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장 이삭줍기 4화 희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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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희소식
꼬박 한 계절을 지나 사령관을 맞이하는 노틸라드 관사는 활기로 가득 찼다. 세레즈 최북단에 위치하여 계절 변화가 더딘 노틸라드라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었다 하여도 미드프레드가 머물었던 남부 영지처럼 확연한 변화는 없었으나, 날이 험하기로 유명하여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은 노틸라드의 하늘조차도 미드프레드의 귀환을 환영하듯 화창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른 가을 하늘은 노틸라드에서는 천금보다 귀하였다.
“사령관님, 이제 오십니까.”
미드프레드가 자리를 비운 동안 정치 군사적인 행정 영역을 담당하였던 페르겐드와, 군사 훈련 및 병영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주재무관 하겔이 병사들을 이끌고 관사 앞까지 나와 미드프레드와 이사크를 맞이하였다. 미드프레드가 수하들을 한번 쓱 바라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꾸하자 창을 들고 있던 병사들이 당장이라도 출병을 앞둔 것처럼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땅에 창끝을 두들기며 환영을 대신한 함성을 내질렀다. 장관이라면 장관이라 할 만하였으나 의전과 전시행정에 별반 관심이 없는 미드프레드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외려 그로서는 군자원의 낭비라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다 나와 있을 필요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눈치 빠른 페르겐드은 어린 사령관의 미묘하게나마 불편한 기색을 바로 간파했지만, 의외로 먼저 말을 꺼낸 쪽은 뚝뚝한 성정의 하겔이었다.
“소장들이 병사들을 일부러 동원한 것이 아닙니다.”
페르겐드도 미소지으며 절반은 변명 같은 말을 덧붙였다.
“하겔 장군의 말처럼 관사에 있는 병사들 스스로 사령관님을 맞이하겠다고 일찌감치 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수하들의 충정 어린 마음을 너그러이 받아주시는 것도 사령관님의 도량이 아닐는지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언사였다.
“사랑받는 대장이라 좋겠네.”
이사크도 절반은 놀리듯이 말을 보태었다. 로크라테의 땅콩 문제 외에도 두어 번인가 더 노틸라드와 미드프레드 간의 연락책 역할을 한 터라, 이미 이사크도 관사의 이들과 안면이 있었다.
오로지 재미있는 일에만 관심을 둘뿐, 흔히들 말하는 세간의 상식 같은 데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이사크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워낙 인재를 받아들이는 데 장벽이 없는 사령관을 줄곧 곁에서 겪어 알고 있는 지구관사의 사병들도 이사크를 전혀 꺼리지 않아, 그와 그를 따라 해적질을 하던 가이샤드 세력은 별다른 마찰 없이 서로를 받아들였다. 이사크 외에도 이미 노틸라드에는 이미 코네세타 출신의 페르겐드와 갈족과의 혼혈인 하겔이 있었다. 단순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형식적인 용병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적이거나 금기였던 혼혈 장수를 군사령관 미드프레드는 저를 대신한 군사령관 대리로 삼을 만큼 깊게 신뢰하고 중용했다는 점 또한 사병들의 거부감을 허무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이사크가 여장을 하고 나타났어도, 다른 영지에서와 달리 지구관사의 사병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특이한 사령관이 또 어딘가의 싸움에서 마음에 드는 수하를 주워 왔구나 정도로 편히 받아들였달까. 여장이 취미여도, 저의 육체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수컷의 욕망어린 시선은 질색하는 이사크도 저를 그 어떠한 편견도 없이 받아들이는 노틸라드의 개방적인 분위기가 편했다. 미드프레드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그의 부대 또한 좋고 편하여 그는 어느덧 진심으로 미드프레드와 노틸라드를 돕고 싶어졌다.
“그러면 삼가 인복이라고 생각하지요.”
쓴웃음을 지으며 응수했지만, 사실 그 말은 미드프레드로서는 숨김없는 진심을 드러낸 말이기도 하였다. 유년시절은 불우했고, 성장환경에서의 인간관계는 주군이자 벗인 아체프렌을 제외하고는 과히 좋다 할 수 없었으나, 그러한 과거는 그가 군부대에 몸을 담게 되면서 달라졌다. 처음에는 뮤켄을 만났고, 그다음에는 케니하크와 메이샤드, 페르겐드, 그리고 하크스 지원군 출신의 든든한 부장들을 열댓명도 넘게 얻었으며, 노틸라드에 와서는 하겔과 노틸라드의 부대를, 다시 남부로 가서는 이사크와 파빈느, 슈발츠를 동료로 삼게 되었다. 맨 처음 저에게 반감을 지녔던 이들조차 지금의 미드프레드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전우가 되었다.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받는 위험천만한 전장에서 안심하고 뒤를 맡길 수 있는 전우의 존재는 금은보화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자산이었다. 아직 어리고 부족한 저를 믿어주고 따라주며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동료이자 수하들은 참으로 귀하디귀한 존재였고, 만일 자신이 타고난 복이 있다면 사람일 거라고 미드프레드는 생각했다.
“사령관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몇 가지 희소식이 닿았기에 그것부터 보고 드리겠습니다.”
병사들을 달래어 해산시키고 회의실에 앉자마자 페르겐드가 바로 용건을 꺼냈다. 사령관인 미드프레드는 물론이요, 좌중에 모인 노틸라드 상부 장수들 누구 하나 말을 공연히 빙빙 돌리며 용건을 포장하는 수도 귀족들 특유의 비실용적인 화법을 싫어하는 까닭이었습니다.
“예, 듣겠습니다.”
“최근에 들어온 소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안은 태자 전하께서 은밀히 커런스에 파견하셨던 사자인 데니아크 공이 커런스의 둘째 공주님께서 태자 전하께 조력 의사를 표하셨다는 점입니다. 공주님께서 협조를 명시적으로 약조하신 부분은 크게 광산 개발 기술 및 인력 지원, 그리고 전투부대 파견입니다.”
페르겐드가 내용을 세목별로 상세히 정리한 문건을 미드프레드 앞으로 내밀었다. 자신이 군사 행동을 하는 동안 태자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받아든 문서의 조력 사상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커런스 왕실 차원의 형식적인 조력을 받는 것보다도 태자인 아체프렌에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터였다. 다이엘라의 원조는 현재 태자인 아체프렌이 가장 아쉬운 자금 부분의 근원적인 해결책과 군사부분을 전력 증강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드프레드 역시 다이엘라 공주가 파병을 약조한 그녀의 사병대 제네이아군은 커런스 최강이라고 하는 왕실 친위대와 비등한 최정예라 들은 바 있었다. 노틸라드로 출발하기 직전, 아체프렌과 며칠 밤을 새가며 고민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내용을 보자, 당장이라도 그레안에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픈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광산 개발 인력의 도착은 이달 하순이군요.”
“예, 이제 보름 남짓 남았습니다.”
“노틸라드에 그들이 무사히 도착하기까지 엄호가 필요하겠습니다. 그 선박에는 비전투 인력이 많으니까요.”
미드프레드는 이사크에게 눈길을 주었다.
“가능하겠나?”
- 작가의말
설 연휴 후 뵙겠습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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