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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달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17.08.03 05:04
최근연재일 :
2021.02.13 21:2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26,918
추천수 :
1,172
글자수 :
195,944

작성
17.08.14 20:03
조회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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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8쪽

23.

DUMMY

23.


그렇게.

가슴 한 켠에서 소용돌이치는 온갖 감정들과 생각들을 그저 마음 속에 묻어두고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굿바이 월드.

잘있어라 세상아.

짧은 만남이었지만 뭐, 나쁘지는 않았다.

주위의 풍경이 180도로 반전하며 하늘이 아래로, 다리 아래의 바닷물이 머리 위로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는 그저 추락하는 것 뿐이지만.

하아... 비록 이런 결말이 되었어도 어쨌거나 꽤나 속이 시원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마무리가 아닌가.

아무것도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위에 일어나는 사태에 그저 휩쓸리기만 했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에는 적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게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내 머릿속의 생각일 뿐이고 역시나 몸은 그런 생각들과는 상관없이 지금도 자신에게 닥쳐오는 죽음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하고 있었다.

내 숨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이렇게나 거칠어져 있구나.

몸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단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주변 세상이 온통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상원의원은 이 와중에도 눈앞에 고작 몇 센티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헬리콥터의 줄사다리를 잡아보려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헬리콥터의 날개에서 쏟아지는 하강풍은 수 천 킬로그램 짜리 쇳덩어리를 하늘로 띄울 만큼 강력했고 상원의원의 마지막 발악은 그 압도적인 힘에 짓눌려 허공에 팔을 휘젓는 것으로 허무하게 끝이나고 말았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밤하늘보다 더 시커멓게 출렁거리는 바닷물을 올려다 보았다.

무섭다.

무서워 죽겠다.

이 다음 순간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머릿속에선 아무런 상상도 떠올릴 수 없었다.

이런 순간에야 말로 기절해준다면 속편할 텐데, 이 망할 세상은 나에게 그런 결말을 순순히 내어줄 수 없다는 듯 몇 번 씩이나 눈을 감았다 떠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끔찍하다.

솔직히 훅 하고 떨어지면 금방 끝이날 줄 알았다.

그런데도 1초 1초가 게으름을 피우며 늘어지고 있었다.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억울한 기억과 서러운 감정들이 점점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커져가고. 그것들을 막아두었던 마음의 벽에 점점 균열이 가서 결국에는 밖으로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왜 울어.

울지마. 울 필요 없다.

스스로도 알고 있잖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 후회해봐야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해야할 일은 언제나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언젠간 이 모든 괴로움이 끝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 만을 바라지 않았던가.

부모님과 이별할 때도, 친척들에게 거절당할 때에도, 선생님을 내가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 순간에도 언제나 마음 한 켠에는 그 모든 것의 결말을.

이 모든 고통의 종지부를 바라곤 했다.

주마등처럼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데 눈 앞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포룸 요원?


아니, 물론 감시기관의 요원들이 나를 지키기 위해 온갖 고생을 했단 걸 잘 알고 있다.

비록 며칠되지 않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기 직전에 떠올리는 얼굴이라기엔 좀 아니지않나.

보통은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게 먼저잖아?


「아르망디!」


포룸 요원이 소리치자 그의 뒷편으로 아르망디 라고 처음 이름을 알게 된 플로지아 요원이 보였고 그 위로 후배 요원이 팔을 내밀고 있었다.

포룸 요원이 왼손으로 내 발목을 붙잡는다.

다시 그의 다리를 아르망디 요원이 붙잡는다.

뒤이어 후배 요원이 아르망디의 몸을 붙잡음과 동시에 반대편 팔을 다리의 철제 난간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빛나는 쇠사슬이 그의 손목에서 만들어지며 난간을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살아있는 뱀처럼 철제난간의 기둥을 향해 올라가더니 그 사이사이를 복잡하게 타넘으며 최대한 멀리까지 뻗어간다. 아니 뻗어가려고 했지만,


덜컥!


하고 사슬은 그 반대편에 메달린 사람의 무게와 가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당겨지며 미끄러졌다.


키리리리리리릭.


다리의 난간에서 불꽃이 튀며 쇠사슬이 끌려내려왔다. 그리고는 마침내 기둥과 기둥의 고리에 휘감기며 네 사람 분의 자유낙하를 붙잡아내었다.


쿵!


팽팽하게 당겨진 쇠사슬들이 반동을 받아 몸이 잠시 허공으로 살짝 들리는 듯 했고 촤르륵 하고 출렁이는 사슬고리의 쇳소리가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하지만 멈춰섰다고 생각된 것도 잠시일 뿐.

쇠사슬 뱀의 머리부위가 살아있는 것처럼 정말로 분하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지만 사슬은 속도를 낮추는게 고작이었는지 서서히 서서히 아래로 끌려내려왔다.


드득, 드드득.


뭐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 정신나간 종족들은 자신의 몸을 난간 밖으로 내던지면서 까지 날 따라온 것 같았다. 그것도 내가 떨어지는 걸 본 그 순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만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완벽하게 신뢰하는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다.


부웅


하고 거대한 추라도 매달아 놓은 듯한 기다란 사람의 끈이 다리 아래로 늘어졌다.

그리곤 곧 헬리콥터의 바람에 밀려 왕복운동을 하며 느릿하게 흔들린다.

뜨거운 피가 이마 위로 한두 방울씩 툭 툭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돌리자 벤자민이 쏘아낸 마법에 튕겨나간 데미지가 상당했는지 포룸 요원의 이마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발목을 붙잡은 그의 손은 한쪽이 부분이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는데 그제서야 그의 왼팔이 기계로 만든 의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 놀라게 하기는. 인간들은 원래 다 이런 겁니까. 리을 군.」


그를 내려다보는 내 표정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보통 상처가 아니었음에도 포룸 요원이 씨익 하며 웃는다.


드르륵.


사슬이 이번엔 조금 많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구해드릴 태니까.」


아니.

항만을 가로지르는 현수교의 높이는 눈으로 봐도 대략 5~60 미터. 이런 높이에서 떨어지면 아무리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요원들이라고 해도 이번엔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눈치없는 나라고 해도 저게 허세란 걸 잘 알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같이 죽어버리고 만다.

머리 위로 넘실대는 검은 바닷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요원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호흡은 이제 거의 헐떡거리 듯이 거칠어져 있었고 마나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에는 아무런 힘도 들어가질 않는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절 놓으세요!]


내 목소리를 들은 포룸 요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지만 곧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시원스럽게 웃는다.


「아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아저씨들도 다 죽어요.]


「이 정도 피가 흐르는 거야 뭐, 지지난번 사건에 비하면 애교나 마찬가지니까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치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포룸 요원이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어이, 울시. 그러니까 평소에 기본장비 다루는 법을 미리미리 연습하라고 했잖냐. 이게 뭐야.」


미끄러지는 쇠사슬을 보며 포룸 요원이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 말했다.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고개를 아래로 돌리니 시선은 위를 향한다.

후배 요원이 양팔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견디며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하... 그러게요 선배. 제가 보고 배운 게 선배의 방정맞은 행실 밖에 없어서 너무 나태해졌네요.」


「뭐 임마? 너 말투가 그게 뭐야. 아까 전에 터널에서는 넘어갔지만 이따 끝나고 한 번 보자.」


후배 요원은 뭐가 기쁜 건지 이런 상황에서조차도 얼굴에서 웃음기가 묻어나왔다.


「네. 꼭 좀 혼내주세요. 그리고 혹시 제 시체를 바다에서 찾으면 장례식 날 선배 옷은 핑크색 발레복으로 부탁드릴께요.」


아르망디가 눈을 감고 큭큭거리며 웃는다.


「죽여버린다.」


「어때요. 선배 밑에서 너무 고생했으니까 저도 마지막 한 번 정도는 엿먹여 봅시다.」


드륵.

사슬의 고리 몇 가닥이 한 번 더 미끄러진다.

주변 헬기에 탑승한 기자들이 서로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날개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막으려는 듯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고 헬기의 서치라이트 역시 위험해지는 것을 우려해 방향을 돌렸다.

다리 아래를 비춘 서치라이트 불빛이 바닷물에 반사되어 다리 밑면에 어지러운 물빛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상원의원은 언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만큼 해수면과는 까마득한 높이였다.

저 멀리 해안부두에서 경비정인지 구조정인지 모를 보트들이 경광등과 사이렌을 울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속에서 악에 받치는 감정이 터져나와서 소리쳤다.


-[놔요!]


다리를 버둥거려보지만 포룸 요원이 더 강하게 내 발목을 붙잡으며 웃었다.


「어이쿠, 위험해라.」


눈에서 눈물이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원의원과 함께 떨어져 내린 그 순간, 나는 거의 절반 정도는 죽음을 결심하고 있었다.

그자가 뭔가 심각하게 위험한 행동을 하려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고작 이런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나의 의지와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했다는 최소한의 자기 위안이라도 건질 수 있었을 태니까.

내 목숨이나 삶에 대한 애착, 혹은 다른 무엇들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고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나를 구해준 이들은 요원들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내리는 나를 위해 손을 뻗었고, 서로를 의심없이 믿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조차도 흔들리지 않는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저렇게 까지 무언가를 믿으며 살아있던 순간이 있었을까.

조금 눈이 부실 정도였다.

거꾸로 떨어지는 눈물들이 바다를 비추는 서치라이트에 닿아 하얀 모래알처럼 반짝인다. 하지만 곧 흔적도 없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다.

나도, 그리고 이사람들 모두가 결국 저런 운명을 맞이하겠지.

이대로 가다가는 무게 때문에 결국 다 같이 바다에 떨어져 버릴지도 몰랐다.

잠깐은 빛났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떨어지는 것이다.

자기 희생으로 다른 사람을 구해냈다는 찌질한 만족감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끌어당겼다는 죗책감에 벌레들이 온 몸을 물어뜯는 것처럼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젠 목소리조차 웅얼거리는 것처럼 뭉개져 버렸다.


-[놔 달란 말이예요. 저 때문에 아저씨들을 죽게할 수는 없어요.]


난간의 기둥 몇 개에 마지막으로 걸쳐있던 쇠사슬이 초시계가 째깍거리는 것처럼 한 고리 한 고리 씩 아래쪽으로 끌려내려왔다.


드득, 드득. 드륵, 키릭.


「안 돼요!」


촤르륵 하고 쇠사슬이 고정되며 미약한 반동이 흔들거렸다.


「절대 놓으면 안 돼요. 절대로!」


그 죽음의 카운트 다운을 멈춘 것은 본 교수였다.

교수가 난간 밑바닥에 엎드려서 양 팔로 그 미끄러지는 쇠사슬들을 붙잡고 있었다.


「교수님?」


「리을 군. 듣고있죠.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요.」


난간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세 명의 요원들이 이번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포룸 요원이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그런 의미였습니까.」


-[이대로는... 다 같이 죽어요.]


「안 됀다면 안 돼는 거예요!」


본 교수가 다급한 탓인지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공용어로 소리쳤다.

비록 쇠사슬이 난간에 걸쳐있다고는 하지만 성인 남성 3~4명 분의 무게가 실려있다. 그걸 본 교수의 힘 만으로 붙잡는다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다.

쇠사슬이 떨어지는 속도는 분명 줄었지만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위쪽에서 사슬을 붙잡고있는 교수 본인조차도 상반신이 조금씩 난간 아래로 끌려내려 왔다.


「마스터 안드레이! 뭐라도 좀 해봐!」


포룸 요원이 소리치지만 모습이 보이지않는 안드레이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벌써 했다. 미친 놈들! 내가 교수를 붙잡지 않았으면 가장 먼저 떨어진 건 이 여자야!」


이자리에 있는 모두가 힘에 부치는 순간이 도래했고 그 잠시동안 서로가 거칠게 호흡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곧 정적이 흘렀다.

흰머리가 성성한 노교수의 가냘픈 팔과 손이 쇠사슬에 천천히 쓸려나간다.

교수가 고통스러운지 눈을 감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체 왜 붙잡으시는 거예요.]


그 정적을 깨고 다시 한번 그녀에게 소리친다.


-[다 같이 죽으려는 게 아니잖아요. 대체 저한테서 뭘 원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왜 이렇게 까지.

무엇때문에.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원인을 묻는다면 결국 대답은 ‘나’ 라는 존재에 있었다.

이미 멸종해버린 인간이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사라지는 것이 이 모든 일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에겐 나를 구해야할 의무나 목숨을 걸 하등의 이유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교수에게로 돌아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녀는 눈을 감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긴 침묵을 깨고 교수의 입에서 터져나온 것은 정말로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입 닥쳐요!」


...네?


다른 세 명의 요원들과 심지어 보이지는 않지만 마법사 안드레이 조차 멍해졌을 거라고 확신한다.


「닥치라구요! 그딴 쓰레기같은 소리나 지껄일 바엔 입 다물고 얌전히 있어요.」


교수가 공용어를 쓰고있는 탓에 그녀의 입에서 처음 나온 이 엄청난 욕설들은 다른 요원들의 귀에도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듣고있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아까부터 칭얼칭얼. 어른인 척, 세상 모든 고통을 다 짊어진 양 어린아이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리을 군은 아무 잘못 없어요. 세상에 태어난 게 잘못이라느니 그딴 소리를 함부로 입에 올려선 안된단 말이예요! 애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든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그건 이 사태를 만든 어른의 잘못이니까.」


본 교수가 정말로 화가 나는지 주변의 헬리콥터 소리를 뚫고 내 귀에 까지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릴만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모든게 자기 탓이라고 했어요? 아니에요. 그런게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되어선 안 돼요. 대체 리을 군은 주변 사람들을 뭐로 보고있는 건가요. 나도 그리고 요원들도, 안드레이 법사도, 닥터 위브도, 그리고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랑 지나가는 환자들도 모두 리을 군을 걱정해주고 또 좋아했어요. 지금도 좋아하고 있구요. 불쌍하다느니 멸종위기종이 냐느니 어디서 그딴 말을 배운 거예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윗돌을 던지는 것처럼 머리 위로 쿵 쿵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사람을 구하려는 게 잘못된 건가요?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는 게 잘못된 거냐구요.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아까도. 그리고 지금도 제 대답은 똑같아요. 리을 군이 소중하니까! 제가 인류학자라거나 리을 군이 인간이라거나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어요. 그런 걸 생각해본 적도 없구요. 그냥 전 리을 군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돼서 기뻤어요. 제가 평생동안 노력해온 덕분에 리을 군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어서 정말로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얼어붙은 마음을 허물고 미안함과 슬픔에 목이 메이게 만드는 저 목소리.

어린 시절의 나를 혼내주고 걱정하며 끄끝내는 안아주던 선생님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천둥이 치는 것처럼 머릿속이 뒤흔들렸다.


「손을 놓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어요. 죽고싶어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있는 거예요? 이 세상 어느 종족도 두 번 멸종할 수는 없어요.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종족들에게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끼 게 하는지 정말로 아무 상관도 않는 건가요.」


아니다.

상관하지 않는게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날 신경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건 정말로 그런 걸까.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걸까.

인간이 멸종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난 이제는 알고있지 않았는가.

2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또한 그랬다.

인간이고 인간이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가 자신의 가족 친구 형제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닐 리가 없었다.


드륵.


다시 한 번 쇠사슬 고리가 끌려내려갔고


우드득


하며 본 교수의 어깨뼈 한 쪽이 탈골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교수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리을 군을 괴롭게 했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잡게 해 주세요. 우리들 한테도. 그리고 나한테도. 어른들에게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이 세상의 다른 종족에게 우리들 사이에 인간이 함께 했었다는 걸 잊어버리게 하지 말아주세요. 이대로 손을 놓지 말아요.」


교수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목소리는 정말로 귓가에 스치는 바람 같이 느껴졌다.


「우릴 외롭게 두지 말아요.」


본 교수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풀어졌다.


키리릭. 팅!


그리고 사슬들이 떨어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41 이르스
    작성일
    17.08.14 22:52
    No. 1

    으 손발퇴갤.... 넘 오그라드네여 주인공의 희생정신이.... 죽고 싶어하는 인간이 어딨음. 시한부 인생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게 사람인데. 자청해서 손을 놓으라고 난리를 치는건 이해가안감.... 친구도 가족도 아무도 없다고해도 그냥 죽음이 결정되어있다고 마냥 순응하고... 억지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려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여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1 아침기상
    작성일
    17.08.16 14:09
    No. 2

    억지감동이네요.
    여기서 눈물 흘리는 것도 그렇고 손 놓으라고 하면서 징징거리는 것도 그렇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스노윙
    작성일
    18.01.24 12:23
    No. 3

    흐음.. 확실히 이부분은 좀 답답하네여.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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