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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달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17.08.03 05:04
최근연재일 :
2021.02.13 21:26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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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15
추천수 :
1,172
글자수 :
195,944

작성
17.08.04 17:40
조회
456
추천
25
글자
9쪽

16-1.

DUMMY

16.


「그래서 생각했지, 지금까지와는 발상을 바꿔보기로.」


내가 타고있는 차량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감시기관의 검은색 세단이었지만, 내 옆에 앉아있는 이는 중절모를 깊게 눌러쓰고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로 창 밖을 보고있는 상원의원이었다.


「사실 마법사들에게는 200년 이란 시간은 마나가 급격하게 오염되기 시작한 때로 기억되지. 인간이 멸종한 것 따윈 그들에게 별 관심거리가 아니었네.」


상원의원은 아까 전부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아보았다.


「내가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 지 궁금한가?」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걸 알고있기에 내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본 교수로부터의 연락이 오지 않는군.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떠들면 좀 외로워지는데.」


그때 상원의원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고 그가 문자를 확인하자 가볍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쓸모없는 쓰레기들.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교수님의 이름이 언급되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자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나한텐 긍정적인 의미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상원의원이 불쾌한 감정을 삭히려 품 속에 핸드폰을 거칠게 집어넣었다.


「예정이 조금 틀어졌지만, 뭐. 상관없지. 리을 군 자네와 좀더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쉽군. 대답을 듣고싶은 게 좀 있었는데 역시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 불편한 일이야.」


해안가에서부터 방향을 틀어 동쪽으로 접어든 차량은 이동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없게만드는 구불구불한 산악지형을 통과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해는 이미 완전히 저물어 주변은 온통 어둠에 휩쌓여 있었다.

뒤따라오는 또 다른 검은색 차량들이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주변을 비출 때 마다 키가 작은 관목과 거친 자갈들이 보였다. 마치 자동차 광고에서나 볼 법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그렇게 자동차는 가파른 경사를 좌우로 길게 깎아놓은 도로를 타고 빠른 속도로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자 새까만 밤하늘 속에서 저 멀리 하얗게 흘러나오는 도시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정도 거리에서 보는건 처음이겠지. 아름답지 않나? 주도 앙셍티 라네.」


상원의원이 중얼거렸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멸종은 인류의 역사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어. 그리고 저 도시 역시 그 역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있지. 드라고문트 3세가 제위를 포기하고 수도원에 틀어박힌 이후,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했던 그의 아들은 제국을 뒤흔들어 놓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그로 인한 사회시스템의 붕괴를 수습하려 안간힘을 쏟았네. 하지만 제국 전체가 마치 집단적인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도무지 경제력이 회복되질 않았지.」


상원의원은 밤하늘의 어둠을 몰아내는 등불처럼 광활한 대지의 한가운데 서있는 도시를 복잡한 감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랜 방황 끝에 이 젊은 황제는 훗날 자신의 아비가 그랬던 것처럼 국가적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흥미로운 책을 접하게 되었네. 아이러니하게도 그 책은 사망한 재상, 그러니까 선대 황제가 슬픔에 빠진 미치광이가 되도록 만들었던 사막의 현자 아이네의 서고에서 발견한 거였어. 책에는 고대 인간들의 정치체제에 대한 연구가 적혀있었고 거기서 그는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기록을 읽었네.」


2세기 전의 엘프 황제가 고대 인간들의 민주주의 책을 읽었다고?


「그래서 그는 곧바로 이 흥미로운 정치체제를 실험해보기로 결심했지. 그 실험의 대상으로 맨 처음 결정된 곳이 바로 저곳이야. 저 도시는 제국의 황제가 민주주의라는 씨앗을 처음으로 뿌렸던 역사적인 장소인 걸세. 인간의 멸종은 무려 6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막강한 제국을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에게서 떼어놓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냈던 그 위대한 황제를 기리기 위해서 임페리아 라고 불리는 스포츠 행사를 제정했네.」


피와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되있는 저쪽 세상의 인류와 달리.

이쪽 세계의 민주주의는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버린 국가 시스템과 집단적인 무기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가장 많은 권력을 가진 자가 가장 많은 희생을 감내함으서 민주주의란 나무를 뿌리내리게 한 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을만치 낭만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말을 하는 와중에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상원의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사람들이 인간을 그리워 하는지도 모르겠군....」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병실에서 나를 처음 만나던 간호사들도, 그리고 병원을 나올 때 마주쳤던 환자나 의사들 모두 나로부터 어떤 공통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것은 혹시 어떤 종류의 그리움이었을까.

다른 종족의 존재가 그저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상원의원의 얼굴에 부드러움이 사라지며 무기질적인 냉혹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리을군, 자네는 곧 죽을걸세.」


어깨를 으쓱 했다.

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어차피 난 마나중독이라는 현상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겉은 멀정해 보이지만 속은 심각한 상태였고 특히 유리조각을 손으로 집으면서 얼음 마법에 영향을 받은 오른쪽은 이미 아까부터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이 상황이 변하는 것도 아니니까.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상원의원이 조금 눈썹을 치켜뜬다.


「마나중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 아니, 음. 그 이야기가 맞지만 하여간 자네는 오늘 죽을 걸세. 그러니까 이 모든 일에 휘말리게 한 댓가로 최소한 자네가 왜 죽어야 하는지 설명하는게 도리겠지.」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게 정말로 아쉽군.

하며 중얼거린다.


「인간이 멸종한 뒤 마나가 오염됐네. 마법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름에 불이 붙지않는다 라는데 난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모르겠군. 하여간 마나가 오염된 탓에 현대의 마법사들은 마나석에 의존하는 반푼이 신세가 됐지만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닐세. 인간이 죽어가는 원인이 마나중독이라는 것을 모르던 당시의 마법사들은 이 마나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지. 인간이 멸종한 것과 오염 현상이 서로 연관된 것은 아닐까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당시에는 인류학이라는 학문도 없었고 대부분의 마법사들 역시 멸종한 인간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마나 오염을 ‘정화’하려던 시도는 모조리 실패로 끝나고 말았네.」


그러다 조금씩 흥분을 느끼는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상원의원이 말했다.


「그런데 아니야. 아니었던 걸세. 바로 앞에서 뻔히 보이는데도 황혼의 빛이니 그림자없는 죽음이니 이런 표현에 기만당해 눈 앞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한 거야. 모두가 속았어. 인간이 멸종하고 마나가 오염된 게 아니야. 마나 오염 그 자체가 인간을 죽인 걸세.」


순서만 바꿔놓은 건데 대체 그 둘이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나? 마나는 이미 오염되고 있었어. 인간이 멸종하고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난 것 뿐이네. 대체 언제부터일까. 200년 전? 300년 전? 어쩌면 인류가 처음 마법을 사용하던 기원 전까지 거슬러 가야할 지도 모르지. 마법이라는 초자연 현상을 일으키는 모든 행위가 이미 그 자체로 마나를 오염시키는 원인이었던 걸세.」


나는 감정이 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조금 흥분했는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간이. 바로 그 종족이 마나를 정화하고 있던 거야. 인간은 오염된 마나를 빨아들여 그것을 순환시켰고 반대로 오염된 마나는 살아있는 인간들의 골수 속까지 스며들어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DNA를 망가트렸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종족들은 수천년의 세월 동안 인간들의 희생 위에서 마법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남용하며 살아왔네.」


변화는 서서히 축적되었다.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마법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인간 종족 전체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오염된 마나는 마침내 임계점을 넘게 되었고 황혼의 빛이라 불리는 전 세계적인 대멸종 현상을 일으켰다.

동시에 마나 역시 그것을 정화하던 인간이 사라짐으로 인해 희귀한 촉매 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급격하게 오염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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