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은 긴그림자로 발끝에 눕다
서군은 처음 출발 때와 달리 싸움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관망
하던 군웅들이 참가하여 만에 이르렀다.
수십 개의 문파로 결성된 그들중 남궁세가의 휘하무인
들은 금검보 그리고 백화장원을 포함하여 천에 달했으니
단일 세력으로서 결코 작은 성세가 아니었다.
남궁세가와 동등한 규모의 세가로는 상관세가와 제갈세가가
같이 서군에 합류해 있었고 구대문파중 소림과 곤륜 그리고
점창 3개파가 합류했으니 무림맹 동서남북군 중 규모로는 가장 거대했
다.
한편 이정이 서군에 속한 백화장원의 일원으로 복귀한 것은
장원 식구들 모두가 이미 들어 알고 받아들였으나 그의 직무가
과거와 달라져 더 나아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군웅들은 각자의 속한 대열에 따라 함께 행동하며 식사도
같이 하게 정해져 있었고 마침 저녁식사시간인지라 숲이
빽빽이 들어찬 절벽을 면한 넓은 초지에 천막을 치고 간이
막사를 짓고 저녁을 먹게 되었다.
당연히 저녁식사를 위해 각 문파에서는 당번이 차출되었다
"이정아,그동안 고생한 화복이를 대신해서 이제 네가 식사당번을해라"
"예 알겠습니다"
"곁에 본진인 남궁세가에가면 배식을 줄것이다"
"제가 같이가죠"
악현상이 굳이 만류하는 이정을
도와 곁의 남궁세가 본진으로 같이갔다.
이정이 비어진 탁발사라는 대나무숲이 우거진
암자에 마련된 주방이라는 곳에 가니 남궁세가와 금검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위해 파견되어 일하고 있었고
이정과 악현상이 같이 일을 했다.
처음 육포와 같은 휴대하기 좋은 먹을거리는 정사대전이
싸움같이 않게 일방적으로 나흘간 승리가 계속되자 어느 새
부식과 주방집기가 들여졌고 각문파의 짐 중 큰 비중을 차지
했다.
저녁시간이라 이정이 바삐 손을 놀리며 식사준비를 했다.
그를 도와 악현상이 손을 거들었고 그녀의 음식을 다듬는
솜씨가 정갈하고 깨끗했다.
전혀 못할 것 같았던 그녀의 훌륭한 솜씨에 이정이
감탄을 하며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악소저,정말 요리솜씨가 좋소"
"흥,제가 검만 다룰줄알고 가정일은 형편없는 줄 알았나요. 장의경소저같이 얌전한 여자만이 집안일과 요리도 잘하고 여자답다고 여겼군요"
갑자기 장의경을 빌며 핀잖하자 이정이 당황했다
"그게아니오. 난 단지 악소저의 요리솜씨를 칭찬한것이오"
"방해되니 저리가서 그릇에 담기나 해요"
이정이 악현상의 핀잔을 들으며
그렇게 마련된 푸짐한 저녁식사를 그동안 사이가 좋아진
금검보와 백화장원 일행이 함께 있는 곳으로 날랐다.
그리고 이정을 대하듯 하여 마치 하녀인양 뒤치다꺼리를 시키는
백화장원의 사람들의 주문을 일일이 받아들이는 악현상이었
다.
구천검령 악불해!
무림십대고수,십대기인에 모두 망라되는 그녀는 동배의 누구에게도 평어를 사용했고
그녀가 존칭을 사용하는 명숙들도 드물었다.
그리고 사람이란 그 이름 석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듯 사람
들은 그녀의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대강남북을 한 자루 장검만으로 주유하며 이름 석자를 하늘의
북극성 같이 우뚝 새긴 그녀였다.
흰 절벽위 높다란 하늘을 나는 독수리 마냥 그녀는 고독했고
홀로 떨어져 위엄있고 고고했기에 더욱 사람들의, 특히 정사
를 불문하고 젊은 청년기협들의 흠모의 정을 평소 받았다.
그러나 이곳 정사대전의 한 귀퉁이에서는 아까의 이정을 무시했던 십전공자 경우외는 대업을 위해 각 문파의 이름
없는 삼류무인들에게조차 평어를 쓰지않고 말을 높이고 순순히 따르고 있었
으니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행동을 아는 현명한
그녀였다.
“이제 내일이면 드디어 전방에 배치된다 한다!”
마침 금검보의 자랑인 금검무사인 금의차림에 중후한 인상
인 백마신검 갈평이 곁의 같은 금검보의 은검무사이며 번쩍
이는 은의를 주름하나 없이 깔끔하게 입고 있는 염소수염의
추혼수사를 향해 말을 하고 있었다.
둘은 상하관계인데도 죽이맞아 항상 실과바늘같이 함께 있는것이다
“그래야하오. 여기까지 와서 싸움한 번 못하면 우리 입장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 잔치에 왔다가 헛물만 들이키고
가는 꼴이 되오”
정사대전을 이제는 긴장이 풀리며 싸움이 아닌 정파무림의 잔치며 천무련의 전리품을 먼저 탈취하려는 경쟁장으로 여기는
것은 이 자리의 누구도 받아들이는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며칠동안 군소문파를 최전방에 앞장세웠던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는 전황이 유리하자 사욕을 품고 이제 내일부터 그들이 최일선으로 나서고자 하는
것이다.
백화장원 또한 남궁
세가의 가주 곁을 지키고 후방에 있었으나
내일부터 같이 앞으로 나서
파죽지세로 밀어붙여 큰 공을 세울수 있는 것이며,
진법도 수비와 관망세에서 공격 일변도로 바뀌는 것이다.
“이 번 정사대전에서 본 금검보는 반드시 누구보다도 큰 공을
세워야 하네”
백마신검 갈평의 눈빛이 욕심에 횃불같이 빛났다.
이미 천무련의 주요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상착의와 명호는
일일이 두루마리에 기재되어 각문파에 배포되었고 그들의
수급을 들고오는 자는 막대한 포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때 은의검수인 추혼수사가 마침 밥을 배식하는 이정을
알아보고는 눈빛이 빛나더니 역시 빠지지 않고 이정에게 한 마디 하며 비꼬았다.
“네 녀석도 공을 세워보아라. 땅에 혹시 흘린 목이 있을 것이
니 잘 찾아 보고 다녀라”
“하하하”
그 말을 들은 금검보의 모두가 한 껏 웃었고 백화장원의 일행
들마저 따라 웃는 이들이 있었다.
마침 주방에서 가져온 나무밥통에서 밥을 푸던 악현상이
두 눈에 노기가 비쳤으나 한순간 호수처럼 가라
앉았다.
대신 그녀가 국자로 국통속의 닭고기 탕을 저으며
모두가 듣게 노래를 낭랑하게 읊조렸다.
“전나무 숲속의 금빛 뻐꾸기는 고약스런 울음을 날카롭게 울고 은빛 지바뀌가
온갖 욕설을 해댄다.
새들아, 지저귐을 멈추고 운명의 날을 대비하라.
9개의 산과 5개의 강이 있는 그 곳 운명의 땅에서 새들은
궁수의 노렸던 화살에 붉은 심장을 꿰뚫리리라.
그날 사망은 긴그림자로 발끝에 누워 있으리라“
그 말을 새겨들었는지 백마신검 갈홍의 얼굴 안색이 갑자기
변하며 악현상이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너는 어제까지 못보던 여자아이인데 누구냐? 그리고 네 입으로 부른
노래에서 금빛뻐꾸기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
백마신검의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고 말대답에 따라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표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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