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화 향기는 헤어진 사랑을 다시 이어주다
그리고 오후 무렵의 장원은 분주했다.
백화장원은 일주일 후 장주님의 생일이 있었고 그 전에 남궁
세가를 비롯한 여러 귀한 손님들이 올 예정이라 평소친하지않은 인근방파에도 배첩을 돌리는등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정 역시 연회에 필요한 일을 돕고 화분을 준비하느라 머릿속
과 몸이 바빳으나 그래도 오후 무렵에는 정원을 돌보는 가운
데 검법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검법에 흥미를 가진 것이니,
하긴 검법은 정기신 일체를 요하였고 생각하고 몸을 다스리
기를좋아하는 자라면 누구든 관심을 가질만 했다.
그리고 늦은 한밤중이었다.
이정이 정원 소축방에서 유등을 켠채 책을 읽고 있었다.
소축은 붉은 벽돌과 나무로 지어졌는지라 뒤의 대나무숲의
그늘과 함께 저녁나절이 되면 어느새 무더위를 쫓고 시원해
져 있었기에 책을 읽기에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도 가끔 정원에 수련하고 있을 장의경이 의식되었다.
이정이 장의경이 근처에 있다는 것만도 좋았다.
그때 장의경이 이제 수련을 끝냈는지 이정의 소축 방문을 두
드렸다.
“이정, 있느냐?”
"예,소저, 안녕하십니까"
그녀의 현의경장차림의 모습에 그가 인사했고 그녀가 마주
인사하면서 소축 실내에 들어섰다.
그녀가 어제 다녀간 뒤로 그가 청소를 깨끗하게 했고 바닥은
푸른 대나무를 깔아 청향이 돌고 있었다.
피어난 여름꽃과 늦게 지는 봄꽃의 화분도 창가에 두었고 실
내는 어제와 달리 청아하면서 그윽했다.
나무 탁자위에는 무더운 여름이라도 따뜻한
말리화 차주전자가 데워져 있었다.
말리화차는 그 진한 향기로 인해 헤어진 사랑을 다시 연결해
준다는 꽃말이 잇었다.
비록 이정과 장의경 모두 헤어질 정도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
지 않았으나 그 그윽한 향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장의경이 이정이 주전자에서 따루어준 차를 마시는 가운데
이정을 향해 말했다.
"이정아, 백화검법을 상화에게서 배우고 있느냐?"
"예. 첫날부터 혼이 많이 났습니다"
그가 팔목에 멍든 자욱을 내보였다.
그녀가 그의 멍든 팔을 보며 웃었다.
싱그러운 미소에 실내가 환해진듯 했고 이정이 갑자기 가슴
이 두근거렸다.
이제 보니 그녀의 현의경장차림이 갓 무술수련을 마친 뒤인
지 편안하게 걸치고 있었으며, 수련뒤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아 그녀의 체향과 함께 청순하면서도 고혹적인 느낌을 함
께 주고 있었다.
그때 그의 상념을 깨고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상화에게 열심히 배우도록 해라. 상화는 보기보다 성실하고,
실력 또한 나이는 어리나 장원의 평범한 무인들 이상의 실력
을 지니고 있다"
“예,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두 사람이 이정의 방에서 보는 달은 높이 떠 있었다.
계수나무 흰꽃 사이로 드려다 보이는 달은 별빛 쏟아지는 밤
하늘 창공과 조화되어 그대로 천상에 있는 듯 아름다웠다.
소축뒤 작은 대숲은 바람이 불때마다 비소리처럼 청아한 선율을 내고 있었다.
ㅡ쏴아아
마침 한줄기 서늘한 서풍이 불며 그녀의 삼단같이 뒤로 흘러
내린 긴 머릿결을 흩날렸다.
그녀가 머릿결을 손길로 만지며 주위 정경에 기분이 좋아졌
는지 이정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보니 백화 장원에서 가장 절경인 곳이 바로 네가 있는
소축이구나. 마치 무릉도원같다!”
“소저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들러셔도 됩니다”
“그래, 고맙다”
그리고 그녀가 찻맛을 음미하며 미소를 짓더니 잠시 그녀만
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더니 혼잣말 하듯이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정아, 불행하게도 어쩜 내가 가까운 시일내 이곳을 망가뜨릴
지도 모른다. 영화로운 꽃은 꺽이고 신록의 정정한 나무는 부
러지고 소중한 이 탁자와 찻잔 또한 산산조각으로 부서질지
도 모른다”
“......”
이정이 그 말에 깜짝 놀라는 가운데 의아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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