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잎
“은나라에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이정이며,
명호가 탁탑천황이에요. 그의 무공은 어깨에 이고 다니는
커다란 동탑을 상대에게 집어던져 압사시키는 것이죠. 오늘
천년의 공백을 깨고 탁탑천황이라는 위대한 영웅이 새로
부활한 것이죠“
그 말에 이정이 당황했고 마찬가지로 군사부 중 한 남삼
중년인이 따지듯이 말했다.
“소저의 이야기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그렇게 따지자면
이곳 만여명중 과거 영웅의 이름과 겹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오. 게다가 이정이라는 젊은이의 무공 또한 탁탑천황의
근처에도 못미치는 것이니 정사대전이 과거의 혈겁의 부활
이라는 말이 가당치 않소.
그리고 천무련에서 한 낯 안개 따위로 무슨 천지조화의
재주를 일으켜 만이나 되는 인원을 대적할 수 있겠소.
서군은 요사한 술법은 범접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영력있는
고승들과 도인들이 부지기수요. 맹주님도 같이 계셔 동서남북
사군중 가장 강한 곳이니 천무련의 잡졸 따윈 결코 우려할
바가 아니오”
남삼중년인의 말에 장의경을 포함한 상관혜, 제갈수의 눈빛이
굳어졌다.
악현상을 군사부에 데려온 그들의 입장 역시 같이 질책을 받은
것이다.
‘서군이 가장 강한만큼 가장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에요’
악현상이 그 말을 하려다 입속에 삼키고 말하지 않았다.
더이상 말하더라도 승리를 목전에 두었다고 착각하고 전공에
만 눈먼 이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천하제일의 현자 천기자도 포기한 것일 것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약자를 억압하고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을
밥먹듯이 하는 오만과 위선의 탈을 벗기 전에는 정파 역시
일방적으로 정의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정파가 무너지는 그 순간이 오히려 진정한 정의가 새로 태어
나는 것이다'
악현상과 이정이 포권을 하고는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백화장원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중에
악현상의 절대고수의 감각에 여름의 폭풍이 울고 있었다.
휘이잉!-
바다 멀리서부터 사나운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폭풍은 세상을 뒤집고 새로운 흙과 양분을 푸른 강 상류에서
실어 나르고 고운 흙을 지표면에 드려내어 때묻지 않는 새로운
생명을 창출하는 것이다.
악현상이 새로 피어날 풋풋한 생명의 떡잎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백화장원의 일행들과 움직일 채비를 마친
때, 군사부의 일을 끝내고 곧 바로 남궁세가와의 아침 회의를
마친 장의경이 나타났다.
장의경이 이정과 함께 있는 악현상을 찾더니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군사부의 완고한 윗사람들은 악소저의 말을 신중하게 받아들
이지 않으나 우리 백영회에서는 당신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 적들이 9산5강의
특이한 지형에서 가장 먼저 쓸 계책이 일단 우리측의 진영을
흩어 각개 격파한다는 것이죠. 제갈수 공자를 위시로 우리
서군 백영회의 34인은 그때를 대비하여 비상 대안을 마련했어
요”
군사부의 완고한 태도에 감정이 상했던 악현상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자 이정이 대신 물었다.
“그래도 장소저와 백영회에서 믿어주니 다행이에요. 그런데
그 대안이 무엇인가요”
장의경이 대답대신
곁의 나무 가지를 땄다.
그리고 입을 벌려서는 나뭇잎을 향해 짧은 소리를 지르는
듯 하니 소리는 갑자기 들리지 않고 어느 순간 나뭇잎들이 가지
에서 잘려 나가듯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어느 경지에 오른 음공과 같이 유형의 힘을 가진 것이다.
이정이 놀라서 눈을 둥그렀게 떴고 악현상 역시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장의경이 맑고 지혜로운 시선을 하늘로 향하더니 말했다.
“서군 군사부 외에 백영회 내에도 천기를 읽는 사람이 있어
요, 그가 말하길 이 삼일 내에 큰 폭풍우가 닥친다 했어요.
우리가 대비한 방법은 그 폭풍우와 적과의 혼잡한 교전와중
에도 서로간 연락이 끊기지 않는 방법이죠"
그 연락방법이 백영회만의 비밀수단이었다.
" 백영회의 일원인 신기세가의 신기공자는 음공에 조예가 깊은
자로 광대한 지역에서 적의 눈치없이 교환할 수 있는 ‘影波’
라는 특이한 신호 방법을 각자에게 전수한 것이죠. 방금 제가
시전한 신호방법은 누가 알고 의도하지 않는 한 일정 진동으로
발해지는 이 음파를 결코 감지할 수 없으며 설혹 감지하더라도
신호의 약속을 모르는 한 그 의미를 알 수 없죠. 단지 아쉬운
점은 강약과 높이만 있는 신호인지라 주된 연락만 가능하고
대화는 서로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도 악현상이 그 정도의 놀랄만한 대비에 만족한지 비로소
흉한 얼굴에 밝은 웃음을 지었다.
“생각 이상으로 그대들은 현명하군요. 그대들은 마치 마른 대지
위에 폭풍이 지나간뒤 돋아나는 어린 떡잎같이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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