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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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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327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9.23 00:04
조회
246
추천
8
글자
7쪽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1화 공주의 결단

DUMMY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1. 공주의 결단






다이엘라는 창턱에 팔을 괴고 앉아 물끄러미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는 싱그러운 녹음에서는 늦여름의 무르익은 기운이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한창 덥기 마련인 오후이기 때문일까. 도성 웨이샤이드에서도 서북쪽으로 제법 많이 치우쳐 있어 빈 말로도 채광이 잘되는 편이라 할 수 없는 소궁 제네이아의 창문 안으로 뜨거운 햇살이 곧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얼굴 쪽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후끈한 바람만으로도 무척 더운 날씨이건만, 다이엘라는 머리 위로 내리쪼이는 햇살아래 거의 무방비 상태로 상체를 내민 채 창 밖을 바라보며 벌써 반시간 가까이 자신만의 생각에 골똘해져 있었다.


커런스에 아체프렌의 칙사가 도착한 것은 어제 정오경의 일이었다. 몇 년이나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태에 놓여 있던 아체프렌이 세레즈로 돌아와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해 가뜩이나 아연해 하고 있던 찰나, 때마침 도착한 사절이 전해준 아체프렌의 발언은 문자 그대로 커런스의 도성을 거센 태풍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나 진배 없었다.


새벽 같이 열린 긴급 조례 도중 잠시 다이엘라 소유의 별궁 제네이아에 들러 도성 안팎의 소식을 들려주고 간 안스트의 말에 의하면, 아체프렌의 귀환에 대한 정보는 사실임이 틀림 없는데다가, 세레즈는 현재 안타미젤 왕자의 대관식을 알리는 여왕의 공식 발표 탓에 내란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그 사절은 곧 발발할지 모를 내전에서 아체프렌에 대한 커런스의 조력 의사를 탐지하기 위해 급파된 것이라 했다.


사신 접견 이후 커런스에서는 어제 오후 내내 세레즈의 분열과 그 조력 문제에 관련하여 각 부별 세부 회의가 연이어졌으나 결국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관계로, 이를 보다 못한 유스티안 Ⅶ세가 새벽부터 긴급 어전 회의가 소집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무려 네 시간이 넘게 지속된 치열한 논의에서도 대립 구도만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을 뿐, 아체프렌이나 안타미젤 그 어느 한 편으로도 대신들 간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실정이라 했다.


안스트 역시 도성 내외 전신료들이 소집된 긴급 어전 회의 중간에 잠시 빠져 나온 것이라 불과 이십 분 정도만 머물다 다시 본성으로 돌아갔지만, 다이엘라는 그의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지금 돌아가고 있는 조정의 사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큰일이야. 불간섭을 주장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왕을 옹호하는 무리 또한 적지 않다니. 대체 어째서 이야기가 그리 돌아간 거지? 이것은 단순히 감정을 앞세워 해결할 일이 아닌데.’


다이엘라는 시선을 떨어뜨리며 길게 한숨을 터트렸다. 이미 아체프렌의 사신을 맞아들인 작금, 대답을 미루고 있는 것은 결국 자신들에게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를 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여기 주저앉아 소식이 오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 이 중요한 시기에 소득도 없는 논의만 거듭하게 내버려 두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다이엘라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려 창턱을 짚고 일어섰다. 이제 더 이상 뒷자리에 물러나 앉아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공주님.”


창가에서 근 십여 보 정도 떨어져서 다이엘라의 행동거지를 줄곧 바라보고 있던 로베르트 크레티온이 그녀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다이엘라는 시선을 들어 자신 앞을 가로막듯 서있는 동갑내기 벗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본성으로 가야겠어.”


로베르트는 이 종잡을 수 없는 공주가 이번에는 또 무슨 소란을 벌이려고 이러나, 하는 눈빛으로 다이엘라를 응시하며 짧게 잘라 물었다.


“지금 본성에서 어전 회의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쯤은 아실 텐데요.”


로베르트는 공연히 본성 근처로 가서 가뜩이나 다이엘라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국왕의 진노를 살 행동을 스스로 찾아서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라는 충고를 그리 돌려서 말했다.


형인 안스트의 부탁을 가장한 강제에 의해 거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다이엘라의 호위를 맡게 된 로베르트로서는 이제 그녀 때문에 귀찮은 일에 휘말려 드는 것만은 무슨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피하고 싶었다.


다이엘라와 그 주변에 무언가 사건이 한 번씩 터질 때마다 그 뒤처리는 물론이요, 하나 뿐인 형의 곱지 않은 눈초리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심한 책망을 그 혼자서 뒤집어 써야 했으니, 아무리 다이엘라가 어렸을 때부터의 친구라 해도 이제 그녀로 인한 말썽이라면 지긋지긋해질 만도 했던 것이다.


“중요한 회의 중이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네게 곤란한 일은 없을 거야, 아마도.”


다이엘라는 순진한 얼굴로 생긋 미소 짓고는 로베르트가 미처 붙들 사이도 없이 곧장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섰다.


이번에도 꼼짝없이 말려들었군, 하는 생각을 하며 로베르트는 짧게 한숨을 깨물었다. 일단 그녀가 움직이기로 작정했다면, 이 성에서 다이엘라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무슨 일로 그녀가 이리 나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번 일의 파장이 국왕 폐하와 왕비님께는 미치지 않기를. 별궁 제네이아에서 본궁에 이르기까지 제법 긴 산책로를 생각에 잠긴 채 걷고 있는 공주의 뒷모습을 근심 섞인 눈빛으로 응시하며, 로베르트는 소박한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스스로의 초조한 심사를 애써 침묵으로 포장하고 있던 로베르트 역시도, 본궁이 눈앞에 보이자 결국은 더 이상 참지 못한 채 그녀에게 다가서서 한 번 더 충고를 늘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발 회의실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왕궁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긴장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 와중에 공주님으로 인해 무언가 예기치 못한 일까지 일어나면, 이번에는 폐하의 진노가 쉬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아아. 아버님의 노여움이 네게 튀게 하지 않겠다는 것만은 약속할게.”


형식적인 대꾸임에 틀림없을 무성의한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자, 로베르트는 얼굴을 굳힌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제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이엘라는 화가 난 듯 잔뜩 굳은 로베르트의 목소리에도 전혀 굴하는 기색 없이 그를 휙 하니 스쳐 지나가 본성 회의실로 향하는 복도로 접어들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로베르트는 걸음을 재촉해서 다이엘라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녀는 도리어 그런 그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로베르트를 쳐다볼 뿐이었다.


“회의실은 안됩니다. 형이 공주님께 저간의 상황에 대해 소상히 전해드리지 않습니까? 굳이 그곳에 직접 가시지 않더라도 회의가 끝나는 대로 집무실로 불러들여 보고를 받으시면 됩니다. 제발 부탁이니, 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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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외전] 청혼 이후 下 20.02.05 139 4 8쪽
268 [외전] 청혼 이후 上 - 미드프레드의 이야기 20.02.03 126 2 7쪽
267 [외전] 청혼 下 20.02.01 97 4 7쪽
266 [외전] 청혼 中 20.01.31 122 3 7쪽
265 [외전] 청혼 上 - 브라우웰&미드프레드 이야기 20.01.30 129 4 7쪽
264 39장 이삭줍기 7화 악우 20.01.29 142 5 8쪽
263 39장 이삭줍기 6화 베케이노의 기다림 20.01.28 127 5 8쪽
262 39장 이삭줍기 5화 자금의 출처 20.01.27 120 4 11쪽
261 39장 이삭줍기 4화 희소식 20.01.24 127 4 7쪽
260 39장 이삭줍기 3화 다시, 시작 20.01.23 131 3 8쪽
259 39장 이삭줍기 2화 태자가 던져놓은 포석 20.01.22 133 3 7쪽
258 39장 이삭줍기 1화 귀환 20.01.21 127 4 7쪽
257 38장 적의 적 7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下 20.01.20 130 5 8쪽
256 38장 적의 적 6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上 20.01.18 135 5 8쪽
255 38장 적의 적 5화 전쟁이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20.01.17 135 7 8쪽
254 38장 적의 적 4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2 20.01.16 142 6 10쪽
253 38장 적의 적 3화 아직은 버릴 수 없는 패 +2 20.01.15 130 6 8쪽
252 38장 적의 적 2화 공짜가 아닌 성의 20.01.14 119 7 7쪽
251 38장 적의 적 1화 늦은 선물 20.01.13 130 5 8쪽
250 37장 붉은 바람 6화 옥좌란 20.01.11 137 6 9쪽
249 37장 붉은 바람 5화 대관식 직전, 흉몽 20.01.10 114 5 8쪽
248 37장 붉은 바람 4화 뿌리는 자, 거두는 자(회차변동) 20.01.09 130 5 8쪽
247 37장 붉은 바람 3화 왕자의 관용 20.01.08 150 7 10쪽
246 37장 붉은 바람 2화 잠 못 이루는 밤 20.01.07 183 8 8쪽
245 <제3부 다이레비드 공방전> 37장 붉은 바람 1화 기만책 20.01.06 136 6 8쪽
244 [외전] 세월 28 (끝) 20.01.04 131 5 10쪽
243 [외전] 세월 27 20.01.03 103 4 9쪽
242 [외전] 세월 26 20.01.02 104 5 9쪽
241 [외전] 세월 25 19.12.28 98 3 8쪽
240 [외전] 세월 24 19.12.20 101 4 8쪽
239 [외전] 세월 23 19.12.18 101 5 7쪽
238 [외전] 세월 22 19.12.17 105 4 9쪽
237 [외전] 세월 21 19.12.13 114 5 7쪽
236 [외전] 세월 20 19.12.11 104 5 7쪽
235 [외전] 세월 19 19.12.09 113 6 9쪽
234 [외전] 세월 18 19.12.06 112 6 8쪽
233 [외전] 세월 17 19.12.03 129 5 7쪽
232 [외전] 세월 16 19.11.30 114 5 7쪽
231 [외전] 세월 15 19.11.29 125 4 7쪽
230 [외전] 세월 14 19.11.28 118 4 8쪽
229 [외전] 세월 13 +2 19.11.27 116 4 9쪽
228 [외전] 세월 12 19.11.26 122 5 7쪽
227 [외전] 세월 11 19.11.25 124 5 11쪽
226 [외전] 세월 10 19.11.23 128 5 9쪽
225 [외전] 세월 9 19.11.22 115 5 7쪽
224 [외전] 세월 8 19.11.21 115 5 7쪽
223 [외전] 세월 7 19.11.20 125 4 7쪽
222 [외전] 세월 6 19.11.19 127 5 9쪽
221 [외전] 세월 5 19.11.18 140 5 12쪽
220 [외전] 세월 4 19.11.16 156 5 7쪽
219 [외전] 세월 3 19.11.15 152 5 12쪽
218 [외전] 세월 2 19.11.14 170 5 11쪽
217 [외전] 세월 1 -세느비엔느 여왕의 외전 19.11.13 198 6 15쪽
216 36장 선전포고 6화 무혈입성(2부 完) +2 19.11.12 235 7 11쪽
215 36장 선전포고 5화 백성들의 왕 19.11.11 179 8 9쪽
214 36장 선전포고 4화 태자의 대의 19.11.09 195 9 7쪽
213 36장 선전포고 3화 로크라테군의 대응 19.11.08 174 7 7쪽
212 36장 선전포고 2화 전서 19.11.07 194 7 9쪽
211 36장 선전포고 1화 항복 +2 19.11.06 185 8 8쪽
210 35장 붉은 숲 전투 6화 투항 권유 19.11.05 195 7 7쪽
209 35장 붉은 숲 전투 5화 공세 19.11.04 187 7 8쪽
208 35장 붉은 숲 전투 4화 매복 19.11.02 197 6 9쪽
207 35장 붉은 숲 전투 3화 유인 19.11.01 189 6 7쪽
206 35장 붉은 숲 전투 2장 작전과 신뢰 +2 19.10.30 208 8 8쪽
205 35장 붉은 숲 전투 1화 괴물용병 19.10.28 164 6 9쪽
204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6화 첸트로빌 공성군 19.10.25 197 5 10쪽
203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5화 전투 준비 19.10.23 312 5 8쪽
202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4화 요란한 출병 19.10.21 202 7 7쪽
201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3화 관점의 차이 19.10.18 181 7 7쪽
200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2화 백의종군 +4 19.10.16 205 7 9쪽
199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1화 아크레이드의 입장 19.10.14 183 7 9쪽
198 33장 흑운의 그림자 6화 급변하는 정세 19.10.11 188 8 8쪽
197 33장 흑운의 그림자 5화 미드프레드와 메이샤드 19.10.09 198 6 9쪽
196 33장 흑운의 그림자 4화 유훈 19.10.07 208 6 9쪽
195 33장 흑운의 그림자 3화 음독 19.10.04 203 7 8쪽
194 33장 흑운의 그림자 2화 번뇌 어린 선택 19.10.02 215 6 7쪽
193 33장 흑운의 그림자 1화 짬짜미 19.10.01 204 8 9쪽
192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8화 줄다리기 하 19.09.30 189 7 9쪽
191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7화 줄다리기 上 19.09.30 185 8 7쪽
190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6화 휘장 너머의 소녀 19.09.28 224 8 9쪽
189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5화 은밀한 초대 19.09.27 219 8 8쪽
188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4화 아비와 딸 19.09.26 208 8 12쪽
187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3화 커런스의 입장 19.09.25 191 8 9쪽
186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2화 공주의 선언 19.09.24 204 8 9쪽
»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1화 공주의 결단 19.09.23 247 8 7쪽
184 31장 풍운재자 6화 승부수 19.09.21 227 7 9쪽
183 31장 풍운재자 5화 태자의 특사 +2 19.09.20 236 8 7쪽
182 31장 풍운재자 4화 싸움준비 19.09.19 288 8 7쪽
181 31장 풍운재자 3화 해적이 된 초원의 아이 +2 19.09.18 246 8 11쪽
180 31장 풍운재자 2화 이이제이의 계책 +4 19.09.17 247 12 8쪽
179 31장 풍운재자 1화 혁자생존 +2 19.09.16 282 10 9쪽
178 30장 흐르는 별 7화 거절할 수 없는 청 +2 19.09.12 255 9 13쪽
177 30장 흐르는 별 6화 원유회 19.09.11 248 11 8쪽
176 30장 흐르는 별 5화 이면의 계책 +2 19.09.10 230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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