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혈석 (7)
22. 혈석 (7)
흐릿하긴 했지만 확실하다.
저 그림자보다 더 어두운 흙색 피부, 이우람이었다.
“야, 꼴통 왔냐?”
그를 처음 보고 들었던 감정은 ‘그래도 구하러 와줬구나?’라는 순진한 느낌은 당연히 아니었다.
“하, 시발······.”
“왜? 형님 보자마자 반가워서 달려들 줄 알았더니만.”
그렇다면 배신감이었을까?
그렇게 구르고 결국 어찌어찌 일 처리를 끝낸 와중에 만난 절망감에서 비롯된?
아니.
내가 느낀 건 ‘이해심’이다.
“넌 처음부터 혈석이 아니라 혈석으로 오크가 되는 걸 바랐지?”
지금 내 뒤에 걸레짝이 되어 쓰러져 있는 김상태가 했던 연구를 보면.
그 역시 반쪽짜리가 아니라 진짜 오크가 될 수 있다고 여겼으리라.
그래서 결국 천 실장이라는 놈과 손을 잡았고, 김상태를 함께 치고 보수로 혈석을 제공받기로 한 거겠지.
왜,
그는 늘 오크를 동경하지 않았던가?
겨우 자세를 잡고 일어섰다.
그의 그림자가 내 쪽에 더해져 내 얼굴 역시 검게 물들었을 듯 했다.
“아마 하프라 너도 다사다난하게 컸겠지. 그래서 노골적으로 진짜 오크들에 끼고 싶어 했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했고······.”
“음?”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던 거겠지.”
이우람은 나와 비슷하다.
저놈 역시 이 세상에 불만이 아주 많았고 그 와중에 스스로 떳떳하려 아등바등하는 거겠지.
그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며 여기저기 붙어먹는.
“이해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칼을 잡아
나와 닮은,
비슷한,
나의 형제에게 겨눴다.
형제끼리 싸우지 말라는 말은 아무래도 지킬 수 없을 터였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뭐라는 거야 미친 새끼야? 빨리 뒤에 타!”
하지만 일순간, 긴장감은 다 날아가 버렸다.
“여기 오크 부르게 한 게 나야 새끼야! 일단 타서 설명할 테니까 타라고!”
“하지만 넌, 오크가······.”
“뒤에 안 보이냐?”
이우람의 말에 무심코 뒤를, 김상태를 봤다.
그는 리자드맨이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어차피 스킬이 폭주한 게 끝나면 다시 돌아와. 다시 돌아오면 또 그 스킬 뽕에 취해서 혈석이나 찾으러 다니겠지. 마약이잖아? 그딴 걸 왜 하냐?”
“어······, 그럼 내 뒤통수를 후려친 건 뭔데?”
“아, 새끼 그러니까 차에 타고 설명한다니까는. 하긴, 담배 하나 여유는 있겠지.”
이우람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칙- 치직-!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넣어 줬다.
그리고선 자신도 담배를 꼬나물며 설명을 이었다.
“후우······ 내가 운반책을 잡았을 때, 이미 천 실장이라는 놈이 끝을 본 상태였어.”
“뭐? 아······!”
‘어차피 운반책을 죽인 것도 천 실장님 아니십니까?’
“깔끔하게 끝냈더라. 그래서 뭐 어쩌냐? 나도 죽게 생겼는데, 바짝 엎드리는 척했지.”
이우람이 운반책을 죽이지 않았다는 건, 그가 오크가 되기 위해 혈석에 미치지 않았다는 말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좀 더 들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후우, 그래서?”
“그랬더니 여길 친다고 하더라고, 그 정보를 적송에 흘려줄 수 있냐고 하더라. 딱 봐도 내가 오크들이랑 놀고 있으니까 이용하려는 건데. 여기서 아차 싶더라고.”
“아차?”
“나도 이 새끼를 이용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우람은 단순한 놈이긴 해도, 살아남는 것에는 도가 튼 놈이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지. 그대로 임해찬 부장님께 연락했고, 여기 성동병원 위치를 말해 주고 적송이 돕기로 결정! 단?”
“단?”
“천 실장이란 새끼가 날 어떻게 믿겠냐? 그래서 병원에 널 넘기는 걸로 날 청두파 일원으로 받아달라 쇼부 보라고 하시더라.”
단순했고, 살아남기 위해 도가 텄어도, 머리를 쓰며 계획을 한 건 부족했기에.
그 임해찬 부장의 계획을 받았다.
“시발.”
결과적으로만 보면 날 넘긴 건 임해찬 부장이란 소리였다.
“미안하다. 그래도 난 알고 있었거든. 반장의 스킬을 받았으니 네가 여기서 죽진 않을 거라고. 하하! 믿고 있었다고 젠장! 하하하!”
저놈의 아가리에 당장에라도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 결국 참았다.
“그렇게 해서 다 좋게 좋게 된 거야. 난 이번 큰일에 청두파 스파이로 들어가는 거지. 뭔지 알겠냐? 이 형님이 언더커버라 이거야! 이제 봐라! 내가 너보다 훨씬 빨리 올라갈 테니까.”
형제처럼 비슷한, 이우람은 나와 같은 길을 들어온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났다.
“위험하진 않겠냐?”
“내가 왜?”
“일이 잘못되면 임해찬 부장 그 새낀 나처럼 너도 버리라고 할 게 뻔해.”
“상관없다, 새끼야.”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 차로 향했다. 차 문을 열며 말을 붙였다.
“어차피 우리 식구가 뒤에서 떡 버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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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차만 봐도 이우람이 말한 ‘우리 식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반장을 처음 만날 때 탔던 그 차였으니까.
하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옆에는 이우람 새끼도 있고, 그냥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거니까.
그 생각을 하자마자 집에 온 것마냥 피로가 쏟아져서는, 이우람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못한 채 기절하듯 잠만 잤다.
“야, 다 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이우람을 따라 내린 곳은.
“하.”
분명 마족인 이모가 하는 24시간 고깃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드르륵-
“왔냐, 꼴통?”
반장이 있었다.
“예.”
“되보인다?”
“하, 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반장이 붕대를 칭칭 감은 꼬라지가 웃겨서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삼겹살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우람이 툭 쳤다.
뒤를 돌자 이우람이 웬 종이 쪼가리 하나를 주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난 여기 들락날락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언. 더. 커. 버. 니까. 이건 반장님한테······.”
“됐어 이 개새끼야! 넌 다음에 뒤통수 조심해! 반드시 한 번은 후려 칠 테니까!!!”
그렇게 나는 종이를 낚아챈 뒤 반장의 오크들 무리를 지나 또 옆에 앉았다.
그리고선 반장의 잔을 채우고, 곧장 내 잔을 채웠다.
“뭐, 술 먹어도 되는 겁니까?”
“리는 그러지 말랬지만, 생각해 보니 꼴통 너도 처음에 그러지 않았냐?”
잔을 부딪치고, 마셨다.
유난히 술이 달았다.
“저 때문에 혈석을 쓴 겁니까? 스킬을 강화하려고?”
“그래.”
“왜 그랬습니까?”
반장은 대답 대신 잔을 높이 들었다.
“자, 오늘 우리 막내가 또 일을 잘 끝내고 왔다! 식구를 지켰다!”
식구를!
오크들은 또 좋다고 술을 마셨다.
이번엔 이우람 대신 반장이 내게 술을 반 잔만 마신 뒤 주며 말했다.
“이거면 대답이 되겠냐?”
이상했다.
분명 그 지랄을 해서 보낸 시간이 녹록지 않았는데, 마음이 편했다.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냐.”
반장의 말만이 유달리 씁쓸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여기 있는 건설 현장 인부 오크들을, 나나 이우람이 다니는 현장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에 그런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놈들, 전부 처자식 다 딸려서 본사에서 팽 당하고 거리로 나온 놈들이다. 그런 애들 내가 돌보고 있는 거고.”
“다시 본사로 넣어 주는 게 아니라요?”
“그런 꼴통 놈들은 진즉에 다른 일 시켰지. 이렇게 개판 칠 줄은 몰랐지만? 카하하!!!”
나는 오크들을 돌아봤다.
웃고 떠드느라 바보 같아 보이기까지 했지만, 반장의 말이라면 곧 죽어도 따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위험한 일 있으면 꼭 말하고 하고.”
그리고 그건 반장 역시 같았다.
나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고통을 당해도 당연히 받아들인다는.
식구.
“예.”
다 괜찮을 것 같은 기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명을 따로 묻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앞으로도 반장의 곁에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장이 준 술을 마셨다.
달디 단 술 중에 가장 달았다.
“너 새끼 배 뚫려서 들어왔을 때, 임해찬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예.”
“이우람이로 뭔 짓거리를 하길래 이 사단이 난 거냐고 묻고, 이제 나도 가만히 안 있는다고 혈석이 왜 돌고 있는 건지 따졌다.”
“예.”
“더 위에서 내린 오더라 본사에 갔고, 혈석 치유사 하나 받고, 임해찬이 통해서 이우람이 하는 일 다 들었다. 네 안전을 보장한다고 했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혈석 받아다가 스킬 강화하고, 지속시간을 늘렸다. 결과적으로 난 더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크크.”
“예.”
가만히 술을 마신다.
고기가 익어가고 기분이 좋아진다.
“반장은······.”
“음?”
“반장은 그런 스킬을 가졌으면서 왜 이런 곳에 있습니까?”
내 물음에 반장은 피식 웃었다. 마치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는 또 내게 완벽한 답을 내렸다.
“떳떳하게 살라고 그런다.”
떳떳하게.
그런 스킬을 가졌지만 떳떳하게 자기 식구 지키며 사는 것.
하지만 난 그러지 못하고 있지 않았나?
‘지금의 이우람과 다를 것 없이, 여기저기 붙어먹는······.’
나는 이우람이 내게 준 종이를 꺼내 반장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반장 사실은······.”
“괜찮다. 이번 일에서 넌 빠져도 돼. 내가 직접 갈 거니까.”
“예?”
“당장 내일이잖아. 청두파 놈들도 병원에 불 나서 아주 난리가 났을 거다. 당연히 큰일이 벌어질 장소도 바꿨겠지. 그걸 이우람이가 가져온 걸 거야. 봤냐?”
“아, 아뇨.”
반장은 서류를 그대로 슥슥 훑더니 곧장 불판 위에 올려놨다.
“넌 이번엔 좀 쉬어라.”
달큰하게 오른 술에도 나는 기름에 쩌들은 그 종이에 적힌 글자를 봐버리고 말았다.
“어머! 미쳤나 봐! 그걸 거기에 올리면 어떡해?”
“아하이, 이모님아. 어차피 기름은 종이로 닦는데 무슨! 거 가서 술 좀 가져와!”
“후우, 참 걸어요.”
이모는 그 종이를 스킬로 띄워 불태웠다.
말하자면 이제 큰일의 ‘바뀐 장소’는 그 누구도 더는 알지 못하는 것으로 됐다.
#
집으로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솔직히 알리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를 놓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혈석 제조법이 풀린다면 이제 더는 우리 쪽에서 손 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곧 나라 차원의 제제도 들어갈 거고, 더 나아가 진짜 전쟁이라도 날 수 있겠죠.”
“네······.”
“이번 일에서 정우 씨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희가 파악한 이번 큰일은······ 아니, 만약 이번 거래만 막을 수 있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우 씨를 적송 본사로 가게 만들겠습니다.”
이 바닥에 너무 깊게 들어온 걸까.
분명 나를 본사로 넣어 줄 수 있는 계단은 반장이나 임해찬 부장일 거라 생각했는데.
계단을 따라 걷다 보니, 올라가는 게 아닌 내려가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따듯하고, 뭐든 괜찮을 것처럼 편한 바닥.
그보다 더 깊은 늪에 잠겨 쉬고만 싶을 때.
“유지혁이라는 이름을 걸고 반드시······!”
다시 올라갈 동아줄은 유지혁 팀장님, 즉 경찰 쪽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 동아줄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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