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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연

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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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165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20.02.05 12:54
조회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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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8쪽

[외전] 청혼 이후 下

DUMMY

<청혼 그 이후>







“일어나 가까이 와라.”

“예, 주인님.”


미드프레드가 조용히 다가서 곁에 서자, 아체프렌은 무심한 태도로 말했다.


“일전에 만난 적 있지? 서로 인사해.”


주인의 지시를 받은 미드프레드는 지체없이 고개를 숙여, 왕족인 브라우웰에게 먼저 예의를 표했다. 왕실 예법 상 신분이 낮은 그가 주인도 아닌 그에게 먼저 운을 떼어 말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렇다고 지체가 높은 상대가 먼저 인사를 해주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드프레드를 응시한 채 브라우웰이 방긋하고, 유난히 살가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네, 미드프레드. 나 기억하겠어?”


브라우웰은 라 아르헨돌프는 사촌지간인 아체프렌고 닮아있되, 어딘가 찬 서리가 내릴 것 같이 냉랭한 인상의 아체프렌의 단아함과는 달리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시원시원하게 뻗은 남성적인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 생김생김이 또렷해서 그런지, 친근한 기운을 곁들인 미소가 활기찬 그의 인상을 한층 더 밝게 빛내주는 것 같다고 미드프레드는 생각했다.


“예, 공자님.”


필요 이상으로 길게 말하면 홀에서의 음성을 연상시키게 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미드프레드는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레 답했다.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 짤막한 답변이었다.


들킬까 안절부절못하는 미드프레드와 순진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브라우웰의 조합이 재미있었던 것일까. 아체프렌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언뜻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하긴 했지만. 하지만 아체프렌은 미드프레드를 마냥 난처하게 내버려 두지는 아니하였다. 그가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차가 식었구나.”


차가 벌써 식었을리 없건만 미드프레드는 아체프렌의 신호를 알아차라고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바로 다시 타겠습니다.”


밀차 위에 준비된 티세트에서 새로 차를 따르는 미드프레드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브라우웰이 운을 떼어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하께서 무도 연습을 하시는 동안 안 보였던 것 같은데, 전속시종이면 늘 곁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었나?”


뜻하지 않은 소리에 잠시 긴장을 놓았던 미드프레드는 하마터면 손에 든 티팟을 그대로 놓쳐버릴 뻔하였다. 전신에서 핏기가 가시면 지금과 같은 느낌인 것일까.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역시 사실대로 다 고하고 아까 저지른 무례에 대하여 부디 용서해 주십사 빌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미드프레드는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혼자 몸이었다면 어찌되어도 상관 없었을 테지만 이 사태의 핵심 진행 상황을 주도한 건 주인인 아체프렌이었다. 브라우웰의 오해에 제 주인이 관여되어 있는 이상 제가 난처하다 하여 바로 용서를 구할 수는 없었다. 태자인 아체프렌은 엄연히 브라우웰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였다. 당황한 상황에서도 미드프레드는 자신의 성급한 행실이 주인의 위상을 해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주저하는 사이에, 아체프렌의 담담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왔다.


“내가 본궁에 서신 전달을 보냈었다.”


난처함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미드프레드가 가여웠던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된 본인의 실책을 통감했던 것일까. 아체프렌이 모처럼 구원의 손을 내밀었다. 물론 미드프레드의 입장에서는 병주고 약주는 것이나 다를 것 없는 행동이었지만 말이다.


“그렇습니까...?”


무언가 석연치 아니한 기색으로 대꾸하며 브라우웰이 무성의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미드프레드는 자신의 왼뺨에 집요하게 달라붙는 브라우웰의 시선을 느낀 채, 새로운 찻잔을 탁자 위로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한 브라우웰이 음성이 울려퍼진 것은.


“너도 검은 머리칼이었나?”


새삼스럽다는 듯이 자신을 훑어내리는 브라우웰의 시선 앞에서 미드프레드는 일순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두뇌가 이성을 잃은 틈을 타, 절제력을 잃은 입술이 그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바보같은 대답을 제멋대로 해버리고 말았다.


“짙은 갈색입니다만.”


오른편에서 들려오는 낮은 웃음소리에 미드프레드는 비소로 이성을 되찾았다.


‘이런 바보!’


뺨이 불에 붙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당황 때문인지 눈시울이 다 뜨거워졌다. 황급히 몸을 돌리려는 찰나, 미드프레드는 브라우웰에게 왼팔을 붙들리고 말았다.


“놓아주십시오.”

“그러고 보니 눈동자 색도 비슷하네. 이목구비도 그렇고.”


침묵 속에서 브라우웰의 두 눈이 막연한 의구심 속에서 묘한 확신의 기운을 드리우기 시작하는 것을 미드프레드는 참담한 심경으로 지켜보았다.


‘당황하지 말자. 정말 들키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미드프레드는 떨리는 입술을 열어 애써 태연한 척 대꾸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공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너는 커런스에서 방문해온 공녀에 대해 모르는 건가?”


모르는 건가 라는 말의 목적어가 ‘커런스 공녀’가 아니고 ‘네가 무도회장에서 여장하고 날 속인 것’이라 바뀌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만하지, 브라우웰.”

“제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

“아까는 내 귀빈에게 무례히 굴더니, 이제는 내 전속시종에게까지 마수를 뻗치는 건가.”

“마수라니요?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브라우웰이 억울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히며 울상을 지었다.


"억울해 하기 전에 미드프레드 표정을 봐라. 네가 이렇게 미드프레드를 괴롭힐 줄 알았다면 너 있는 자리에 안 불렀어. 미드프레드는 내 사람이지, 네 거 아니다. 싫다는 데 함부로 대하지 마라. 내 사람에게 멋대로 구는 거 태연히 웃고 넘길 만큼 난 자비롭지 않다."


아체프렌은 단호하게 브라우웰의 항변을 잘랐다.


"죄송합니다, 전하."

"사과는 미드프레드에게 해야지."


굳이 사과를 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미드프레드는 마다하지 않았다. 주인의 결정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나서면 저를 위해 나선 주인의 체면이 우그러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했다, 미드프레드."


브라우웰은 뜻밖에도 큰 반발 없이 사과를 해왔다. 아체프렌의 압박에 못이겨 마지못해 한 사과가 아니라는 듯, 그는 허심탄회한 태도로 손을 내밀어 화해하자 청하기까지 했다.


"저야말로 송구했습니다. "


브라우웰이 내민 손을 잡아 화해의 뜻을 받아들인 미드프레드는 급한대로 어떤 식으로든 화제를 돌려 자신을 난감함의 바다에서 건져 올려준 아체프렌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기로 하였다. 물론 그렇다 한들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이 된 것이 ‘드디어 너를 위하여 준비하였던 붉은 공단 드레스가 도착했다. 이 정도면 보석상에게 세공을 맡긴 흑진주 목걸이와 잘 어울릴 테지. 한 시간 내로 갈아입고 무도회장으로 나와라.’라는 아체프렌의 한 마디였음은 틀림 없었지만 말이다.






-청혼이후 끝, <실연>으로 이어집니다.


작가의말

나중에 본문 정리가 끝나고 회차 정리를 하면서 외전을 정리해 묶던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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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외전] 청혼 그 이후 - 실연 下 20.02.09 141 4 9쪽
270 [외전] 청혼 그 이후 - 실연 上 20.02.07 131 4 7쪽
» [외전] 청혼 이후 下 20.02.05 138 4 8쪽
268 [외전] 청혼 이후 上 - 미드프레드의 이야기 20.02.03 125 2 7쪽
267 [외전] 청혼 下 20.02.01 97 4 7쪽
266 [외전] 청혼 中 20.01.31 122 3 7쪽
265 [외전] 청혼 上 - 브라우웰&미드프레드 이야기 20.01.30 127 4 7쪽
264 39장 이삭줍기 7화 악우 20.01.29 141 5 8쪽
263 39장 이삭줍기 6화 베케이노의 기다림 20.01.28 126 5 8쪽
262 39장 이삭줍기 5화 자금의 출처 20.01.27 119 4 11쪽
261 39장 이삭줍기 4화 희소식 20.01.24 123 4 7쪽
260 39장 이삭줍기 3화 다시, 시작 20.01.23 131 3 8쪽
259 39장 이삭줍기 2화 태자가 던져놓은 포석 20.01.22 133 3 7쪽
258 39장 이삭줍기 1화 귀환 20.01.21 126 4 7쪽
257 38장 적의 적 7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下 20.01.20 130 5 8쪽
256 38장 적의 적 6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上 20.01.18 135 5 8쪽
255 38장 적의 적 5화 전쟁이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20.01.17 135 7 8쪽
254 38장 적의 적 4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2 20.01.16 142 6 10쪽
253 38장 적의 적 3화 아직은 버릴 수 없는 패 +2 20.01.15 130 6 8쪽
252 38장 적의 적 2화 공짜가 아닌 성의 20.01.14 119 7 7쪽
251 38장 적의 적 1화 늦은 선물 20.01.13 129 5 8쪽
250 37장 붉은 바람 6화 옥좌란 20.01.11 137 6 9쪽
249 37장 붉은 바람 5화 대관식 직전, 흉몽 20.01.10 114 5 8쪽
248 37장 붉은 바람 4화 뿌리는 자, 거두는 자(회차변동) 20.01.09 129 5 8쪽
247 37장 붉은 바람 3화 왕자의 관용 20.01.08 149 7 10쪽
246 37장 붉은 바람 2화 잠 못 이루는 밤 20.01.07 181 8 8쪽
245 <제3부 다이레비드 공방전> 37장 붉은 바람 1화 기만책 20.01.06 134 6 8쪽
244 [외전] 세월 28 (끝) 20.01.04 130 5 10쪽
243 [외전] 세월 27 20.01.03 103 4 9쪽
242 [외전] 세월 26 20.01.02 104 5 9쪽
241 [외전] 세월 25 19.12.28 97 3 8쪽
240 [외전] 세월 24 19.12.20 101 4 8쪽
239 [외전] 세월 23 19.12.18 100 5 7쪽
238 [외전] 세월 22 19.12.17 105 4 9쪽
237 [외전] 세월 21 19.12.13 114 5 7쪽
236 [외전] 세월 20 19.12.11 104 5 7쪽
235 [외전] 세월 19 19.12.09 112 6 9쪽
234 [외전] 세월 18 19.12.06 110 6 8쪽
233 [외전] 세월 17 19.12.03 128 5 7쪽
232 [외전] 세월 16 19.11.30 114 5 7쪽
231 [외전] 세월 15 19.11.29 123 4 7쪽
230 [외전] 세월 14 19.11.28 118 4 8쪽
229 [외전] 세월 13 +2 19.11.27 115 4 9쪽
228 [외전] 세월 12 19.11.26 120 5 7쪽
227 [외전] 세월 11 19.11.25 123 5 11쪽
226 [외전] 세월 10 19.11.23 127 5 9쪽
225 [외전] 세월 9 19.11.22 114 5 7쪽
224 [외전] 세월 8 19.11.21 115 5 7쪽
223 [외전] 세월 7 19.11.20 125 4 7쪽
222 [외전] 세월 6 19.11.19 126 5 9쪽
221 [외전] 세월 5 19.11.18 140 5 12쪽
220 [외전] 세월 4 19.11.16 155 5 7쪽
219 [외전] 세월 3 19.11.15 152 5 12쪽
218 [외전] 세월 2 19.11.14 170 5 11쪽
217 [외전] 세월 1 -세느비엔느 여왕의 외전 19.11.13 198 6 15쪽
216 36장 선전포고 6화 무혈입성(2부 完) +2 19.11.12 235 7 11쪽
215 36장 선전포고 5화 백성들의 왕 19.11.11 178 8 9쪽
214 36장 선전포고 4화 태자의 대의 19.11.09 194 9 7쪽
213 36장 선전포고 3화 로크라테군의 대응 19.11.08 173 7 7쪽
212 36장 선전포고 2화 전서 19.11.07 193 7 9쪽
211 36장 선전포고 1화 항복 +2 19.11.06 183 8 8쪽
210 35장 붉은 숲 전투 6화 투항 권유 19.11.05 194 7 7쪽
209 35장 붉은 숲 전투 5화 공세 19.11.04 184 7 8쪽
208 35장 붉은 숲 전투 4화 매복 19.11.02 197 6 9쪽
207 35장 붉은 숲 전투 3화 유인 19.11.01 187 6 7쪽
206 35장 붉은 숲 전투 2장 작전과 신뢰 +2 19.10.30 207 8 8쪽
205 35장 붉은 숲 전투 1화 괴물용병 19.10.28 164 6 9쪽
204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6화 첸트로빌 공성군 19.10.25 195 5 10쪽
203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5화 전투 준비 19.10.23 312 5 8쪽
202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4화 요란한 출병 19.10.21 202 7 7쪽
201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3화 관점의 차이 19.10.18 180 7 7쪽
200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2화 백의종군 +4 19.10.16 205 7 9쪽
199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1화 아크레이드의 입장 19.10.14 183 7 9쪽
198 33장 흑운의 그림자 6화 급변하는 정세 19.10.11 187 8 8쪽
197 33장 흑운의 그림자 5화 미드프레드와 메이샤드 19.10.09 195 6 9쪽
196 33장 흑운의 그림자 4화 유훈 19.10.07 205 6 9쪽
195 33장 흑운의 그림자 3화 음독 19.10.04 202 7 8쪽
194 33장 흑운의 그림자 2화 번뇌 어린 선택 19.10.02 215 6 7쪽
193 33장 흑운의 그림자 1화 짬짜미 19.10.01 202 8 9쪽
192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8화 줄다리기 하 19.09.30 187 7 9쪽
191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7화 줄다리기 上 19.09.30 183 8 7쪽
190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6화 휘장 너머의 소녀 19.09.28 223 8 9쪽
189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5화 은밀한 초대 19.09.27 219 8 8쪽
188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4화 아비와 딸 19.09.26 206 8 12쪽
187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3화 커런스의 입장 19.09.25 189 8 9쪽
186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2화 공주의 선언 19.09.24 201 8 9쪽
185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1화 공주의 결단 19.09.23 244 8 7쪽
184 31장 풍운재자 6화 승부수 19.09.21 226 7 9쪽
183 31장 풍운재자 5화 태자의 특사 +2 19.09.20 234 8 7쪽
182 31장 풍운재자 4화 싸움준비 19.09.19 287 8 7쪽
181 31장 풍운재자 3화 해적이 된 초원의 아이 +2 19.09.18 245 8 11쪽
180 31장 풍운재자 2화 이이제이의 계책 +4 19.09.17 245 12 8쪽
179 31장 풍운재자 1화 혁자생존 +2 19.09.16 280 10 9쪽
178 30장 흐르는 별 7화 거절할 수 없는 청 +2 19.09.12 251 9 13쪽
177 30장 흐르는 별 6화 원유회 19.09.11 247 11 8쪽
176 30장 흐르는 별 5화 이면의 계책 +2 19.09.10 228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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