실상이 사기꾼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하임 주교는 달변가임에도 사기꾼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주교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틀린 구석이 없다는 사실이 길버트를 적잖이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회의실의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할 무렵 불쑥 토비가 우렁차게 외쳤다.


"이놈들아! 더는 못 들어주겠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사람들은 당황하며 토비를 주목했다. 탁자 한 켠에 앉은 토비는 팔짱을 낀 채 한쪽 다리를 꼬고서 회의장 내부를 한번 죽 둘러보았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짧은 탓에 중심을 잡기가 꽤나 어려워 보였지만, 토비는 어째서인지 그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길버트는 토비가 왜 인간들처럼 행동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토비의 자세는 인간들 사이에서 상당히 거만하게 여겨지지만 동시에 위엄을 주는 자세이기도 했다.

길버트는 작게 미소 지었다. 길버트는 토비가 자신의 말에 위엄을 얹기 위해 굳이 그런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세야 어떻건 토비의 송곳니와 팔뚝에는 언제나 위엄이 서려있다.

그때 모두의 주목을 받던 토비가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의 속담에는 낮에 움직이고 밤에 잠들라는 말이 있지."


"이 중요한 시점에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토비? 그건 당연한 말이잖아요. 게다가 그런 속담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는데요. 음, 이건 어때요?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라."


리버의 공격에도 토비는 근엄함을 잃지 않았다. 토비는 엄숙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맞아. 이건 당연한 말이지. 하지만 당연한 것들이 때론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법이야. 예를 들어서 몇 달 간의 고된 여정을 이제 막 마친 네 명의 여행자를, 몇 시간 동안 지루한 회의에 붙잡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지."


그것은 꽤나 직설적인 은유였고, 그래서 리버는 토비가 하고 싶은 말을 완전히 눈치챘다. 물론 리버가 눈치챘다는 말은 회의실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이 전부 이해했다는 말과 같다. 잠시 후 멀락이 선웃음을 띄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네 말이 옳군. 그래, 사람은 낮에 움직이고 밤에 자야 하지. 그렇고 말고. 이보게 하임, 회의는 나중으로 미루세. 우리는 손님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네. 아, 아돌프 양반. 조금만 기다려 주시게 곧 근사한 만찬을 준비할 테니..."


"그 만찬이라는 것이 수도원의 밥이라면 됐다. 우린 여관밥으로 충분해. 뭐하고 있냐 리버? 얼른 나가서 여관부터 잡자고, 이만큼 큰 도시라면 분명 근사한 맥주가 있는 여관이 넘쳐나겠지."


토비는 그렇게 말하며 당장이라도 방을 벗어날 것처럼 주섬주섬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당황한 멀락이 토비를 붙잡으려 했을 때 길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기경께서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알겠지만 여관에 머무르는 것에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도둑들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드의 카니쿨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의 아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역사적으로 적의 적은 아군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는 무벤에서 개인적으로 알아볼 일이 있습니다."


길버트의 설득에도 멀락과 테오도르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추기경들은 어떻게 멀리서 온 손님을 대접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취지로 리버 일행을 붙잡았다. 길버트는 여정을 함께한 세 명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그러고선 멀락을 향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일단 토비군에겐 수도원 음식이 영 입에 맞지 않을 겁니다. 신성구역에서는 육식을 할 수도 없을 테고, 또 금주가 원칙이잖습니까. 그 엄격한 규칙을 아돌프에게 부과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토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멀락과 테오도르는 반박하지 못했다. 길버트는 다음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제 추측이지만 루나양은 아마 목욕을 원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맞습니까?"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버트는 다시 멀락을 바라보았다.


"제가 알기로 신성구역은 기본적으로 금녀구역입니다. 따라서 이곳에는 루나양이 몸을 씻을 만한 곳이 없겠지요."


두 추기경은 그 설명에 납득했다. 두 추기경은 나이에 맞지 않게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테오도르가 갑자기 기대하는 눈빛으로 리버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수도원의 음식은 너무 심심해서 토비님에게 맞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술은 금지되어 있지요. 또 길버트님의 말처럼 루나님을 위한 목욕탕도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리버님께선 여기 머무르셔도 되겠군요?"


"어, 길버트씨?"


리버는 설마하는 심정이 역력한 표정으로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길버트는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희에겐 리버군이 꼭 필요합니다. 무벤의 물가는 상당히 비싼 편입니다. 무벤에서 정보를 얻고, 좋은 여관을 잡고, 좋은 식사와 목욕탕을 제공 받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할 겁니다. 저희들은 리버군의 허락 없이는 한 푼도 쓸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길버트의 설명에 두 추기경은 마침내 완전히 항복한 듯했다. 길버트는 싱긋 웃은 뒤에 실망한 두 남자를 달래듯이 말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슬슬 지치는군요. 하루 동안 겪기엔 너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니, 주교님의 말에 따르자면 사흘 동안의 일이라고 해야겠군요. 저희들에게 이곳은 너무 과분합니다. 몇 달 간 노숙했더니 이제 침상이 더 불편할 지경입니다. 이미 날이 저물기 시작했군요. 죄송하지만 더 늦기 전에 여관을 알아봐야겠습니다.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들은 내일 오전 중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길버트는 사제들이 더 반박할 수 없게 깔끔하게 얘기를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그 사이 토비는 이미 회의실을 벗어나 있었다. 토비는 문 바깥에 서서 '어서 나오지 않고 뭣들 하고 있냐'는 얼굴로 안 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길버트는 성직자들에게 가볍게 목례한 후에 토비를 따라 방을 나섰다. 두 남자 다음으로는 루나가, 마지막으로는 리버가 두 추기경을 향해 머리를 꾸벅 숙여 보인 후에 방을 나섰다.

회의실에 남은 다섯 명의 성직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후에도 그들은 사안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었지만 곧 시들해졌다.


"우리끼리 얘기해 봐야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도 않군."


그 말을 신호로 하임 주교가 완전한 회의의 종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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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북부에서 말은 필요 없다 (6) 24.04.22 10 0 14쪽
» 북부에서 말은 필요 없다 (5) 24.04.22 8 0 10쪽
142 북부에서 말은 필요 없다 (4) 24.04.22 11 0 11쪽
141 북부에서 말은 필요 없다 (3) 24.04.22 6 0 13쪽
140 북부에서 말은 필요 없다 (2) 24.04.22 11 0 15쪽
139 북부에서 말은 필요 없다 24.04.22 19 0 11쪽
138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5) 24.04.22 8 0 14쪽
137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4) 24.04.22 11 0 9쪽
136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3) 24.04.22 9 0 12쪽
135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2) 24.04.22 10 0 17쪽
134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1) 24.03.10 13 0 17쪽
133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0) 24.03.10 12 0 12쪽
132 익숙한 것과 낯선 것 (9) 24.03.10 13 0 11쪽
131 익숙한 것과 낯선 것 (8) 24.03.10 7 0 17쪽
130 익숙한 것과 낯선 것 (7) 24.03.03 9 0 12쪽
129 익숙한 것과 낯선 것 (6) 24.03.03 11 0 18쪽
128 익숙한 것과 낯선 것 (5) 24.03.03 12 0 9쪽
127 익숙한 것과 낯선 것 (4) 24.03.03 7 0 12쪽
126 익숙한 것과 낯선 것 (3) 24.02.23 14 0 19쪽
125 익숙한 것과 낯선 것 (2) 24.02.23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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