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EYW

튜바달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17.08.03 05:04
최근연재일 :
2021.02.13 21:2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26,936
추천수 :
1,172
글자수 :
195,944

작성
17.08.10 18:49
조회
420
추천
16
글자
13쪽

20.

DUMMY

20.


이런.

생각보다 상태가 많이 심각하다.

상원의원이 차량의 앞 쪽에 설치된 통신기기를 손에 쥐고 누군가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운전석의 보좌관은 입술이 파랗게 질린 상태로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채 엑셀 패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가속 패달을 밟아도 주변의 풍경은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뗀 것처럼 느릿느릿 움직일 뿐이었다.

아니 속도가 느린 게 아니다.

이 다리 전체가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궁이라도 된 것처럼 그 어떤 차량도 다리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달리고 또 달려도 저 멀리 해안선은 여전히 까마득한 거리에 있었고 직선거리를 주파하는 가장 단순한 일 조차 이들에겐 어떤 종류의 공포나 무기력함을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멀리 도시와 항만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초점을 잃은 탓에 그 불빛들이 알알이 빛나는 구슬처럼 커져보였고 그 빛나는 구슬들이 도시의 검은 밤하늘을 수 놓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쿨럭


하고 벌써 세 번째 기침이 흘러나오자 입 안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주르륵 흘러나온다.

무리다.

이런 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실성한 것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안드레이가 버티라고 하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나 이외에 이 마나중독이라는 현상을 겪어본 이는 아무도 없었고 이 현상이 대체 얼만큼 고통스럽게 내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지 아는 사람 역시 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함부로 떠드는 거지.

단순히 참으려고 해서 참아지거나 약물을 투약하는 것 따위의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 같았으면 인간이 멸종할 일도 없었다.

인간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인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같은 인간들끼리도 서로의 고통을 잘 모르긴 하지만, 지금처럼 누구도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느낌을 비유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이 수십 수백미터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있는 것 같았다. 몇만 톤의 수압이 내 몸을 짖누르면서 피가 흐르는 혈관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마나란 것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는 마법의 압력에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심지어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시공간의 장벽 속에 갇혀서 끝이 보이질 않는 현수교의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러니까 난 공기 중에서 질식해서 죽어가고있는 것이다.

아냐....

이건 전부 다 가짜일 거야.

이 모든 게 실제일리 없다.

차라리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고통도 없었을 것이고 이런 이상한 세상의 이상한 일들에 휘말려 납치를 당한다거나 내 몸에 이상한 약물을 주사하려는 미치광이를 만난다거나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온 세상의 색들이 이미 그 형태를 잃어서 서로 번지고 섞이고 종래에는 회색빛이 되어버렸다.

뿌연 시야 탓에 잠시 손을 더듬거리다 창문을 열었다.

바깥의 바람이 조금씩 창문을 통해 들어왔지만 가슴의 답답함은 해결되지 않았고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더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창문을 완전히 열어서 몸을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숨을 쉬고 싶다.

단지 그 열망 하나로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차량 밖으로 몸을 던지려고했다.

곧 나를 발견한 뒷쪽의 상원의원이 내 목덜미를 잡아챘지만 발을 휘둘러 그 엘프를 차서 밀어버렸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편안해 질 수있다.

마치 온 몸의 모공 하나하나를 막아버리는 듯한 통증과 압박이 점점 더 내 몸을 짓눌러왔다.

하지만 뒤에서 나를 붙잡는 손아귀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지 내 바지 끝단을 붙잡고는 끝까지 날 잡아당겼다.

지금 뭐하는 거야 상원의원.

날 죽이려던 게 아니었나.

그런데 내가 죽지 못하게 붙잡으려하다니. 아니 어느 쪽이든 결국 죽을 수 밖에 없으니 결국엔 나를 죽이려는 건가.

스스로도 제정신이 아니란 걸 알고있지만 그걸 인식하고 있다고 해서 딱히 변하는 건 없었다.

그래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마치 보잘 것 없는 내 모습처럼.

어쩌면 내가 살아온 삶 전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추잡한 발버둥의 연속이었는지 모른다.

비뚤어지지 않는다고? 그게 무언가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떠벌리지만 실은 그딴 소릴 하는 게 정상일 리가 없잖아.

부모 양쪽에게 양육을 포기당하고, 친척집에서 거슬리는 짐덩어리 취급을 받고, 나를 사랑해준 이, 내가 사랑하는 이는 모두 내 곁을 떠나버렸다.

대체 무슨 착각을 하며 살아온 거냐, 나는.

끊임없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모범생인 척, 예의바른 아이인 척 그렇게 하면 누군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해 선물이라도 내려줄 거라고 기대한 걸까.

마치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았냐?

억지로 고집피우고 허세를 부리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행복해졌냐?

지금의 나한테 남은 게 뭔데.

결국 껍데기 뿐이다.

정말 내가 누구이고 뭘 하고싶어하는 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떤 희망을 품고있었는지 이제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빈 껍데기 만이 남아서 그저 죽지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었다.

망할. 망할. 망할. 망할. 망할. 이 망할 놈에 엿 같은 세상아.

대체 나한테서 왜 이러는 거야.

내가 꺾이고 좌절하는 게 그렇게 보고싶냐?

얼마든지 해주마. 수백 번 포기할태다. 수천 번 무너질태다.

패배의식는 뼛속에 사묻히고 자기연민과 자기비하는 들숨과 날숨처럼 폐부를 찌르며 하루하루 내 자신을 썩어들어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 조차 다 무슨 의미가 있지.

결국엔 죽어버릴 탠데.


이젠 그만 편안해지고 싶다.


끝내고 싶다.


그냥... 없는 것이 되고싶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잠시 눈을 감았다.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몸이 흔들린다.

살며시 열린 흐릿한 시야 사이로 내가 탄 차량의 사이드미러가 들어왔다.

상원의원을 뒤따라오는 세 대의 차량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저 멀리, 전혀 다른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 하나가 서서히 이들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뒤로 돌려 그 차량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의 생각들과 몸의 감각이 동시에 멈춰버린 듯 한 순간들 속에서 정말로 아무런 의식도 없이 멍하니 그 차량의 모습을 시야로 좇았다.

후방 두 대의 차량에서 상원의원의 부하들이 차창을 내려 양 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제각기 화기로 보이는 소총을 들고있었는데 방아쇠를 당겨도 총이 발사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노리쇠를 당기며 격발을 시도해보지만 마치 총의 발사장치가 장전된 탄약과 아무런 물리적인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그 모든 총들이 한 순간에 장난감보다 못한 신세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엔 누군가 정사각형의 강철케이스를 꺼내들었다.

그리곤 그의 손에 쥐어진 쇳덩어리의 형태가 달궈진 금속처럼 변하더니 한 묶음의 투창 다발을 만들어냈다.

저것도 마법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구별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멍한 머리로 그런 의문을 떠올렸다.

그 자가 손에 쥐어진 자벨린을 집어던지려 할 때, 그들을 쫓아오던 SUV 차량에서 누군가가 상체를 내밀었다.


촤르르르륵!


그 때 상체를 내민 누군가로부터 달궈진 듯한 광채를 내는 두 줄기의 쇠사슬이 날아와 투창을 날리려던 차량의 후방에 펑 하고 꽂혔다.

그리고 다음 순간엔 차량과 연결된 쇠사슬이 되감기며 투창을 던지려던 차량을 그대로 옆으로 당겨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끼이이이익!


차량은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다가 옆에 있던 또 다른 차량과 부딪혀 완전히 접지력을 잃어버렸고 그대로 현수교의 난간에 부딪혔다가 수 바퀴를 회전하며 시야 밖으로 떨어져나갔다.

내가 지금 뭘 보고있는 거지.

액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스턴트 장면이 눈 앞에서 벌어지니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현실성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제부터 벌어진 일들은 모두 한 순간에, 그리고 동시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나와 상원의원이 탄 차량을 바로 곁에서 쫓아오던 뒷쪽의 흰색 밴에서 화물칸의 문이 열렸다.

터널에서 우릴 습격했던 바로 그 차량이었다.

그리고 그 밴에는 정말로 치명적인 마법을 발사하는 기계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저건 정말로 위험하다.

머릿속이 제정신이 아닌 나 조차도 본능적으로 그 감각을 떠올릴 만큼 저 흰색 밴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SUV 차량에서부터 짙은 푸른색 피부의 장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이 누구였더라. 익숙한 인물이었음에도 머리가 굳은 탓에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 고개를 갸우뚱 하고 말았다.

그의 모습이 주변의 모든 에너지와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출렁이더니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가 방금전까지 서 있던 차량이 무언가의 힘에 눌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위아래로 출렁거린다.


쾅!


그리곤 뒤따라오던 검은 차량 한 대가 누군가 위에서 허리를 찍어누른 것처럼 납작하게 접혀버린다.


우지지직!


상단에서 내리꽂힌 압력에 눌린 차량의 스프링이 반동으로 다시 튀어오르자, 그 작은 힘의 반향마저 허투루 낭비하지않겠다는 듯 또 다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처음 SUV 차량에서 그 검은색 세단까지의 거리는 20여 미터. 그리고 이번에는 10여 미터 거리의 흰색 밴이었다.


펑! 콰지직!


흰색 밴의 위쪽에 떨어진 그 힘의 충격은 마치 속이 비어있는 풍선을 터트린 것처럼 내부의 공간을 순식간에 차량 밑바닥까지 으스러뜨렸고 중심을 잃은 흰색 밴은 차체의 고개가 기우뚱 하고 위로 들려버렸다.

그리고 아스팔트에 쇠판이 갈리는 엄청난 소음을 내며 위아래가 뒤집혀버린다.


카가가가각! 콰릉 콰직 콰지직.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점점이 벌어진 차량들 사이를 건너뛰며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완전히 꼬꾸라진 흰색 밴 위에는 이미 차량을 덮친 그 장신의 사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탄 차량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린다.


끼익. 끼익.


차량의 스프링이 거칠게 삐걱대지만 이번엔 다른 차량들처럼 차체에 엄청난 충격이 내리꽂히진 않았다. 대신 누군가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는 무게감 만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차량의 트렁크 덮개 위에서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은 검은 양복의 사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있었다.

웃고있는데도 울 것 같다니. 정말 바보같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정말로.」


누구한테 말을 거는 걸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과 달리 몸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치신데는 없나요.]


말이 통하지 않을태지만 어쩐지 그는 말이 필요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 걱정하지 마시길.」


차창 밖으로 반쯤 걸쳐있던 몸이 힘을 잃고 좌석 내부로 허물어졌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상원의원이 자신의 가슴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하지만 포룸 요원 역시 그것을 놓치지않았다.


「이젠 이 숨바꼭질을 멈출 시간입니다. 상원의원.」


차량의 뒷유리를 통해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의 눈빛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포룸 요원, 내 자네에게 당부하겠네. 만약 지금이라도....」


상원의원이 입을 벌린 그 순간.

포룸 요원은 들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그대로 오른팔을 들어 차량을 찍어눌렀다.


차징 임팩트Charging Impact!


또 다시 주변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듯한 흐름이 일렁이며 무언가의 힘이 차량의 표면을 타고 퍼져나갔고


퍼퍼펑!


달리던 차의 네 바퀴 타이어가 모두 터져버렸다.


「으아아악!」


운전석의 보좌관이 비명을 지른다.

바퀴의 금속 프레임이 아스팔트에 갈리며 만들어낸 불꽃의 꼬리와 함께 차량이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카가가가가각!


양 손으로 귀를 막아보지만 온 몸을 뒤흔드는 그 진동에 몸의 솜털 하나하나가 다 곤두서버릴 것 같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던 그 불꽃과 진동과 굉음의 피날레는 마침내 서서히 줄어드는 차량의 속도와 함께 차량의 몸체가 관성으로 기우뚱 기울었다가 쿵 하고 제자리에 멈춰서는 것으로 대망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튜바달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공지] 새 작품 홍보입니다. +1 21.02.13 192 4 2쪽
46 ---구분선--- +4 17.12.11 207 6 1쪽
45 에필로그. +7 17.08.16 620 31 29쪽
44 24-2. END. +7 17.08.15 519 19 13쪽
43 24-1. +1 17.08.14 416 20 12쪽
42 23. +3 17.08.14 425 18 18쪽
41 22-2. 17.08.13 408 20 14쪽
40 22-1. 17.08.13 391 18 11쪽
39 21. 17.08.12 403 19 13쪽
» 20. 17.08.10 421 16 13쪽
37 19.∥막간 종장∥ +2 17.08.08 415 15 9쪽
36 19.∥막간 1장∥ 17.08.08 429 18 9쪽
35 18.∥막간 종장∥ 17.08.06 426 16 8쪽
34 18.∥막간 1장∥ 17.08.06 431 17 7쪽
33 17-2. +2 17.08.05 437 21 9쪽
32 17-1. 17.08.05 436 19 8쪽
31 16-2. 17.08.04 436 21 8쪽
30 16-1. +1 17.08.04 457 25 9쪽
29 15.∥막간 종장∥ +1 17.08.04 456 21 9쪽
28 15.∥막간 3장∥ 17.08.04 434 19 8쪽
27 15.∥막간 2장∥ 17.08.04 452 18 7쪽
26 15.∥막간 1장∥ 17.08.03 463 20 8쪽
25 14-3. 17.08.03 465 23 7쪽
24 14-2. 17.08.03 461 19 9쪽
23 14-1. 17.08.03 497 24 6쪽
22 13-2. 17.08.03 488 24 7쪽
21 13-1. +1 17.08.03 514 23 7쪽
20 12-2. 17.08.03 531 27 7쪽
19 12-1. +2 17.08.03 570 24 10쪽
18 11. +2 17.08.03 582 2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