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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달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17.08.03 05:04
최근연재일 :
2021.02.13 21:2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26,937
추천수 :
1,172
글자수 :
195,944

작성
17.08.14 23:57
조회
416
추천
20
글자
12쪽

24-1.

DUMMY

24.


어쩌면.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은 저 한 마디 였을지도 모른다.

희귀한 종족이나 마나에 반응한다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보다 나에게 더 필요했던 것은 내가 살아있어줬으면 한다는 그 단순한 한 마디 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본 교수의 목소리에 마음 속에서 닫혀있던 무언가가 부서져나갔다. 그리곤 뒤이어 억눌렸던 감정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나 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던 이기적인 생각들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그 다음에는 본 교수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사과하고 싶었다.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들을 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나 혼자 아무리 이렇게 생각을 한 들 직접 내 목소리로 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죽고싶지 않아.

해야할 일이 생겼다.

그것도 바로 지금.

그래. 교수님의 말이 맞다. 어느 종족도 두 번이나 멸종해선 안된다.

그건 이미 이 세계에서 앞서 멸종해버린 다른 인간들을 위해서도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비극인 것이다.

이게 억지라는 걸 나도 알고있어.

말도 안된다는 것도 안다.

내 생명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하지만 그게 오늘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끝났다는 것처럼 혼자서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가서는 안되는 거였다. 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건 그저 이기적인 착각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니까 살고싶다.

살아야겠다.

이게 흔히 쓰는 진부한 대사라는 건 알고 있어.

나한테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다는 것도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제발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는 이가 있다면 도와주세요.

내가 오만하고 이기적인 놈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다른 세계로 넘어와 놓고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지 못할망정 스스로의 삶을 저주하고 포기해버렸으니까.

하지만 나 또한 소리치고 싶었다.

제발.

제발 내게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이런 결말을 원했던 게 아니니까.


그리고 꿈 결 에서 들었던 것 같은 희미한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내가 원하는 건 이미 말했지. 하지만 네가 원하는 건 아직 말하지 않았구나.]


그렇다면 지금 말할게요.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아요.

죽고 싶다고, 다 끝내고 싶다고,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했던 것도 진심이 아니에요.

살고 싶어요.

이 세계에서 날 이토록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저 그래도 비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았잖아요.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세상의 온갖 소설 속 주인공들이 가지고있는 그 흔하디 흔한 뭔가를 저에게도 주세요.


눈앞에 마나의 흐름들이 소용돌이 쳤다.


그들이 내 주위를 움직이며 속삭인다.


무언가를 노래하듯, 무언가를 이야기하듯.


그리고 이번에는 그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내 이름을 불러줘.)


이름을 부르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이름을 불러줘.)


네 이름이 뭔데.


(몰라. 우리는 몰라. 우리도 우리가 누군지 몰라. 우리 이름을 불러줘.)


세상이 바닷물에 잠겨있었다.


마나라는 바다에 잠긴 채 깊은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 그림자들을 바라보았다.


쇠사슬이 난간에서 완전히 떨어져내리기 직전.


온 세상이 멈춰있었다.


빛도, 공기도, 소리도, 물체도.


모든 것이 그 바닷속에서 정지해 있었다.


(우리는 몰라. 우리도 몰라. 알고 싶어. 알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아.)


춤추는 그림자들. 눈동자들이 나를 바라본다.


(우리의 이름을 불러줘.)


하지만, 나도 모르는데.


.

..

...

.....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구나.


몰라야 하는게 정상이지만.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고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중 한 명이 바로 나였으니까.


비록 내 힘으로 해낸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히 난 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도왔었다.


말하자면 난 창조자의 행위를 곁에서 도와준 보조나 다름없었다.


울고 싶다.


정말로. 정말로.


울어버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러니까. 그 매에에엔 처음에서 부터.


아니. 진짜로. 처음의 처음이자 시작의 시작지점인 바로 그 순간에서 부터.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너무 억울하고 열받아서 펑펑 울어버리고 싶었다.


로브 속에서 어깨를 흔들며 웃고있을 그 존재를 떠올리니까 약이 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거였던 겁니까.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진실 하나를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난 여지껏 그 고생을 겪은 겁니까.


당연히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지만 후드를 둘러 쓴 그 존재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억 속에서 목소리들을 떠올렸다.


[내려두고 온 것들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붙였 것만, 정작 아무도 그게 무엇인지 몰라.]


[단어와 의미는 채워졌어도 누구도 정말로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고있는 이’ 가 없다.]


[그러니 네가 그 이름들을 불러준다면 좋겠구나.]


왜냐하면 오직 이 세상에서 너 만이 그 이름을 부를 수 있으니까.


(이름을 불러줘. 우리의 이름을 불러줘. 알고 싶어.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


내 탓이다.


저쪽 세상에 두고온다는 게 정말로 무슨 의미인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있었다면 감히 어설프게 다른 세상의 다른 존재들에게 간섭하는 일 따위는 결코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것은 내 탓이었다.


왜 인간에게만 마나중독이 일어나는 걸까.


어째서 마나라는 에너지가 오염될 때 마다 인간이 그것을 정화할 수 있었을까.


그건 이 그림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있는 이가 인간이라는 걸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저쪽 세상에 마나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쪽 세상에 마나가 존재하며 그것이 마법을 일으키는 힘의 근원이 되었다.


저쪽 세상에서 두고온 그것이 이쪽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 자리에 무언가의 구멍을 남겼고 그 빈 공간에 전혀 다른 단어와 의미가 채워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어긋나버린 존재들은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위해.


자신의 이름을 찾길 갈망하며 세상 속을 떠돌아다니고 있던 걸까.


시간과 공간이 영원히 멈춰버린 것 같은 이 틈새에서 조금 팔을 앞으로 뻗어 내 앞에 나타난 그 그림자 하나를 품에 안아주었다.


마치 이 세상에 외롭게 던져진 나를 교수님이 껴안아 주던 것처럼 그렇게 품에 안았다.


「네 이름은 튜나 야.」


미안해. 미안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나한테는 참치라는 단어가 익숙한데. 음, 참치캔도 맛있지. 다랑어라고도 불러. 원래는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야. 나도 실제로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TV에서도 보고, 사진으로도 보고, 다큐멘터리 같은 데에서도 보고. 또....」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그림자를 껴안고 그냥 아무렇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시간 속에서 내 머릿속에 있던 저쪽 세상의 기억들, 이미지, 향기, 느낌, 소리와 빛깔과 형태와 그 존재가 가지고있던 의미들 까지.

그 모든 이야기들이 나에게서 이 그림자들에게로 조금씩 조금씩 흘러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단지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메말랐던 것들에게 무언가가 스며들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짧았는지 혹은 긴 시간이었는지 감각조차도 이미 멈춰 서있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땐, 수 천 수 만 마리의 그림자들이 내 주변을 헤엄치며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었는데 바닷속을 떠다니는 유람선처럼 거대한 그림자도 있었고, 손바닥 만한 작은 그림자들도 있었다.

존재를 잃고나니 형태마저 자유로워진 그 모든 그림자들이 마치 춤을 추듯 온 세상에서부터 모여들어 내 주위를 둥글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 환상적인 모습들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고마워.)


무엇이 고맙다는 걸까.


(우릴 기억해 줘서 고마워.)


원망하지는 않는 걸까.

조용히 내 품에서 빠져나가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네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우리의 이름을 불러줘. 그러면 우리가 그 이름을 듣고 올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마나의 그림자들이 서서히 눈앞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때는 푸른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쳐다녔던 생명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서 오직 나 만이 원래의 이름을 기억하고있는 '마나의 그림자' 들을 바라보았다.


안녕.


그들이 떠나갈 때.

저 멀리서 엄지손가락보다 더 작은 그림자 하나가 쪼르르 하고 내 쪽으로 헤엄쳐오더니 내 가슴 속으로 쏙 하고 들어와버렸다.


(안녕.)


그 작별인사를 끝으로 나는 잠시동안 정지한 세계 속에 홀로 남겨졌다.

내 온몸을 짓누르던 감각과, 압박들도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머리카락이 바닷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살며시 흔들거리고 손가락 끝에는 서늘하고 기분좋은 흐름들이 느껴졌다.

세상의 밝음과 어두움 조차도 푸른 물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온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그 바닷물 속을 자유롭게 헤엄쳤다.


내 눈에 마나가 보인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달라진 건 이제는 더 이상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다음에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헷갈리지 않는다.


멈춰라.


마나의 그림자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떨어져 내리는 사슬들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 연결 고리들 하나하나에 스며들며 쇠사슬 전체를 잠시 동안 허공에 묶어두었다.

정말로 마법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내 의지가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 통용되는 듯 신기한 기분이었다.

잠깐이면 충분할 것이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사슬들이 좀 더 천천히 떨어지도록 만든 것 뿐이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추락하던 몸에 다시금 무게와 체중이 느껴졌다.


「보웰 이 망할 자식아.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말도마쇼. 내 평생 이렇게 열심히 뛰어본 적이 없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네.」


그 짧은 다리로 얼마나 힘겹게 달려온 건지 보웰이라고 불린 톨브 요원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하지만 쇠사슬을 잡고있는 단단한 두 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교수님.」


난간에 걸려있던 쇠사슬들이 풀어졌지만 그 끝을 간신히 붙잡은 두툼한 손이 조심스럽게 본 교수의 손에서 자신의 손으로 사슬들을 되감았다.

식은 땀을 흘린 채 의식을 거의 잃어가던 교수를 뒤로 물러나게 하자 그녀가 떨어져내리지 않도록 붙잡고있던 안드레이도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흰색 예복을 툴툴 털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 적어도 완전히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나 보군.」


안드레이의 거친 말투에 어느틈엔가 익숙해진듯 보웰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까딱거린다.


「예, 예. 마스터 안드레이.」


보웰이 본격적으로 팔을 움직여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무려 4명이나 매달려있는 쇠사슬이었지만 그가 한 번 팔을 잡아당길 때마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현수교의 난간 아래에 늘어져있던 인간의 띠도 점차 길이가 짧아져갔다.

그렇게 모든 게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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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 +1 17.08.14 417 20 12쪽
42 23. +3 17.08.14 425 18 18쪽
41 22-2. 17.08.13 408 20 14쪽
40 22-1. 17.08.13 391 18 11쪽
39 21. 17.08.12 403 19 13쪽
38 20. 17.08.10 421 16 13쪽
37 19.∥막간 종장∥ +2 17.08.08 415 15 9쪽
36 19.∥막간 1장∥ 17.08.08 429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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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8.∥막간 1장∥ 17.08.06 431 17 7쪽
33 17-2. +2 17.08.05 437 21 9쪽
32 17-1. 17.08.05 436 19 8쪽
31 16-2. 17.08.04 436 21 8쪽
30 16-1. +1 17.08.04 457 25 9쪽
29 15.∥막간 종장∥ +1 17.08.04 456 21 9쪽
28 15.∥막간 3장∥ 17.08.04 434 19 8쪽
27 15.∥막간 2장∥ 17.08.04 452 18 7쪽
26 15.∥막간 1장∥ 17.08.03 463 20 8쪽
25 14-3. 17.08.03 465 23 7쪽
24 14-2. 17.08.03 461 1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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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3-2. 17.08.03 488 24 7쪽
21 13-1. +1 17.08.03 514 23 7쪽
20 12-2. 17.08.03 531 2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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