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시즌 제26시리즈 – vs 잠실 (1) 1차전.
온몸이 흠뻑 젖은 두열은 집으로 돌아가 새 옷을 꺼내 입고 함께 가기로 한 수로네 집으로 차를 몰았다.
벨벨벨~
수로네 집 앞에 도착한 두열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나는 안내 음악만 들릴 뿐 수신은 되지 않았다.
“아~ 이놈 아직도 자나 보네.”
수로 이놈은 시간 관념이 너무 좋다.
뭔 말이고 하니.
모든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항상 급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세상 사는 게 마음처럼 된다던가?
그래서 이놈은 항상 지각을 일삼았고, 그것이 습관이 된 타입이었다.
아마 아직도 자고 있거나 이제 씻고 있을 터였다.
딩동!
두열은 급한 마음에 파킹을 하고 빌라로 올라가 초인종을 몇 번 눌러 보았지만 안에서는 인기척조차 없었다.
“벌써 출발했나? 갔으면 전화라도 할 놈인데···.”
두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벨을 누르려고 했는데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아이고 깜짝이야.”
“놀라기는, 죄 졌냐?”
“어? 너 이러고 가려고?”
두열은 오랜만의 친구 모임인지라 광대가 한껏 승천하여 때 빼고 광을 내었는데, 이놈 수로는 평소 후줄근한 모습 그대로인 채였다.
자가용으로 이동을 할 거라지만, 만약 저 모습으로 버스나 공용 이동 수단을 택했다면 창피하기 딱 좋은 지저분함이었다.
“내가 어때서? 가자.”
두열은 혀를 차며 성큼성큼 걷는 수로의 발걸음에 자신의 스텝을 맞췄다.
“넌 왜 애가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게 하나 없냐?”
“왜? 이런 내가 창피해?”
끄응. 이놈은 항상 이런 식이다.
무슨 말만 하면 이런 방식으로 철벽을 쳐 버리니 뭐라 답변을 할 수가 없다.
하긴 이게 이놈이 맛이지.
그런데 차를 세웠던 곳이 번화가와 가까워 사람이 많았고, 그들은 나의 얼굴을 알아보고 연예인을 보듯 친근함을 표시하고 싶어 했으나, 수로의 너저분함을 본 후엔 왠지 꺼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밖을 돌아다닐 때 너무 많은 분들이 반가워해 주셔서 감사하긴 했지만 사실 힘들 때가 많았는데, 수로 이놈이 이런 효과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 친구가 짱이구나!”
“닥치고 문이나 열어?”
“미친 새끼, 니가 무슨 왕자님이냐? 니 앞발로 열어라.”
이 자식이 생긴 건 그냥 봐 줄만 한데 입고 다니는 스타일이나 하는 행동은 홀랑 깨는 스타일이었다.
부르릉.
“야!”
“어.”
“이제 나이도 있는데 좀 챙겨 입고 다녀야 하지 않겠냐?”
“사람은 다 생긴 대로 사는 거야.”
이놈이 그렇게 말을 하더니 횅하니 눈을 감았다.
“도착하면 깨워라.”
“개놈의 쉑. 내가 기사냐?”
“형아 밤새 글 쓰느라 한잠도 못 잤다. 잔다.”
이놈은 글 재주가 없던 놈인데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게 좋다며 항상 노트를 들고 다니며 조금씩 끄적거리더니 이제는 아예 작가를 한다고 밤을 새곤 했다.
아, 이놈이 정신만 차리고 정상적으로 살면 괜찮을 타입인데···.
이 녀석은, 성격이 까칠하기는 하지만 의리도 있고 사람을 좋아하는 정에 굶주린 녀석이었다.
양복을 입어도 어디에서 주어 입은 것인지 펑퍼짐한 그런 옷을 즐겨 입었고, 잠바도 항상 커다란 것만 입고 다녔다.
왜 그런 옷만 입냐며 옷을 선물하려고 하자, 내버려두라며 괜히 성질을 내었다.
자칭 넝마주의라나?
큰 잠바는 비상시에 이불 대용으로 좋단다.
미친 놈. 그래서 한 번은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야! 너는 다른 사람의 눈은 의식하지 않냐?”
그랬더니.
“야,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하는 거야. 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진짜 나를 좋아하는 거야. 너처럼.”
“그런가?”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부러 시험에 들게 한다?
일부러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그런데 원장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온 나는 그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남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가족에게도 좋은 의미의 영업을 하거라.’
‘꾸민다는 것을 좋게 해석하면 가꾼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남에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정말 맛있는 음식이다.’
‘프레이팅이 된 음식과 안 된 음식은 그 가치가 천지차이다.’
‘단정한 것과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같은 듯하나 다를 수도 있다.’
‘다른 이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예의의 기본이다.’
‘타인을 시험하지 말거라.’
‘집밖을 나설 땐 항상 단정히 하라. 그리고 집 안에서도 단정히 하려는 자세를 키우거라.’
‘네가 항상 단정한 사람이라면 그대로의 모습으로 밖을 나서도 넌 여전히 단정할 것이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단정한 네 모습을 볼 때 기꺼워지는 법이다.’
그런 말씀들로 세뇌가 된 나는 친구의 말이 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원장 선생님 말씀이 적용된 적 있었다.
가정을 방문해서 싱크대 정수기를 고쳐주는 아르바이트였는데, 일 특성상 옷이 금방 더러워졌다.
그렇게 더러운 옷을 입고 방문을 하면 사람들의 눈빛이나 태도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작업복과 방문복을 분리하였다.
양복을 입고 방문을 해보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고객들의 반응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의가 발랐으며 전에 듣기 힘들던 존댓말도 더 많이 들었다.
그리고 눈빛 자체가 정말 달랐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는 항상 깨끗한 외모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수로야, 근데 나 너랑 다니면 쪽팔려.”
“뭣마?”
“아냐.”
“운전이나 해.”
개쉑, 성질 더러운 걸 깜빡했다.
두열은 그렇게 개성 강한 친구들과 만나 속에 쌓였던 많은 스트레스를 훨훨 날려 버렸다.
가족이 없는 그로서는 항상 자신을 챙기는 친구들이 가족과 같았고, 그들과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논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재미만한 것이 없었다.
“키야~ 술이 쭉쭉 넘어가는구나!”
******
끄윽.
이틀 밤 사이에 태풍이 물러났다.
그런데 거의 일주일 간 가볍게 몸을 굴렸던 게 문제가 되었던지 선수들의 컨디션이 다들 별로였다.
화가 나신 감독님은 시합 재개 하루 전인 어제 우리를 굴렸고, 우리는 훈련소에 막 입대한 신병들처럼 어리벙벙하게 좌우로 굴렀다.
태어나서 군대에 처음 간 사람들은.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제식 훈련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바보냐!’라고 말을 한다.
걷는데 왼발과 왼팔이 같이 나가고.
좌로 걸으라는데 우로 걷고.
바보도 이런 바보들이 없어 보일 정도로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그리고 PT를 할 때 꼭 마지막 숫자를 부르지 말라고 하는데, 369 게임도 아니고 꼭 몇 명은 크게 숫자를 외친다.
자신만만하게 그리고 우렁차게.
멋진 놈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되었다.
감독님 사인에 맞춰 펑고 훈련을 하는데, 이제 막 프로에 넘어온 선수들처럼 강타에 반응을 못했다.
답답한 감독님이 방향을 가리켜 주셨음에도 우리는 흐느적거리며 알을 깠고, 어색한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결국 노하신 감독님의 전체 집합으로 얼차려를 받았다.
크윽. 나야 뭐, 아직 어린 선수축에 속하니까 받을 만했지만 서른 중반을 넘긴 선배들의 눈에는 불똥이 튀었다.
‘내가 이 나이에 얼차려 받으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분들보다 어린 코치도 꽤 되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그것은 바로 선수들 자체 얼차려로 이어졌고, 어린 선수들은 이날 휴가 기간 동안 먹었던 것들을 모두 게워 내야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녹초가 된 선수들은 버스에 몸을 싣고 제26시리즈가 열리는 잠실로 이동을 하였다.
그런데 비를 맞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며칠간 방탕한 생활을 하였더니, 급작스럽게 몸을 굴린 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창졸하게 몸살이 나고 말았다.
애주가이신 원장 선생님께서 사회 생활을 잘 하려면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셔서 아예 못 먹는 술은 아니었는데.
올해 들어 금주(禁酒)에 든 수도사처럼 살았더니 몸에 무리가 왔던 것이다.
결국 그런 이유로 오늘의 경기는 나를 대신해 2선발인 에일리가 선발에 출전하게 되었다.
나도 내일은 시합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주독을 몰아내고 정신을 차리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홈런!]
다행히 시합은 우리의 것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출발이 아주 좋았다.
1회부터 취권을 펼친 타선의 미친 타법으로 상대 투수는 난타를 당했고, 1회에만 5점을 득점하며 쉬운 하루가 될 것처럼 보였다.
헌데 상대 잠실도 독이 올랐다.
태풍으로 인해 거의 일주일을 쉬고 나서 하는 시합이었다.
오랜 휴식으로 선수들은 좋았지만 열혈 관중들은 이 시기가 꽤 지루한 시기였다.
그래서 재개된 시합의 표를 끊고 아직도 축축한 의자에 몸을 앉혔는데 홈팀인 잠실이 타작을 당하고 있으니 기쁜 팬들이 얼마나 있겠나?
결국 질질 끌려다니던 그들이 5회에 이르러 사단을 만들었다.
[아! 이거 잠실이 너무 풀리지가 않는데요?]
[그렇습니다. 초반 대량 실점은 그렇다 쳐도 5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8실점을 한 것은 납득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적인 순위나 팀 케파(capacity)는 잠실보다 부산이 확실히 우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전적은 막상막하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상대적으로···]
잠실은 우리의 천적 중 하나였다.
그들은 거칠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큰 야구를 한다고 하지만, 은근히 새가슴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한 상대보다는 거친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러니 선두권에서 경쟁을 펼치는 다른 팀들보다 이렇게 거칠고 야생적인 모습을 보이는 중하위권 팀에게도 물리는 것이다.
그리고 시합이 잘 안 풀리는 분위기로 전환되던 5회.
전창홍 개자식이 마운드에 섰다.
[잠실은 벌써 네 번째 투수입니다.]
전창홍.
꽤 괜찮은 투수 중에 한 명.
그런데 방향을 잘못 잡은 선수.
팀은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지만 프론트나 단장, 감독님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프론트가 힘이 강하면 프론트가 전체적인 방향을 그려준다.
단장이 힘이 세면 이번에는 단장이.
감독이 힘이 세면 감독이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그 그림과 방향이란 것이 참 웃기다.
빅 볼을 좋아하는 감독들은 사인도 별로 없고, 타자가 비실거리면 얄짤없이 1군에서 내려 버린다.
그래서 그런 팀에 가면 괜히 강한 척을 해야 하고 스윙도 덩달아 커진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지내다 보면 그게 성격이 되고 자신의 능력 위에 덧입혀지는 경우가 있다.
헌데, 잠실은 공격 야구를 표방한다.
팀명은 켈베로스인데, 하는 짓을 보면 내 동물인 하이에나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아, 갑자기 기분 나빠지네?
하여튼 그들은 야비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글러브로 급소 때리기, 스파이크로 위협하기, 승부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바디 체킹하기 등.
빈볼은 예사였고, 그들의 만행에 의해 병석에 누운 선수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친구 상국도 이 팀 선수에게 다리가 아작 났었고.
전창홍은 150km/h를 넘기는 속구를 가진 투수였다.
커브도 괜찮고 스플리터나 슬라이더도 괜찮았다.
조금만 더 영리하게 투구를 한다면 선발의 한 축으로 들어갈 정도로 유연성과 몸의 움직임도 괜찮은 선수다.
그런데 선수의 시작을 잠실에서 했고, 그 팀의 운영 방침에 따라 공격적인 공을 던지게 됐다.
그리고 마귀에게 마음을 뺏긴 불쌍한 영혼처럼.
날이 갈수록 눈빛이 악독해지고 있었다.
올해에만 그의 공에 부상을 당한 선수가 셋.
이놈은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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