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시즌 제17시리즈 – vs 광주 (4) 겹쳐진 영역.
대적자라는 게 이렇게 흔한 거야?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한 팀에 있었어?
뭐야? 둘 다 자기 능력을 완전히 깨우친 상태라고?
<’대적자’ 최왕만 – 뱀으로 만든 보약을 좋아하던 최왕만이 우연히 내단을 가진 독사를 섭취한 후 기운에 대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섭취한 독물에 의해 위기가 있었으나, 극양지체를 타고난 그는 독기를 태우고 몸에 좋은 기운만을 흡수하였습니다. 정보창 등의 기능은 없습니다만, 자기 자신의 상태만큼은 그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하는 타입입니다. 또한, 힘이 매우 좋습니다.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기 케릭들이 즐비하니 우승 후보로 꼽힐 수 밖에.
도대체 다른 투수들은 어떻게 상대를 한 겨?
잠깐만. 두 명한테 다 지면 10%? 별 써서 캔슬이 안 되면 어쩌지···
다시 겁을 먹어 덜덜 떠는 두열이었다.
하지만 곧 그의 성격이 다시 튀어나왔다.
‘이기면 되잖아. 그럼! 그렇고 말고! 박스나 따자! 오늘 다 잡으면 박스가 몇 개야~!’
■ 최왕만(17.05.)(83 우투좌타) 0.355AVG 69H 12HR 51RBI 0.639SLG 0.468OBP 1.107OPS 0.407RISP
‘워, 그런데 OPS가···. 인간이슈?’
‘저 녀석은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해? 그나저나 내 상태를 좀 보자. 음, 좋군. 최상이야. 흐흐흐.’
‘좋지 않아.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어. 성진 선배는 그나마 파워라도 약했지, 이 양반은 그런 구석도 없어. 굳이 꼽으라면 속도가 조금 느려 보여. 성진 선배가 쾌검술을 익혔다면, 이 선배는 무거운 도를 쓸 사람이야. 그렇다면···.’
두열의 저속 너클이 처음부터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다.
보통의 타자라면 몸에서 먼 공에 배트를 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그에게 느린 공은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공이 스치기만 해도 엄청난 위력 탓에 강타로 돌변을 시키는 그였으니, 너클볼 따위는 힘으로 눌러버린다는 계산이었다.
너풀~ 너풀~
‘멍청한 놈! 나한테 너클을 던져? 넌 빗맞아도 사망이야! 이야압!’
부아아앙!
‘엌! 무슨 놈의 스윙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냐?’
틱!
“파··· 파울!”
“아깝다!”
[아! 최왕만 선수, 무척이나 아까워합니다. 반면에 마두열 선수는 금방 스윙에···.]
타자가 아까워하는 모습과 얼굴이 파래진 투수의 모습이 방송에 여과 없이 전파되었다.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쫄았군. 후후, 오늘은 9회까지 가지도 못하겠어. 길어 봐야 5회야.
L 너클마 : 투수는 초반에 힘든 법이지. 내 옆으로 와서 같이 구경하자니까?
– 폭렬마! : 두열이 형 파이팅! 광주를 불태워 버리세요.
L 너클마 : 후후, 너두 나와 함께 응원하자. 같이 불 지를까? 응?
위험했어.
배트 끝에 걸린 것 같지도 않았는데 공이 맞았다고?
그리고 금방 그 소린 뭐야?
소닉 붐이라도 일어난 거야?
음속(sound velocity).
소리가 매질을 통과하는 전파 속도를 말한다.
0℃ 1기압에서 소리가 공기라는 매질을 지나는 속도는 대략 331.5m/s.
온도가 1℃씩 높아질 때마다 속도도 0.61m/s씩 빨라진다.
실온에선 대략 340m/s의 속도.
시간당 키로미터 단위로 환산하면, 1,224km/h.
우린 이 속도를 ‘마하(mach)’란 단위로 부른다.
1mach = 1,224km/h.
소닉 붐(sonic boom).
물체가 음속의 경계를 넘나들 때 발생하는 충격음.
비행기와 같은 고속의 물체가 소리의 속도인 1,224km/h보다 빠르게 움직일 때, 음속 이상의 비행 물체는 그것보다 먼저 진행을 하던 소리와 만나면서 충돌을 일으킨다.
매질(공기)의 밀도는 앞뒤로 눌려 급격하게 압축이 되고, 매질은 이와 같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폭발을 일으키며 충격파(shock wave)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큰 충격음과 수증기의 띠가 발생되는데, 이것을 ‘소닉 붐’이라 한다.
진짜 소닉 붐일 리가 없었다.
방망이는 공기를 갈랐지만 소리까지 따라 잡지는 못했다.
그의 배트에 안개 같은 수증기 띠가 형성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생생하게 들은 자들은 모두 그 충격파에 현혹이 되었다.
마치 게임 속에서 땅을 강하게 내리찍는 발뒤꿈치 음파에 머리가 뺑글뺑글 돌며 ‘스턴’이란 기술에 걸린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심장이 약하던 구심은 사실 찔끔한 상태였으니, 포수와 투수가 긴장을 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위험하다. 정말 위험해.’
‘거를까? 어차피 1루 비었잖아.’
두열만큼이나 만호도 겁을 집어먹었다.
분명히 귀를 울렸던 굉음이 생생하게 세반고리관을 흔들었다.
이건 일반 스윙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열의 고개가 천천히 좌우를 가로저었다.
피할 수 없어.
진짜 소닉 붐일 리가 없잖아.
물론 그만큼 충격적인 건 사실이야.
하지만 한 번 도망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
작전상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지만, 지금은 아니야.
만약 지금 고의사구를 선택한다면 이건 도망가는 것에 불과해.
고의사구를 택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했어야지.
정면 승부다.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수만은 없다.
세상에는 강자가 많고, 메이저엔 더 수두룩하지.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부풀어올라 알이 배길지언정.
꾸역꾸역 타고 넘는다.
산을 타다가 그곳에서 영원히 잠들 수도 있지만, 못 넘을 산은 없다.
좋아! 어떻게든 정상에 올라 꼭 ‘만세!’를 외친다!
두열의 눈동자가 검은 색으로 도배가 되는 것처럼 무거운 색을 띠었다.
덩달아 만호도 전이가 된 듯이 긴장을 날려 버리고 굳은 의지로 사인을 내었다.
그도 이제는 정면 승부를 위한 사인만을 낼 뿐이었다.
지금 당장 지더라도, 에이스라면 맞상대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이놈들 분위기가 왜 이래? 후후, 내 스윙에 충격을 먹은 건가?’
왕만은 여전히 여유만만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낳을 때, 아내가 꾸었던 태몽을 듣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만 명의 왕이 모시는 황제.
처음에는 황제라고 이름을 지으려 했지만, 너무 밋밋했다.
무려 만 명의 왕이 모시는 황제를 보통의 황제와 같이 부를 순 없었다.
그래서 지은 이름이 왕만이었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만왕지황’이라는 네 글자 이름으로 풀 네임을 완성하였다.
최 만왕지황!
하지만 부인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히고, 그의 아버지 즉 왕만의 할아버지의 권유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난 만의 왕을 거느리는 황제다. 네까짓 놈이 넘볼 상대가 아니란 말이지. 후후, 던지거라. 모두 쳐주마. 우하하하하.’
‘왕만 선배 웃을 수 있을 때 웃으십시오. 그게 언제까지 갈는지는 모르겠지만!’
[투수 공 던집니다!]
주자가 있었지만 정상적인 와인드업에 들었다.
어차피 지금의 타자는 2루에 있는 주자를 무조건 불러들이려 한다.
이제 게임이 막 시작된 1회 말.
점수는 3 : 0. 투 아웃에 2루.
2점을 잃거나, 0점으로 막거나.
두열의 검은 눈동자가 포수의 글러브를 뚫으려 하였다.
앞으로 기운 상체는 어깨를 뜯어내려는 듯이 저 혼자 앞으로 향하였고, 어깨도 달리는 버스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인도 사람처럼 처절하게 매달려 안간힘을 섰다.
육체는 모든 힘을 모았고, 그리고 그 힘은 어깨를 튕기는 데 쓰였다.
어깨는 아버지를 도와 뙤약볕에서 밭농사를 마치고 개울가에서 덜렁덜렁 작은 녀석을 드러내며 그곳으로 뛰어드는 아이와 같이, 해맑고 시원한 모습으로 공간을 갈랐다.
‘부드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휘어졌던 팔꿈치도 아이를 따라 개울에 몸을 던졌다.
아이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를 들어 물 위로 던졌다.
또 한 아이는 높은 절벽 위에 올라 개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두열의 손끝도 절벽을 뛰던 아이처럼 온몸의 힘을 집중하여 공의 솔기를 찍어 눌렀다.
휘로로~
최초의 회전은 그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흡사 공간에서 발레는 하는 발레리나처럼 다소곳하게 회전을 하였다.
후라라락!
하지만, 작았던 회전이 곧 격렬하게 휘돌기를 치기 시작했다.
중심은 여전히 태풍안처럼 고요했지만, 바깥 둘레는 공기를 찢어발기며 터전을 잡고 있던 그들을 갈기갈기 헤집어 놓았다.
뿌아아앙!
이제는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증기선의 뱃고동처럼 들리고 있었다.
공은 꼭 총알과 같이 잠시 가라앉았다가 다시 솟아오르는 듯한 착각을 일게 했다.
타자는 이것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었다.
태풍처럼 파괴력을 키우며 타자에게 상륙을 하려는 강속구를 마주 하였다.
그것은 총알에 맞을 병사가 한순간 시간이 정지돼 눈 앞 총알을 보며 기겁을 하게 만드는 장면과도 같았다.
하지만!
공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를 닮아 머리를 치켜드는 코브라와 같이 위협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난 뱀을 잡아먹는 몽구스!
몽구스를 일컬어 코브라 킬러라고 하지 않는가?
네 독이 다른 사람에겐 즉사를 시키는 맹독일지 몰라도.
나에겐 그저 그런 마취제일 뿐이다.
와랏!
왕만도 두열의 템포에 맞춰 스윙을 가져갔다.
그는 긴 칼로 볏단을 잘라내는 한 명의 무사가 되어 사선으로 도 끝을 그었다.
쿠앙!
투 아웃의 상황이라 주자는 타격음이 발생하기도 전에 스타트를 끊었다.
타격음은 부스터를 올리라는 총성이 되었고, 이제는 뒤를 돌아볼 것도 없었다.
달리고 달려 3루를 찍었고 계속 홈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쳐든 그에 눈에 만세를 하고 있는 타자가 눈에 들어왔다.
타자는 멋진 배트 플립을 완성하고 달릴 생각도 없이 높은 궤적을 그리는 타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홈런인가?’
열심히 달리던 성진도 속도를 늦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흥! 멋진데?’
그도 타자처럼 환호를 하며 껑충껑충 쎄러모니를 펼쳤다.
공은 끝도 없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하늘의 끝이 어딘지를 확인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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