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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마루] 님의 서재입니다.

용언 쓰는 잠입 경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김윤
작품등록일 :
2024.07.17 10:19
최근연재일 :
2024.08.28 19:0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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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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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수 :
228,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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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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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삼거리 전쟁 (4)

DUMMY

44. 삼거리 전쟁 (4)


내가 반장님을 피한 건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반장님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서? 아니, 그런 건 이우람을 통해서 바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정강의 사냥개가 되어 일하는 중에 만났다가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아니, 어차피 내가 죽일 놈이고 적송에서의 내 안위 같은 건 따지고 있지도 않았으니 상관없다.

그렇게 남은 이유는 딱 하나.


“죄송합니다.”


죄송해서 죽을 것 같다.

새림 아파트 단지 공사 현장에서 난 그를 버리고 정강을 죽이러 갔다.

그 딱 하나의 선택이 지금 여기까지 오는 길을 바꾸진 않았겠지만, 그 딱 하나의 선택이 너무나 큰 잘못으로.


“그날, 놓고 가서 죄송했습니다.”


내가 떳떳하지 못한 이유로 남아 그랬다.

면구 없으니 나는 꾸벅 인사를 한 뒤 다시 자리에 앉을 따름이었다.


치이익-


언제나처럼 아무런 대화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언제나처럼, 내가 올 줄 알고 미리 구워둔 고기들이 맛있게 익어갔다.

그런 맛있는 침묵을 먼저 깬 건 반장님이었다.


“이우람이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아주 웃겼겠어, 응?”

“···이우람은 안 온 겁니까?”


“따로 내가 시킨 일이 있다. 나야 적송에서 함부로 건들 순 없어도 이우람이는 아니니까, 잠깐 쉬게 뒀지.”


또 식구들을 가장 우선으로 챙기고 있는 건가.

그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진 않았다.

마치 웃는 법을 잃어버린 것처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지 벅찼다.

피가 손에 아직도 묻어 있다.


적송에 들어가고 그 잠깐 사이, 정말 많이도 구르고 다녔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받아라.”


반장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술만 따랐다.

나 역시 그것만 받아 마셨다. 마시면 마실수록 분노가 가라앉는다.

피가 씻긴다.

애써 날 쓰러뜨리지 않게 목에 채워 뒀던 날카로운 자기혐오의 가시들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사냥에서 돌아온 사냥개가 다시 목줄을 차고, 집에 들어와, 가족과 쉬는 느낌.

안락함.


그런 것이 멍하니 흐렸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치이익-


말을 못 하겠다는 내 말에 반장님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마 반장님도 나와 비슷하려나.


치이익-

그렇게 고기만 익어가고 있는 와중에 반장님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우람이가 날 구했다.”


그래, 그랬었겠지. 분명 이우람이 반장님을 죽이라는 명령을 들었다면 내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놈은 내게 말하지 않았고, 명령을 거부한 게 오로지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일을 핑계 삼아 날짜를 미뤘다.


그렇다면 내가 현장에 나가 있는 사이 반장님을 구하러 돌아왔을 것이다.


“······.”


그리고 그게 꼭 ‘너는 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니?’하고 책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괜히 적송의 뱃지만 더 반짝거리는 느낌이었다.


“저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인 걸까.

이것도 빛이 산란해서 생기는 신기루 비슷한 거려나.

그렇다면 술김에 묻고 싶다.


‘반장님도 혈석 실험에 관여했습니까? 아니죠? 저 그놈들 증오합니다. 이 스킬이라는 저주도 그렇고. 반장님도 그랬죠? 그래서 본사에서 팽 당하고 이런 노가다 사무실이나 관리하고 있는 거죠? 대답해 봐요. 아니면 묻기라도 해요. 왜 내가 적송 본사로 들어간 걸 뭐라고 하지 않는 겁니까, 내가 적송도 함께 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정녕 모르는 겁니까······?’


적송은 이제 내 분노의 대상이다.

어쩌면 내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느꼈던 반장님에 대한 죄책감, 의심, 그리고 그 어떤 ‘싫어해야 할 대상이 분명하지만 절대 싫어하고 싶지 않은’ 그 멜랑콜릭한 감정이 내가 반장님을 찾는 걸 거부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저는······.”


유 팀장과의 벽이 다시 한번 반장님과 나 사이에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주 보고 앉았던 유 팀장과 달리 반장님은 그 벽을 넘어 내 옆자리에 있다.

반장님은 또 툭, 하고 정답을 뱉을 따름이었다.


“힘들지?”

“······.”

“구르고, 더 더러워지고, 용을 쓰는데도 제 뜻대로 되진 않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내가 이 녹진한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 술이나 좀 마시면서, 쉬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또 한 번. 반장님은 그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저기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계인 관리국 예쁜 인간 처자한테는 네가 내 사냥개가 된 건 말 안 했다.”

“예?”


“그냥, ‘브로커’랑 ‘소모품’ 사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도록.”


나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하지만 얼어붙었다는 표현을 쓰기엔 마음이 너무 따듯해 견디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설마.”

“너 경찰인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 공사 현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반장님은 내가 경찰에 속한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필이면 경찰과의 인연을 털어 내 버린 지금 듣고 말았다.


“아, 아닙니다.”


꼬였다.

그것도 너무나 꼬여버렸다.


“그게 아녜요, 저는······.”

“네 출신이 어떻고 하는 건 이제 의미 없다는 거지? 그것도 알긴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너도 그냥 들어라.”


반장님은 꼬여버린 인과를 천천히 풀어내듯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네 이력서 보고, ‘정’ 씨인 거 보고, 보육원 출신인 거 보고. 지레짐작만 했다. 싹수가 보이는 놈이라 어떻게든 우리 적송이랑 안 엮기게 하려고도 해봤고. 근데 말을 쳐 들어야지.”

“그래서 그날, 삼해 폐화물선 거래에서 절 배제하신 거예요?”


“그래. 근데 분명 목소리를 들었거든.”


이우람은 반장님께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이유는.


“분명, 고통이 멈추는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 스킬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내 스킬은 식구끼리 고통을 나누는 거 아니냐. 물리적인 상처 말고, 여기. 마음이 찢어진 것도 대략적으로다가 나눌 수 있거든.”


분명 느꼈다.

나 역시 반장의 스킬을 받았을 때 그의 고통을 이해했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럼 왜 저를······.”

그리고 또 역시나, 반장님은 정답을 말했다.


“식구잖냐.”


식구를-


오크들이 외치던 그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다들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술잔을 나누던 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 내 예전 현장에서 갇혀 있다 풀렸을 때, 나도 각오했다.”

“예?”


“네가 지금 뭘 하려는 건지 안다고.”


반장님은 또 술을 마셨다.

이모의 스킬인 것인지, 술은 따라도 따라도 비워지지 않았다.

그게 꼭 반장님의 아주 깊은 속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삼거리 전쟁이란 거, 들어봤냐?”

“아, 아뇨.”

“하긴 네가 태어나기 전인가? 뭐 여기 저 커다란 경찰서가 없던 그때쯤 이야기니까.”


“······.”

“과거에도 지금이랑 똑같이 삼거리에서 전쟁이 있었다.”


그는 쓴 것을 마구 삼켜내며 겨우 말을 이었다.


“적송이 자리를 잡을 무렵, 청두파의 견제가 들어왔고. 정강이는 혈석 실험을 강행했지. 난 그걸 막지 못했어. 대신에 덮었다.”


“덮었다고요?”

“청두파한테 실험실을 내줬지. 그걸로 이런 몸이 되긴 했지만.”


반장님이 여기 이렇게 유배된 이유.

그게 바로 그가 혈석 실험을 청두파에게 넘긴 것 때문이라는 사실이. 내겐 큰 위로였다.


“아무튼 그걸 되찾겠다고 우리 오크들이 싹 다 일어났다. 아니, 묻으려 했다는 게 더 맞겠지.”

“반장님도 전쟁에 나서셨군요.”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반장님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랬다.

과거, 여기 2구역 삼거리에서 청두파와 적송, 그리고 경찰이 한 번에 묶였던 전쟁이 있었다. 그들은 혈석 실험에 관한 이해관계에서 마찰이 있었고 싸움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의 폭동.

반장님은 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것이다.


“그때 전쟁을 막는답시고 내가 경찰에게 정보를 흘렸지. 덕분에 정강이가 잡힐 뻔했고, 해외로 철강 사업을 맡아 뜬 거야.”

“자, 잠깐 경찰이라면······.”


“그래, 유지혁이.”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왜, 반장님을 처음 ‘브로커’라며 소개해 준 게 바로 유 팀장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다시 말하지만, 너 경찰인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하아 시발.

눈물이 다 나네.


쿵-


나는 반장님의 술을 빼앗아 먹고 그대로 내려뒀다.


“왜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날 구했냐. 왜 위험을 감수했냐. 왜 지금 이런 좆같은 상황에서조차 날 탓하지 않는 것이냐 묻고 싶었지만.


“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신 겁니까?”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이것이었다.

난 그가 필요했으니까.


지금 혼자가 되어버린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뿐이었다.


“새끼, 이번 일에서 너 뒤 봐주면 난 그냥 죽는 거야. 식구를 배신한, 부족의 도망자가 되겠지. 그래서 나도 몸 좀 피해 있으려고 한다.”

“어디로요?”


“이 상황에서 경찰 끄나풀한테 그걸 알려 줄 것 같냐? 당치도 않지. 이우람이한테도 너에 관한 건 전부 말 안 할 거니까 그냥 은퇴한다고······.”


그때였다.


띠링-


차혜정이 들어와 반장님의 눈치를 보며 내게 귓속말했다.


“박경석이 출두하는 날 알아냈습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하나 전송하며 내게 속삭였다.


“당장 내일입니다.”


#


경찰 출두가 정해진 마당에,

박경석은 연안부두에 있는 횟집에서 여유롭게 회를 먹고 있었다.

물론 위장 경찰이 한가득한 상태였지만,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가게 내부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박경석은 그들이 들으라는 것처럼 혼잣말을 시작했다.


“초장집에는······.”


위장 경찰들은 일제히 젓가락질을 멈췄다. 빨리 움직여야 적송이 반응할 수 없다며 날짜도 알려 주지 않은 놈이, 마치 경찰을 부리는 것처럼 횟집까지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한 놈이, 저 미친놈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였다.


“그냥 횟감 가져와서 썰어 주면 아무거나 먹고 상차림비 받고 그럽니다. 역사와 전통적으로 우리 인간들이 만든 좋은 풍습이지요. 그런데요.”


꿀꺽-


“이렇게까지 내가 상을 푸짐하게 다 차려놨는데, 오크 대가리를 딱 들이밀면 어쩌라는 겁니까?”


그 역시 오크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그를 무척이나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비린내 나게 시리.”


그는 잠시 횟감을 이리저리 보다가 말을 이었다.


“사장님. 여기, 총 한 자루만 구해줘요.”


삼거리 전쟁을 다시 일으키기엔 총 한 자루면 충분하겠지. 그리고선 회를 참 맛있게도 먹어 치웠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으니, 그 누구도 믿지 않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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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24.08.07 27 0 -
공지 안녕하십니까, 연재 업로드는 주 7일 19시 입니다. 24.07.17 50 0 -
45 45. 삼거리 전쟁 (5) 24.08.28 7 0 11쪽
» 44. 삼거리 전쟁 (4) 24.08.27 9 0 11쪽
43 43. 삼거리 전쟁 (3) 24.08.26 12 0 11쪽
42 42. 삼거리 전쟁 (2) 24.08.25 13 0 11쪽
41 41. 삼거리 전쟁 (1) 24.08.24 15 0 11쪽
40 40. 입단(入團) (8) 24.08.23 17 0 11쪽
39 39. 입단(入團) (7) 24.08.22 23 0 11쪽
38 38. 입단(入團) (6) 24.08.21 21 0 11쪽
37 37. 입단(入團) (5) 24.08.20 22 0 11쪽
36 36. 입단(入團) (4) 24.08.19 25 0 11쪽
35 35. 입단(入團) (2) 24.08.18 23 0 11쪽
34 34. 입단(入團) (2) 24.08.17 28 0 11쪽
33 33. 입단(入團) (1) 24.08.16 31 0 11쪽
32 32. 양쪽에 걸친 24.08.15 39 0 11쪽
31 31. 전쟁의 서막 24.08.14 39 0 11쪽
30 30. 휘몰아치는 (5) 24.08.13 38 0 11쪽
29 29. 휘몰아치는 (4) 24.08.12 35 0 14쪽
28 28. 휘몰아치는 (3) 24.08.11 37 0 12쪽
27 27. 휘몰아치는 (2) 24.08.10 37 0 11쪽
26 26. 휘몰아치는 (1) 24.08.09 42 1 11쪽
25 25. 큰일 (3) 24.08.08 42 0 11쪽
24 24. 큰일 (2) 24.08.07 43 1 11쪽
23 23. 큰일 (1) 24.08.06 45 0 11쪽
22 22. 혈석 (7) 24.08.05 47 0 12쪽
21 21. 혈석 (6) 24.08.04 56 0 11쪽
20 20. 혈석 (5) 24.08.03 52 1 11쪽
19 19. 혈석 (4) 24.08.02 5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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