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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마루] 님의 서재입니다.

용언 쓰는 잠입 경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김윤
작품등록일 :
2024.07.17 10:19
최근연재일 :
2024.08.28 19:0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609
추천수 :
65
글자수 :
228,931

작성
24.08.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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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42. 삼거리 전쟁 (2)

DUMMY

42. 삼거리 전쟁 (2)


지난 일주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뿌옇게 흐리기만 했다.


월요일, 본사로 들어가 정강을 만났다.

그는 인사나 시키고 곧장 날 임해찬 부장에게 보냈고 임해찬 부장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형식적인 업무 지시 사항 파일을 넘긴 채, 자리를 비웠다.


집으로 돌아와 그걸 살펴보다 깨달았다.

그저 청두파 잔당이나 치고 있다가 알아서 누울 자리 보고 곧장 죽으라는 소리였다.


“하아.”


내 인적 사항 같은 건 적송 본사에 있지도 않겠지.

난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니.


화요일, 사무실로 갔다. 다행히 내가 떠날 때 그대로였다. 누구도 방문하지 않았다.

차혜정도, 이우람도, 사라지고 나는 다시 혼자, 그렇게 거리로 향했다.

청두파 지역으로 가서 닥치는 대로 깨고 부쉈다.


수요일, 마찬가지.

목요일,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틀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돌아다니다 보니 자잘하게 입은 상처가 아파서는 아니었다.


“하아.”


금요일, 새벽. 비가 내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았다.


“나는 소모품으로 끝날 생각이 없어.”


고작 떳떳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나 같은 스킬이 있더라도, 굳이 옳은 일을 하지는 않더라도.

당당하게.


이 사회의 ‘괴물’이 아닌 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부우웅-


그렇기에 돈이 필요했고 또 열심히 굴렀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를 ‘괴물’로 만든 놈들의 근원을 알아낸 상태.


끼이익-!


그러던 중에 정강은 또 날 시험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받은 주소를 통해 나처럼 본사에서 쓰고 버려질 소모품 창고로 향했다.


칙- 치직-!


차에서 내리자 거대한 창고가 있었다.

수원 내 있는 적송 공사 단지들 중 하나였는데, 근처는 전부 산이라 이런 곳이 있는지 일반인이라면 절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후우.”


하지만 난 일반인이 아니고. 또한 이곳을 알고 있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놈들이 여기로 모인다고.’


내가 있던 보육원에서, 원장님은 새로운 부모를 만나지 못하고 커버린 놈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줬다.

딱히 비밀에도 붙이지 않고 수원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


“시발.”


당연히 뒤가 구렸고 그날 바로 보육원을 탈출했다.

이제는 안다. 만약 그날 탈출해서 길거리를 전전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1세대 혈석 실험의 재료로 청두파에 팔려갔던가 아니면 이곳에 왔을 것이다.


분명, 혈석 실험 보고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으니까.


철컥-


녹슨 대문을 열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환기라곤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인지 비릿하고 동시에 꿉꿉한 향이 밀려왔다.


“후우우우우······.”


그리고 그 어두운 그림자 안에는 오와 열을 맞추고 서 있는 다양한 놈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다양한, 인간도 오크도 아닌 놈들도 여럿 보였다.


나는 그들을 보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나의 말을 기다렸다.

그 살벌한 눈빛 사이로 나는 이들에 관해 정강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차피 다 던지기 용으로 키우던 놈들이라 어느 정도 쓸 만은 할 텐데. 이번 일에 필요한 스킬 있나 잘 골라 봐라.’



이들은 말하자면 소모품이자.

말하자면 나의 대용품이고.

또한.


“어쩌면 나였을 놈들······.”


차혜정을 보고 떠올렸던 ‘어쩌면 나였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 다시 한번 뇌리를 스쳤다.

내가 경찰이 되었다면 차혜정, 보육원을 탈출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되지 않았을까?


‘가증스러운 새끼.’


나는 다시 한번 이 실험을 주도했던 정강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아니, 분노보단 조금 더 끈적한 원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처럼.


“종족이랑 스킬 말해.”


나는 한 명씩 돌아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크, 워크라이 쓸 줄 압니다.”

“요정이고 야간 투시 가능합니다.”

“난장이, 스킬은 따로 없습니다.”


20살 내외로 총 30명. 이 중에서 내가 데려갈 수 있는 인원은 셋.

말하자면 내가 구할 수 있는 건 30명 중 셋뿐이라는 뜻이었다.


“설인 하프입니다. 얼음으로 칼 정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그중에 땀을 남들보다 배는 흘리고 있는 쪽 앞에 섰다.

파란 피부에 요정이 쓰는 글자 같은 것이 문신처럼 온몸에 그려져 있었다.


“고개 들어.”


나는 그의 얼굴, 그리고 눈빛을 살폈다.

이놈은 안 된다.


“다시 내려.”


나는 전쟁터에 나가기 전 무기를 고르는 것처럼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무기로, 던지기용 칼로써 고르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 눈빛에 복수심이 가득 차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놈들이 필요할 뿐.


“고개 들어.”

“개 수인, 칼잡입니다.”

“칼잡이?”


“···스킬은 없습니다.”


목에 있는 자국이 눈에 띄는 놈이었다.

아무래도 청두파 공장에서 일하는 중에 잡혀서 이곳까지 굴러온 것 같았다.


“너는?”


나는 그 옆에 있는 놈을 보며 재차 물었다.


“아, 저는 인색터고, 그······ 외피 경화 가능합니다!”

‘씩씩하네.’


그렇게 다음 놈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왜인지 방금 전 개 수인이 나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적송 본사에서 나온 놈이니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왜?”

“아, 아닙니다.”

“······.”


애써 고개를 낮춘 놈에게 다시 다가가 나 역시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조금만 참아라. 나도 여기 출신이거든.”


순간 놈이 움찔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녀석은 말을 또 이었다.


“여기 출신이시면 알 겁니다. 여길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걸요.”

“······.”


꼴통 같은 놈.

그런 걸 남들 다 듣게 말하면 어쩌자고.


어차피 나 혼자 왔다는 걸 뻔히 아는데 길들여진 지 너무 오래 돼서 반기조차 들지 못하고 있는 놈들인데.


“후우.”


그렇게 나는 놈은 두고 마지막 열에 있는, 덩치가 오크보다도 큰 놈 앞에 섰다.


“고개 들어.”

“트롤 하프, 그림자 숨기.”


말이 짧은 건 종족 특성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놈까지가 마지막인 것 같았다.


“너, 너, 너.”


그렇게 트롤 하프, 개 수인, 인색터를 골라 어깨를 치며 걸었다.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표정이 전부 좋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다른 이들을 두고 이 창고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트롤 하프는 진짜 트롤처럼 굼뜬 것인지 움직이지를 않았다.


“왜?”

“···저 말고.”

“응?”


그는 천천히 그 커다란 손을 들어 창고의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엔 더듬이가 달린 왠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쟤를 데려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야, 시발 우리는 뭐 가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갑자기 개 수인이 트롤 하프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우리 지금 나가는 거, 그냥 소모품이라고. 어차피 나가면 개죽음인 거 몰라서 그래?”

“그건 알지만, 여기 있어도, 전부 죽어.”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인섹터가 다가와 내게 아부하듯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 둘은 지난 경기에서부터 사이가 안 좋아서······.”


설명을 이으며 몸을 가만있지를 않았다.

그래서 온몸에 난 흉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라······.”


왜인지 청두파 공장에 달린 갈고리가 떠올랐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나는 거기에 있던 수인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라 그럴 수 없다는 게 그랬다.

내가 이곳에서 데려간 아이들은 소모품이다.

소모품이 더 소모품처럼 쓸 연고도 없고 친지도 없는 나 같은 놈들.


“쟤도 데리고 나와.”

“예?”

“데리고 오라고. 그리고 다들 잘 들어.”


나는 창고가 울릴 정도로만 크게 말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여긴 빛이 들지 않아. 하지만 나와 함께라면 훨씬 더 더럽고 어두울 게 틀림없다. 지금 내가 고른 놈들은 더 구르러 가는 것뿐이니까.”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자란 놈들.

거리에서 버려져 다시 거리로 돌아가 죽을 놈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기 남겨진 놈들은 잘 들어. 언젠가 내가 다시 찾아올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티고 있어.”


아직은 아니다.

박경석의 출두, 그날 그와 함께 정강을 싸잡아 죽이기 전까지는 발톱을 숨긴 멍청한 개처럼 그의 말을 듣는 척해야 한다.


‘일이 다 끝나면 반드시 구하러 올 테니까.’


나는 그렇게 셋, 아니 넷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

당연히 냄새가 다 빠지지 않은 터라 창문을 열까 싶었는데 다들 차에 오르자마자 곯아떨어지는 걸 보고 그냥 두었다.


“저희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


하지만 역시나, 안정감이라고는 하나도 느끼지 못한 개 수인이 잠도 자지 않고 버티며 물었다.

나는 그 피곤한 물음에 되물었다.


“넌 이름이 뭐냐?”

“어디로 데려가시는 거냐고요.”

“난 정우.”


“······.”


조수석에 탄 그놈은 창가로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정석현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보육원에서 이름을 새로 받은 놈들은 다 ‘정’ 씨인 거구나.

그러면.


“한 가족, 식구네.”

“예?”

“아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간이 어떻게 우리와 가족입니까?”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한 말인데 오히려 더 냉랭해졌다.


“후우.”

“우리랑 같은 출신이라고 해봤자 당신은 적송 본사에서 온 사람이고, 우리들은 개처럼 구르다 죽을 놈들인데······.”


“야, 그 개라는 말 좀······ 아니다.”


나는 애들을 데리고 묵묵히 차를 몰았다. 어차피 날 신뢰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으니까.


“어디 가냐니까요?”


신뢰를 위해선 다른 게 더 필요하지.


#


철컥-


“여기는······.”


나는 집에 들어가 애들을 불러들였다.

쳇,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서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었는데.


“일단 여기서 지내라.”

“······.”


“너희들을 이용하긴 할 거야. 더러운 일들도 해야 하고, 나 대신 싸움도 시키고. 하지만, 내 방식대로 할 거니까.”


나는 부엌을 뒤졌다.

식탁 위에 있던 메모에서 흠칫하긴 했으나. 서둘러 라면이라도 꺼내 식탁에 올려 두었다.


스슥-


물론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 꺼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걸 보고 개 수인이, 아니 석현이가 말했다.


“정말, 여기서 지내도 됩니까?”

“그래.”


그렇게 그냥 나가려는 나를 석현이는 또 붙잡았다.

아직 이해를 잘 못 한 모양이었다.


“형님 방식이라는 게 뭔데요?”


형님이라, 정말 듣기 거북한 단어이긴 하네.

나는 부엌에 있던 메모를 다시 확인하고 답할 뿐이었다.


“실장님이라 불러. 팀장님께 말해둘 테니까.”


이제부터 이 녀석들이 정강을 칠 나의 칼이자, 내 팀이다.

그러니, 깡패가 아닌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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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십니까, 연재 업로드는 주 7일 19시 입니다. 24.07.17 50 0 -
45 45. 삼거리 전쟁 (5) 24.08.28 7 0 11쪽
44 44. 삼거리 전쟁 (4) 24.08.27 9 0 11쪽
43 43. 삼거리 전쟁 (3) 24.08.26 12 0 11쪽
» 42. 삼거리 전쟁 (2) 24.08.25 14 0 11쪽
41 41. 삼거리 전쟁 (1) 24.08.24 15 0 11쪽
40 40. 입단(入團) (8) 24.08.23 18 0 11쪽
39 39. 입단(入團) (7) 24.08.22 23 0 11쪽
38 38. 입단(入團) (6) 24.08.21 21 0 11쪽
37 37. 입단(入團) (5) 24.08.20 22 0 11쪽
36 36. 입단(入團) (4) 24.08.19 26 0 11쪽
35 35. 입단(入團) (2) 24.08.18 24 0 11쪽
34 34. 입단(入團) (2) 24.08.17 28 0 11쪽
33 33. 입단(入團) (1) 24.08.16 31 0 11쪽
32 32. 양쪽에 걸친 24.08.15 40 0 11쪽
31 31. 전쟁의 서막 24.08.14 40 0 11쪽
30 30. 휘몰아치는 (5) 24.08.13 38 0 11쪽
29 29. 휘몰아치는 (4) 24.08.12 35 0 14쪽
28 28. 휘몰아치는 (3) 24.08.11 37 0 12쪽
27 27. 휘몰아치는 (2) 24.08.10 38 0 11쪽
26 26. 휘몰아치는 (1) 24.08.09 42 1 11쪽
25 25. 큰일 (3) 24.08.08 42 0 11쪽
24 24. 큰일 (2) 24.08.07 43 1 11쪽
23 23. 큰일 (1) 24.08.06 46 0 11쪽
22 22. 혈석 (7) 24.08.05 47 0 12쪽
21 21. 혈석 (6) 24.08.04 57 0 11쪽
20 20. 혈석 (5) 24.08.03 53 1 11쪽
19 19. 혈석 (4) 24.08.02 5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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