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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산과 달과 바람과 칼(화랑연환도 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0.08.11 13:41
최근연재일 :
2021.02.16 10:0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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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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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글자수 :
36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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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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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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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종장: 새 제자

DUMMY

종장.


산에 단풍이 들어서자 까마귀들은 더 자주 울었다. 울긋불긋한 색깔에 둘러싸인 상무암은 까마귀의 소란과는 반대로 더 고적해졌다. 단풍이 들기 전 며칠 동안 상무암이 번잡했던 적도 있었다. 백산이 부른 혜공과 호국사 스님들이 상무암에 와 나한상의 동작들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려간 것이다.


그 몇 날 동안 백산은 혜공과 연환도법을 토론하고 연습하며 도법의 기교는 완전히 숙달했다고 자신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기운을 운용하는 부분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혜공과 몇 시간 동안이나 그것에 대해 토론 했으나 해법을 얻지 못했다. 혜공이 돌아가자 백산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상무암을 찾는 사람은 길을 잘못 든 등산객뿐이었고, 백산이 산을 내려가는 일도 드물었다. 백산은 대부분의 시간을 화랑연환도법을 연구하고 수련하며 보냈다. 최승희가 상당한 금액의 시주를 했고 적잖은 월급이 나오는 경호원이란 직함을 유지하고 있는 덕에, 백산은 생계 걱정 없이 도법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운을 실지 못한 칼은 넒은 쇠막대기와 같을 뿐, 성취는 한정적일 뿐이었다. 답답한 백산은 몇 차례나 유세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세나는 무성의하게 응대 했다. 백산은 유세나가 더 이상 자신과 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유세나에게 도법이나 무술은 어차피 다른 세상의 얘기였다. 눈앞에서 지도교수가 살해되는 걸 본 끔찍한 경험을 잊고 자신의 인생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 유세나를 백산은 원망할 수 없었다. 도움 받을 길이 없어 답답한 가을이 단풍색과 함께 짙어지다 말라갈 무렵 홀연 유세나가 상무암 마당에 들어섰다. 유세나는 요사채 마루에 앉아 작은 배낭에서 몇 가지 간식거리와 함께 서류 봉투를 꺼냈다.


“화랑연환도법서의 사진본과 그간 해석하고 연구한 자료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죠.”


“이걸 학계에 보고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세나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이 죽었다죠?”


“예. 사제와 사부께서 돌아가셨죠.”


“백산의 사형도 그 일로 사망했다죠?”


“예, 사부의 원수를 갚으려다···”


“용일 타워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 두 명이 죽은 것 말이에요, 백산이 싸운 것이죠?”


백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림 계곡에서의 이영운 교수의 실족사도 그렇고요?”


백산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용일 그룹의 박용진 부사장이 죽은 강도 사건은요?”


“그건 형제간의 재산 다툼이었죠. 나와는 관련 없습니다.”


유세나가 긴 한숨을 쉬었다.


“이 책의 내용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글쎄요···. 보통 사람들에게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만···”


유세나가 어두운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아는 것도 없었지만, 더 아는 것이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도 자신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박사 논문도 원래 주제로 마쳤어요. 이건 모두 돌려드릴게요. 이제 ···내 머리 속에서 화랑연환도법서라는 향찰서는 없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책이 있다고 말씀드렸던 교수님들과 다른 학자님들에게도 알려드렸어요. 조사해 봤더니 위작이었다고··· 죄송하다고요.”


“하지만 왜 그런 거짓말까지···”


유세나는 대답 대신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유세나는 바로 상무암을 내려가는 계단으로 가지 않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한각으로 갔다. 유세나는 열린 문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이게 도법의 후렴구에 나왔던 나한인가요?”


“예.”


백산은 한 순간 망설였으나 곧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말했다.


“나한을 보라고 한 의미가 있었어요. 나한이 취하고 있는 동작이 사실은 책에 그려져 있지 않았던 도해였어요.”


백산을 보는 유세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백산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정말 큰 비밀이에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상무암은 피바다가 되거나 불바다가 될 겁니다.”


유세나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비밀은 지킬게요. 난 이제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요.”


유세나는 상무암을 빨리 떠나고 싶은 것처럼 총총히 계단 앞으로 가더니 백산을 돌아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줬어 정말 고마워요.”


유세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후 상무암을 내려갔다.


유세나는 그렇게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로 완전히 돌아갔다. 그러나 유이는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가지 못했다. 유이는 오히려 더 넓고 복잡한 세상으로 나와 버렸다. 유이가 마음 한편에서 꿈꾸었던 것이기도 했지만, 어색하고도 익숙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유세나가 상무암에 왔다 간 후 며칠 뒤, 유이가 상무암을 찾은 것이 그 때문이었다.


유이는 마치 자신의 집에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요사채 마루에 걸터앉았다. 백산이 뜻밖의 방문에 놀라며 녹차를 내놓으며 물었다.


“상속자가 되었는데 이제 그룹 일을 해야 되지 않아요?”


“난 상속자지 경영자는 아니에요. 경영은 최승희가 할 거예요. 물론 대외적으로는 부회장인 김 비서실장을 통해서 아버지가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백산은 유이가 박 회장을 아버지로 불렀다는 데 놀라며 슬쩍 물었다.


“그래서 화가 납니까?”


유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걸 원했다면 내가 일본에서 무술 공부를 했겠어요?”


유이는 일어서 반대쪽에 서 있는 의상봉의 날렵하고도 예리한 능선을 바라보았다.


“최승희는 잘 할 거예요. 완전 여우거든요. 우리 엄마의 운명을 안 뒤부터 자신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경영과 세상을 공부했데요. 그런 걸 떠나 천생이 여우에요. 백여우. 구미호!”


유이가 다시 키득거렸다.


“자신 옆에 있는 누구든 홀리죠. 내가 얼씬대면 나도 홀리겠죠. 그래서 옆에 없으려고 해요.”


유이는 잠시 산을 보고 있다 조용히 말했다.


“여긴 경치가 너무 좋아요. 바로 아래는 서울이고, 조용하고.”


유이가 몸을 돌려 백산을 보았다.


“이 절에 사람 필요 없어요?”


“예?”


“제자 말이에요! 날 제자로 받아주면 어때요?”


백산이 웃음을 터뜨렸다.


“난 제자를 받아들일 만큼 실력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럼 안좌사와 마사코를 이긴 건 뭔데요?”


“안좌사와 마사코는 비교대상이 아니에요. 사부님의 무공을 생각하면 난 멀어도 한참 멀었어요.”


백산이 거절하자 유이는 돌아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유이는 사흘이 멀다 하고 상무암을 찾아왔다. 유이는 다시 제자가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백산은 유이가 계속 무언의 청을 넣고 있다는 알고 있었다. 가을비가 한차례 온 뒤 단풍은 눈에 띠게 사라졌다.


백산은 그날 나한각을 청소하고 있었다. 한창 나한상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던 중 유이가 상무암에 나타났다. 백산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보자 유이는 입고 있던 고급 아웃도어 재킷을 벗어 요사채 마루에 던지고는 마른 걸레를 집어 들어 백산과 같이 나한상을 조심스레 닦기 시작했다. 유이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뉴스가 있어요.”


“무슨 뉴스입니까?”


“박용준이 죽었어요.”


“예?”


“사인은 교통사고. 용일 그룹 일본 법인이 일단 기자를 단속하며 수습하고 있으니까 아마 내일 아침이 되면 공식 보도가 나올 거예요.”


백산은 유이의 표정에서 박용준이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다.


“최승희가 사람을 보냈습니까?”


유이가 비웃었다.


“최승희? 그 여자에게 그럴 힘이 있나요.”


“그럼 정말 교통사고입니까?”


“천만에. 그럴리가요.”


유이가 긴장된 웃음을 머금었다.


“아소 짓이에요.”


“뭐요? 아소가 왜?”


“분풀이를 박용준에게 한 거죠. 아소와 박용준이 술자리에서 일이 실패한 데 대한 책임소재를 놓고 한바탕 싸웠데요. 박용준이 무모했죠. 안좌사도 없는데 누가 자신을 지켜 줄 거라고···”


“그 소식은 어떻게 들었습니까?”


“내가 일본에 줄이 있잖아요? 그래서···”


유이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다음 분풀이 대상은 나에요!”


백산이 나한상을 닦으며 이야기를 듣던 백산이 놀라 고개를 들고 유이를 봤다.


“아소가 그랬데요. 나를 배은망덕한 년이라고요. 일본에 있는 도장이 내 뒷배였는데, 아소가 날 적으로 규정한 이상 이제 관계는 끝났어요. 박용진처럼 독고다이가 된 거죠.”


유이의 말에서 진한 아픔이 전해졌다. 하지만 백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용준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지 못한 허망함이 깊게 밀려들어서였다. 백산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나한상을 닦던 유이가 불쑥 말했다.


“나한상이 재미있네요. 혈마다 점이 찍혀있어요.”


“예? 혈마다 점?”


“몰랐어요? 내가 닦은 나한상 세 개가 다 그런데요. 단전에는 꼭 점 한 개, 다음으로는 나한상에 따라 점이 찍히는 혈이 달라지지 않아요? 이 나한상에는 태을에 2개, 수월에 3개가 찍혀 있네요.”


백산이 놀라 유이를 밀쳐내다시피 하고 나한상을 드려다 보았다. 과연 유이가 지적한 혈에 세월에 닳아 흐려진 점이 찍혀있었다. 점은 여자만이 가지는 민감하고 세세한 눈이 아니었다면 천년이 지나도 그냥 흘러 보냈을 정도로 작고 희미했다. 나한상마다 다른 혈, 다른 개수의 점은 곧 기를 운용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한을 보라!’


연환도법서의 귀결구가 백산의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울리고 있었다. 백산은 놀라움과 감격으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나한상의 의미를 모르는 유이가 그런 백산을 이상하다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이가 산을 내려가기 위해 옷을 챙길 때까지 백산은 나한각에서 나오지 않았다. 백산은 64개의 나한 하나하나를 살피며 점이 찍힌 혈을 찾고 있었다.


“그만 갈게요.”


유이가 인사를 하자 그때야 백산은 나한각 밖으로 나왔다. 백산이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유이를 불러 세웠다.


“오늘부터 유이는 상무암의 제자입니다.”


유이가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된 시선으로 백산을 봤다.


“아소의 다음 대상이 유이라고 하니 상무암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상무암이 아니, 상무암 뿐만 아니라 호국사가 유이의 뒷배가 되어드리죠. 그리고 이제 차차 알게 되겠지만, 유이는 큰 발견을 해 상무암에 도움을 줬어요. 마땅히 유이의 소원을 받아줘야죠.”


유이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얼마 남지 않은 단풍을 떨구던 바람이 멈추고 봄빛 같은 따스한 햇살이 상무암 마당을 가득 메웠다.


산과 달과 바람과 칼. 연환도법서편 완결.


* 지금 초안을 잡고 있는 SF를 완성한 후 백산과 유이의 다음 모험을 연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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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12장. 복수의 끝자락(3) 21.02.12 214 2 16쪽
49 12장. 복수의 끝자락(2) 21.02.09 214 2 13쪽
48 12장. 복수의 끝자락(1) 21.02.05 217 1 20쪽
47 11장. 추격과 습격(4) 21.02.02 220 1 18쪽
46 11장. 추격과 습격(3) 21.01.29 228 1 14쪽
45 11장. 추격과 습격(2) 21.01.26 201 1 14쪽
44 11장. 추격과 습격(1) 21.01.22 233 1 15쪽
43 10장.납치(4) 21.01.19 236 1 12쪽
42 10장.납치(3) 21.01.15 234 1 22쪽
41 10장.납치(2) 21.01.11 227 1 15쪽
40 10장. 납치(1) 21.01.08 217 1 25쪽
39 9장. 토모키루의 칼(5) 21.01.05 241 1 31쪽
38 9장. 토모키루의 칼(4) 21.01.02 244 1 13쪽
37 9장. 토모키루의 칼(3) 20.12.31 220 1 13쪽
36 9장. 토모키루의 칼(2) 20.12.28 211 1 17쪽
35 9장. 토모키루의 칼(1) 20.12.25 233 1 13쪽
34 8장. 유세나의 위기(6) 20.12.22 212 2 26쪽
33 8장 유세나의 위기(5) 20.12.18 211 2 18쪽
32 8장. 유세나의 위기(4) 20.12.15 214 3 13쪽
31 8장. 유세나의 위기(3) 20.12.12 234 2 16쪽
30 8장. 유세나의 위기(2) 20.12.08 224 2 23쪽
29 8장. 유세나의 위기(1) 20.12.04 215 2 14쪽
28 7장. 백산의 위기(5) 20.12.01 213 2 23쪽
27 7장. 백산의 위기(4) 20.11.27 220 2 13쪽
26 7장. 백산의 위기(3) 20.11.24 216 2 12쪽
25 7장. 백산의 위기(2) 20.11.20 279 2 17쪽
24 7장. 백산의 위기(1) 20.11.15 238 2 14쪽
23 6장.배반의 배반(3) 20.11.09 244 2 19쪽
22 6장.배반의 배반(2) 20.11.05 2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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