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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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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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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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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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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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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장. 메타2기지로 가는 길.(6)

DUMMY

우리는 메타2기지를 마저 둘러보았다. 왼쪽 건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남아있는 건 없었다. 본체에서 떨어진 금속과 플라스틱 조각들, 껍데기만 붙어 있는 시설물의 잔해가 서글프기까지 했다.


나는 건물 안을 훑어본 후 메타2기지를 나왔다. 마침 산소량 게이지도 노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이대로 조사를 끝내고 궤도차로 가기에는 뭔가 허전했다. 나는 지나가는 투로 휴먼세븐에게 물었다.


“여기엔 로봇이 몇 대나 있었나?”


“R5형 사족보행로봇 두 대와 스파이더3 지형조사용 로봇 한 대, P2 물성조사 로봇 한대가 가 있었어요. 하지만 모두 우르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끌려가버렸죠.”


휴먼세븐에 따르면 메타2기지에 상주해 있는 로봇이 4대라는 말이 된다. 메타2기지는 규모가 작으니 메타3나 메타1에 더 많은 로봇이 있다고 쳐야한다. 그렇다면 유로파 전체에 재단의 로봇 수는 대략 20대 내외로 추측되었다. 김철수가 평상시 보여주었던 경계심과 적의감에 비하면 적은 숫자였다.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럼 유로파 전체의 로봇 숫자는 모두 몇 대나 되지?”


휴먼세븐이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웃음을 띠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40대 정도 됩니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죠?”


휴먼세븐이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아 잠시 당황했다. 나는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그럼 메타2 기지는 특별히 로봇 숫자가 적은 기지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로봇들은 유로파 전체를 돌아다니니까요, 그때 기지에 있었던 로봇이 4대였죠.”


그렇다. 로봇들에게 상주라는 개념이 있겠는가.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옮길 수 있고 부숴 버릴 수도 있는 게 기계다.


“다른 문제가 없다면 이제 우린 유벤타 공장으로 돌아가야겠어.”


“그전에 인증을 하셔야 합니다.”


“무슨 인증?”


“재단의 피해 상황에 신디케이트 조사팀이 동의했다는 인증요.”


나는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곧 상황의 중대성을 깨달았다. 신디케이트는 우르인간이라는 괴물이 있다는 걸 파악하지 못하고 경고도 해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재단이 피해를 입었으니 신디케이트가 배상해야 된다. 이렇게 재단이 나올 경우 피해 정도를 확인했던 신디케이트 사람이 바로 내가 되는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증은 어떻게 하는 건데?”


“구두로 하면 됩니다.”


휴먼세븐은 메타2기지의 피해상황에 대해 조목조목 나열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물었다.


“메타2기지의 피해상황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내 눈으로 직접 본 이상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의 목소리는 그대로 녹음 되었고 신디케이트와 재단의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김철수가 자신은 오지 않고 나를 보낸 진정한 이유가 이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휴먼세븐은 앨런과 제인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인증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원이다. 나는 부장으로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사람이다. 법적인, 사회적인 무게감이 다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인증이 끝나자 휴먼세븐은 밝은 어조로 작별인사를 했다.


“재단과 신디케이트의 메타2기지 피해 상황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나는 불쾌감속에 궤도차를 탔다. 어쩐지 나만 아니라 신디케이트 전체가 재단의 작전에 놀아난 것 같았다. 더군다나 얼음 속 세상을 다시 400km나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반면에 앨런과 제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들에게 이번 조사는 좋은 얘기 거리이자 쉽게 맛 볼 수 없었던 경험이었을 거다.


나는 먼저 유벤타 공장 통제실에 조사가 끝났고 이제 귀환한다는 보고를 했다. 통제실 담당자의 어조로 보아서는 공장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궤도차를 출발시켰다. 휴먼세븐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후방 카메라에 뚜렷이 잡혔다. 다시 만나 대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과 이제는 처음보다 호기심도 줄었으니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섞이며 기분이 묘해졌다.


곧 험하고 거대한 얼음덩이 속을 헤집는 길이 시작되었다. 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 가면 된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궤도차를 몰았다. 20km 정도를 달리자 메인 배터리가 거의 방전이 되어 예비 배터리로 전력계통을 변경했다. 예비 배터리가 하나 더 있으니 600km는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르인간을 만나는 것처럼 전력을 소비하는 돌발 상황이 없어야 했다. 궤도차가 제 속도를 내자 나는 앨런과 제인에게 말했다.


“올 때처럼 좌우를 경계해줘요. 목성에 집중하지 말고 시선을 돌려가며 얼음 위를 봐야합니다.”


앨런과 제인이 다시 긴장하며 자리를 잡고 관측창 밖을 보았다. 앨런이 입을 열었다.


“이제 이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데, 우르인간을 만날 일은 없겠죠?”


“리네아와 떨어진 길로 가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제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난 이제 우르인간이 나타나도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경험이라는 게 중요하죠.”


나는 좋은 말로 앨런과 제인을 상대하며 계속 궤도차를 몰았다. 두 시간을 달리고 차를 세우고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리고 앨런과 운전을 교대했다. 한 시간 정도를 더 달렸을까, 제인의 움직임과 말수가 적어졌다. 나는 옆으로 가 어깨를 흔들었다.


“제인, 목성에 너무 집중하지 말아요.”


제인이 머리를 흔들었다.


“보지 않으려 해도, 하늘의 절반이 목성이라···”


“나랑 자리를 바꿉시다. 10분마다 자리를 바꾸며 가요.”


성가신 일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다시 한 시간을 달리고 앨런과 운전을 교대해 내가 궤도차를 몰았다. 대략 우르인간을 만났던 지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 순간 양 옆으로 얼음기둥이 들어찬 길이 나왔다. 궤도차는 몇 차례나 급회전을 하며 지형을 벗어났다. 이제는 집보다 큰 얼음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린 지형으로 얼마간 거의 직선길인 곳이었다. 길 한 가운데서 우르인간 한명이 우리가 남겨놓은 궤도 자국을 내려다보며 서있었다. 컴퓨터가 경보를 울리고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우르인간이다. 테이저건을 준비해요.”


내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궤도차는 멈춰섰다. 우르인간과의 거리는 대략 3,40미터 정도 되었다. 우르인간이 고개를 들고 궤도차를 보았다. 광택 나는 베이지색 피부와 민머리, 길고 작지만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눈자리. 그리고 우르인간과는 왠지 다른 느낌을 주는 얼굴형상. 그것은 좀비가 되 대원이었다.


좀비대원은 궤도차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게 뭔지 죽은 세포에서 되살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좀비대원이든 우르인간이든 혼자일리가 없었다.


“테이저건을 들고 주위를 살펴요. 특히 에어록이 있는 쪽을 봐요. 분명 어딘가에 다른 좀비대원들이 숨어있어요.”


나는 말하면서도 앞의 좀비대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르인간과 너무 닮아 좀비대원이 아니라 우르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런 걸 확인하며 따질 여유는 없었다. 궤도차가 한자리에 서 있는 건 너무 위험했다. 나는 궤도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피하지 않으면 그대로 밀어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좀비대원은 궤도차가 다가오자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다.


“에이록에 뛰어오를지도 모릅니다. 내측 문까지 열고 들어오면 바로 테이저 건을 쏴요.”


나는 앞을 보며 정신없이 말했다. 잔뜩 겁먹은 얼굴로 테이저건을 들고 있는 앨런이 가늘게 대답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좀비대원이 궤도차로 진입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좀비대원은 궤도차에 올라타지 않고 건드리지도 않았다. 좀비대원은 지나가는 궤도차를 그냥 물끄러미 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좀비대원들은 무조건 사람을 덮쳤고 헬멧과 우주복을 벗겼다. 제인이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좀비···가 올라탔어요···?”


“아뇨. 궤도차를 그냥 보기만 했어요.”


내 대답에 앨런이 긴장을 풀며 내쉬는 숨소리가 길게 들렸다. 나는 모든 카메라 영상과 전방을 살폈다. 좀비대원은 궤도차를 따라오지도 않았다. 일단 마음을 놓았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혹과 불안이 뭉클거렸다. 그리고 30분 정도가 지난 후 좀비대원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둘은 궤도차가 진행하는 방향의 얼음바위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쇳덩이를 무표정하게 보고 있었다. 내가 앞유리창으로 둘을 먼저 발견했다.


“앞쪽 2시 방향. 얼음바위 위 좀비대원 둘이에요.”


알랜과 제인도 그쪽을 시선을 돌렸다.


“지붕으로 뛰어 내릴 경우를 대비해요.”


내 말에 앨런이 다시 테이저건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좀비대원은 궤도차를 공격하지 않았다. 둘 다 바위 위에서 궤도차를 내려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나는 속도를 올려 빨리 좀비대원에게서 벗어났다. 좀비대원은 곧 시야와 화면에서 사라졌다. 난 그 둘 중 하나가 길에서 궤도차를 비켜주었던 좀비대원이라 확신했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뚜렷한 신체적 특징은 없었으나 전체의 분위기와 몸의 윤곽선은 분명 같은 좀비대원이라 말하고 있었다. 특히 눈 부위의 크기와 형상은 분명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 좀비대원이 궤도차보다 빨리 와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궤도차가 얼음 바위와 기둥을 피해 S자로 움직인 반면 좀비대원은 얼음을 건너뛰어 가로지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앨런과 제인에게 동의를 구했다.


“방금 좀비대원 중 오른쪽 좀비가 아까 길을 막았던 좀비대원이 아니었어요?”


앨런이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통 누가누군지 구별할 수가 없던데요.”


제인은 멍한 눈으로 목성을 한번 보고는 내게로 눈을 돌렸다.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좀비들이 뭘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아요.”


“뭘 했습니까?”


“꿈을 꾸고 있었어요.”


“꿈?”


“예. 목성의 빛과 무늬아래서 그들은 사고하며 꿈을 꾸고 있었어요.”


“사고?”


“예. 사고. 생각하는 것 말이에요.”


제인이 몽롱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목성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목성의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이 세계에 대해서 말이에요. 우리에 대해서··· 나도 목성이 하는 말을 듣고 싶은데···”


제인은 다시 목성에 정신이 홀린 것 같았다. 앨런이 제인을 흔들었다.


“제인 정신 차려요. 여기 물을 마셔요. 목성을 보지 말고 나를 봐요.”


앨런이 억지로 물병을 제인의 입에 갖다 대었다. 차가운 물병이 입술에 닿자 제인의 눈빛이 살짝 살아났다. 제인은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스스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할 정도면 심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렇게 목성에 익숙해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중에서는 완전히 정신이 빠져 헬멧을 벗거나 얼음 대지를 헤매다 크레바스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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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에필로그 +12 23.05.21 235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3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8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30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8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7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1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4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3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9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2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5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60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7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90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2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7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7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3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2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3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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