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마야마루] 님의 서재입니다.

용언 쓰는 잠입 경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김윤
작품등록일 :
2024.07.17 10:19
최근연재일 :
2024.08.28 19:0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605
추천수 :
65
글자수 :
228,931

작성
24.08.23 19:00
조회
17
추천
0
글자
11쪽

40. 입단(入團) (8)

DUMMY

40. 입단(入團) (8)


처음부터 ‘거래’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긴, 그간 청두파와 적송의 관계를 아주 조금만 생각해 봤다면 수상하다는 낌새를 바로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정산이 그날 무너지던 배 안에 있었던 것만 봤어도 청두파가 그의 신병을 확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위압감을 조금이라도 떠올렸다면······.’


만약 그가 살았다면 인간 선에서 처리할 수 없다고, 그러니 쉬이 청두파를 따라갈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보다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위압감을 떠올리는 걸, 그 순간을 떠올리는 걸, 그리고 내 스킬을 떠올리는 걸 본능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치직- 칙-!


새림 아파트 단지 건설 현장은 빠르게 정리됐다.

적송의 오크가 공사 현장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와 모든 인간을 내쫓았다. 그곳에 있던 부랑자들도 청두파 놈들도 신원 확인은 어려운 터라 사상자가 있어도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다.


처음부터 그걸 노린 거겠지.

정산이 사라진 지금, 정강은 자신이 회사를 집어 삼키기 위한 첫 단추로 이번 일을 기획했고.

나는.


“후우.”


놀아났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툭-


텅 빈 내 사무실, 나는 이용당하고, 또 혼자였다. 차혜정은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우람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시발.”


그렇게 굴렀는데, 반장님을 구하는 것도 정산을 확실히 처리하는 것도 하지 못했다.

세 명이 모여 짰던 계획은 송두리째 날아갔고, 정강은 이번 일을 통해 내부 스파이를 철저히 뿌리 뽑겠다는 입장을 공고이 하며, 돌아온 탕자가 격변하는 시기에 적송이 남긴 유일한 오점을 지웠다는 명분도 가져갔다.

그리고.


“또 나를 이용할 거고.”


모든 현장이 정리되고 그는 나를 불러다 이렇게 말했다.


‘박경석이 출두하는 날에 가서 죽여라.’


선택권은 없었다.

그저 던지기. 사라진 반장이나 이우람을 아끼는 마음이야 알겠으니까 그들이 무사히 살아 숨 쉬는 것을 넘어 적송의 ‘터치’가 없는 선으로 끝내 줄 테니.


“가서 죽으라는 거지.”


경찰들이 한가득인 상태에서 박경석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상참작이 될까? 아니, 원래 경찰 신분인 언더커버이니 이 일도 그 일환이라며 날 보호해 줄 내부자가 있을까?

그런 질문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봤다.


같은 방향을 가진 이들은 아무도 없이, 이 길의 끝에서 나는 또 혼자였다.


“후우······.”


하지만, 쉽게 당해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어차피 내 목적은 적송이든 청두파든, 이계인들로 인해 힘을 갖게 된 이 사회의 쓰레기들을 전부 치우는 것이니까.


그렇게 나 같은 인간도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러니, 살아남는다.


철컥-


나는 딱딱한 가방에서 차혜정이 남겨둔 노트북을 꺼냈다.


‘분명 혈석 연구 결과를 찾았다고 했는데······.’


폴더를 뒤졌다.

차혜정이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가 어떤 형태로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내게 남겨진 수는 이것뿐이었으니까.


“찾았다.”


그렇게 최근 다운로드 파일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작성자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김상태.”


혈석 덩어리를 우악스럽게 처먹고 리자드맨이 됐던 간부, 가장 똑똑한 놈.

성동병원에서 혈석 관련 실험을 이어가던 놈이 어째서 이번 현장과, 그것도 반장님이 현역으로 일할 때 관리자로 있던 현장과 관련이 있는 거지?

이것 외에도 무수히 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게 바로 적송이 지우고 싶었던 오점이라는 걸.


“하.”


그렇게 모니터의 불빛이 차올랐고.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걸 얻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쓰레기 새끼들이······.”


모니터를 닫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

생각이 너무 넘쳐서 불을 붙이는 것도 까먹을 지경이었다.

라이터를 쥔 손이 달달 떨리고만 있다.


“후우.”


머리를 쥐어짜듯 감싸고 두 눈을 비볐다.

복잡하게 꼬이고 엉켰던 모든 일들이 한 점으로 모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딱 한 가지, 한 가지 감정만이 차올랐다.


“복수.”


나는 정강이 준비한 칼이 아니다.

그렇다고 경찰로서, 아니면 깡패로서도 이번 일을 진행하지 않겠다.

이건 개인적인 복수일 뿐이니까.


“제 손에 든 칼이 제 목을 노릴 줄은 생각도 못 할 거야.”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나는 내일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 위해.


“그러니 목 닦고 기다려라.”


또 ‘내 일’을 준비하기 위해 잠을 청했다.


#


한편.


“그러니까 이 파일이 혈석 연구 결과 보고서고, 그 내용은······.”

“충격적이죠.”


그 누구도 이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지하실.

유 팀장은 차혜정이 출력한 혈석 연구 결과 보고서를 검토 중이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 내용은 사회에 알려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하아······.”


처음부터 이상했다.

혈석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청두파는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일까.

이계인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다는 죄책감에?

그런 걸 기대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지 않은가?


“하긴, 그건 우리 경찰도······.”


하지만 그건 이제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청두파의 보스 박경석이 경찰 윗선과 커넥션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된 유 팀장은 독자적으로 일해야 함을 깨달아 이곳을 떠나지 않은 것이니까.


‘경찰 역시 혈석에 대한 정보를 풀지 않고 자신들이 이용하려는 쪽인 거야.’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이 정보가 통제되고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보고서 안에 있었다.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저희?”

“네, 대리님도 이 사실을 아셔야······.”

“아, 아니.”


유 팀장은 차혜정에게서 받은 보고서를 잘 정리해 품에 넣었다. 그는 마치 쓴 것을 마신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진 채 말했다.


“대리에게는 정보가 많이 없을수록 좋아요. 특히나 이런 종류는.”


유 팀장은 차혜정이 혈석 연구 결과를 정우에게 준 사실을 모르고 이리 말했다.

정우를 신뢰하지만, 이제 정우는 혼자가 되었다.

완전히 적송에 들어갈 것이며 그가 이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 지금은 예상하기 어려웠으니까.


그 정도의 정보다.

하지만.


‘왜 알리시지 않는 거지?’


차혜정은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 정도의 정보를 왜 정우에게 알리지 않으려 하는 것인가?

정말로 유 팀장은 정우와 자신을 그 배에서 죽이고 덮으려 했던 걸까?


무언가 더 비밀이 있는 건가?

아니, 이건 비약이다. 차혜정은 고개를 젓고 유 팀장에게 경례했다.


“미안합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렇게 차혜정이 지하실을 나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뒤.

유 팀장은 지하실보다 더 아래. 더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갔다.

진짜 비밀이 있는 곳으로.


또각-


“이 보고서가 작성된 시기는 아직 반장이 현장에서 뛸 때야.”


그렇다는 건 반장도 혈석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 보고서가 발견된 현장은 그의 관리 안에 있었으니까.

즉, 말하자면.


또각-


“적송 역시 혈석 실험을 주도했다.”


유 팀장은 내부 벙커의 해치를 열고, 들어갔다. 그곳은 마치 병실과 같았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당신은 이 일을 알았습니까?”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살아 있는 정산이었다.

그날, 삼해의 폐화물선이 난파되고 그곳으로 유 팀장이 갔었다. 아무렴 그의 부하들이 그곳에서 미사일을 맞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겨를이 없긴 했지.’


이성적인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결국 경찰보다 먼저 도착했고. 그곳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정산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그의 목을 구한 게 바로 유 팀장이었다는 소리였다.


“당신이 없으니 일이 더 이상해지고 있어요.”


개의 목줄이 풀리니 개가 날뛴다.

오크라는 강력한 힘을 가진 개들이.

정산은 그 목줄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당신이 살아 있는 편이 나으니까.”


유 팀장이 기획하고 계획했던 ‘벌목 작업’ 그 작전에 당해야 할 건 미쳐 날뛰는 오크들이 아니라, 하나로 뭉친 범죄 조직 오크여야만 한다.

그렇게 전부 소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무사히 일어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는 보고서를 침대 옆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일어나서 죗값을 치러야지요.”


그렇게 유 팀장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병실을 나섰다.


“······.”


또 그래서, 정산이 두 눈을 뜨는 것을 보진 못했다.


#


두 눈을 뜨고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넥타이를 따로 매진 않았지만, 왜인지 제대로 의복을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이 거대한 빌딩 아래로 들어가기 전에.


칙- 치직- 치지직-


“후우······ 거지 같은 라이터.”


담뱃불도 붙지 않는 걸 보니 앞으로 있을 일들이 아주 거지 같을 거라는 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호랑이 굴, 아니 오크 굴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또각-


구둣발 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그냥 건실한 회사의 빌딩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물론 이곳에 있는 모두가 붉은 피부라는 점만 빼면.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기.”


오크들 다섯 정도가 입구부터 막았지만, 카라에 끼운 적송의 배찌를 보더니 그냥 물러갔다.

하긴, 이걸 인간이 달고 있는 모습은 임해찬 부장 정도밖에 보지 못했을 테니 나도 그 정도 급이라 생각한 거겠지.


또각-


하지만 본사로 들어왔어도 나는 말단 중에 말단일 뿐이다.

앞으로도 올라갈 일만 남은 거라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중에 생각했다.


“하.”


이렇게까지 올랐는데 아직도 바닥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또각-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 바닥에 들어온 이상 반드시.

입단(入團)한 이상 반드시.


“어, 그래 정 실장?”


뿌리 뽑는다.

이 세계의 악의(惡意)를.


“입사 첫날부터 사장실에 불러서 좀 놀랐지?”

“아닙니다.”

“나도 놀랐어. 여기 봐라, 우리 형님이 쓰던 것들이 사방 천지에 떼가 아주······ 하 시발.”


정강은 골프채를 휘두르며 서류든 물건이든 마구 떨어뜨린 상태였다.

말하자면 개판이랄까.


“아무쪼록, 환영해.”


그리고 이 개판을 만든 저놈.

정강.


“감사합니다.”


혈석 실험으로 1세대를 만들어 뒷세계에 스킬 사용자를 뿌리고 나 같은 놈들 모아다 청두파에 재료로 넘긴 적송의 또 다른 사장.

이놈이 바로 내 개인적인 복수의 대상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언 쓰는 잠입 경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을 안내드립니다. 24.08.28 13 0 -
공지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24.08.07 28 0 -
공지 안녕하십니까, 연재 업로드는 주 7일 19시 입니다. 24.07.17 50 0 -
45 45. 삼거리 전쟁 (5) 24.08.28 7 0 11쪽
44 44. 삼거리 전쟁 (4) 24.08.27 9 0 11쪽
43 43. 삼거리 전쟁 (3) 24.08.26 12 0 11쪽
42 42. 삼거리 전쟁 (2) 24.08.25 13 0 11쪽
41 41. 삼거리 전쟁 (1) 24.08.24 15 0 11쪽
» 40. 입단(入團) (8) 24.08.23 18 0 11쪽
39 39. 입단(入團) (7) 24.08.22 23 0 11쪽
38 38. 입단(入團) (6) 24.08.21 21 0 11쪽
37 37. 입단(入團) (5) 24.08.20 22 0 11쪽
36 36. 입단(入團) (4) 24.08.19 25 0 11쪽
35 35. 입단(入團) (2) 24.08.18 24 0 11쪽
34 34. 입단(入團) (2) 24.08.17 28 0 11쪽
33 33. 입단(入團) (1) 24.08.16 31 0 11쪽
32 32. 양쪽에 걸친 24.08.15 39 0 11쪽
31 31. 전쟁의 서막 24.08.14 40 0 11쪽
30 30. 휘몰아치는 (5) 24.08.13 38 0 11쪽
29 29. 휘몰아치는 (4) 24.08.12 35 0 14쪽
28 28. 휘몰아치는 (3) 24.08.11 37 0 12쪽
27 27. 휘몰아치는 (2) 24.08.10 38 0 11쪽
26 26. 휘몰아치는 (1) 24.08.09 42 1 11쪽
25 25. 큰일 (3) 24.08.08 42 0 11쪽
24 24. 큰일 (2) 24.08.07 43 1 11쪽
23 23. 큰일 (1) 24.08.06 46 0 11쪽
22 22. 혈석 (7) 24.08.05 47 0 12쪽
21 21. 혈석 (6) 24.08.04 56 0 11쪽
20 20. 혈석 (5) 24.08.03 53 1 11쪽
19 19. 혈석 (4) 24.08.02 57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