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시즌 제26시리즈 – vs 잠실 (3) 2차전.
이날의 경기는 독이 오른 부산의 압살로 끝이 나고 말았다.
사과를 했던 창홍은 예상과는 다르게 퇴장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상대팀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잠실의 감독이 투수를 교체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그리고 부산의 타자들은 화를 풀 곳이 없기에 이어서 등판하는 모든 투수들을 완전히 거렁뱅이로 만들어 버렸다.
탈탈 떨었다는 게 적당한 표현이었다.
또한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을 때는 자중을 하는 도루와 커트 등을 일부러 펼치며 도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은 몇몇의 선수들이 일부러 시비를 걸기도 하였지만, 만호의 부상 정도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시합을 빨리 끝내고 병문안을 가야 한다는 목적에 의거하여 헛스윙으로 삼진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합이 끝난 후.
“환자 퇴원하셨는데요?”
“네? 그게 무슨···.”
“코치님, 아직 여기 있을 거라면서요?”
“커험!”
만호 형의 부상 정도는 크지 않았지만, 형님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감독님을 꼬셔 부산행 앰뷸런스를 타고 형수님 곁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어차피 일주일간 쉬어야 하는 부상인데, 맘 편하게 내려보내 달라고 했다나?
올라오면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후문이···.
“아니 그럼 말을 해 주던가.”
괜한 걸음을 했던 선수들이 투덜거렸지만.
한편으론 아가가 탄생한 만호 형이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였다.
“자식이 일주일 쉬고 또 일주일을 쉬겠네.”
“형님도 맞추라고 전할까요?”
퍽퍽퍽!
두열은 괜한 소리를 했다가 선배들의 다구리에,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다.
******
날이 바뀌고 잠실과의 2차전.
마운드에는 퍼런 눈의 두열이 등장을 했다.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이 친구 눈은 왜 또 저런 건가? 잊을 만하면 퍼래져서 나오는군.
두열은 전날 선배들의 폭행으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선발로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매타작이 효험이 있었던 것인지 어제 밤만 해도 떨어지지 않던 몸살 기운이 싹 달아나는 기이한 체험을 경험하였다.
[마두열 선수 얼굴과는 다르게 눈빛이 아주 좋습니다.]
감히 나의 마누라를 쩔뚝거리게 만들어?
니들은 오늘.
다 뒤졌으.
두열은 연습 투구를 하며 볼끝을 점검하였다.
오늘은 그 어떤 때보다 온몸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실전도 아니건만 연습구에서부터 이렇게 공이 착착 감기는 느낌은 퍼펙트를 이룬 날에도 느끼지 못했던 감촉이었다.
그리고 공을 던질 때 손가락을 타고 나가는 공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뇌로 전달되었다.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촉감이 뇌로 전달되어 그 움직임이 3D 화면으로 출력되는 느낌이었다.
[어제 잠실을 대파한 부산이 오늘도 1회 초에 2점을 얻었습니다. 마두열 선수의 어깨가 가볍겠습니다.]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글쎄. 아홉수를 넘을 수 있을까?
L 횬다이 : 아노, 무리 데스네~
L 국9마(국민9승마두열) : 쪽바리가 되고 싶으면 일본으로 가거라. 이 쪽바리보다 더 개 같은 친일파 새끼야.
상대를 약 올리고 염장 지르기의 대가인 국9마가 욕까지 하였다.
그에게 두열은 좋은 유흥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는 다른 아이디로 두열을 응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두열이 흔들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일 때면 남들보다 더 험한 말로 자극을 주었다.
그것이 그만의 즐거움이든 혹은 자극을 주기 위한 행위이든 간에.
그는 두열을 아끼고 있었다.
‘미저리’ 같은 사랑일지라도···.
하지만 그도 피가 솟구칠 정도로 싫어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친일파였다.
독립 운동가인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았던 국9마였다.
나라를 빼앗은 적군은 당연히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나라를 팔아 먹은 친일파는 그에 못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증오를 해야 할 대상이었다.
같은 식구가 등 뒤에서 칼을 겨눌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교육을 받았던 국9마의 입장에선, 저렇게 대도 않는 어법으로 대화를 하는 이들이 주된 공격의 대상이었다.
두열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지만, 인터넷에선 국9마와 횬다이가 열심히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인터넷을 즐기는 몇 명의 팬들은 양쪽 싸움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플레이 볼!”
두열은 타석에 든 타자보다 심판을 보며 신중하게 초구를 내었다.
펑!
“스트라이크!”
상대 1번 타자 이준현이 강력한 강속구에 방망이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만호 형을 대신해 포수석에 앉은 김네시 형도 강속구에 움찔거렸다.
이름이 이상한 네시 형은 새벽 네 시에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새벽을 밝히는 환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그 시간을 이름으로 정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어릴 때 그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했다고···.
여하튼 이 형님은 만호 형 다음으로 우리 팀에서 가장 뛰어난 포수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안 좋은 게 포구다.
글러브질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너클볼?
투 스트라이크 이후로는, 그리고 주자가 생기면 생각도 말아야 한다.
스텟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만호 형보다 좋은 구석도 있다.
그런데 하드웨어가 딸린다.
키가 작고 덩치도 작은 편이여서 포수를 맡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덩치가 작은 포수들에게는 투수들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타입의 포수는 아니다.
글러브질 다른 말로는 미트질이나 프레이밍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도 마찬가지다.
바깥으로 공이 휘면 포수는 밖에서부터 글러브를 안으로 끌고 오면서 포구를 해야 한다.
또한 공은 글러브 중앙으로 잡는 것이 아니라 글러브 끝으로 받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받으면 심판은 공이 글러브 중앙에 있다고 판단을 한다.
공의 궤적은 보았지만 바깥부터 끌고 들어온 글러브가 포수 중심에 가깝게 있다면 아무리 눈이 좋아도 긴가민가하는 심정에 속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낮은 공에는 반대로 아래부터 글러브를 올려서 잡아야 한다.
변화가 심한 공은 앉은 자세에서 한 발을 앞으로 디디며 포구 지점을 투수 쪽으로 형성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뚝 떨어지는 공 혹은 솟아오르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날 경우, 이렇게 앞으로 나가 포구를 해 버리면 존을 크게 벗어나기 전에 제어를 함으로써 심판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어떤 포수는 살짝 일어나며 심판의 시야를 속이기도 한다.
시야가 흔들린 심판은 포구 위치로 대략의 판정을 하기 때문에, 포수의 실력에 따라 완전히 볼인 공도 스트라이크로 변동을 한다.
변화가 심한 커브의 경우 완벽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였지만 포수가 글러브질을 못해 중앙에서 아래로 긁듯이 공을 잡아버리면 포구 위치가 거의 땅바닥에 위치하기 때문에 볼로 판정 받을 확률이 거의 99%라고 봐야 한다.
이런 공에 스트라이크 선언을 했다간 '매수 심판' 소릴 듣기 딱 좋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지나쳤어도 볼이 되기도 하고, 볼의 위치에 있었지만 스트라이크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화면을 보고 있던 네티즌들은 욕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보는 공은 화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이런 포구 능력도 야구의 한 파트이며 기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포구를 잘 하는 포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내용 중의 반만 잘 해도 좋은 글러브를 가지고 있다고 평한다.
그런데 네시 형의 글러브질은 아쉽게도 수준 이하다.
키가 작고 팔이 짧아서, 덩치 큰 포수들이 간단하게 하는 동작들을 크게 해야 하고.
이것은 오히려 오버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스트라이크도 볼로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이스 볼!”
네시 형이 일부러 큰 소리로 타자의 화를 돋운다.
저 형님도 내 의도를 알고 있다.
확실히 머리가 좋은 형님이다.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기 마련.
말도 안 했건만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였다.
자! 심판과 타자는 어쩌려나?
“아니, 이게 왜 스트라이크입니까?”
심판 성향과 코스 공략.
투수들은 시합의 첫 공은 될 수 있다면 스트라이크를 던진다.
타자에게 기백을 보이고, 자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하나의 루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보통 아웃사이드의 코스로 공을 던지는 편이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하나 정도 빠지는 공.
당연히 반 정도의 심판들은 볼을 외치고, 타자는 용기가 없는 투수를 비웃는다.
바깥쪽에 후한 심판이 많다지만 초구부터 훤히 보이는 바깥쪽 공에 손을 들 주심은 많지 않다.
그럼 그날은 스트라이크의 경계선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그건 상대 투수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나야 속구가 좋으니 버틸 만하지만 속구가 느린 투수에게는 지옥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그 의미를 모르는 포수는 기운을 차리라며 자기가 투수가 된 것처럼 전속력으로 공을 되돌려 준다.
그런데 오늘은 판정이 달랐다.
스트라이크 판정.
심판의 콜과 동시에 타자는 희멀건 눈동자를 치켜뜨며 이게 무슨 스트라이크라는 항의 의사를 내세웠다.
‘잘한다.’
사실 지금 공이 스트라이크건 볼이건 상관이 없었다.
해당 심판은 바깥쪽 볼에 후한 심판이었고,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것뿐이었다. 헌데 별거 아닌 공 하나에 시합을 시작하자마자 타자라는 사람이 심판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다.
그래. 그게 볼이 맞고 스트라이크가 아니더라도 시작부터 게임을 지배할 심판에게 눈을 부라리며 목청을 높인다고?
잘한다. 시합을 여는 리드 오프라는 타자가···. 쯔쯔.
심판이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경고를 하자, 그제야 타자는 울분을 가라앉히며 잠시 타석을 벗어나 머리로 치솟은 화기를 다스린다.
그래도 프로라는 건가?
그래서 하나의 시험을 다시 내려 준다.
두열은 포수에게 공을 되돌려 받으며 초구를 통해 심판의 성향을 테스트해 보았다.
사실 초구는 바깥으로 공 한 개가 빠진 볼이었다.
하지만 심판은 좋지 않은 포구에도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금일 주심은 바깥쪽 공에 후할 공산이 매우 컸다.
두열은 재확인을 하기 위해 다시 공을 던졌다.
이번에는 공이 두 개 빠진 위치였다.
하지만 콜은.
“볼!”
두열의 예상과는 다르게 볼이 선언되었다.
타자와의 신경전으로 두열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했으나 심판은 자신의 중심을 지켰다.
이후 3구는 다시 공 하나가 빠진 속구를 재차 던졌고, 타자는 간신히 커트를 해내었다.
“스트라이크인가요?”
“어.”
싸가지 없는 심판이 반말을 한다.
나이도 얼마 안 돼 보이는데 대뜸 반말이다.
심판이 무슨 벼슬도 아니고 더럽고 아니꼬워서 원.
준현과 심판의 첨예한 반목을 확인한 네시가 두열에게 사인을 내었다.
‘바깥쪽 같은 코스로 공 한 개 반. 어때?’
호오. 이 형님 오늘 보니 리드 능력이 꽤 괜찮다.
지금 공 세 개를 모두 같은 코스로 던졌다.
1번 타자의 반응 속도가 좋아서 위험할 수도 있는데, 웬만한 포수들이 피하는 코스를 과감하게 선택하였다.
어지간한 타자들은 비슷한 쪽의 공이 두 개 이상 들어오면 반응을 잘 한다.
포수는 그를 알기 때문에 당연히 타자의 상태에 따라 코스를 변경한다.
그런데 이 형은 같은 위치로 속구만 네 개째 사인이다.
내가 이 형님의 사인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던지는 이유는 그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런데 좀 빠를 거에요.’
‘내가 무조건 잡으마! 내가 만호 형보다는 부족한 게 많지만, 그래도 오늘은 나를 믿어 던져 다오!’
‘후후후, 알겠습니다.’
두열은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며 신경이 날카로운 두 사람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리고 역동적인 동작에 이은 강속구는 공간을 갈랐다.
퍼어억!
반응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속구가 들어왔다.
타자는 고개를 획 돌리며 심판을 노려보았다.
그가 보기에는 무조건 볼이었다.
반대로 포수는 포구 동작 그대로 움직임이 없었다.
다른 포수들은 글러브질이라도 했을 텐데,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이 들어온 그대로 묵묵히 쥐고 있었다.
오늘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가 이 시합을 씹어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심판은.
“스트라이크! 아아우웃!”
판정이 확정되자 준현은 얼굴을 붉히며 심판에게 또다시 항의를 하였다.
하지만 해당 팀 감독이 튀어나와 그를 말리며 걸음을 돌렸다.
아무리 막 나가는 팀이라지만 1회 말, 첫 타자부터 심판과 각을 세울 순 없는 문제였다.
그렇게 심각한 그들과는 다르게 두열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오케이. 사이즈 나왔습니다. 오늘 당신들···’
탈곡기로 탈탈 털어 낟알로 만든 후에 도정기에 넣어 생살이 갈리는 과정처럼 그 무릎들이 쓸리고 까질 정도로 아홉 명 모두를 무릎 꿇게 만들어 줄게.
- 작가의말
7월 11일 연재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두 달이 흘렀습니다.
딱 2화 분량을 가지고 시작을 했었는데 이 시간 동안 대략 3권에 준하는 글을 썼네요.
첫 소설을 쓸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쓸 능력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3권 이상의 글은 계속해서 쓸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나아가 좋은 글을 쓰는 수로공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항상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 글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요.
다음 소설은 꼭 출판으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네요. 헤헤.
감사합니다. ^^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