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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산과 달과 바람과 칼(화랑연환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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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0.08.11 13:41
최근연재일 :
2021.02.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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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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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납치(3)

DUMMY

3.

박용준은 안좌사와 함께 펜트하우스로 돌아오는 내내 아소의 욕을 했다.


“그 새끼는 사람도 아냐. 어떻게 그런 밀약을 용진이에게 알려줄 수 있어.”


박용준이 떠들어도 안좌사는 아무런 해석이나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박용준에게는 이영운 교수의 죽음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펜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박용준은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가 알게 된 이상 숨기고 뭐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주총을 소집합시다.”


안좌사는 알겠다는 짧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박용진은 이영운 교수 같은 책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며 고민에 빠졌다. 결국 박 용준은 김 비서실장에게 기대기로 했다. 박용준은 펜트하우스에 돌아오자마자 김 비서실장을 불렀다. 한 시간 뒤 둘은 용일타워 지하의 고급 일식집에서 마주앉았다. 박용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임시주총을 열어 경영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건 이미 아시죠? 실장님이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김 비서실장은 여우처럼 박 회장을 조정하던 최승희를 생각하며 머뭇거렸다. 거기에 최승희를 거들던 유이의 모습은 자신이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전부터 박용준에게 정보를 흘리고는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보였다. 여기서 확실히 줄을 잘 못 섰다간 평생 쌓아온 것을 한 번에 날릴 것이다.


“아, 어떻게 도와달라는 것인지···”


“실장님, 용일 그룹을 형제 수대로 나누면요 규모가 적어져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영국을 보세요. 장자에게만 작위와 재산을 물려주었기에 가문이 유지 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실장님이 평생을 바친 이 용일 그룹이 2류가 되는 건 바라지 않으시겠죠?”


“허, 용일 그룹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하겠습니까만···”


“그러니까 말입니다. 실장님이 장자인 저를 확실히 도와주시지 않으면 누구와 일하겠습니까? 실장님은 그룹에 대해 잘 아시고 이런 경험도 많으시니 장자인 저와 힘을 합하셔야죠.”


“그게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저를 도와주시기만 하면 그룹 부회장 자리는 보장해드리죠. 그리고 용일 건설의 스톡 옵션도 드리겠습니다.”


김실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용일 그룹에서 30여년을 일했다. 인수, 합병 같은 중요 경영 업무부터 노조를 와해시키거나 회장과 그 가족의 뒤치다꺼리 같은 궂은일까지 하며 사장 대우의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박 회장을 보며 자신의 남은 미래를 걱정하던 터였다.


“절 그렇게 믿어주신다니 감사할 뿐입니다만, 그런 능력이 있나 걱정입니다.”


“실장님의 능력이야 아버지도 인정했고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김실장이 감격한 듯 허리를 숙였다. 박용준이 본격적으로 당장의 문제를 꺼냈다.


“아소한테 위임장을 받았는데, 아소가 그걸 박용진이에게 말하고 용진이가 아버지에게 불었어요. 그래서 내가 주총을 준비한다는 걸 아버지가 알아버렸어요. 어떡하면 될까요?”


김 실장은 비서실장으로서 용일 그룹의 지배구조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용일 홀딩스의 회장님 지분이 35%이고 아소 지분은 25%이니까, 회장님은 15%만 더 있으면 되지만 부회장님은 25%를 확보해야 하네요.”


박용준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 지분이 2.5%밖에 없어서···, 참···”


김 비서실장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기관들 싸움입니다. 5%를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은 아마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지는 않을 거니까 유리한 쪽에 붙을 겁니다. 혹시 3%를 가지고 있는 대보투자의 박원일 사장을 만나보셨습니까?”


“한번 만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태도가 영 모호하더라고요.”


“제 대학 동기입니다. 회장님이 살아계신 마당에 결정하기가 그랬을 겁니다. 제가 만나 설득을 해보죠.”


박용준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김 실장의 공적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김 비서실장은 웃으며 차근차근하게 큰 손들을 거론하며 이편으로 끌어들일 전략을 말했다. 역시 경영계에 오래 있은 김 비서실장은 세세한 사정과 사람들을 잘 알고 있어 실질적으로 계획 세우는 것이 큰 그림 보기에만 능한 이영운 교수보다 나았다.


“기관은 부회장님과 제가 그렇게 설득한다고 해도, 어려운 사람이 3%를 쥐고 있는 주자영이라는 개인 투자자인데, 박 회장님과 고향친구로 사채업자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회장님이 직접 얘기하면 모를까, 그 전에는 절대로 부회장님 편을 들지 않을 겁니다.”


“아, 나도 들은 적 있습니다. 아버지와 막역한 사이라던데···”


“그렇습니다. 지분이 1%이하인 주주중 이 사람과 관계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만약 박용진 사장님의 편에 선다면 조금 머리가 아파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회가 있을 때 찾아뵙고 협조를 부탁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됩니다만.”


김 비서실장이 말끝을 흐렸다. 박 회장의 지지가 없으면 주자영의 협조도 얻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용준이 호탕하게 말했다.


“내가 한번 찾아뵙도록 하죠.”


박용준이 화제를 돌렸다.


“실장님은 일주일에 두서너 번 아버지를 만나지 않습니까? 최승희는 어떻습니까?”


김 비서실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최승희씨는 굉장히 똑똑합니다. 제가 회장님께 업무 보고를 드릴 때마다 항상 옆에 있습니다. 회장님이 이해 못하는시는 부분은 최승희씨가 정확히 맥을 짚어 회장님께 설명을 드리죠. 그럼 회장님은 무조건 최승희의 설명에 동조합니다.”


박용준이 욕을 했다.


“그럼 지금까지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은 아버지가 아니라 최승희의 뜻이었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김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회장님의 건강이 좋으셨다면 같은 결정을 하셨을 겁니다. 제 뜻은 그만큼 최승희씨가 머리가 좋고, 또 주의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박용준이 입맛을 다시곤 김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두 사람을 떼어놓을 방법은 없을까요?”


“최승희씨가 없으면 회장님은 밥도 드시지 않습니다.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어려울 겁니다.”


“최승희와 유이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그게, 제가 보는 바로는 사이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애증관계랄까,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첩과 첩의 딸이니 감정상 통하는 게 있겠지.”


“그렇습니다.”


둘은 그룹의 여러 현황들과 인물평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계속했다. 그렇게 박용준은 이영운을 잃고 김 비서실장을 얻었다.


******

잠에서 깬 박 회장은 십여 분을 말없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찡그린 얼굴은 잠들기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다시 불러내려 애쓰는 듯 했다. 최승희가 말을 건넸다.


“회장님, 뭘 그리 생각하세요?”


박회장은 최승희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아까 말이야, 용준이하고 용진이 하고 다 오지 않았었나?”


“예, 유이 아가씨도 있었잖아요.”


“그래 유이도 있었지. 유이는 지금 어디에 있냐?”


“자기 방에 있을 거예요. 부를까요?”


“그래, 유이한테 뭔가를 하라고 했는데···.”


곧 유이가 나타났다. 박회장이 다짜고짜 유이에게 물었다.


“유이야, 내가 아소한테 전화해보라고 하지 않았냐?”


“예. 아소 회장이 박 부회장에게 주식 위임장을 주었는지 물어보려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박 회장은 유이의 말을 들으며 뭔가를 계속 생각하다 이윽고 소리쳤다.


“그래, 그 용준이란 놈이 아소와 손을 잡고 임시 주총을 연다고 했지.”


박 회장의 눈빛이 무섭게 살아났다.


“용준이 그 새끼는 어딨냐?”


“용일 타워로 돌아갔잖아요.”


최승희가 대답하자 박 회장이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새끼가 지 아버지를 밀어내고 그룹 회장 자리에 앉겠다는 거 아냐?”


최승희 달래듯 말했다.


“임시주총이 아직 열린 것도 아닌데 너무 심려마세요.”


“아냐, 용준이 그 놈이 보통 못된 새끼가 아니거든. 그 놈은 무슨 짓이라도 할 놈이야.”


“아소회장과 연락도 닿지 않고, 당장 임시주총 개최를 막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요.”


최승희가 아쉬워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이가 아무것도 아닌라는 투로 말했다.


“회장님이 대주주인데, 회장님이 반대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에요?”


최승희가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부회장은 그냥 주총을 하는 게 아니라 성년후견인 신청을 해 회장님의 주권을 빼앗으려 할 거예요.”


“성년 후견인제? 그게 뭔데?”


최승희가 망설이는 투로 말했다.


“회장님이 편찮으셨어 의사 결정을 제대로 못한다는 의미에요.”


박 회장이 벌컥 소릴 질렀다.


“내가 이리 멀쩡한데 무슨 소리야!”


최승희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박 회장의 손을 잡고 간절한 소리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회장님의 정신이 멀쩡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쥐면 선욱이와 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박 회장이 최승희의 손을 잡고 강하게 외쳤다.


“내가 널 지켜주마. 꼭 지켜준다.”


박 회장이 유이를 보고 말했다.


“김 비서실장에게 전화해라. 당장 오라고 해. 그룹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그 용준이란 놈부터 잘라야겠다.”


최승희가 눈물을 닦으며 만류했다.


“회장님, 그러면 안돼요. 박 부회장이 그 자리에서 나가면 누가 회장님을 대신하게요. 그리고 남들은 또 용일그룹을 어떻게 보겠어요.”


“내가 하면 되지 뭐. 내가 직접 경영을 할 거야.”


최승희가 박회장의 눈을 응시하며 예쁘게 고개를 흔들었다.


“회장님은 쉬셔야 해요. 아무도 회장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어때서?”


박 회장은 반발했지만 최승희의 눈물과 애뜻한 시선에 목소리는 작아져 있었다.


“차라리 부회장을 견제할 사람을 내세워는 게 어때요? 부 회장이 주주총회를 열면 거기서 이기고 부회장이 그룹을 마음대로 하려면 그것을 막을 사람요.”


“그게 누군데?”


“박용진 사장과 유이 아가씨요.”


“뭐?”


박 회장만큼이나 유이도 놀랐다.


“두 사람다 회장님 자식이지않아요? 그렇게 세 명을 부회장으로 만들어 서로 견제하게 하면 아무도 마음대로 못할 거예요.”


유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와아, 나는 왜 끼어 넣는 거예요?”


“왜 끼어 넣다뇨? 회장님 딸이잖아요. 그럼 자격 있는 것 아니에요?”


유이는 진지하고 뭔가를 쫓는 듯한 최승희의 큰 눈망울을 보자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첩의 딸이 경영에 참여한다면 첩의 아들은?


“모든 게 선욱이 때문이네.”


유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혐오감이 들어있는 웃음이었다. 최승희가 반박했다.


“걔는 이제 열 살이에요. 선욱이를 건드리지 말아요.”


박회장은 유이와 최승희의 대화는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래 선욱이, 유이, 용진이 모두 내 자식들이지. 용준이 그 새끼만 빼고 말이지. 그 놈은 이제 내 아들이 아냐!”


박 회장이 고개를 들어 최승희에게 말했다.


“김 실장을 불러. 당장 사장단 회의를 열어야겠다.”


최승희는 유이와 날선 대화를 멈추고 부드럽게 박 회장의 손을 잡았다.


“사장단 회의를 열어서 뭘 하시려고요?”


“용준이를 자르고 용진이을 부회장으로 만들어줘야겠다. 그 놈이 이제 내 후계자야. 유이 너는 기획실로 들어와 김 실장 밑에서 일을 배워라.”


유이는 놀랐다. 엄마를 죽게 한 박 회장의 지시를 들으며 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빼주세요. 그런 곳에서 일하려 했다면 일본 가서 칼을 배우지도 않았을 거예요.”


박회장이 아련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꿈에서 미애를 봤다. 네 걱정을 하는 것 같더라. 칼도 칼이지만, 넌 내 딸이니 용일그룹 일을 해야지.”


박 회장이 엄마 얘기를 하자 유이는 갑자기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당신이 뭔데 엄마 얘기를 해. 당신은 엄마 이름을 말할 자격이 없어.”


유이는 박회장에게 소리친 뒤 거실을 뛰어 나갔다. 최승희는 당황했지만 곧 박 회장을 달랬다.


“저래도 유이 아가씨가 회장님 생각을 많이 해요. 아시지 않아요?”


박 회장은 휠체어에 멍하니 앉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애를 생각하면 이 꼴을 당해도 싸지.”


미애에 대한 미안함과 유이를 지켜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박 회장이 갑자기 기운을 차렸다.


“빨리 김실장을 연결해 봐. 내가 직접 말해야겠어.”


최승희가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고 핸드폰을 박 회장에게 주었다. 박회장은 내일 아침 8시에 용일호텔 회의실에서 사장 회장을 열겠다는 말과 비서실에 유이 자리를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김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안건은 무엇이라 할까요?”


박 회장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안건은 내일 아침 회의에서 말하지. 아참, 박용준이에겐 회의가 있다는 말을 하지 마라.”


“예? 부회장님은 빼라고요?”


“그래. 그 놈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아,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 비서실장은 공손하게 전화를 끊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불길한 예감이 치밀어 올랐다. 어쩌면 노망난 노인의 변덕이라 할 수도 있지만 오늘 박 부회장이 아소의 위임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들통 난 걸 감안 하면 단순한 회의가 아닐 수도 있었다. 김 비서실장은 알리지 말라는 박회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제일 먼저 박용준에게 전화를 했다.


“뭐예요? 사장단회의?”


박용준이 놀라자 김 비서실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예, 안건을 묻자 회의 때 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회장님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박용준는 김 비서실장보다 더 강한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오락가락하는 정신에 아소의 위임장 건을 잊어주기를 바랐지만 그게 안 된 모양이었다.


‘하여튼 노인네가 돈과 권력에 집착은 대단해···.’


박용준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김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회장님이 주관하는 사장단 회의야 인사 관련 아니겠습니까.”


“인사 관련이라면···”


“나를 내치겠다는 말이겠죠.”


“예?”


“걱정마세요. 내가 어디 밀려날 사람입니까? 실장님은 주주총회 준비나 해주시고 어제 말씀하신 기관 투자자들이나 만나 잘 설득해 주세요.”


박 용준은 전화를 끊고 안좌사를 불렀다.


“내일 아침 아버지가 그룹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어요. 날 쫓아낼 모양입니다.”


안좌사가 무표정하게 물었다.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회의가 열리는 걸 막아야죠. 일단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모셔야겠습니다.”


“그건 회장님의 눈 밖으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라 선택에서 제외해 놓어셨던 수단이 아닙니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이대로 있으면 임시주총이고 뭐고 다 날아갑니다.”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아소가 있었던 성북동 집이 비어서니 거기가 어떨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애들 몇 명 동원해 회장님을 성북동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안좌사는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안좌사는 박용준의 경호실에서 가장 신뢰하는 10명을 차출해 용일호텔로 갔다. 안좌사는 박용준을 수행해 용일호텔에 왔던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용일호텔 경비원이라면 누구도 안좌사의 얼굴을 알았다. 안좌사가 호텔로비에 들어서 로얄스위트 룸으로 가는 전용 엘리베이트로 걸어가는 순간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평소 교육받은 대로 로열스위트 룸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좌사와 일행은 박회장의 로열스위트 룸이 있는 층에 내리자마자 경호원 두 명의 제지를 받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가 누군지 모르나?”


“안 상무님이야 왜 모르겠습니까!”


“부회장님이 전해드리라는 물건이 있어왔으니 비켜라.”


“지금 시간이 너무 늦은 밤이라 서요. 회장님께서 불편해 하신다고 합니다.”


안좌사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아소의 위임장을 가져왔으니 회장님께 직접 전해드리겠고 전해라.”


경비원이 무전기로 통화를 한 뒤 안 좌사에게 말했다.


“제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 돼, 내가 직접 전해드리라고 부회장님이 명령하셨다.”


안좌사는 당장 경비원 둘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잠긴 방문을 열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안좌사는 인내심을 발휘해 경비원에게 차분히 말했다.


“내일 사장단 회의 건에 대해 박 부회장님이 협의 할 게 있다고 최승희씨에게 전해라!”


경비원이 연락을 하자 정부장이 나왔다. 동시에 유이가 비상구 계단에서 나타났다. 한 손에는 짧은 칼 두개를 들고 있었다. 안좌사가 유이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정부장이 안좌사에게 정중히 물었다.“부회장님이 하겠다는 제안이 뭔지요?”


“이런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합니까? 최승희씨에게 조용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이가 안좌사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요란스럽게 말했다.


“어머 안좌사님,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만약을 대비해 최승희가 유이까지 부른 것 같았다. 안좌사는 유이가 최승희 편에 섰다는 것을 상기하며 일이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 회장님께서 내일 사장단 회의에 관해 의논할 게 있다 해서요. 유이 아가씨와도 관계있는 일입니다.”


“오호, 그런 일에 부회장님이 직접 오시지 않고 분위기 살벌한 양아치 열 명을 보내셨네요.”


유이는 안좌사 뒤에 복도를 가득 채운 안좌사의 경호원들을 보며 말했다. 안좌사는 정 부장이 목에 달고 나온 카드키에 주목했다. 정부장은 최승희의 심복중에 심복이니 로열스위트룸의 문을 마음대로 지날 수 있는 키를 가졌을 것이다. 안좌사는 갑자기 양 손으로 좌우 앞에 서있는 경비원 두 명의 목을 쳤다. 경비원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비명에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안좌사는 바로 정부장의 팔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겨 카드키를 매단 목걸이를 벗겨냈다. 정부장이 비명을 내지른 것과 동시에 유이의 앞발이 안좌사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안좌사는 목걸이를 벗겨내기 위해 들었던 손으로 유이의 앞발을 막았다. 안좌사 뒤의 부하둘이 동시에 유이에게 덤벼들었다. 유이는 발을 끌어당기며 몸을 돌려 뒤로 훌쩍 뛰어 거리를 만들었다. 안좌사의 부하 둘은 유이를 따라가 주먹을 내지르고 앞차기로 공격했다.


유이는 칼을 들지 않은 팔로 공수도의 안막기로 주먹을 막으며 로우킥으로 상대의 허벅치를 가격해 쓰러뜨리며 얼굴로 들어오는 다리는 몸을 틀어 피했다. 다리 공격을 피한 유이는 들어 올려 진 상대의 다리 옆 옆구리에 손등을 날렸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안좌사의 부하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안좌사는 부하와 유이의 싸움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안좌사는 정부장을 복도의 벽에 밀어뜨리고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안좌사의 짐작대로 로열스위트 룸의 문은 깔끔하게 열렸다.


“회장님을 모시고 나와라!”


안좌사 부하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곧 최승희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안좌사는 문을 막아섰다. 유이가 손에 들고 있는 칼집에서 칼을 뽑아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진검으로 꼭 한번 싸워보고 싶었어요.”


유이가 차갑게 말하자 안좌사도 바지를 걷어 올리고 정강이에서 단검보다 긴 칼을 꺼내들었다.


“그럼 한번 해봅시다.”


안좌사가 칼을 들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 긋다가 돌연 방향을 바꾸어 유이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유이는 짧은 쌍도를 교차시켜 가슴 앞에서 안좌사의 칼을 막았다. 안좌사는 재빨리 막힌 칼을 뒤로 빼 좌와 중앙을 잇달아 찔렀다. 안좌사의 찌르기는 유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속도와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유이는 쌍도를 정신없이 휘둘러 안좌사의 칼을 간신히 쳐냈지만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안좌사는 지그재그로 칼을 휘두르며 유이를 사정없이 압박했다. 유이는 밀려나며 안좌사의 칼을 계속 막았다. 그러다 유이는 갑자가 몸을 한 바퀴 돌려 앉으며 한 칼을 머리보다 높이 들어 안좌사의 칼을 막고 다른 칼로 안좌사의 앞쪽으로 내민 다리의 허벅지를 베었다. 안좌사는 예상치못한 유이의 반격에 급히 다리를 당겨들었으나 유이의 칼은 아슬아슬하게 허벅지를 스치며 상처를 냈다. 안좌사는 열이 올라 몸을 뒹굴며 피하는 유이를 따라가며 칼을 내리쳐 공격했다. 회심의 공격에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유이는 다시 궁지에 몰렸다. 그때 방안으로 들어갔던 부하들이 나오며 외쳤다.


“상무님, 회장님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안좌사는 힐끔 뒤를 보았다. 부하들이 박회장이 앉은 휠체어를 밀어 나오고 있었다. 최승희의 울음 섞인 고함과 비명이 뒤따랐지만 부하들이 막아 최승희는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안좌사가 유이에게 외쳤다.


“다음에 계속 하자.”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왔다. 안좌사와 박회장이 앉은 휠체어에 유이에게 맞아 부상당한 부하까지 바로 엘리베이터에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 주차장에는 밴 두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안좌사와 부하들은 빠르게 휠체어를 들어 밴에 실고 자신들도 올라탔다. 밴은 그대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성북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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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장.납치(3) 21.01.15 234 1 22쪽
41 10장.납치(2) 21.01.11 227 1 15쪽
40 10장. 납치(1) 21.01.08 217 1 25쪽
39 9장. 토모키루의 칼(5) 21.01.05 241 1 31쪽
38 9장. 토모키루의 칼(4) 21.01.02 244 1 13쪽
37 9장. 토모키루의 칼(3) 20.12.31 220 1 13쪽
36 9장. 토모키루의 칼(2) 20.12.28 210 1 17쪽
35 9장. 토모키루의 칼(1) 20.12.25 232 1 13쪽
34 8장. 유세나의 위기(6) 20.12.22 212 2 26쪽
33 8장 유세나의 위기(5) 20.12.18 211 2 18쪽
32 8장. 유세나의 위기(4) 20.12.15 210 3 13쪽
31 8장. 유세나의 위기(3) 20.12.12 234 2 16쪽
30 8장. 유세나의 위기(2) 20.12.08 223 2 23쪽
29 8장. 유세나의 위기(1) 20.12.04 215 2 14쪽
28 7장. 백산의 위기(5) 20.12.01 212 2 23쪽
27 7장. 백산의 위기(4) 20.11.27 219 2 13쪽
26 7장. 백산의 위기(3) 20.11.24 216 2 12쪽
25 7장. 백산의 위기(2) 20.11.20 279 2 17쪽
24 7장. 백산의 위기(1) 20.11.15 237 2 14쪽
23 6장.배반의 배반(3) 20.11.09 244 2 19쪽
22 6장.배반의 배반(2) 20.11.05 2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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