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만년 9승 투수 (4)
메이저리거?
좋지, 좋아. 아주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그렇게 좋은 선수가 왜 여기에 있는데?
그래, 네 비디오를 본 적이 있지.
포수가 공을 받을 때마다 눈을 감아?
후후. 일류 급 선수가 눈을 감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나도 긁히고 제구력이 받쳐지는 날엔 메이저리그 5선발 급은 돼.
믿어. 그래, 너를 믿으라고.
아니, 너는 못 믿더라도, 네 공은 믿어.
‘뻑! 머더 뻐커! 뭘 저렇게 실실 쪼개는 거야?’
허리를 숙이고 사인을 받는 투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눈은 셋이었다.
포수, 타자, 심판.
그런데, 포수를 제외한 두 사람은 투수의 표정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심지어 심판은 뭣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투수를 향해 당장 ‘퇴장!’이라는 외침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그의 표정은 재수가 없어 보였다.
그 자신은 자신감이라고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퇴장 콜을 외치고 싶은 심판의 손은 연신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천천히 와인드업 자세를 잡았다.
주자가 있었지만 주자가 없을 때와 마찬가지로 큰 동작을 선보였다.
주자들은 그에 맞춰 보폭을 넓히고 베이스에서 한참을 벗어났지만 두열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에게 보이는 것은 단 하나.
포수의 글러브뿐이었다.
쉬악~! 퍼어엉!
“스뚜랔~!”
심판은 기분이 나빴지만 포수의 글러브로 들어온 공을 본 순간 큰소리로 콜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수가 꼭 공끝에 기백을 담은 느낌이었다.
심판은 그 기운에 휩쓸려 목이 쉴 정도로 콜을 한 후에 그런 공을 던진 투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재수 없던 웃음이 어느새 담백하게 변해 있었다.
전의 웃음은 약한 자가 긴장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위장된 웃음으로 비춰졌는데, 지금은 진짜 강한 절대자가 모든 것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인 것만 같았다.
심판은 그런 느낌에 온몸으로 소름이 쇽쇽 돋아났고, 갑자기 가려움증이 몰려들었다.
반면, 포수인 만호는 크나큰 포구 음에 어울리게 손바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통증이 심했는지 잘생긴 얼굴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그것은 시즌 중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포수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락과도 같았다. 고통을 느낄 때 가장 환희가 느껴야 하는 자리.
포수의 숙명이었다.
손끝에서 시작한 통증. 그것은 팔을 타고 넘어와 척추를 따라 진격을 하였다. 그리고 남자의 감각을 집대성한 그곳을 찌릿하게 자극하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입가에도 고통을 넘어서는 희열의 웃음이 서서히 맺혔다.
꼭 투수와 같이. 갔다.
‘이것들이 쌍으로 나를 무시하나? 감히 나한테 한복판으로 공을 던져? 그것도 직구로? 얼래? 포수까지 미쳤나? 이것들 약 먹은 거 아냐?’
공과 가장 가까운 것은 포수였지만 소리를 가장 잘 듣는 위치는 심판이었다.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포구 음에 심판은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래서 불쾌하던 투수의 표정도 덩달아 보기 좋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타자만큼은 그완 다르게 불쾌함이 하늘을 찔렀고, 덩달아 폭력 욕구가 배가됨을 느꼈다.
공이 정가운데로 몰려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강하다는 직구로.
다른 사람이었다면 불쾌함을 겉으로 드러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출신이었다.
그는 조용히 화를 삭혔고, 오히려 그 화를 힘의 원천으로 승화시키려 하였다.
정면 승부를 피할 그가 아니었다.
밖으로는 한 번도 표현한 적 없지만, 노란 원숭이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그였다.
[투수 와인드업, 스트라익! 오오! 이번에도 한가운데로 공을 던졌습니다. 우와, 157km입니다. 허구용 해설자님, 이거 오늘 정말 마두열 선수 포텐셜이 던지는 거 아닙니까? 지금껏 제구가 안돼서 150km 이하로만 공을 던지던 선수가 갑자기, 그것도 자신의 최고 구속에 가깝게 공을 던지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아직 장담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지금의 공은 확실히 뛰어난 구석이 있었습니다. 타자의 배트 스피드가 공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투수 다시 공을 던집니다. 와아~! 스트라익 아웃입니다. 공 세 개를 한 가운데다 집어넣는 저 배짱은 정말···. 오옷! 160km! 비공식 기록이 160km/h를 넘어서긴 합니다만, 이렇게 공식 무대에서 컨트럴까지 해가며 이렇게 빠른 속구를 던진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
강력한 직구를 던지고 심판의 콜을 듣기도 전에 두열은 1루 더그아웃을 향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표정.
심판은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갈라지는 목소리로 스트라이크 콜을 외쳐 창공을 찔렀고, 그 보답으로 관중들도 엄청난 고성으로 남은 창공을 마저 부셔버렸다. 그러자 사직 구장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경기장 전체가 울리는 기현상이 발현되었다.
그들은 더그아웃을 들어서는 투수를 향해 가을 야구의 염원을 담아 쉼 없이 고래고래 악을 질렀고, 코치들과 수비들도 두열의 엉덩이를 치며 수고했다 칭찬의 액션을 멈추지 않았다.
“고생했어!”
“오늘 두열이 공 끝내주는데?”
하지만 벤치로 돌아온 5회의 주인공은 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리액션이라도 한 번 해 줄만 하건만, 두열은 얼굴에 조용히 수건을 덮으며 주위를 차단하였다.
위기를 넘겼고 시즌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강렬한 모습을 보였기에 동료들은 그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시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시합 중 투수는 가장 민감한 존재이자 껄끄러운 대상이다.
더구나 그가 앉는 자리는 불가침의 영역.
투수가 동료들의 반응에 호응을 하면 그들도 그에 걸맞게 아니 외려 오버를 하며 리액션을 해준다.
그런데 두열은 처음에만 고개를 끄덕였을 뿐 조용히 자리에 앉아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앉았다.
덕분에 시끌벅적하던 더그아웃도 슬그머니 조용해졌다.
두열이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래도 동료들은 기분이 좋았다.
위기의 순간이었고 실책도 많았는데 투수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혼자서 덜어내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 명의 동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표정이 밝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두열은 차분히 땀을 시키며 저 혼자 식혀지지 않는 희열을 만끽했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능력치들을 클릭했다.
▼ 2. 스텟 ★
– 스텟 등급 : A0 (2034 point↓)
▼ 체력 : A0 (2093 point↓)
▼ 근력 : A+ (2124 point↓)
– 미는 힘 : S– (2240 point↓)
– 당기는 힘 : C+ (1574 point↓)
– 순간 폭발력 : S0 (2350 point↓)
– 근지구력 : S0 (2331 point↓)
▼ 민첩 : A0 (2005 point↓)
– 순간 동작 : S– (2222 point↓)
– 10m 속도 : A+ (2109 point↓)
– 30m 속도 : B+ (1818 point↓)
– 평균 속도 : B+ (1869 point↓)
▼ 정신 : A– (2177 point↑) ★
– 지능 : C– (1386 point↓)
– 지혜 : S+ (2445 point↑) ★
– 집중 : S+ (2405 point↑) ★
– 멘탈 : S+ (2471 point↑) ★
★ 특수 약물에 의해 급상승하였습니다.
▼ 유연성 : S– (2264 point↓)
▼ 오감능력 : C+ (1538 point↓)
– 미각 : F0 (0820 point↓)
– 후각 : D– (1004 point↓)
– 청각 : C+ (1527 point↓)
– 촉각 : S0 (2311 point↓)
▼ 시각 : A0 (2029 point↓)
– 시력 : A0 (2034 point↓)
– 동체 시력 : A0 (2024 point↓)
눈빛으로 스텟을 클릭하자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세세한 내용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뭔 스텟이 이리 많아? 흠···. 보자.’
스텟을 둘러보던 두열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전 얼핏 보았던 루사니오의 정보에서도 S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부분 B와 A를 가리킬 뿐이었는데, 자신의 상세 스텟에는 S급이 수두룩하였다.
그런데 정신 계열의 스텟에서 약간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였다.
‘음. 역시 약 때문에···. 하긴 그것 말고는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 그런데···.’
두열은 급작스럽게 단단해진 정신력에 반비례하게, 이 상황에 대한 조바심이 슬금슬금 이는 것을 느꼈다. 약을 먹고 이상한 능력이 생겼다거나, 그것에 의해 혼란스러운 감정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분명 오늘 경기가 끝나면 이변을 보인 두열 자신에게 약물 검사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쩐다···.’
답이 나올 리 만무하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은 켜켜이 쌓여만 갔고, 6년간 심약해진 마음은 ‘이 자리를 피하라.’고 연신 두방망이질을 쳤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정신 한 부분에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못 먹어도 고~!’를 연달아 외쳤다.
‘그래, 못 먹어도 고지. 되돌릴 수도 없는데, 어차피 잘못돼 봐야 피똥밖에 더 싸겠어?’
두열은 단순하게 결론을 짓고 다시 스텟을 분석했다.
그의 스텟은 오감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매우 우수한 등급이었다.
등급의 수준을 어떤 기준으로 가늠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통 게임을 하면 S급이 최상급이고 F가 최하급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뒤에 ‘+, 0, –‘가 붙었으니 분명히 ‘S+’가 가장 좋은 등급일 것인 데, 자신의 등급이 대부분 ‘A’등급 이상이었으니 흡족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엥? 근데 지능 수치가 왜 ‘C–‘야? 이거 다 맞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는 낮아 보이는 지능 수치가 못미더웠지만, 사실 그에게 딱 맞는 수치였다.
그리고 떨떠름한 그에게 포수가 다가왔다.
“뭐해? 안 올라갈 거야?”
“네?”
정신을 차리니, 세 명의 타자가 쌈박하게 삼자범퇴를 당해 주셨다.
“이번 회도 믿어도 되지?”
“그럼요. 오늘은 저만 믿으세요. 가시죠.”
팡!
“뜨뜨라잌 아웃~!”
[오오, 또 삼진을 잡는 마두열 선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크흠. 그렇군요.]
[5회에 잠시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6, 7, 8회를 내리 뒤돌려 세우며 이 마운드의 주인은 자신임을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확실히 포텐셜이 터질 것 같죠?]
[뭐, 다음 경기를 봐야 알겠습니다만, 한 경기 반짝했다고···.]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광고 보시고 오겠습니다.]
[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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