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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산과 달과 바람과 칼(화랑연환도 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0.08.11 13:41
최근연재일 :
2021.02.16 10:0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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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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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장.배반의 배반(2)

DUMMY

3.

최 승희는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동맹 동맹했지만 그들의 평소 행위를 봤을 때, 박 사장과 유이를 믿는 건 자살 행위라는 확신이 들었다. 날이 밝고 오전이 지날 무렵 최승희는 박 회장이 낮잠에 들자 로열스위트 룸을 나와 자신의 벤츠에 혼자 올랐다. 청바지와 티 셔츠의 가벼운 옷차림을 한 최 승희의 손에는 하얀 보자기로 감싼 이 진우의 환도가 들려있었다.


최승희가 스스로 운전해 간 곳은 북한산이었다. 최승희 한 상가에 들려 상무암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최승희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상인이 가르쳐준 대로 대서문까지는 그럭저럭 올랐지만 백운대로 가는 길로 들어서자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오르막이 나타났다. 밤에 내린 비로 길은 미끄러웠고 바짓가랑이는 튕긴 흙과 물로 엉망이 되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선욱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었다. 최 승희는 두 시간의 쉬엄쉬엄 오른 끝에 간신히 상무암에 닿았다. 인기척이 없는 암자는 너무 조용해 무섭기조차 했다.


“아무도 없나요?”


최승희가 목청 높여 사람을 부르자 손바닥만 한 나한전의 문이 열리고 백산이 나왔다.


“누굴 찾아 오셨나요?”


백산이 묻자 최승희가 불안하고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진우 부장의 시신을 수습해 갔다던 상무암 제자 되세요?”


“그렇습니다만?”


“이진우 부장의 죽음과 도법서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어 왔는데요.”


“도법서요?”


백산이 놀란 눈을 하자 최승희가 조용히 말했다.


“먼저 이것부터 돌려드릴게요. 이 부장의 칼이에요.”


최 승희가 하얀 보자기에 감긴 칼을 백산에게 건넸다. 백산은 놀라며 두 손으로 칼을 받았다.


“그런데 이 진우 부장과 비교해서 무술 실력이 어느 정도에요?”


백산은 뜻밖의 질문에 잠시 당혹했지만 곧 평정심을 찾아 대답했다.


“이진우 부장은 제 사형입니다. 제가 어떻게 사형보다 나을 수 있겠습니까?”


최 승희는 계속 엄숙하고 단호한 얼굴을 풀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냥 하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문제라서 그래요. 도법서가 있는 곳을 알려줄 수 있지만 무술 실력이 떨어지면 곤란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누구신지?”


“용일그룹 박 회장을 모시고 있는 최승희에요.”


“예? 그럼 성북동에서 사형이 죽었을 때 같이 있었다고 신문에 났던···.”


“예. 내가 이진우 부장을 고용했어요. 이 부장의 죽음도 내가 봤고요.”


백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형은 누구에게 당했습니다.”


“안좌사요.”


“안 좌사!”


“예. 아시나보네요. 사실 이 부장은 저 때문에 죽었어요. 상무암의 제자라고 말하고 도법서를 되찾는다며 안좌사와 싸움을 했거든요. 안좌사를 벨려는 순간에, 그때, 제가···”


최승희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은 후, 박용진의 요구에 따라 자신이 박 회장을 유혹해 박용준이 도법을 가지고 나오게 한 것부터 이 진우의 죽음까지 자세히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백산의 손이 몇 번이나 떨렸다.


“그럼 도법서는 지금 박용준의 손에 있는 게 확실하군요?”


“아시고 계신 모양이네요. 그래요. 박 부회장이 가지고 있죠. 아마 용일 타워의 펜트하우스 어딘가에 숨겨놓았겠죠. 그곳에 책이 있는 이상, 스스로 내어주지 않으면 도법서를 되찿기 힘들 거예요.”


백산의 얼굴에 절망감이 어리는 걸 보며 최승희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있어요.”


백산이 눈을 크게 떴다.


“박 부회장이 아소에게 그 도법서를 넘겨줘야 하거든요. 저는 도법서를 아소에게 넘겨주는 장소와 시간을 알고 있어요.”


“어딥니까?”


백산은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 이진우의 환도를 움켜잡았다.


“그걸 알려 주기 전에 나와 계약을 맺어야 해요.”


“무슨 계약입니까?”


“이 부장의 자리에 와서 나를 지켜주는 거요. 박 용준 부회장에서 유이까지 모두가 나를 죽이려 들어요. 아무도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백산씨의 무술 실력이 중요한 거예요.”


“안좌사와 싸워봤어요. 그런 실력이라면 애초부터 사형의 상대가 아닙니다. 특히 칼싸움이라면 사형은 최고의 고수예요. 그런데, 내가 처리한다고 말했는데···.”

백산은 말을 맺지 못하고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가 말을 이었다. .”


“나는 암자를 떠날 수 없습니다.”


“아니면 도법이 일본인 아소 손으로 넘어가요.”


“아소는 왜 도법을 원하는 거죠?”


“도법이 아소집안과 관련 있다는 것 밖에는 몰라요.”


백산은 잠시 고민 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좋습니다. 도법이 전해지는 장소와 시간만 말해준다면 다른 경호원을 찾을 때까지만 지켜드리죠.”


최승희가 미소를 띠었다. 속세의 즐거움과 떨어져 사는 백산이 보기에도 웃는 최승희는 예뻤다.

*************


아소의 비행기가 김포에 도착하기 1시간 전, 박용준과 이영운 교수가 용일타워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도법서를 넣은 철제007가방을 들고 팔에 부목을 댄 마사코가 그들을 따랐다. 평소대로라면 박용준은 1층 로비에서 나와 남보란 듯이 마이바흐를 탔을 테지만, 오늘 만큼은 탁 터인 공간이 부담스러웠다.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와 바로 연결된 지하 주차장의 전용 출구 주변은 평소보다 3배가 넘는 경비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백산은 한 시간 전부터 CCTV와 사각지대를 이룬 주차장의 한 기둥 뒤에서 박용준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과 나의 관계가 세간에 알려지기 전이었죠. 그땐 회장님이 펜트하우스에 계셨어요. 나는 지하주차장 전용 공간을 이용해 자주 회장님을 만나러 갔었어요. 아마 그들도 그 장소를 이용할 거예요.”


최승희의 예측은 정확했다. 백산은 경호원들이 자동출입문에 모여드는 걸 보며 박용준이 나온다는 걸 직감했다. 백산은 머리와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두건을 뒤집어 쓴 뒤, 출입문의 움직임에 모든 감각을 쏟았다. 곧 경호원이 도열하고 문의 움직임이 만드는 공기의 떨림이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백산에게 잡혔다. 어둠속에서나 뒤에서 공격받을 때를 대비해 극한의 수련으로 단련한 감각 덕이었다.


백산은 30여m의 거리를 몇 초 만에 달려 그 힘으로 마이바흐 위로 뛰어올랐다. 박용준이 마사코와 함께 마이바흐의 뒷자리에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경호원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할 때, 백산은 박용준과 가장 가까운 경호원 두 명을 양발차기로 쓰러뜨리고 차 위 공중에서 몸을 돌려 막 차에 올라타려는 박용준의 머리로 오른발을 내려찍었다. 이 진우와 임 거사에 대한 복수심이 담긴 백산의 내려찍기를 그대로 맞았다면 박 부회장은 머리가 깨져 즉사했겠지만, 마사코가 놀라운 순발력으로 도법서를 담은 철제007가방을 들어 박 부회장의 머리 위를 가로 막았다. 내력을 싣고 아래로 내리꽂히는 백산의 다리 힘에 밀린 철제007가방이 박 용준의 머리를 강타했다. 박용준은 소리도 못 내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마사꼬가 바로 앞에 내려선 백산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공격했다. 백산은 한 팔로 무릎을 막고 다른 팔로 철제가방을 잡은 뒤 몸을 뒤로 빼며 밀어차기로 마사코의 가슴을 찼다. 부목을 대고 가방을 백산에게 잡혀 양팔을 움직일 수 없는 마사코는 피하거나 막을 수단 없이 백산의 발차기를 몸으로 받았다. 마사코의 몸이 날아가 주차장 기둥에 부딪혔다. 마사코는 기둥아래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백산은 자신이 잡은 철제 가방을 바로 들고 몸이 얼어붙어 꼼짝 못하는 이 영운 교수 앞으로 갔다. 경호원 두 명이 삼단봉을 휘두르며 덤볐지만 연달아 날아온 백산의 좌우 후려차기에 맞아 쓰러졌다.


백산은 이 영운 교수의 팔을 꺾어 잡아 마이바흐 뒷자리에 태우고 자신도 올라탔다. 백산은 어쩔 줄 모르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기사의 뒷덜미를 내리치며 살기를 담아 외쳤다.


“내 주먹에 목이 분지르지 않으려면 차를 주차장 밖으로 빼라.”


기사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백산이 이 영운 교수의 팔을 더 세게 비틀었다. 이 영운 교수는 ‘억억’하는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네가 상무암에 와 사제와 스승님을 죽였지.”


“아니, 난 그저 안내만, 안내만 했어. 박 사장이, 박 사장이 죽였어.”


“여자도 있었다는 데?”


이 영운 교수는 멈칫하더니 급하게 말했다.


“유이, 유이라는 여자야.”


“더러운 새끼. 끝까지 거짓말이구나. 박용진이가 도법을 가져갔다는데 어떻게 박 용준이가 도법을 가지고 있나?”


백산은 분노에 잡혀 팔을 더 세게 비틀었다. 팔이 분지르지는 소리가 나며 이 영운 교수가 비명을 질렀다. 마이바흐가 지상으로 올라왔다. 무전을 받은 경비원 몇 명이 차도로 뛰어들었지만 이 영운 교수의 팔이 부러지는 소리에 겁먹은 운전기사는 개의치 않고 차를 앞으로 몰았다. 백산이 이 영운 교수의 목을 꺾어 잡았다.


“목을 분지르기 전에 가방의 비밀번호를 말해라.”


이 영운 교수가 비명을 지르며 숫자를 말했다. 백산이 숫자를 눌러 가방을 열자 눈에 익숙한 도법서가 나타났다.


“차를 세워.”


기사가 급하게 차선을 변경해 인도 옆에 차를 세웠다.


“이번에는 비밀번호를 말했기 때문에 살려주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박 용준과 너를 같이 죽인다.”


백산이 이를 갈며 말하고는 도법서를 가슴에 품고 마이바흐에서 내린 뒤 마침 뒤에서 오던 빈 택시를 잡아타고 사라졌다. 백산이 택시를 서게 한 곳은 북한산과 닿아 있는 한적한 찻길이었다. 백산은 바로 산으로 올라가 북한산 봉우리를 몇 개 넘어 상무암으로 돌아갔다. 상무암에는 어젯밤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올라온 혜공과 호국사의 스님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내려가려 했습니다만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스님을 오시게 했습니다.”


백산이 혜공에게 도법서를 내밀었다.


“내가 도법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이제는 암자가 뒤집어져 숨겨놓을 곳도 없습니다. 호국사가 잠시 동안이나마 보관해 주십시오. 그리고 유 세나씨에게 도법을 빨리 해석 하라고 전해주십시오.”


혜공이 합창을 하며 도법을 받았다.


“백산이 걱정하는 바를 잘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같이 온 내 사제들과 같이 도법을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도법을 받은 혜공이 바로 산을 내려갔다. 사실, 사부와 사형, 사제의 피가 묻은 도법서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다. 백산은 밤을 새워 고민했지만 도법서를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은 호국사의 선의를 믿는 길 밖에는 없었다.


그동안을 생각해보면, 상무암은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외로웠지만 대신 안전하고 안락했다. 하지만 사부와 사형과 사제까지 죽음으로서, 상무암이 친구를 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백산은 뼈저리게 인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혜공이 떠나자 백산도 간단히 짐을 꾸리고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나한전의 문을 잠근 뒤 대동사에 들려 얼마간 절을 비운다고 얘기하고 산을 내려왔다. 백산이 간 곳은 용일 호텔의 로열 스위트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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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11장. 추격과 습격(4) 21.02.02 220 1 18쪽
46 11장. 추격과 습격(3) 21.01.29 228 1 14쪽
45 11장. 추격과 습격(2) 21.01.26 201 1 14쪽
44 11장. 추격과 습격(1) 21.01.22 233 1 15쪽
43 10장.납치(4) 21.01.19 236 1 12쪽
42 10장.납치(3) 21.01.15 234 1 22쪽
41 10장.납치(2) 21.01.11 227 1 15쪽
40 10장. 납치(1) 21.01.08 217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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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9장. 토모키루의 칼(4) 21.01.02 244 1 13쪽
37 9장. 토모키루의 칼(3) 20.12.31 220 1 13쪽
36 9장. 토모키루의 칼(2) 20.12.28 211 1 17쪽
35 9장. 토모키루의 칼(1) 20.12.25 233 1 13쪽
34 8장. 유세나의 위기(6) 20.12.22 212 2 26쪽
33 8장 유세나의 위기(5) 20.12.18 211 2 18쪽
32 8장. 유세나의 위기(4) 20.12.15 214 3 13쪽
31 8장. 유세나의 위기(3) 20.12.12 234 2 16쪽
30 8장. 유세나의 위기(2) 20.12.08 224 2 23쪽
29 8장. 유세나의 위기(1) 20.12.04 215 2 14쪽
28 7장. 백산의 위기(5) 20.12.01 213 2 23쪽
27 7장. 백산의 위기(4) 20.11.27 220 2 13쪽
26 7장. 백산의 위기(3) 20.11.24 216 2 12쪽
25 7장. 백산의 위기(2) 20.11.20 279 2 17쪽
24 7장. 백산의 위기(1) 20.11.15 238 2 14쪽
23 6장.배반의 배반(3) 20.11.09 244 2 19쪽
» 6장.배반의 배반(2) 20.11.05 2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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