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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달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17.08.03 05:04
최근연재일 :
2021.02.13 21:2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26,924
추천수 :
1,172
글자수 :
195,944

작성
17.08.13 01:02
조회
390
추천
18
글자
11쪽

22-1.

DUMMY

22.


모든 사람들이 경악에 가득찬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상원의원조차 이걸 예상하진 못했는지 잠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이 그닥 별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어깨 위로 뻗어낸 팔을 옆으로 치워버린 것 뿐이다.

다만 그 팔 끝에 후배 요원을 겨누던 권총이 쥐어져 있었고, 그걸 밀쳐낸 덕분에 정말로 사람을 향해 총을 쏘려고 했던 상원의원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인질을 잡고있으면 인질에게서 무기를 떼면 안되지. 멍청한 엘프.

그는 이제 나를 향해 총을 겨눠야할지 아니면 눈 앞에 저들에게 총을 겨눠야 할지 잠시 햇갈린 듯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비릿한 맛의 핏덩이를 뱉어보려 쿨럭대보지만 침을 뱉을 힘조차 없는 탓에 이 시도 역시 무위로 돌아가버렸다.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교수님.]


-[네.]


내가 결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걸까. 교수님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상황이 이런 때이긴 하지만, 저도 질문 하나 할께요.]


「뭐야, 무슨 이야길하는 건가.」


상원의원이 내 중얼거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당황해서 소리쳤다.


-[듣고있어요.]


「무슨 이야길 하는거냐고 묻지않나. 보른 교수!」


인질들은 인질범을 두려워해야하며 그들의 모든 행동은 인질범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 상황을 지배하는 것은 자신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원의원은 한 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되어온 듯한,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감시기관의 요원들 조차도 혼돈에 빠트린 거대한 음모의 당사자이자 보이지 않는 흑막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지금에 와서는 그저 한낱 허접한 인질범에 지나지 않는다.

인질범은 오직 인질의 공포에 의해서만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인질이 인질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인질극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상원의원이 인질극의 주도권이 자신에게서 나와 보른 교수에게로 쏠린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분노로 소리쳤다.


「이런 젠장! 내 말을 듣게. 교수. 당장 그 입 다물어. 다물란 말이다!」


하지만 보른 교수는 침착했고 차마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없던 상원의원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것으로 그들을 협박하려 했다.

물론 교수님에게 총을 쏘려 했어도 내가 또 방해했을 태니 소용없었겠지만.

그리고 그가 자기입으로 누누이 떠들었던 것처럼 나 라는 인간이 있다면 이자의 계획도 크게 틀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내가 없으면 상원의원의 모든 계획은 처참하게 망가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죽어버리면 나를 통해 마나를 정화하는 시동기구를 만들려던 그의 노력은 전부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니 아무리 나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어봤자 나는 그가 날 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었고 당연히 내 입을 막을 수도 없었다.

자기 마음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결국 폭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자유롭게 나불대는 입 아니던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절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본 교수가 이제는 완전히 상원의원을 무시한 채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 할머니를 슬프게 만든다는 게 조금 가슴 아프지만 마음 속으로 이미 결심한 상태였다.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민망하지만, 처음엔 정말로 무서웠어요. 왜냐하면 다른 종족을 보는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렇지만 병원에서 절 안아주셨을 때 정말로 오랜만에 부모님의 품에 안기는 것 같았어요.]


-[리을 군. 그러니까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상원의원이 본 교수에게 총을 겨누다가 다시 내 머리에 총을 겨누다가 갈팡질팡 하면서 손끝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입 닥쳐!」


분노에 휩쌓인 상원의원이 내 바로 발 밑에 권총을 발사한다.

아스팔트가 튀어오르고 권총이 발사된 자리가 몇 센티미터나 파일만큼 흉흉한 자국을 남겼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도저히 권총이라고 믿기 힘든 위력이었지만 위력이 강하다는 말은 절대로 나를 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농담으로라도 살살 쏘면 혹시 죽지 않을지도.

이런 건 계획에 없었겠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중 삼중으로 도망갈 구멍을 파놓는다 하더라도 세상 일은 의도한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게 감시기관이든 마법학회든 또는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장막 뒤에 숨어서 모든 이들의 머리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자라고 해도 예외는 없었다.


-[절 이렇게까지 구해주시려는 이유가 뭔가요.]


-[....]


본 교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 어차피 죽어요.]


-[아니에요. 리을 군. 그렇지 않아요.]


고개를 젓는다.


-[모든 인간들이 사라졌어요. 병원에있을 땐 몰랐지만 이젠 알겠어요. 마나중독이 얼마만큼 고통스러운 건지 인간이 아니면 아무도 몰라요. 오늘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제가 죽는다는 운명은 바꿀 수 없어요. 단지 빠르게 죽는가 느리고 고통스럽게 죽는가의 차이일 뿐이예요.]


본 교수의 얼굴이 슬픔에 잠겨들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인간이 사라지는 건 어쩌면 이 세상의 정해진 운명인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걸 거스르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이런 불행한 일들만 벌어지는 거예요.]


-[아니에요. 절대 그런 게 아니라구요.]


-[저 때문에 다른 분들이 죽을 뻔 했어요.]


본 교수가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소리쳤다.


-[리을 군은 소중해요. 다른 인간들이 사라졌다고 리을 군 까지 그렇다고 정해진 건 아니란 말이예요.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운명을 짊어질 필요 없어요.]


-[그건 제가 보호해야할 종족이기 때문인건가요?]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아니에요. 리을 군이 소중하기 때문이예요.]


-[절 도와주시려는 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건 제가 멸종한 인간이기 때문인건가요. 상원의원이 그랬어요. 인간은 생태계에서 탈락한 종족이라고. 그건 그냥 인간이 불쌍하기 때문인 건가요.]


-[....]


-[희귀한 동물을 지키는 것처럼 연구에 필요하니까? 아니면 마나의 오염에 반응하는 종족이니까?]


교수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며 그녀의 성성한 흰 머리카락이 창백하고 투명한 빛깔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 같다고 마음 한구석에서 가시가 박혀왔지만 그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입은 계속해서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동정하는 것 뿐이라면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저 때문에 이 일에 휘말리신 것도 진심으로 사과드릴께요.]


-[...리을 군.]


-[감시기관의 아저씨들 한테도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있어요. 좀더 일찍 결심을 했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리을 군.]


-[모든 게 제 탓이예요.]


그녀가 한 순간도 내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건 너무 잔인한 말이다. 스스로도 알고있지만 지금껏 경험해온 일들이, 그리고 내 만신창이가 되버린 몸과 마음이 이제는 도저히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교수의 옆에 서있는 두 요원들도 나와 교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있는건지 짐작조차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원의원은 딱히 무엇을 해야할 지 판단이 서지 않는지 그저 총구를 이리저리 겨누며 뒷걸음질 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몸이 현수교의 난간에 닿아 더 이상 어느 곳으로도 도망 칠 수 없게 됐을 때, 주변의 공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현수교의 철제 케이블이 뒤틀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밤 하늘이라는 바닷속에 울려퍼지는 고래의 울음소리처럼 다리의 이곳저곳에서 그 길고 느린 저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다리 위를 미궁으로 만들어놓던 공간 마법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수십 km 까지 늘어져있던 현수교의 기둥들이 커튼이 접히는 것처럼 차례차례 합쳐졌고, 좌우로 아득하게 멀어져있던 해안과 항만의 풍경들 역시 공간의 중심부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헬기의 소리가 들린다.

감시기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광의 검정색 헬기는 마침내 상원의원이 있는 곳까지 다가왔고 난간에 등을 기댄 그를 향해 기다란 줄사다리를 늘어뜨렸다.


「그래도 늦지 않았군.」


상원의원이 잠시 당황했지만 결국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듯 줄사다리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상원의원. 당신이 무대의 뒤에서 고개를 내민 순간 이 싸움은 이미 끝이났어.]


「....」


「뭐?」


교수가 아무런 댓구도 없이 상원의원에게 내 말을 통역해서 전해주었다.

난간에서 이제 몇 m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줄사다리를 향해 팔을 뻗던 그가 내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주위 하늘에서 펑 펑 하며 하나 둘 서치라이트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시기관의 검정 헬기를 따라온 취재 헬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상원의원이 당황해서 소리치지만 그의 말에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보좌관 마저 장기말로 이용하는 악인의 곁에는 이제 말 한마디 대꾸해줄 이도 남아있지 않았다.

혹시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라고 해야 할까.

이번엔 아까와는 달리 진짜로 언론사의 취재 헬기였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니라 예닐곱 대의 각기다른 언론사의 헬기들이 카메라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원의원이 쏘아올린 신호탄에 반응한 이는 그의 부하들 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추측컨대, 오늘 하루종일 감시기관의 차량을 추적해온 언론사들은 무언가에 잔뜩 굶주려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낮에 일어난 마법사와 감시기관의 충돌 외에는 아무런 뉴스거리를 건지지 못했을 태니까.

분명 이 도시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던 언론사들은 이번 일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도시의 항만을 가로지르는 현수교가 이상하게 뒤틀려 보인다는 제보를 받아서 그것이 마법에 의한 현상이라고 추측한다면 이곳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판단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최후에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 버리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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