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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마루] 님의 서재입니다.

용언 쓰는 잠입 경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김윤
작품등록일 :
2024.07.17 10:19
최근연재일 :
2024.08.28 19:0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598
추천수 :
65
글자수 :
228,931

작성
24.07.17 18:00
조회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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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1쪽

1. 시시한 이야기

DUMMY

1. 시시한 이야기


좆같은 비가 내렸다.

싸아아, 하고 시원하게 퍼붓는 것도 아니고.

안개처럼 흩날리는 거라 우산을 써도 얼굴에 다 맞았다.

하는 수 없이 우산은 접고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칙- 치칙-


라이터 부싯돌에 가득 낀 습기 때문에 불도 붙지 않았다.

회색으로 젖은 담배는 축축했다.


“후우······.”


꺼내던 담배를 정장 안주머니에 찔러 넣고 그대로 길을 나섰다.


“가자.”


커다란 그림자들이 날 따라 짙게 깔렸다.



#



목적지까지 오는 길은 늦은 밤이라 그런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런 데 오는 길이 붐비면 그것도 나름 세상 망할 징조이긴 하지.


통칭, 버려진 2구역.


고개를 들어 건물에 마치 따개비처럼 달린 더러운 간판들을 훑었다.

빨간 불들 전부 조잡스럽게 빛났다.


“······.”


그 와중에 불이 꺼져있는 유일한 곳은 3층.


이름도 없는 유흥 바,


오늘 내가 가야 하는 목적지였다.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왔다.

오래된 건물도 아닌데 복도엔 지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띠링-


가게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아까 못 피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바텐더는 내게 술을 내오기는커녕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일어나, 이제부터 나랑 시시한 이야기나 좀 하자.”


칙- 치칙-


불은 여전히 잘 붙지 않았다.

미약하게 연기만 나는 담배를 재떨이 위에 올려 두기만 했다.

그게 꼭 향초처럼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고 싸운 흔적이 완연한 테이블 위에서.

남아도는 술을 가져왔다.

컵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깨진 게 전부라 병째 한 모금 마셨다.


“세상이 대충 망해버리고 다시 정상화되기까지 50년.”


혼자 중얼거리기 삼삼했던 나는 고개를 푹 숙인 바텐더를 바라봤다.

축 늘어진 붉은 머리칼이 구불거리고.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댄 게 꼭 술 먹고 뻗은 것 같아 보였다.

그녀는 귀가 뾰족하고 긴 ‘요정’이었다.

여기 지구와는 다른 이세계에서 온.


“너희가 우리 세상으로 건너오고 나서 50년이나 지났어.”


정부에서 이르기론 ‘대통합의 계절’이라 불렸다.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핵은 두 번이나 터졌고 중동 쪽은 아직도 전쟁 중이야.”

“······.”


이세계에서 건너온 ‘이계인’들은 모두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영화나 소설, 상상 속에만 등장하던 종족들이 마법을 부리고.

죽어도 죽어도 끝도 없이 소환되는 언데드나.

이세계의 신이 직접 신도의 몸을 빌려 강림해 전쟁에 임한다고 상상해 보라.


“하, 그래도 다행인 건 드래곤 브레스보다 핵이 더 강력했던 점이랄까?”


하지만 그들 모두 인간의 기술력에 무릎을 꿇었다.

마법은 총을 이기지 못했고.

언데드도 총을 이기지 못했으며.

이세계의 신이 강림했어도 총을 이기지 못했다.

드래곤은 핵에 맞아 바다 한 가운데서 터져 죽었고.

이계인이 ‘용사’라고 부르던 것은 탱크째로 밀어버려 시체도 수습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이곳 역사에서 침략이란 건 오로지 인간만 누릴 수 있는 권리거든.”


그렇게 50년, 인간은 이계인을 관리했다.


당연히 인간 중심 사회적인 종족 차별은 이어졌고.

이에 반발하듯 각종 이계인 관련 범죄는 도무지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기승을 부렸지만.

결국 이런 식의 평화가 찾아왔다.

흩날리는 빗속에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리의 무거운 침묵 같은.

회색으로 축축하기만 한 방식으로.


덜그럭, 툭-


나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손가락 마디 만 한 붉은 돌을 꺼내 바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러니 지금은 이게 너희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지.”


혈석(血石)


이계인들의 말을 그대로 해석한 것이긴 했지만.

아무튼 피처럼 붉은빛을 띠며 흉흉한 기운을 뿜는 작은 돌멩이.


이계인들의 기술과 장비를 사용하는 에너지원이자.

인간의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현시점 최고 효율 등급 연료였다.


“당연히 부르는 게 값이었을 거야. 하지만 난 이게 너희를 이렇게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해.”


나는 혈석을 테이블에 갈 듯이 비볐다.

건설 현장 유리 분진처럼 지저분한 가루가 테이블에 남았다.

그제야 바텐더는 잠에서 깬 것처럼 몸을 떨었다.

하긴, 상태 멀쩡했더라도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 드디어 일어날 생각이 들어?”


연료고 나발이고 이건 ‘마약’이다.

그것도 이계인이 죽고 난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품 마약.


“이 앞 사설 도박장 점주가 다 실토했어. 여기서 얻은 물건이라고. 물론 우리 쪽에서 관리하는 가게나 나이트, 클럽에서도 몇 차례 신고가 있긴 했는데 여간 입들이 무거워서 말이지.”


요정 바텐더가 이렇게 된 건 그냥 ‘꼬리 자르기’였다.

암암리에 ‘우리 쪽’ 몰래 혈석을 유통하고 있는 놈 중에.

규모가 어느 정도 큰 조직에선 트러블을 일일이 처리하기보다 말단 쪽에서 서로 일러바치게 만드는 거지.

만약에 일이 잘못되더라도 유통 루트 추적 없이 끝날 수 있는 일이니까.

아, 사설 도박장 점주는 리자드맨이었으니 정말로 ‘꼬리 자르기’라고 할 수도 있겠네.


“아무튼 그래서 찾아온 거야. 이거에 중독된 인간 중 몇몇, 이계 인자가 발현된 소수는 너희들처럼 ‘스킬’을 갖게 되니까 정부고 기업이고 다 규제하는 거지. 생각해 봐 이 작은 돌멩이 하나 때문에 거리마다 불 뿜고 벼락을 부리는 인간들이 들고 일어나서······.”

“여, 여기는 뭐죠? 당신은 누구예요?”

“······.”


나는 바텐더 쪽은 쳐다보지 않고 남은 술을 마셨다.

담배는 혈석을 굴리다 구른 것인지 테이블에 넘치는 핏자국에 절여진 지 오래였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 그 담배를 주워 멍하니 테이블만 툭툭 두드렸다.

바텐더가 일어나니 도저히 봐주기 어려워 그랬다.


“제가, 제가 어떻게 된 거죠?”

“이게 내 스킬이야.”


그녀는 복부에 칼을 맞은 상태였고 짐승에라도 물린 것처럼 목이 반쯤 떨어져 나가 있었다.

참으로 끔찍한 광경이긴 했지만, 뭐······ 일해야지.


“넌 죽었어.”


스킬을 사용한 여파로 붉게 물든 내 눈이 술병에 비쳤다.

마치 혈석 분진이 날리는 것처럼 얕은 기운이 두 눈을 통해 발산됐고 혀는 불에 타듯 연기를 내며 뜨거웠다.


“후우.”


열이 더 오르기 전에 연기를 손으로 헤치며 서둘러 스킬 사용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나, 나는 몰라요. 그건 우리 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알아. 네 남편도 이런 식으로 만나고 왔으니까. 혈석은 어디서 받은 거야?”

“너······ 경찰이야?! 이런 짓을 하고도, 아니······ 난, 난 애한테 가려다가 가게에 들러서······ 경찰을 만났었는데?”


‘벌써 고장인가.’


“경찰이, 경찰이 날 보호해 준다고 했는데 난 왜······ 왜 죽은 거야?”


고장, 바텐더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끔찍한 스킬에 당한 모든 사람은 거부 반응을 일으켰고.


“네, 네가 죽인 거지······?”


이렇게 폭주하기 시작한다.


“진정해. 내가 그런 게 아니야. 혈석의 출처만 확인하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아무쪼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주, 죽어!!!”


쾅!


바텐더는 목이 떨어져 나간 상태로 테이블을 넘었다.


“이런.”


그리고 날 잡아 죽이려는 것처럼 뒹굴고 그 얇고 처량한 손을 뻗었다.

하긴 나라도 갑자기 내가 죽었다고 하면 그 말을 한 누구든 죽이고 싶겠지.

나는 저항하지 않고 그녀가 내 목을 조르는 걸 허락했다.


“유감이야······.”


숨이 막혀도 뿌리치고 싶진 않았다.

내 스킬이라는 게 꼭 나쁜 놈들에게나 잘 어울리는 부류라.

꼭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다.

아니, 나쁜 짓은 맞는 건가.

아무쪼록 나 같은 놈은 벌을 받는 게 더 옳은 일일 테니까.


“요정이면 좀 차분하게 대화로 하지? 그게 아니면······,”

“시끄러워!!!”

“그게 아니면······ 제대로, 좀 더 손가락에 힘을 줘.”


까드득-


얇고 보잘것없는 손가락이 금방 내 목뼈를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

이계인들은 이렇게나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나, 나는 그냥 우리 애랑 살 집을······.”


그래서, 늘 ‘조직원’들이 내 곁에 대기할 수밖에.


콰직-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내 앞에 있던 바텐더의 머리가 말 그대로 터져 버렸다.

피가 바깥에 내리는 비보다 더 많이 내 얼굴로 쏟아졌다.


“괜찮으십니까, 형님?”


내 목숨을 구해준, 이름 모를 부하가 날 일으켰다.


“그래.”


그 덩치만 큰 오크에게 몸을 의탁하며 답했다.


“오늘이 처음이야?”

“······.”

“일할 땐 들어오지 말랬잖아.”

“크, 큰형님께서 따로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내가 맞은 피처럼 붉은 피부를 가지고 나보다 30cm는 더 큰 주제에 벌벌 떨고 있었다.


“됐다, 가자.”


나는 피를 닦지 않고 건물을 나섰다.

거기엔 건장한 오크 다섯이 검은 차를 대동하고 준비 중이었다.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당연히 불은 붙지 않았다.


“하아, 좆같은 비.”

“제, 제가······.”


날 구해준 오크가 그 작은 우산을 불편하디 불편하게 들고서 불을 붙여줬다.

그 험악한 면상을 흠칫 보고 깊게 빨아들였다.

혈석이 묻었던 건지 메케한 향이 났다.


나도 지금은 저들처럼 붉은 피부를 가진 채일까? 괜한 헛웃음이 났다.


“가자.”


털컥-


오크들은 날 모시는 티를 팍팍 내며 차를 둘러쌌다.

날 구해준 오크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렇게 그대로 타려다 잠시 멈췄다.


“그러고 보니 너 이름이······?”

“현석입니다, 작은형님. 큰형님께서 오늘 한국 돌아오시고 절 따로 불러 보내셨······.”


그때였다.


빠아아아앙-!


어디서부터 꼬리가 밟힌 건지 승합차에서 복면 쓴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다.

인원수를 보니 아주 제대로 작정하고 온 모양이었다.


“후우······.”


담배 하나 피우기도 참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가지고 ‘복수’는 언제 할 수 있는 거지?

잠시 무거운 머리를 흔들었다.

차에서 내렸고 비를 맞았다.

그렇게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네가 누구인지 잊지 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중에, 복면이 차 트렁크에서 쇠 파이프를 꺼내며 내게 물었다.


“거기! 오크 깡패들 대장 쪽이 ‘정우’ 이사님 맞지?”


유감이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경찰이자 언더커버 요원으로 뒷세계에 잠입.

깡패짓하며 구르다 결국 이 자리까지 올라서도 복수만 바라고 있는.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스스로 정하지 못한 한심한 놈.

딱, 그 정도가 나였다.


“정말로 시시한 이야기야······.”


장초를 밟아 끄며 생각을 이었다.

내가 왜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복수한다는 일념 하나로 이 저주와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수치스럽게 살았고 더러운 일을 했다.

또 많이 죽였다.

결국 이 자리까지 올랐고.


“현석아.”

“예, 형님.”

“빨리 정리하자.”


이제 복수가 코앞이다.


“큰형님 기다리실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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