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장 붉은 숲 전투 6화 투항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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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투항 권유
미드프레드와 별동대의 군사들은 후버 장군이 이끄는 추격대와 함께 돌아왔다. 전투를 지휘하는 내내 그가 무사하기를 빌었고, 또 그러리라 믿었지만, 그가 멀쩡히 돌아온 것을 눈에 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메이샤드는 제대로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후버 장군에게 뒷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후위군을 이끌고 절반 이상 전소된 숲을 다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미드프레드를 구하러 가고 싶었던 제 마음을 읽었는지, 피와 그을음을 뒤집어쓴 상관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메이샤드에게 다가왔다.
“수고 많았다.”
어깨를 짚으며 건넨 그의 짤막한 한 마디가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메이샤드는 복잡한 심경을 감추며 씩 웃었다.
“언제나 제가 지켜드리겠다고 했잖아요.”
“아아.”
지켜주겠다는 말은 이 어린 부사령관의 입버릇이었다. 언제나 누군가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지켜야만 했던 미드프레드에게 메이샤드의 그 말은 항시 새삼스러운 울림으로 다가오곤 하였다.
“이번에도 신세를 졌군그래.”
“언제든지 기대세요. 제가 원래 어디 가서 손해는 안 보는 성격이긴 한데, 형님께는 이상하게 셈이 안되더라고요.”
저보다도 작고 귀여운 메이샤드가 지켜준다고 운운할 때마다 미드프레드는 그가 귀여웠고, 든든해졌으며, 지친 가운데서도 기운이 났다. 친동기가 있다면 이러한 기분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따스해진 적도 많았다. 지금도 메이샤드의 몇 마디 말로 전장에서 한껏 날이 섰던 긴장이 스르륵 풀리며 편해진다. 어쩌면 메이샤드의 지킴은 물리적인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미드프레드도 마주 웃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털어놓아서 당하는 거면, 그 또한 제 팔자인 거죠.”
“어린 녀석이 팔자 운운은.”
“우리 겨우 세 살 밖에 차이 안 나거든요? 누가 보면 서른 살쯤 차이 나는 줄 알겠네. 누가 애늙은이 아니랄까 봐 그래요?”
어린 시절에 가족을 잃고 인생이 늘 상하 관계의 연속이었던 미드프레드에게 이런 식으로 아웅다웅할 만한 상대는 일찍이 없었다. 죽음을 피부처럼 두르고 살아가는 무인으로서, 전장에서 수하로 만난 메이샤드에게 형제애를 느끼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미드프레드에게 그는 아체프렌과는 또 다른 의미로 특별한 존재였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저번처럼 무섭게 적을 몰아치셨어요? 병사들이 또 형님을 보면서 수런대는 거 같은데요.”
“뭐, 특별히 눈에 띌만한 짓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메이샤드의 농담에 미드프레드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독립 작전도 아니고 후버의 지휘를 받는 입장에서 전공을 너무 독식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 정도는 미드프레드도 하고 있었다. 다만 로크라테군의 총사령관인 베틴이 있는 한, 이 싸움이 끝나지 아니할 것을 우려하여 그를 사로잡아 후버에게 넘기긴 하였으나, 그 외에는 계약에 충실한 용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하는 게 튀어 보이는 거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형님처럼요.”
메이샤드는 선선히 말을 받으며 팔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그을음으로 가득 찬 숲 너머로 새벽빛이 돋고 있었다.
*
“상장군의 표식이네요. 베틴 장군이신가요?”
파빈느는 후버가 데려오는 중년의 장수를 보자마자 바로 그의 신분을 짐작했다. 갑주의 목깃에 세레즈 왕실의 문양과 로크라테 영주의 문양을 같이 새길 수 있는 자는 임명에 국왕의 재가가 필요한 24개 성의 수비대장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틴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낙마하며 다친 것인지, 아니면 숲에서 이미 부상을 입은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왼쪽 다리가 붉게 물들어 절고 있었지만, 허리를 바로 편 채 끌려오면서도 태도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저는 아크레이드 성의 영주의 장녀, 파빈느 레 아크레이드입니다.”
파빈느는 상대의 냉랭한 반응에 개의치 않고 제 소개를 마친 후, 눈길을 돌려 후버 장군을 돌아보았다. 상대의 대답 같은 것은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이.
“제가 이런 일을 처리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걸 잘 아시면서 살려 오시면 어떡합니까, 후버 장군.”
누가 앞에 있다 한들 하고픈 말을 가리는 법이 없는 파빈느는 솔직하게 난감한 기분을 토로했다. 서툴다도 아니고, 힘들다도 아닌, 귀찮다 운운에 베틴은 내심 충격을 입은 모양이었지만, 파빈느와 후버는 패장의 안색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장이 생포한 것이 아닙니다.”
“휴우, 또 그 용병 형님 짓인가요?”
파빈느는 한숨을 내쉬며 반문했다. 후버가 민망한 기색으로 수긍했다.
“예, 아무래도 주공의 일도 있으니 공녀께 처분을 맡기는 것이 병사들의 사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소장에게 적장을 맡기더이다.”
사람이 좋은 후버는 이번 전투로 그 용병 형제를 높이 평가하고 완전히 한편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지만, 파빈느는 부탁하지 않은 부분까지 깊게 헤아리는 용병 형님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세상에 어느 용병이 자신이 지휘하지도 않을 군의 사기와 계약 이후의 전후처리까지 생각이 미친단 말인가. 길게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베틴을 굳이 살려 저에게 보낸 미드프레드의 심사가 손에 잡힐 듯 보여 파빈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기는 하지만 그 용병 형님의 판단이 옳았다. 전장에서 신분을 알지 못한 채 죽였다면 또 모를까, 상대가 누군지 버젓이 알고 있는 입장에서 베틴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는, 영주권을 일시적으로나마 대리하는 파빈느 자신의 몫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그녀는 천천히 베틴에게로 돌아섰다.
“장군은 로크라테 영주와 더불어 태자 전하의 안위를 위협하였으며, 하크스의 로엘 대공 전하를 독살하였고, 저희 아버지이자 아크레이드의 영주님을 해한 원수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보낸 군사들과 맞서 싸우느라 우리 병사들은 긴 행군 끝에 쉬지도 못하고 싸워야만 했어요. 저는 승자의 관용을 베풀 의사가 없고, 충분히 제 결정에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파빈느는 잠깐 말을 멈추고 베틴을 바라보았다. 베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별반 동요 없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파빈느는 정말로 하기 싫지만, 아크레이드의 영주대리로서, 군권 담당자로서 해야만 하는 말을 꺼내었다.
“그대를 죽이면 지친 우리 군사들을 데리고 첸트로빌 성 앞에서 또 한 번 더 실익 없는 싸움을 하여야 하겠기에, 저로서는 정말로 하기 싫은 제안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투항하여, 첸트로빌 성을 포위한 군사들에게 전면 항복을 설득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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