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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산과 달과 바람과 칼(화랑연환도 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0.08.1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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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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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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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토모키루의 칼(3)

DUMMY

3.

토모키루는 예정된 날짜에 태재부에 도착했다. 토모키루가 도착하고 하루 뒤 요시다가 이끄는 5백명의 병력도 도착했다. 태자는 그 이틀 뒤 태재부에 도착했다. 그날 토모키루의 병력500명백이 추가로 태재부에 들어왔다. 태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토모키루의 부하들은 당당히 행군하며 태자 만세를 외쳤다. 태자는 흐뭇해했고 규슈 제일의 귀족으로서 토모키루의 체면도 섰다.


태재부에 있는 동안 매일같이 백제지원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백제 부흥군의 복신이 요청한 대로 왜에 와 있던 의자왕의 아들 풍를 귀국시키기로 했다. 태자는 단지 풍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원군 1만을 붙여 보내는 것을 제안했다. 말이 쉬워 1만이지 그들을 먹일 식량부터 바다건너 백제까지 실어 보낼 배까지 생각하면 한숨 나올 일이었다. 그것도 1차 지원군이었다.


하지만 서슬 퍼런 태자의 눈 앞에서는 어느 귀족도 반대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배가 문제였다. 배 한척에 백 명씩 태운다 해도 당장 백 척의 배가 있어야 했다. 고기 잡는 배가 아니라 백 명이 먹고 자고 할 공간이 있는 대형 선박이었다. 규수만 아니라 본섬에서도 큰 배들이 징발되었다. 대부분 귀족들이 사사로이 보유한 배들이었다. 그렇게 끌어 모아도 40척 정도가 부족했다. 그 배들은 새로 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과 호족들에게 건조해야 할 척수가 할당되었다. 토모키루에게는 6척이 할당되었다. 적다면 적다고도, 많으면 많다고도 할 수 있는 수였다.


많은 귀족과 호족들이 군사와 배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각자의 영지로 돌아갔지만 토모키루는 그러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좌장군에 재무감이라는 직책이 그를 붙잡았고 다른 편으로는 태자가 그를 붙잡았다. 태자는 늘 토모키루를 근처에 두었다. 언뜻 보면 총애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감시하는 것이었다. 규수에서 첫째가는 귀족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면 다른 귀족도 반항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태자의 심중이었다. 사방에 감시의 눈초리가 있어,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는 다음날 아침이면 태자전의 개도 알 정도라는 걸 토모키루도 알고 있었다. 토모키루는 유스보에서 칼에 명문을 새기게 한 일이 훌륭한 선택이었다며 내심으로 안도했다.


그러던 중 사이메이 천왕이 죽었다. 백제 지원을 직접 감독해 달라는 태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규슈로 오던 중이었다. 함선 건조와 파병 준비가 일시적으로 멈췄다. 태자는 귀족과 대신들 앞에서 호령했다.


“내 즉위식은 백제 지원군의 승전 이후로 연기할 것이다. 그런 만큼 조금도 차질 없이 지원 준비를 하라.”


태자는 장례를 위해 천황의 유해를 싣고 아스카로 돌아갔지만, 태자의 확고한 의지에 함선의 건조와 파병준비는 전보다 속도를 내어 계속되었다.

5월이 되어 드디어 기존의 배에 새로 제작된 40여척이 더해져 100척의 배가 준비되었다. 야마토의 귀족이자 태자의 수족인 사이노무라지 아지마사가 총대장이 되어 1만의 군사를 이끌었다. 토모키루가 주도해 모은 규슈의 병력 2천은 요이치가 지휘했다. 요이치의 병력은 사이노무라지가 직접 지휘하는 중군에 배속되었다. 함대가 완성되고 대강 훈련을 마치자 왜군 1진은 큐슈를 떠나 백제로 향했다. 최종 목적지는 백제 수도로의 진입이 용이한 백촌강이었다.


1진이 출항했지만 토모키루는 출정하지 않고 여전히 태재부에 남아 있었다. 토모키루는 태자를 견제하고 태자는 토모키루를 가까이서 감시하려는 의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의자왕의 아들 풍도 백제로 가는 함선을 타지 않았다. 부흥군의 대장 복신이 귀국을 요청했지만 태자 풍은 귀국을 꺼렸다. 그럴 만도 하는 것이 풍이 왜에서 보낸 시간이 20년이었다. 풍은 사실상 왜의 귀족이었다.


거기에 백제에서 전해오는 전황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사비성을 포위하기는 했지만, 굳게 지키기만 하는 당군 1만에 막혀 파성을 못하고 있었다. 측면으로는 신라군이 백제 부흥군을 괴롭혔다. 기마병을 앞세워 치고 빠지는 수법으로 백제 부흥군을 임존성과 주류성 지역에 묶어 놓았다. 백제 부흥을 바라는 호족들이 많은데도 부흥군은 성과가 없었다. 태자가 1진의 출발을 서두른 이유도 복신이 지원을 애타게 요청해서였다. 1진이 출발한 후에도 추가 지원을 위한 준비는 멈추지 않았다. 함선 건조는 계속되었고 군사의 징집과 훈련도 쉬지 않았다. 6월이 되어 요이치로부터 토모키루에게 1신이 날아왔다.


왜군 1만의 도움으로 임존성과 주류성을 압박하던 신라군을 격퇴해 위급한 상황은 넘겼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사비성의 탈환은 꿈 꿀 형편이 아니라는 말에 토모키루는 충격을 받았다. 요이치는 편지에서 신라군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신라군이 백제 부흥군의 본거지인 임존성과 주류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 쪽이 숫자는 많지만 기병으로 치고 빠지는 신라의 전술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3만이라는 복신의 병력 중 실제 사비성 공격에 동원되는 건 1만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어중중한 곳에 머물며 때로는 사비성 공격에 참가했다가 때로는 임존성 방어에 동원됩니다. 사비성에서 건곤의 일전을 펼쳐 승부를 내고 싶습니다만, 당군은 성을 지키기만 할 뿐 결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


토모키루는 요이치의 보고서를 읽는 순간 이 원정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지금 당은 고구려와 전쟁 중이었다. 그런 당을 지원하느라 신라도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 형편이라면 고구려와 당간의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토모키루는 먼저 나서 철군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아직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태자를 지지하는 귀족뿐만 아니라 태재부의 관료들조차 희소식이 올 거라는 확신으로 차 있었다. 강렬하고 절대적인 희망 사이로 혹시나 하는 불안감의 대치가 부딪치며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백제로부터 급보가 다시 날아들었다. 당의 기습으로 사비성 근처에 임시로 설치했던 목책 성을 빼앗겼다는 소식이었다. 요이치는 토모키루에게 별도로 보고했다.


「야습을 당했습니다. 당군이 갑자기 성을 나와 공격하며 목책에 불을 지르고 넘어왔는데 바람마저 우리 쪽으로 불어 연기에 눈을 뜨지 못했고 밤이라 혼란이 더했습니다. 목책이 불타버려 5리 정도 후퇴를 했지만 사비성의 포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진척이 없는 사비성 포위에 아스카에 있던 태자가 규슈로 다시 왔다. 이제 백제 지원의 성공여부는 태자의 능력과 체면이 달린 문제가 되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토모키루는 수심에 잠긴 태자에게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요청했다.


“전황이 유리하지만은 않습니다. 백제에 왕이 없어 작은 패배에도 전군이 흔들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복신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왕자 풍을 빨리 백제로 보내야 합니다.”


태자는 토모키루의 진언을 받아들였다. 왕자 풍도 더 이상 뺄 수는 없는 입장이 되었다. 왕자풍은 어쩔 수 없이 백제로 건너갔다. 그러는 동안 해가 바뀌었다. 한반도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왜군은 지친 상태였다. 결국 중군 대장 사이노무라지 아지마사가 결단을 내렸다. 왜와 백제 부흥군은 사비성의 포위를 풀고 백촌강을 건너 남쪽으로 후퇴했다. 백제 부흥군의 거점인 임존성과 주류성이 있는 지역이었다. 왜군과 백제 부흥군이 사비성에 집중하는 동안 신라군이 측면으로 임존성과 주류성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했다.


한편으로 왜는 추가로 함선을 만들고 병사를 모았다. 토모키루는 함선을 만들고 군량과 병사를 모으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태자의 신임을 얻고 다른 귀족과 호족들의 힘을 빼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토모키루에게는 금광이라는 숨겨놓은 뒷배가 있었다. 전황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봄이 되자 카미츠케노노키미 와카코가 이끄는 2진 2만 7천의 병력이 백제로 출발했다. 그와 동시에 고구려가 당과 신라군을 격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태자와 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이 고구려에게 타격을 입었으니 당장 백제에 군대를 보낼 여유는 없을 겁니다.”


토모키루는 반대 의견을 냈다.


“당은 큰 나라입니다.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타격을 입었을지는 몰라도 얻은 땅을 놓을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리고 신라가 있습니다. 당과 신라의 동맹이 유지되는 한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토모키루의 말대로 카미츠케노노키미 와카코가 이끄는 2만 7천의 병력이 더해졌음에도 전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백제 부흥군과 왜군은 따뜻한 날씨 속에 원병과 함께 사비성으로 진군 했지만 당의 수비병은 굳건했다. 신라는 계속 측면을 괴롭혔다. 왜군이 백제로 간지 3년째가 눈앞이었다. 전량을 대는 백성들의 원성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사비성을 빼앗지 못한단 말인가?”


태자의 언성은 매일 같이 높아졌다. 왜군이 수세에 몰려있는 동안 남쪽에서는 신라의 반격은 점점 매서워 지고 있었다. 요이치의 비밀 보고서가 토모키루에게 날라들었다.


「신라의 화랑들이 새로운 검법을 구사한다고 합니다. 열 명이 한조가 되어 돌격을 하는데 여덟의 칼이 팔방을 막고 2개의 칼이 번갈아 찌르고 베어 들어오는데 칼이나 창으로 접전을 벌여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로 인해 남쪽의 흑치상지는 공격을 멈추고 성을 지키기에 급급하며 부여 풍이 있는 임존성마저 전전긍긍할 지경입니다.」


토모키루는 내심 당황했다. 새로운 검법이 나왔다면 상대하는 법도 찾아야 하지만 그럴 여우가 없었다. 토모키루는 이 사실을 태자에게 보고했다.


“도대체 무슨 검법이란 말인가?”


“신라의 화랑들은 연환도법이라고 한답니다. 당이나 신라의 도법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완전히 새 도법이 나왔다면, 당장 대적할 방법을 찾기가···”


“그럼 어떡하자는 말이요?”


태자의 물음에 토모키루는 고개를 숙이며 ‘철군’이라는 말을 삼켰다. 태자는 토모키루의 속마음을 읽었다. 지금 철군한다면 자신의 체면이 어떻게 될지 빤한데도 토모키루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자는 이를 물었다.


“병력을 더 보냅시다. 마지막까지 힘을 모아 백제를 살립시다.”


토모키루를 비롯해 귀족들은 명령을 받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함선이 더 건조되고 병력이 더 모아졌다. 한 해가 또 넘어갔다. 전황은 계속 지지부진했다. 사비성과 주류성을 사이에 두고 당과 왜, 신라와 백제 부흥군이 얽혀 작은 접전들이 이어졌다. 신라의 화랑들이 참전하지 않은 전투는 왜가 이긴 적도 있지만 화랑이 나오면 어김없이 패했다. 그 연환검법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급보가 규슈의 태재부로 날아들었다.


「왕자 풍이 복신을 죽였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당이 수군을 파병했습니다.」


왜군의 전령이 백제 부흥군에 있었던 내분과 당에서 수군을 파견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백제의 부흥군의 대장 복신과 왕자 풍과의 알력은 이전부터 들었던 거였다. 백제 왕실의 방계였던 복신은 야망이 있었고, 왕자 풍 또한 신하에게 눌려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 왜에게는 그들 간의 싸움에서 백제 정통의 복신이 아니라 왜에서 20년을 산 왕자 풍이 이겼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진작 태자와 왜의 귀족들을 긴장시킨 건 당의 수군이었다. 백제에 나가 있는 군대로 부터 보고가 이어졌다.


「현재는 병력 7천에 170여척의 규모입니다만, 고구려와의 전쟁이 소강 상태인 만큼 백제 부흥군 진압에 당의 힘이 모일 겁니다. 당장 10만의 병력과 천척의 배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보고서를 읽고 얼굴이 굳어진 태자를 보며 토모키루가 진언했다.


“당은 백제 부흥군과 우리 왜를 완전히 제압해 뒤를 안정시킨 뒤, 고구려와 다시 결전을 벌일 모양 같습니다. 아마 모든 힘을 다해 왕자 풍이 있는 주류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사비성을 수비하고 있던 당군도 출정해야만 할 거니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병력을 총 동원해 이때를 노려 결전을 벌여야 합니다.”


태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태자는 규수에서 대기해 있던 3진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왜의 운명을 결정짓는 마지막 지원군의 파병이었다. 태자는 토모키루를 좌장군 겸 감군으로 임명하고 백제로 가게 했다. 토모키루는 예상치 못한 태자의 결정에 당황했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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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12장. 복수의 끝자락(1) 21.02.05 217 1 20쪽
47 11장. 추격과 습격(4) 21.02.02 220 1 18쪽
46 11장. 추격과 습격(3) 21.01.29 228 1 14쪽
45 11장. 추격과 습격(2) 21.01.26 201 1 14쪽
44 11장. 추격과 습격(1) 21.01.22 233 1 15쪽
43 10장.납치(4) 21.01.19 236 1 12쪽
42 10장.납치(3) 21.01.15 234 1 22쪽
41 10장.납치(2) 21.01.11 227 1 15쪽
40 10장. 납치(1) 21.01.08 217 1 25쪽
39 9장. 토모키루의 칼(5) 21.01.05 241 1 31쪽
38 9장. 토모키루의 칼(4) 21.01.02 244 1 13쪽
» 9장. 토모키루의 칼(3) 20.12.31 221 1 13쪽
36 9장. 토모키루의 칼(2) 20.12.28 211 1 17쪽
35 9장. 토모키루의 칼(1) 20.12.25 233 1 13쪽
34 8장. 유세나의 위기(6) 20.12.22 212 2 26쪽
33 8장 유세나의 위기(5) 20.12.18 211 2 18쪽
32 8장. 유세나의 위기(4) 20.12.15 214 3 13쪽
31 8장. 유세나의 위기(3) 20.12.12 234 2 16쪽
30 8장. 유세나의 위기(2) 20.12.08 224 2 23쪽
29 8장. 유세나의 위기(1) 20.12.04 215 2 14쪽
28 7장. 백산의 위기(5) 20.12.01 213 2 23쪽
27 7장. 백산의 위기(4) 20.11.27 220 2 13쪽
26 7장. 백산의 위기(3) 20.11.24 216 2 12쪽
25 7장. 백산의 위기(2) 20.11.20 279 2 17쪽
24 7장. 백산의 위기(1) 20.11.15 238 2 14쪽
23 6장.배반의 배반(3) 20.11.09 244 2 19쪽
22 6장.배반의 배반(2) 20.11.05 2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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