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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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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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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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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4
글자수 :
848,903

작성
22.09.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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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추천
21
글자
11쪽

10장. 메타2기지로 가는 길.(5)

DUMMY

2.

우리는 하르모니아 리네아의 바닥에서 얼음대지위로 올라왔다.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느라 숨이 차고 다리 근육도 은근 당겼다. 제인과 앨런이 걱정되었지만 둘은 괜찮아보였다. 숨이 골라지자 휴먼세븐에게 물었다.


“자, 이제 메타2기지로 가는 건가?”


“그렇습니다. 제가 안내 하겠습니다.”


“카트차가 보이지 않는데, 아까처럼 달려가겠다는 건가?”


휴먼세븐은 걱정하는 내가 고마운지 생긋 웃었다.


“아뇨. 저는 저 이족보행로봇을 타고 갈 거예요.”


휴먼세븐은 이족보행로봇 뒤로 가더니 펄쩍 뛰어 목에 양다리를 걸치고 앉았다. 목마를 탄 것이다. 2미터가 넘는 높이에 휴먼세븐까지 목에 앉으니 키메라적인 괴물 같았다.


“이렇게 가면 에너지도 아끼고 사방을 경계하기에도 좋죠.”


휴먼세븐의 말처럼 나름 괜찮은 방법 같았다.


나는 휴먼세븐을 궤도차에 태우고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못하게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휴먼세븐은 일부러 궤도차에 타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궤도차에 탔다면 나와 대화를 피할 순 없을 것이고 예기치 못한 실수로 정보를 누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휴먼세븐은, 아니 재단은, 아예 그 가능성을 차단할 목적이 아니었을까? 사람이든 로봇이든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궤도차는 북서쪽으로 달렸다. 로봇이 안내해주는 길이 나쁘지 않아 효율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로봇들이 많이도 돌아다녀 지형지물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족보행로봇을 따라 얼음기둥이 들어찬 언덕 두 곳을 넘고 바위가 흩어진 평원 세 곳을 지났다.


휴먼세븐은 가는 내내 사방을 살피며 우르인간을 경계했다. 그러나 심각한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얼음 세계의 풍경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런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인간처럼 즐길 수 있는 로봇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인간의 존재 의미가 작아 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50km 정도를 가자 비교적 낮고 작은 얼음바위들이 늘어선 평원이 나왔다. 그 평원의 한 가운데 높이가 3m는 될 것 같은 금속 원통체가 서 있었다. 원통 옆에 다리가 달린 이족보행 로봇으로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있었다. 클라크, 김철수와 함께 휴먼세븐을 추적했을 때 이와 비슷한 평원에서 보았던 로봇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는 척 할 수 없었다. 휴먼세븐이 즐겁게 말했다.


“여기서 잠시 충전하고 가겠습니다. 메타3기지에서 왔더니 전력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전력을 충전하는 것은 휴먼세븐이 아니라 휴먼세븐을 태우고 있는 이족보행로봇이었다. 이족보행로봇의 옆구리가 열리며 전력공급 로봇에서 나온 코드가 꽂혔다. 충전 시간은 길지 않았다. 몇 분도 되지 않아 우린 다시 앞으로 달렸다. 충전을 해 주었던 로봇까지 대열에 합류했다. 30분정도 익숙한 풍경의 얼음세계를 지나자 마침내 얼음 평지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 두 동이 나왔다. 40평 정도의 건물 두 동은 V자 모양으로 입구를 맞대고 있었다. 어쩐지 임시 혹은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메타2 기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휴먼세븐은 환영한다고 했지만 기지의 사정을 아는 탓에 마음이 즐겁지는 않았다. 우리는 궤도차에서 내려 찌그러진 이중문을 거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신디케이트의 기지처럼 정밀한 에어록은 아니었지만 메타2기지의 문도 이중문이었다. 내부 설비를 극한의 온도에 장시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일 것이다.


문을 통과하자 작은 로비가 나오고 건물은 좌우로 갈라졌다. 오른쪽은 차량과 로봇의 격납고였고 왼쪽은 제어 시설과 계측장비, 그리고 열핵 발전기가 있었다. 우리는 오른쪽 건물부터 조사에 들어갔다.


건물 안은 처참했다. 모든 컴퓨터와 설비는 반복적으로 가격 당해 박살 난 채였고, 그 남아있는 것조차 바닥에 고정되어 떼어낼 수 없는 케이스들이었다. 우르인간들이 내부 부품들을 모두 가져간 것이다.


열핵발전기마저 한쪽이 심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우주복에 달린 방사능 감지기가 조용한 것으로 보아 방사능 유출은 없었다. 발전기의 외부 금속벽이 워낙 강해 우르인간이 파괴하는 데는 실패한 것 같았다. 휴먼세븐이 부드럽고 듣기 좋은 소리로 감정 없이 설명했다.


“영상에 잡힌 우르인간은 스물일곱 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지 밖을 돌며 벽과 문을 만지다 결국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었죠.”


“문이 잠겨 있었을 건데 어떻게 열고 들어왔나?”


“재단의 기지는 잠겨있지 않습니다. 우린 에어록 같은 것이 필요 없으니까요. 오히려 암호입력기 같은 것이 있으면 더 불편하죠.”


“우르 인간이 힘이 세다 해도 맨손으로 금속 장비들을 부술 수는 없을 것인데?”


“그렇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이것저것을 만지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밖에서 얼음덩이를 가져와 내리치기 시작했어요. 컴퓨터나 여러 설비들을 깨부수고 그 내부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이곳에 있었던 로봇은 저항하지 않았나?”


“유로파의 로봇들은 전투용이 아니에요. 아시지 않나요?”


휴먼세븐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그럴까 반문하고 싶었지만 주제가 흩트려질 것 같아 참았다. 앨런과 제인은 열심히 사전을 찍으며 기지를 돌아다녔다. 앨런은 자주 휴먼세븐에게 얼굴을 돌렸는데, 자기에게 설명하는 미인이 정말 안드로이드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픈 눈빛이었다. 앨런이 휴먼세븐과 대화하고 싶었는지 문득 물었다.


“아까 영상에 잡혔다고 했는데, 그럼 녹화 장치가 있었을 것 아냐? 그런데 여기의 모든 건 다 부서졌는데, 영상은 어떻게 남아 있었지?”


앨런을 다시 보게 한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휴먼세븐이 나에게 웃듯 앨런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질문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기지의 상태를 알려주는 계측 데이터와 영상 데이터는 바로바로 메타3기지의 ‘사슴’에게 전송됩니다. 그럼 사슴이 그것을 분석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보정 명령을 내리죠.”


“사슴?”


“아, 사슴은 재단의 기지를 컨트롤 하는 인공지능입니다.”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내가 호기심이 생겼다.


“그럼 유로파에서 로봇이 수집하는 모든 정보는 다 사슴을 거치겠군. 유로파의 실제 보스는 사슴이 아닌가?”


휴먼세븐이 또다시 배시시 웃었다.


“사슴은 기지들만을 관리합니다. 온도, 습도, 전력상황, 외부환경 같은 것들이죠. 로봇들에 의해 수집된 유로파 데이터는 메타3기지의 통신시스템 ‘소리’에 전송되고 ‘소리’는 그 데이터들을 바로 지구로 보내죠. 우리 몸에 원거리 안테나가 달려있고 전력 또한 충분하다면 우리가 직접 보내겠지만요.”


“그럼 지구에서 명령도 그 역순으로 받는 건가?”


“물론이에요. 16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받는 명령이죠. 피할 수 없는 행성 사이의 공간을 받아들인다면, 실시간 원격조정을 받고 있는 셈이죠.”


앨런이 다시 날카로움을 보였다.


“모든 로봇을 다 통제하려면, 오가는 데이터 량이 엄청날 텐데?”


휴먼세븐이 팔을 벌리며 어깨를 움찔했다.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즐겁게 대답했다.


“물론 때때로 ‘소리’에 과부하가 걸리기는 하죠. 하지만 각 로봇에 시차별로 임무를 주면 과부화를 피할 수는 있죠. 물론 요즘 같은 비상시에는 그게 어렵지만···.”


재단의 정보교환과 임무 지시 방식이 신디케이트보다 훨씬 능률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철수처럼 인간들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 진실을 숨기고, 지연시키고, 과장하거나 축소하기도 하지만, 로봇은 그러지 않는다. 오직 기계의 정직함만이 존재한다. 나는 괜히 심술이 났다.


“그런데, 그 ‘소리’에 이상이 생기면 너네 로봇들은 어떻게 되지?”


휴먼세븐이 재밌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소리’가 동시에 고장 날 확률은 작아요.”


“‘동시’라면 통신 시스템은 하나가 아니란 말인가?”


“당연히 비상 상황을 대비해 시스템은 양분 되어있죠.”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내가 말하는 건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말이야, 모든 게 뜯겨 나갔을 때는 어떻게 하냐고?”


휴먼세븐의 눈썹이 살짝 굽어졌다. 불안을 느낀 인간의 표정 그대로였다. 메타2에서 벌어진 일이 메타3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건 누구도 생각할 순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휴먼세븐은 빠르게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그런 경우가 일어난다면 신디케이트가 책임지게 되어있습니다.”


“뭐? 신디케이트가?”


“예. 재단의 통신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신디케이트는 무조건 통신채널을 확보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통신 채널의 문제가 아니라 ‘소리’ 그 자체가 고장 난다면 어떻게 하느냐 말이야?”


“신디케이트의 통신 시스템을 무조건 쓰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신디케이트와 그런 협약이 있다고?”


앨런도 놀랐다. 휴먼세븐은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린 조난자가 되는 거죠. 우주에서 조난자는 무조건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또 조난자를 보면 도와 줄 의무도 있죠.”


“그런 신디케이트의 통신 시스템마저 고장이 나면?”


“지구와의 통신이 완전히 단절되어 명령을 수신 할 수 없을 경우, 비상 매뉴얼에 따릅니다.”


“그 매뉴얼이라는 게 뭔데?”


“로봇의 일부는 한곳에 모여 동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일부는 유로파를 돌아다니며 수신 가능 지역을 찾습니다.”


“동면 되는 로봇과 돌아다니는 로봇은 어떻게 구분하지.”


“제조시 프로그램되어 있어요. 참고로 저는 수신 가능지역을 찾아 배회하는 로봇입니다.”


“수신이 가능하면?”


“동면상태의 로봇에게 지구에게 전달받은 명령을 보내죠.”


휴먼세븐이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유가 뭘까? 나는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이런 사항은 기밀이 아닌가?”


휴먼세븐이 고개를 흔들었다.


“기밀은 주고받는 데이터와 프로토콜이죠. 이런 프로세스는 모두가 가지고 있답니다. 아마 신디케이트도 우리와 비슷한 프로세스들을 가지고 있을 걸요.”


생태학 전공인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재단의 로봇은 통신시스템이 붕괴되면 동면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 로봇들의 약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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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휴가 등의 사정으로 잠시 연재를 쉽니다. +1 22.07.30 880 0 -
170 에필로그 +12 23.05.21 225 27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0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2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25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5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4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46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0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0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1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69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1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53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3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6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47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4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3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57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47 14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58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79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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