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 흑운의 그림자 6화 급변하는 정세
6. 급변하는 정세
“그 말은 아크레이드 영주님께서는 위급한 상황이고, 하크스 영주님과 연회에 참석한 다른 몇몇 영주님들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다는 말씀입니까?”
로크라테 출신의 병사들에게 쫓기던 사내는 하크스 영내의 소영지 아크레이드 출신이었다. 그는 하크스 영지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했다가 음독하여 사경에 처한 영주와 하크스의 급박한 상황에 대해 아크레이드에 알리고자 급파된 전령이었다.
“그러면, 전하는··· 태자 전하의 소식은 아십니까? 그분께서는 무사하신 것입니까?”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 그는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 뒤에 미드프레드와 메이샤드에게 작일 하크스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연회 음식에 독이 들어 있어 참석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리를 접한 미드프레드는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하크스에 머무는 태자의 안위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크스에서 장계가 올라갈 것 같다는 소리에 아체프렌이 걱정이 되어 노틸라드에서 하크스 행을 결심한 미드프레드였다. 배를 타고 남부로 내려오던 중에 들른 그레안 영지에서 그는 여왕이 태자에게 살수를 보내어 암살 시도를 하였다 실패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참혹한 소식까지 대하고 보니, 태자의 하크스 행을 사전에 말리지 못했다는 점이 미치도록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로엘 대공도 태자의 안위를 지키고자 필사적이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아체프렌이 다치고 위험해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아야 하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기분이었다. 얼른 그의 곁으로 가서, 예전처럼 그를 위해 칼을 들고 그의 방패가 되고 싶었다.
“태자 전하께서는 무사하십니다. 그 점만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사내는 침통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태자가 무사하다니 천만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사내의 주군인 아크레이드 영주가 해독제도 없는 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마당에 대놓고 안도를 표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미드프레드는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대신하여 입을 연 것은 메이샤드 쪽이었다.
“어째서 다른 영지의 병사들이 이곳까지 들어와 있는 겁니까? 행여, 저 병사들이 첸트로빌 성 근방까지 들어와 있는 것입니까?”
온건하게 표현했으되, 그 말인즉 첸트로빌 성이 로크라테 상비군에 공격받고 있느냐는 물음과 크게 다르지 아니하였다.
지난 전쟁에서 로엘 대공과 첸트로빌에 있는 하크스 상비군을 이끌었던 슈발츠 장군이 증명했듯이 농성전에서는 병력 크기가 과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설령 로크라테의 상비군의 상당수가 하크스 영내로 침입해 들어와 성을 포위 공격하고 있다손 쳐도 수비에 최적화되어 있는 구조인 데다 지난 전쟁으로 농성 경험 또한 충분한 첸트로빌 성은 쉽사리 무너지지는 않을 터였다.
따라서 메이샤드는 낙성 가능성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았다. 다만 이 순간 메이샤드가 우려하는 바는 이번 사태가 태자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거나 혹은 아직 태자와 여왕 어느 쪽에 대해서도 명확한 의사를 드러내지 않은 기타 세력에 끼칠지 모를 파급효였다.
코네세타라는 만인의 적이 명료했던 지난 전쟁과 달리 이 전쟁은 내란이었다. 그리고 아체프렌과 안타미젤 모두 선왕의 적자로 정통한 왕실의 후계자였다. 비록 태자 아체프렌이 선왕의 장자라고는 하나, 안타미젤은 지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그와 비등하다 할 만한 정치적인 정당성을 갖추었다.
본래 대의라는 건 극히 추상적이게 마련이었기에,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눈앞의 실리였다. 비겁한 암살 시도로 빈축을 산 바 있었던 여왕은 놀라우리만큼 대범하게 공격방법을 바꾸었다. 만인이 다 보는 공공연한 연회장에서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산 전쟁영웅 로엘 대공을 죽이고 그를 따르는 예하 영주들을 제거하는 것으로, 태자를 따르는 무리에게 어떠한 예외도, 일말의 관용도 없으리라는 의사를 천명했다. 일견 무모할 정도로 극단적인 조치였으나, 흔들리는 마음 앞에서 가시적인 공포와 위협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흔치 않았다. 이번 사태가 알려지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나 내심 아체프렌 쪽으로 기울어졌던 이들은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아직 태도를 결정하지 못한 이들은 안타미젤 쪽으로 급격히 돌아설 개연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이는 흔들림 없는 태자의 사람인지라 그와 관련된 사안에 한해서만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미드프레드로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 못하는 점이기도 했다.
“첸트로빌 성을 빠져나와 아크레이드 영지로 향하던 길에 하크스 영내로 진입하는 로크라테의 부대의 일부와 맞닥뜨렸습니다. 기척을 지우고 우회하려다가 몇몇 병사들에게 들켜 이곳까지 쫓기게 된 것이고요.”
로엘 대공이 죽은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로크라테 쪽에서 하크스를 공격하기 위해 군부대를 파견했다는 것은 하크스에서 벌어진 참극과 로크라테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는 실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로크라테 영주인 콜틴과 하크스 영주인 로엘 사이에 사전 합의가 있었다손 쳐도, 콜틴은 여왕인 세느비엔느에게도 극비로 한 채 코네세타에게 거짓 투항하여 하크스의 농성을 도운 바 있었다. 그로 인하여 한때 정치적인 생명이 경각에 처한 바 있었던 콜틴에게 서슴없이 조력의 손을 내민 건 로엘 대공이었다. 만약 로엘 대공이 저간의 사정을 여왕에게 고하고 콜틴에게 합당한 상을 내릴 것을 간곡히 청하지 아니하였다면 독선적인 면이 없잖은 여왕이 아무 문책 없이 넘겼을 리가 없었다. 정치판에서는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 되는 일이 흔한 일이라 해도,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어 저를 도운 로엘 대공을 제거하는데 앞장 서는 것으로도 모자라 영주를 잃고 공황 상태에 처한 성을 공격하기 위한 군대를 파병한 콜틴의 약삭빠른 태도에 염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늘이 내린 무골인 미드프레드와 메이샤드는 노련하다면 노련하다 할 만한 상류 계급 특유의 정치적 행보에 반감을 느꼈으나, 북부에서 내려온 용병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해 놓고서 남부의 사정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척을 하는 것도 공연한 의심을 자아낼 만한 짓이라 판단하고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일각이라도 빨리 태자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사내의 말처럼 로크라테 상비군이 첸트로빌 성을 둘러싸고 공격하고 상황에, 전력에 아무 도움이 안 될 걸 알면서 무작정 행로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판단을 내린 미드프레드가 메이샤드와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아크레이드 영지가 태자의 편이고, 태자를 지키고자 원군을 파병할 요량이라면 약간 시일을 지체하더라도 저들과 함께 태자와 합류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해 보였다. 스치듯 한 눈빛에서 상관의 뜻을 깨우친 메이샤드가 아크레이드 출신의 전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영내에 들어온 로크라테의 병사들이 많아 이대로라면 여정이 고달프실 듯 하니 저희를 아크레이드 영지에 닿을 때까지 용병으로 고용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는 가급적 태자 전하의 진영에서 싸우고 싶고, 그 뜻이 아크레이드 쪽과 같다면 서로 간에 나쁘지 않을 거래 같습니다만.”
어두웠던 사내의 얼굴에 잠시 희색이 스쳤다. 순식간에 병사 여덟을 쓰러뜨린 활솜씨는 실로 놀라웠다. 저들이 지켜준다면 아크레이드까지 무사히 닿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이샤드의 손을 붙들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럼 영지에 닿는 즉시 영주님의 영식과 영애께 제가 다리를 놓아드리겠습니다. 하멜 공자께서는 아직 어리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파빈느 공녀께서는 은인들의 솜씨를 높이 평하실 것이고, 두 분의 아크레이드 부대로의 합류를 크게 기꺼워하실 겁니다.”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몸이 좀 아파서 약먹고 잠깐 누워있는다는 게 깜박 잠들었다 이제 일어났네요.
33장 끝, 다음주부터는 34장으로 이어집니다.
말없이 응원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이왕이면 피드백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요 ^^)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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